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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화 (3/359)

3화 鮮于勢家(선우세가)-3

“형님, 어떻게 무공은 좀 익히셨소? 가주 전용 서고에 들어갔으니 어디 얼마나 늘었는지 좀 보여 주시구려.”

녀석은 아마도 미녀들 앞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할 제물로 날 선택했던 모양이었다.

역시 잔머리 하나는 무지하게 잘 돌아가는 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 나 또한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지금이 아니라지만 지난 삶에서 나는 일류 최상급의 경지까지 올랐던 몸, 그 경험과 깨달음이 어디 갈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직 일류도 채 못 된 애송이 놈이 까부는 모습을 봐주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힘들지. 힘들긴 한데….’

문제는 내 몸이 더 힘들다는 거였다.

나는 나를 믿어도 지금 내 몸은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나는 그저 걷기만 해도 숨이 찬 상태였으니까.

인간보다는 돼지에 가깝다는 말이 그리 틀리지 않다는 것이 나도 슬펐다.

결국 이를 악물고 최대한 물러서기로 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짧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래도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후 기회를 노리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았다.

바보처럼 헤헤 웃으며 좋은 말로 녀석을 달랬다.

“하루 무공을 익힌다고 갑자기 달라질 리가 있겠느냐? 그저 노력이라도 할 뿐인 거지. 지금도 빨리 돌아가, 억!”

퍼억!

하지만 녀석은 내게 선택권을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팔뚝이 부러질 듯 아파 오고 있었다.

놈이 갑자기 달려들어 주먹을 내지른 것을 간신히 막아 냈던 것이다.

“뭐?”

녀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녀석의 기습을 막은 것이 무척 의외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주먹 한 번 막았다고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단련되지 않은 팔이 고통스럽게 욱신거리고 있었다.

원래 여유 있게 피할 수 있었는데, 몸이 반응을 따라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막아야만 했던 것이다.

새삼 내 몸이 절망스러웠다.

“막아? 셋째 형이 내 주먹을 막았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도 넷째 선우기는 충분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 자리에 굳은 채로 멍하니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형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기야, 돼지한테도 막히다니, 네 주먹이 너무 느린 것이 아니냐?!”

“이제 저놈이 가면 선우가의 수치는 아무래도 기가 이어받아야겠습니다, 형님! 하하하하!”

저들이 뭘 생각하는 건지는 안 봐도 뻔했다.

내심 제갈 소저 앞에서 돋보일 선수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쟁자인 선우기가 못난 모습을 보이니 깎아내릴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거겠지.

비웃음을 당한 선우기의 상태야 말할 것도 없었다.

잘 보이고 싶은 여자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녀석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로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고는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감히!”

녀석의 주먹들이 잔상을 만들며 바람처럼 경쾌하게 날아들었다.

파바바박!

“으으윽!”

이번에도 어찌어찌 간신히 막아 냈지만 엄청난 통증에 뼈까지 저려 오고 있었다.

제발 그만 하자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뭔가 좀 묘했다.

분명 처음 보는 녀석의 동작이 어쩐지 눈에 익어 보였던 것이다.

‘저건, 분명?!’

그것은 바로 선우가의 권각법인 질풍십삼박이었다.

익혀 본 적도 없었던 질풍십삼박의 동작이 너무도 익숙하게 눈에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고통마저 잊고 녀석의 동작에 집중했다.

녀석의 손과 발이 질풍처럼 표홀하게 날아들고 있었다. 작은 바람이 뒤섞여 큰 바람이 되듯 권각이 절묘하게 얽히며 방어를 무력화시키는 고급 무리의 초식들.

그 광경이 방금 서고에서 읽었던 비급과 머릿속에서 절묘하게 맞춰지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글과 그림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무리를 한순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희열과도 같았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좋구나!”

그러자 놈이 순간 움찔했다.

“뭐, 뭐? 좋다고?”

녀석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자 내 마음이 급해졌다.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맞춰지고 있던 동작들이 정지해 버렸던 것이다.

