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화 蓬 천마신공
조금 전의 돌무더기가 그녀의 눈물샘을 터뜨리는 데에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 나, 꼭 그것만이 그녀 가 눈물을 흘리 게 된 원 인은 아니 었다.
“우아아아앙!”
여인은 양갓집 규수처럼 자랐다.
제 좋은 것만 실컷 하고, 싫은 건 전부 떠 넘기며 살아왔다.
그런 여인에게 있어 지난 며칠간의 여정은 그야말로 감당키 어려운 수준 이었다.
자객의 침입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또그들에게 끊임없이 쫓기 고....
심지어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들어선 곳이 한번 들어오면 절대 나갈수 없 다고 하는 마경 이 었던 데 다, 마인들에 게 쫓기 기까지.
그뿐인가?
결국 마경의 마기에 잠식당해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한뒤 마인이 되어 이 기괴한숲을 평생 떠돌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울지 않고 참은 것만 해도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 라면 대 견하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
“히끅...,훌쩍….”
하염없이 흐른 눈물이 그간의 고난과슬픔을 어느 정도 씻어 갔는지, 펑펑 울어대던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 쯤 되 면 슬슬 가슴팍에 묻은 얼굴을 떼 어 내 뒤 로 물러 날 법도 하건만, 그녀는 돌이라도 된 것처럼 굳은 채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어,어떡하지?’
잔뜩 눈물을 흘린 뒤 에 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기대었던 품이 처음…, 아니, 이제 겨우두번째 보는사내 의 것임을.
누군가는 별일 아니 라고 치부할 만한 일이 지 만, 그녀 에 게는 나름대 로 중 차대 한 사안이 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외,외간남자의 품이라니…!’
아버 지와 오라비 를 제외 한 그 어떤 사내 에 게도 안겨본 적 없는 처녀 중의 처녀였으니까.
품에 서 떨 어 지 고 나면 무엇이 됐든 말을 해 야만 하는데,그녀는 그럴 자신 이 없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 자신이.
가장 좋은 건 이대로 떨어져 나와 곧장 줄행랑을 치는 것인데, 그것도 불 가능했다.
이곳은 마경.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곳이 기 에.
‘그럼 어떻게 하지?’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덜 민망한 방법을 찾아보려 머리를 쥐 어짜고 있었지 만, 거기까지였다.
“이제 그만 나오는 게 어때.”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 가 아예 사라짐을 확인한 백우진이 축객령을 내린 것.
나오라는 말에 굳건히 서서 버티고 있을 만큼 그녀는 낯짝이 두꺼운 사람 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한껏 파묻고 있던 제 얼굴을 가슴팍으로부터 떼어내야만했 다.
“••••••.”
“••••••.”
두 사람사이에 정적이 찾아왔다.
여 인은 무슨 말을 해 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고, 백우진은 딱 봐도 창피 해 하고 있는 것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여인이 진정할 수 있도 록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러 나 그것도 잠시 .
“가, 같이 놀 사람이 하, 한명 더 있네 ? 그, 그럼 나까지 하나, 두, 둘, 세 엣… 세, 셋!”
천마군림보를 거하게 발사하고 돌아온 노인이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아니, 어쩌 면 시의 적절하게 끼어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백 우진은 가운데 에 껴 서 와아, 와아 하고 좋아하는 노인을 옆으로 슬쩍 밀 어내며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이 영감은치매니까 이해해.”
“아,응….
자연스럽 게 반말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두 사람.
“그나저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괘,괜찮아!”
그녀는 그리 답하며 제 의복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돌가루들을 탈탈 털어 냈다.
“저기,그…,당신이 날구해준거지…?”
여인은 기 억하고 있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찾아온백우진의 모습을.
“정확히는 난운반만한 거고, 살린 건 저 영감이 했지.”
그녀의 시선이 주변을 방방 뛰노는 노인에게로 옮겨졌다.
“저,저할아버지가…, 나를?”
| |...
!..
....
믿기 힘들다는 말투.
이해는 간다.
지금의 모습을보면 그 어떤 이도노인이 대단한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할 테니.
백우진은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치매 때문에 저렇게 되기는했는데,원래 능력이 대단한사람이거든.”
사실치매 때문도 아니지만, 일일이 설명하기가귀찮았던 백우진은 그냥 치매로 치부하기로 했다.
“그,그렇구나아….”
여전히 믿기 힘들어 보이는눈치.
하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수긍하려고 애썼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구해줬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남이 했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 하지 만 네가 날 운반해줘 서 산 거기도 하니까, 너도 내 은인이 야. 정말 고마워…!”
“뭐 …,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 내가집으로돌아가기만하면…!”
그녀의 말끝이 흐려졌다.
“미,미안. 어쩌면 보답은 못할지도 몰라….”
그녀가 의 기소침한 목소리로 말을 바꾸었다.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지금 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상태라는 것을.
“으우….”
