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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206화 (206/215)

< 206화 蓬 미■경

보랏빛이라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백우진은 얼굴을 붉혔다.

“•••갑자기 무슨소리야. 오, 옷을 벗으라니.”

그의 당황 섞인 음성에 천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

그녀의 기다란 손가락이 허공을 휘저 었다.

그러자 백우진이 여미고 있던 앞섶이 단숨에 풀어 헤쳐졌다.

“헉.”

헛바람을 들이켜는 그의 모습에 천마는 진한 미소를 그렸다.

“예전에는 네가 이런 식으로 내 옷을 벗겼었지.”

“내가…?”

자신이 이런 야만적인 방법으로 옷을 벗겼던 적이 있었던가.

“ 아.”

떠올랐다.

그때는 분명….

“아니, 그때는 네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래, 치료를 위해서였다.

한사코 몸을 보이는 게 부끄럽다며 상처를 보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랬을 뿐, 별다른 흑심은 없었다.

아마도.

그러다 깨달았다.

이 야밤에 다짜고짜 찾아온 그녀 가 말한 벗으라는 의 미 가 무엇이 었는지.

“어,음.”

백 우진은 창피 함을 무릅쓰고 그녀 에 게 물었다.

“혹시 벗으라는 게, 치료를해주려고…?”

천마의 한쪽 입꼬리 가 치솟았다.

“예나 지금이나, 네놈의 머릿속에는 야한 생각으로 가득하구나.”

쯔쯔 효、스 -

혀를 차는 그녀의 모습에 백우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쥐 구멍 이 있다면 거 기 에 눈알 한쪽이 라도 집 어넣고 싶은 심 정 이 었다.

“•••치료 안해줘도되니까그냥날내버려 두면 안될까.”

이대로 있다간 마기에 잠식당해 죽는 게 아니라 창피해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러나 천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쯤 일으켜진 그의 몸을 뒤로 밀었다.

“나름 재주껏 마기를 빼내고 있는 듯하다만, 너무 느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요사스럽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백우진을 위 아

래로 훑었다.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

“그 상태가오래 지속되면 수명이 대폭 깎일 것이다.”

백우진도 안다.

그녀가오기 전까지만해도 깎일 제 수명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음주선공으로 얻는 선기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때문에 마기를몰아내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려 수명이 깎이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나 천마가 도와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으니 빠르게 마기를 빼낼 수 있겠지.’

이러한 생각은 마경에 있을 때부터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노인에게 마기의 제거를 부탁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노인이 치매를 앓고 있기에, 마음을 놓고 맡기기 가 힘들었다.

일이 잘못되 어 죽는 것보단 수명 이 깎이더 라도 안전하게 치료하는 게 나 을 테니.

창피함이냐, 斑년이냐.

굳이 저울에 달아보지 않아도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럼 부탁 좀할게.”

백우진은 제 손으로 직접 앞섶을 풀어 헤쳐 상의를 벗었다.

천마는 침 상으로 올라와 그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보랏빛으로 물든 그의 신체를 훑어보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무방비하구나.”

그녀의 손이 훤히 드러난그의 심장에 얹어졌다.

마치 당장에 라도 죽일 것처럼 말하고 있음에 도, 백 우진은 그저 웃었다.

“어차피 죽이려면 언제든죽일 수 있으면서.”

그녀 가 마음만 먹는다면 굳이 틈을 찾을 필요가 없다.

날카롭게 세운 검 한 자루만 들이밀어도 지금의 자신은 아무런 저항조차 못하고 죽을 테니.

그렇다고 해서 백우진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를 남기는 말도 아니 었다.

그녀는 그저 답습하고 있을 뿐이 다.

과거에 백우진이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했던 말들을, 그녀 나름의 방 식으로 말이다.

“후후, 그래.”

그녀는 작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죽이려면 언제든죽일 수 있겠지. 너는 약해졌고, 나는 더 강해졌으니.”

천마는 이내 입가에 그리고 있던 미소를 거두어들였다.

“추억 여행은 여기까지 하지.눈을 감아라.”

백우진은 작게 고개를 주억 거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천마는 그의 심장에 손을 얹은 채로 천마신공을 일으켰다.

구결에 따라 운용되 기 시작한 체내의 마기 가 손바닥에 모여들어 소용돌 이쳤다.

맹 렬한 속도로 회 전하는 소용돌이는 강력한 흡인력을 만들어내 어 백우진 의 체내에 있는마기를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쿨럭!”

굳게 다문그의 입에서 검은핏줄기가새어 나왔다.

체내의 마기가 그녀가 일으킨 강한 흡인력에 의해 격한 움직임을 보인 탓 이었다.

“쯧.”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용돌이의 속도를 조금씩 늦췄다.

마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늦어진 만큼, 백우진의 안색 또한 훨씬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또 미련했군.”

속도를 늦췄다고 해도, 빨아들이는 마기의 양은 적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끊임없이 빨려 나오고 있다.

지금 빨아들인 양만 해도 평범한 사람 몇은 죽이고도 남을 양인데, 여전히 그의 체내에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이 남아 제 기운에 반발하여 날뛰고 있다.