“아, 아니! 말이 헛나온 거다. 뭐 하느냐? 어서 공격하지 않고! 더 공격해 다오, 더!”

그러자 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치 변태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웃어 댔다.

“푸하하하! 기야, 놈이 좋다는구나?!”

“더 해 달라는데? 네 공격이 기분 좋은가 보다, 하하하하!”

그러자 으드득 이를 간 놈이 눈에 불을 켜고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죽어랏!”

“그래, 어서 오너라! 으하하핫!”

신이 났다.

지난 생에서 내가 익혔던 것들은 어깨너머로 배운 점창과 청성의 검법들. 당연하겠지만 정확한 무리도, 운용도 알지 못하는 껍데기들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지금 두 번의 삶 중 처음으로 제대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 본가인 선우세가의 무공을.

놈이 폭풍처럼 공격을 쏟아 내는 것을 받아 내며 나는 드디어 머릿속에서 모든 초식을 기억과 일치시킬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띠링’하는 맑은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놈이 이제 손바닥처럼 볼 수 있게 된 초식으로 나를 공격해 왔다.

권법을 질풍처럼 날리다 한순간 각법으로 허점을 공략하는 ‘질풍파랑’의 초식이었다.

상체를 감싸 방어한 두꺼운 팔 사이로 놈의 주먹들이 잔영을 만들며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두두두두!

소나기처럼 내 팔을 두드린 놈의 권영, 그리고 각법으로 전환하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아까부터 수련이 덜 된 듯 어색해 보였던 놈의 허점이 선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스윽 내민 장권에 스스로 달려든 놈의 가슴이 저절로 와서 부딪쳤다.

퍼어억!

묵직한 압력에 손바닥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크허억!”

놈이 오던 속도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며 입으로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털썩!

풀밭에 놈의 몸이 내팽개쳐질 때 나 또한 긴장이 풀린 듯 풀썩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아무래도 이 몸이 쓸 수 있는 한계치의 힘까지 썼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순간 선우기를 비웃고 있던 형들마저도 조용해졌다.

눈을 껌뻑이며 정신을 잃은 선우기를 보는 모습이, 무척이나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그들은 사나운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돼지 새끼가 운이 좋았구나.”

“방금 그 수법, 어디 우리한테도 한번 보여 주지 그러느냐?”

큰일이었다.

이제 진짜 일어날 힘도 없었던 것이다.

‘아, 젠장. 안 되는데.’

식은땀이 흘렀다.

맞는 건 상관없지만 지금 저들의 눈빛에선 살기까지 느껴지고 있는 중, 심하게 다쳐서 다시 서고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상황을 수습해 보려 했다.

“혀, 형님들! 제 실수로 기가 많이 다친 것 같습니다! 기의 상세부터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코웃음 쳤다.

“흥! 누가 누구를 걱정해 준단 말이냐?!”

“기도 네놈에게 복수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위기의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구원군이 나타났다.

바로 나를 이 위기에 빠트렸던 제갈 소저였다.

“동생이 다쳤는데 상세를 살피기는커녕 지쳐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람이나 괴롭히려고 하다니. 정말 실망스럽군요. 그렇지 않니, 청연아?”

그러자 제갈 소저의 반걸음 뒤에 서 있던 앞머리로 눈을 가린 여인이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으로 상황은 급히 종료되었다.

당황한 형들이 황급히 변명하며 선우기에게로 뛰어갔던 것이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지금 막 동생의 상세를 살피려던 참입니다!”

“저는 이미 살피고 있습니다! 기야, 괜찮으냐?!”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이지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들이었다.

이제껏 저런 놈들에게 당하고 살고 있었다니.

나 역시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하긴, 저놈들이 괜찮은 놈들이었다면 이미 좋은 관계가 된 상태였겠지.

내 친구였던 단하상처럼 말이다.

