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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211화 (211/215)

<211화 蓬 천마신공

날카로운 비명이 두 사람의 귀를 찔렀다.

백 우진은 노인을 올려 다보며 물었다.

“사람 같지요?”

“그렇겠지.”

마인은 저런 식으로 비 명을 내 지르지 않으니.

노인은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애석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어쩌다 이 빌어먹을 땅에 들어왔누…,쯧쯧.”

벌써부터 상대의 명복을 빌어주는 듯한 말투에 백우진이 의 아하다는 투 로물었다.

“지금 가면 구할 수 있을 듯한데요?”

그러나 노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서라. 지금 당장 구한다고 한들, 무에 달라지겠느냐.”

저것이 바로 마교의 사고방식인가.

그는 처음으로 마교와 정파의 차이를 느꼈다.

“끙차.”

백우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무얼하려는 게냐.”

고약한 취미다.

자신이 무엇을 할지 이미 알면서 굳이 확인하려 들다니.

“구하려고요.”

“별 의미 없을 거라고 말했을 텐데.”

노인의 날 선 경고에도 백우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 려 히죽 웃으며 그의 만류를 뿌리쳤다.

“이래 보여도 제가 정파거든요.”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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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인으로서 죽어가는 사람 정도는 살려야 하는지라.”

노인이 잠시 넋이 나간사이, 백우진은쏜살같이 그를 지나쳤다.

“꺄아아아!”

다시 한번 비명이 들려왔다.

백우진은 그 소리를 통해 위치를 특정했다.

‘오른쪽.’

방향은 알았다.

그러나 거리가 생각보다훨씬 멀다.

잘하면 시간 안에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의 기운을 일깨웠 다.

콰득!

주변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신법을 운용하는 백우진.

간간이 마인이 나 마물들이 달려들어 앞을 가로막았지 만, 달리는 그대로 검을 뽑아 녀석들을 반으로 갈랐다.

‘조금만 더.’

마침내 소리의 근원지에 다다랐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백우진은 근처의 땅을 살펴보았다.

푸석푸석한 땅위에 족적이 어지러이 남겨져 있다.

아마 이곳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다른 곳으로 도망친 듯하다.

“젠장.”

백 우진은 제 머 리 를 마구 헝클이 며 욕지 기 를 내 뱉 었다.

일이 복잡해졌다.

곳곳에 남아 있는 족적 탓에 비명을 내지른 사람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방 향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한 번 더 살아있다는 신호로 비명을 내 질러주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들려 오지 않는다.

그것도 제법 긴 시간동안.

“•••늦었나.”

갑자기 입이 쓰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한 사람, 한 사람 놓칠 때마다 찾아오는 아릿함은 좀처럼 나아지 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숙명 이 라고 받아들여 야 하는 걸까.

“에휴.”

백 우진은 등을 돌렸다.

“•••영감탱이가또한소리 하겠네.”

사람 구하겠다고 호기롭게 달려갔다가 구하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아마 거하게 쏘아붙일 테지.

그는 발걸음을 최대한 늦췄다.

감정을 추스를 시 간이 필요했다.

지금 그 얘 기를 들었다간 발끈해서 싸우려 들지도 모르니 .

힘없는 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새액-새액-

아주 희미한 숨소리가 그의 귓가에 닿았다.

이에 반응한 백우진의 신형이 숨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 갔다.

마경에 널리고 널린 괴상하게 자란나무 아래.

아주 비싸 보이는 의복을 입고 있는 여인이 쓰러져 있다.

비단결처럼 고왔을 것 같은 머리카락은 흙이 덕지덕지 묻어 빛을 바랬고, 보랏빛으로 물든 피부 사이에 간신히 남은 뽀얀 피부가 그녀의 원래 피부색 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하아…, 하아….”

당장에 라도 끊어 질 것처 럼 숨소리 가 미 약하다.

‘마인에게 당한흔적은 없어.’

적어도 마인에 게 당한 것은 아닌 듯했다.

마인에게서 도망치는 도중에 내공을 급격하게 소모했고, 그 빈틈으로 마 기가가득들어차게 되어 저렇게 된 거겠지.

팔과 다리는 이미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아마 지금쯤 장기 속으로 침투하기 위해 맹렬하게 체내를 헤집고 있을 터.

‘살릴 수 있나.’

무리다.

적 어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렇다.

그럼노인이 거들어준다면?

어쩌 면 가능할지도 모른단 생각, 아니, 확신이 들었다.

조금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백우진이 생각을 마치고 그녀를 향해 걸어 갔다.

사박, 사박

눈 위를 밟듯, 푸석푸석한 땅을 즈려밟는 소리가 여인의 귀에도 들렸는지, 힘겹게 고개가 움직인다.

다가오는 백우진을 발견한 여 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누…, 구…?”

힘겹게 던진 물음에 백우진이 익살스럽게 답했다.

“저승사자.”

그러자 보랏빛으로 물들어 쩍쩍 갈라진 그녀의 입술이 옅은 미소를 머 금었다.

“누구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좋네, 그 생각….”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백우진이 되물었다.

“무슨 생각.”

그러자 여 인의 눈동자가 백우진을 또렷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같은 잘생긴 사내를 저승사자로 부려 먹는 생각 말이야….”

“…….”

“나같은 여인에게는…,죽기 전 최고의 선물일지도…, 아하하….”