“아팠을텐데.”

죽지 않은 게 용하다.

아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만한 마기를 품고 있었으면 시시각각죽는 게 낫다고 여길 정도의 격통 이 찾아왔을 터다.

그가 이토록 무리할 때는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다.

그를 만나 자신이 직감했듯, 그 또한 자신을 만남으로써 직감한 거겠지.

그녀는 눈을 들어 백우진의 얼굴을 살폈다.

마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그는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 일 것이다.

체 내 에 들끓는 마기 가 제 멋대로 날뛰 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것만으로 도, 그는 사력을 다 하고 있을 테 니.

그러니.

“ 맞다.

지 금 꺼 내 놓는 말들은 그에 게 조금도 닿지 않으리 라.

“너와나는 칼을 맞대야만 해.”

무덤 덤하게 고백하며 , 그녀는 그가 떠 나간 뒤 를 회 상했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 세상의 싱그러움을 전달하는 무수한 색채였다.

그가 떠 나간 뒤 맞이 한 세 상이 온통 회 색 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그녀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후회했다.”

회 색빛 세상 속에 서 그녀 가 한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후회뿐이 었다.

자신이 조금 더 너그러웠다면 어땠을까.

어떤 식으로든 그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자신이 먼저 다가갔다면.

허심탄회 하게 그와 이 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순간을 한 번이라도 마련했더 라면.

하염없이 반복되는 만약 속에서 현실과 점점 멀어져가고 있을 때.

그녀는 난데 없이 찾아온 불가해한 존재와 약속을 맺고, 이곳에 당도했다.

“그가내게 바란 것은 하나.”

대적자.

“그는 내가 너의 대적자가되기를 바랐다.”

숙적.

“숙명의 적으로서 네가걸어가는 길의 끝에 서 있길 바랐다.”

시 련을 안겨주고, 고통을 선사하고, 분노를 일으키 라 하였다.

그렇게 두드리고 두들겨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빛나는 존재로 만들라 고.

그와 동시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자가되어야 한다더군.”

빛과 어둠.

진부하기 짝이 없는 대립을 그는 바랐다.

그러나 결말만큼은 진부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게 이기라하였다.”

하늘에 올라 반짝이고 있는 빛을 땅바닥으로 추락시키고, 다시는 빛나지 못하게 꺼트려 이 세상을 완연한 어둠으로 물들이라고.

“한존재가 생각나더군.”

그녀는 그러한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 안다.

직접 겪어보기까지 했다.

마왕.

불가해한 존재는 그야말로 자신을 인간의 탈을 뒤집 어쓴 마왕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웃기지 않나? 용사의 동료였던 내게 마왕이 되라니.”

기사가되 기 위해 어려서부터 검을휘둘러 온 그녀는평생토록기사도와 정의를 숭상하고, 숭배했다.

백우진이 지닌 이타적인 마음 대부분이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그러나 그것은 그를 잃기 전까지 였다.

그녀에 게는 평생을 쌓아온 기사도보다, 정의로운 마음가짐보다 그가 중 요해 졌다.

그렇기에.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불가해한 존재가 던진 보상이 스스로 어둠 속으로 빨려들길 자 처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가지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약속했다.

자신이 요청한 바를 완벽하게 수행해 낸다면.

“모든걸되돌릴수 있다.”

어긋난 모든 걸 바로잡을 기회를 주겠노라고.

!.

.

백우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점차 짙은 감정들이 서리기 시작했 다.

어떻게든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또 애썼던 연모의 감정이었다.

“나는 마땅히 그리 할 것이다.”

세상 하나를 부수어 어긋난 그와의 관계를 되돌릴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 면.

그리하여 평생을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응당 부수고, 죄를 품고 살아가겠다.”

붉게 충혈된 그녀의 눈에 비친 백우진의 안색이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보라색으로 물들다 못해 거의 검은 수준이었던 피부도 원래의 색을 되 찾았다.

장기는 물론이고, 뼈와 근육에 끈질기 게 달라붙어 있던 마기들도 전부 빨 아들였다.

천마는 심장에 붙이고 있던 손을 떼어 냈다.

털썩!

제법 긴 시 간 참아왔던 고통으로부터 마침내 해방된 백우진은 쓰러지듯 침상에 드러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그를 내 려 다보며 , 그녀는 침울한 표정을 지 었다.

“너는 이런나를 싫어할 테지.”

생 각만으로 가슴 아픈 일이 다.

그로부터 전해지는 혐오와 경멸의 시선을 받아내는 것은.

“그러나 상관없다.”

천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읊조렸다.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도, 이곳에서 네가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 도,내가너의 심장에 검을꽂아넣는것도.”

전부 상관없다.

아니, 상관없다고 여길 것이다.

“어차피 너는 이곳에서의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할테니.”

기억에도 남지 않을 물거품 같은하룻밤의 꿈쯤이야, 얼마든지 꾸게 두어 도 된다.

결국 마지막에 그의 곁에 있는 것은 자신일 것이기에.

“좋은 꿈꾸어라.”

그녀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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