그녀의 커다란눈망울에 재차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허나 백우진은 그대로 눈물을 흘리게 두지 않았다.
“또울 거야?”
그의 말투는 평온했다.
그러나 표정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렇게 계속 질질 짜기나 할 셈 이냐고.
여인은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안 울어!”
나름 강단은 있는지, 애써 울음을 참는모습이 썩 대견했다.
“일단집 걱정은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묻는 여인의 모습에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여기가 어딘지 벌써 잊어버렸나보네.”
“아….”
문득 떠오른 집 생 각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망각하고 있었다.
이곳이 마경이라는 것을.
자신은 집 걱정보다, 이곳에서 무사히 탈출할 생각부터 해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저기…, 미안한데.”
그녀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백우진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미리 알아차렸다.
“염치 없는 건 알지 만, 날 밖으로 데 려다줄 순 없을까… 猌 부탁할게!”
두 손을 모은 채로 간곡히 부탁하는 여인.
마음 같아선 백우진 또한 그녀를 밖으로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 지만.
“그건좀 힘들 것같은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
그녀의 얼굴이 금세 침울하게 변했다.
백우진은 황급히 말을 이 었다.
“데려다주기 싫어서가아니라, 여건이 안돼.”
여 러모로 문제 가 많다.
가장 먼저 백우진은 어디로 가야 마경 밖으로 나갈수 있는지 모른다.
유일하게 아는 길이라곤 천마신교로 향하는 길뿐인데, 그곳으로 데려가 는 것도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겪어봐서 알 텐데. 여기는 숨만 쉬 어도 마기가 쌓인다는 걸.”
아.”
백우진의 말에 그녀는 죽을 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인을 따돌리기 위해 달리다가 온몸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고통에 겨워 하던 순간을.
그때를 떠올린 여인은 황급히 제 팔과 다리를 확인했다.
“어…, 아직 안변했어…?”
그가 노인과 해괴한 놀이를 할때부터 지금까지.
마인을 따돌릴 때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지 않 았다.
“그게 너를 함부로 어딘가로 데려다줄 수 없는 이유야.”
이 근처에는 마경을 넘실거리는 혼탁한 마기 대신 노인이 천마신공으로 피워올린 진마기가 주변을 잠식하고 있다.
그 반경은 대략 동굴로부터 삼 장 가량.
그 너 머로 가게 되 는 순간 곧장 혼탁한 마기의 공격을 받게 된 다.
“여길 나가는순간 아마넌 밖으로 나갈때까지 버티지 못할걸.”
“할아버지한테 부탁드리면 되지 않아…?”
그녀의 물음에 백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널 구할 때의 영감님은 정신이 온전할 때였어. 지금은…, 모르겠네. 정신 이 온전치 않은 상태로 네 몸에 쌓인 마기를즉각빼낼 수 있을지, 없을지.”
웬만하면 이에 대해 실험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혼탁한 마기는 신체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에.
더군다나 노인은 기껏 만난 사람이 멀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자신과 놀아줄 사람이 없어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아마노인에게 밖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면 어지간해선 들어주지 않을 가 능성이 크다.
“그, 그럼 어떡해? 나계속여기에 있어야 하는거야…?”
울먹이는 물음에 백우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안타깝다는 투로 대답했다.
“당분간은 그래야겠지.”
“당분간이면 얼마나?”
그녀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주기적으로 마기 를 흡입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
“영감님을 정신을 차리 거나, 아니 면 내 가 네 마기를 흡수할 수 있게 될 때 까지.”
둘 중 하나만 성립되 면 그녀를 밖으로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
“그렇구나….”
그녀는 생각보다쉽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납득했다.
“그러면, 저기…, 나 그때까지 여기서 살아도 돼…?”
“집주인이 내가 아니라 저 영감이지만, 아마 될 거야.”
백우진은 희 게 웃으며 말을 이 었다.
“저 영감은 놀아줄 사람이 라면 누구든 환영할 테 니 말이 야.”
어쩌 면 그녀의 존재 가 제 수련 시간을 획 기 적으로 늘려줄 역할을 할 수 있 을지도.
그러한 속내를 감추며 백우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 어 가며 그녀 에 게 물 었다.
“잠시지만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하는데, 통성명부터 하는 게 어때.”
“•••그럴까?”
그녀는 갑자기 제 옷매무새를 정돈하더니, 다소곳한 몸동작으로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내 이름은금여울이라고해.”
“금여울…?
금씨라.
그거 아는가?
중원 제일의 상단으로 손꼽히는 황금상단은 두 가문이 함께 이끌어가는 상단이라는 것을.
•••바로 황씨 가문과 금씨 가문이 말이다.
“저기, 혹시나해서 물어보는건데.”
“뭔데...?”
“너 혹시 집이 황금상단이니…?”
“맞아, 우리 아빠가 황금상단을 이끄는 대행수셨어.”
“… 맙소사.”
걸어 다니는 황금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