백우진은 말없이 상체를 숙여 땅에 쓰러져 있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  |....

!

..

그리곤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자, 염라대왕보러.”

“응….”

“아, 참고로 염라대왕은늙고, 못생겼으니 기대는 안하는 게 좋아.”

“흐흥….”

여인은 작게 웃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백우진은 곧장 허공을 날았다.

노인은 어이가 없었다.

“허.”

제 멋대로 뛰 쳐 나갔던 백우진 이 마기 에 잠식 당해 곧 죽을 여 인을 데 리고 왔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살려주십쇼:

살려달란다.

노인은 팔짱을 낀 채로몸을 휙 돌렸다.

“싫다. 살린다고 말한 것은 네놈이었지, 본좌가 아니었다.”

백우진이 한숨을 푹 내쉬 었다.

아무래도 자기 말을 거역하고뛰쳐나간 것 때문에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나이를똥구멍으로 처먹은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유치할 리가 없다.

아니면 슬슬 정신이 훼까닥 다시 돌아버릴 때가 오고 있거나.

백우진은 속내를 꽁꽁 감추고서 최대한 비굴한 표정을 지 어가며 노인의 기분을 달랬다.

“부디 노여움 푸시고, 이 불쌍한 여인부터 구해주십쇼. 제가 잘하겠습니다 .예?”

“흥.

고집이 생각보다 더 세다.

백우진은 말없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저 고집불통 영감의 흥을 돋우려면 무엇이 좋을까.

그러다 문득, 제 허리춤에 있는 술병에 생각이 닿았다.

‘그래, 술이라면 통할 거야.’

노인은분명 오랜 세월 마경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경지가 대단하여 음식을 크게 섭취하지 않아도 잘 살아온듯하나, 사람이 란 게 음식 이 나 술을 구태 여 살기 위 해서 만 먹는 건 아니 잖은가.

“영감님.”

“뭐냐.

“이 여인을 살려주시면 제가귀중한 걸 드리겠습니다.”

옆으로 비 딱하게 서 있는 노인의 귀 가 일순 쫑긋거렸다.

입질이 오고 있다는 뜻이리라.

“•••귀중한 것?”

노인의 호기심 이 동했다.

백우진은 여인을 땅바닥에 고이 내려놓은 뒤, 제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풀 어 보여주었다.

“바로 이겁니다.”

그가 자신 있게 내놓은 호리병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좁혀졌다.

“호리병…, 설마…!”

무언가를 짐작한듯, 단숨에 커지는 두 눈.

“예, 맞습니 다! 바로 술입니 다! 그것도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명주 중의 명 !”

“헛…!”

백우진은보았다.

헛바람을 들이키는 노인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이는 것을.

이를통해 확신했다.

‘좋아, 이겼다.’

사실 그로서는 손해 볼 거 없는 장사다.

애초에 이 술은 주선의 술창고가 동나지 않는 이상 절대 마를 일이 없으니 까!

허나 노인은 이를 모른다.

그렇기에 백우진은 신나게 입을 털어댔다.

“이 거 진짜 어렵게 구한 겁니다. 제 가 이 술을 구하려고 죽을 위 기까지 넘 겼습니다…!”

“그, 그 정도란 말이냐?”

“저 백우진! 다른 거짓말은 해도, 술에 대해선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 다!”

뭐, 사실은 사실이다.

죽을 뻔한 위기에 만난주선이 이 술병을 전해주지 않았던가.

“그 정도로 명주란 말이지…, 으음…!”

더럽게 자란 수염을 매만지며 고민을 거듭하는 노인의 귀에다 대고 백우 진이 다시 속삭였다.

“사실 지금 이 술을 안 마시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냐.”

“한번 마시면 너무 맛있어서 다시는 잊지 못하거든요.”

꼴깍!

노인의 침 넘어가는소리가 여기까지 선명하게 들려온다.

사실 싸움은 처음부터 끝난 것이 나 다름없었다.

호리병에 든 것이 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노인의 시선은 그것으 로부터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으니.

백우진은 그저 고민이 길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적당히 구슬렸을 뿐.

“•••좋다. 내 저 여인을 살려주마. 단! 절대 착각은 말거라. 내 네놈의 알량한술 한 병에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저 여인을 측은하게 여기게 되 어 마음을 바꾼 것인즉!”

나이 먹은 사람들은 왜 꼭 저러는지 몰라.

백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영감님의 도량이 얼마나넓은지 말입니다.”

“으음, 그렇지.

수긍하는 노인을 보며 백우진이 눈을 빛냈다.

“그러니 이번 한 번으로 끝이 아니란 것도 믿습니다.”

“뭣…?”

노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간다.

백 우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말을 이 었다.

“저 여인이 마경을 떠나기 전까지는 주기적으로 마기를 빼주셔야지요.”

“이,이놈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한 표정에도, 백우진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아유, 제 가 괜한 말을 했나 봅니다. 도량이 넓은 영감님 이라면 그런 것쯤 은 당연한 걸 텐데 말입니다.”

“…… ”

“그렇지요?”

깔깔깔!

도량이 넓다는 말은 계속 듣고 싶고, 귀찮은 일을 계속하기는 싫고.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부딪히는노인의 얼굴을 보며, 백우진은 속으로 미 친 듯이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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