문득 억울하게 죽은 내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과거로 다시 돌아왔음에도 결국 죽은 모습밖에 보지 못한 내 친구, 새삼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다

‘하상, 내 반드시 자네를 해친 흉수를 찾아내고야 말겠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러 주겠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내 형제들은 정신을 잃은 선우기를 업고는 썰물이 빠지듯 순식간에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제갈 소저가 청연이라고 불렀던 앞머리를 길게 내린 소저만이 마지막까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내 쪽을 바라봤을 뿐이었다.

이제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아무도 없는 풀밭에 대자로 누운 채 한참을 더 헐떡거렸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한가로이 떠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느새 오셨는지 선우중, 내 아버지께서 나를 내려다보시고 계셨다.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아버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기껏 가주 전용 서고까지 보내 줬는데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여기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 저는 그러니까 지금…!”

참 이상했다.

지난 삶에서 한 번도 그리워한 적이 없던 아버지를 실망시킨다는 것이, 어쩐지 형제들에게 두들겨 맞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빛은 실망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은 어쩐지 애잔한, 그리고 내가 그에게서 처음 보는 어떤 감정을 담고 있었다.

너무 낯설어서 믿을 수 없는 그런 감정을.

그가 내게 나직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고생했구나, 진아. 그리고….”

그의 입에서 처음 들어 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특하구나.”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문득 시선을 돌려 하늘을 쳐다보며 읊조리듯 말씀하셨다.

“아느냐? 내가 했던 네 번의 혼인 중 스스로 원했던 것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는 것을.”

처음 들어 보는 얘기였다.

“그땐 세가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구나.”

그 목소리가 너무도 쓸쓸해서 가슴이 아파 왔다.

하지만 동시에 머리가 혼란스러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저 말씀은, 그러니까 네 번의 혼인 중 스스로 원하셨다는 한 번이 그럼, 설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안타까운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볼 때, 그가 문득 분위기를 바꿔 빙긋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선우십삼검의 비급은 읽었느냐?”

“네? 네! 읽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풀밭 공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부터 오랜만에 검법 수련을 좀 해 볼 생각이다. 너는 적당히 쉬다가 다시 들어가거라.”

그러고는 검법을 느리게 펼치기 시작하셨다.

바로 선우십삼검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느리게.

그러곤 다시 처음부터 좀 더 빠르게.

점점 빨리하며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가 더 이상 보지 않을 때까지.

세 번째 봤을 때 나는 이미 모든 초식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아버지의 검무를 바라봤다.

넋을 잃고, 하염없이.

지금 이 순간이, 어쩐지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호흡이 거칠어졌을 때, 천천히 그분께 절을 하고는 서고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제 무공서들을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처음처럼. 아니, 처음보다 더 집중한 상태로 다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조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무공에 관한 서적을 다 읽고, 마지막으로 읽은 책들은 선조들의 일기 같은 거였다.

여러 가지 겪었던 일들과 심득을 남겨 놓으신 것들이었는데, 역시 아직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초식도 이해가 힘들었는데 벌써 심득까지 이해가 가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드디어 마지막 권을 읽고 책꽂이에 넣으려 할 때였다. 문득 살짝 이상한 감촉에 책을 다시 빼 봤다.

그리고 세세히 살펴보았다.

‘이건…?’

아무리 봐도 표지 한쪽의 두께가 좀 이상했다.

한쪽에 비해서 다른 한쪽이 너무 두꺼웠던 것이다.

전선에서 근무할 때 이런 식으로 밀지를 전달하는 첩자를 색출한 적이 있어 잘 알고 있었다.

표지의 안에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조심스럽게 표지를 뜯어서 갈라 봤다.

“역시!”

그 안엔 얇게 접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종이엔 양면으로 몇 가지 그림과 글씨가 쓰여 있었고, 각 종이 면의 위에는 제목이 크게 쓰여 있었다.

‘십사초’, ‘십오초’라고.

십사초, 십오초라면….

“…설마?”

아마도 내가 이것의 최초 발견자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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