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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7화 (7/359)

7화 魔人(마인)-1

선우세가를 출발한 지 구 일 만에 우리는 드디어 운남성의 초입 곡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이었기에 이곳의 객잔에서 하루를 묵고 내일 낭인들과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고개 두 개만 넘으면 바로 전선이었으니까 말이다.

객잔의 앞에 서서 입구를 바라보던 낭인들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여기까지 구 일이나 걸릴 줄이야.”

“멀쩡한 객잔에서 묵게 되기까지도 구 일이 걸렸지.”

“난 지금 감동받았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자, 자. 어서 들어갑시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술 한잔하시죠. 제가 쏘겠습니다.”

“오오! 역시 선우 공자! 믿고 있었소!”

“명문의 자제는 역시 통이 크구려!”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하며 말하는 그들을 보니 아무래도 당한 게 아닌가 싶긴 했다.

우리는 여정 막바지에 이르러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이들이 낭인치고는 매우 신뢰가 가는 워낙 괜찮은 이들인 것도 있고, 나도 딱히 신분을 가리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서로 스스럼없이 흉중을 터놓게 됐던 것이다.

이십 년을 같이 살았던 세가 사람들보다 고작 구 일을 같이 보냈던 이들에게 더 정이 간다는 사실이 참 씁쓸했다.

우리는 대충 방에 짐을 풀고는 모두 일 층 탁자에 모여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 무사님은 그럼 이번 일을 끝내면 집으로 아예 돌아가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수더분한 인상의 공 무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전에 마누라가 요리를 못해 밤에만 들어간다고 말했던 그였다.

“그렇소. 아무래도 처자식이 있다 보니 칼밥은 더 이상 못 먹을 것 같더구려.”

그러자 매사에 툴툴거리고 쉽게 욱하는 이 무사가 말했다.

“에잉, 그러게 낭인은 처자식 만드는 거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건만!”

그 말에 옆에 있던 넉살이 좋은 양 무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자네는 왜 부러운 표정인가?”

“내가? 흥! 그럴 리가! 자네야말로 부러워서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닌가?”

“이것 봐. 또 욱하잖아? 자네는 정곡을 찔리면 그렇게 욱해서 거짓말을 못한다니까.”

“아, 아니라니까!”

그들을 보며 과묵하고 순한 종 무사가 웃고 있을 때, 우두머리 격인 장 무사가 주의를 환기하며 말했다.

“자자, 오늘은 선우 공자와의 마지막 날이니 한번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 보세!”

“좋지! 주인장! 술부터 먼저 내주시오!”

장강성 무사를 중심으로 이들 다섯 명은 꽤 오랫동안 뭉쳐 다녔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처자식이 딸린 공 무사가 일행에서 빠지는 모양이었다.

외진 곳이라 일 층엔 우리밖에 없었기에 마치 일 층을 전세 낸 듯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객잔 문이 탁 열리며 한 사람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고! 어서옵쇼! 아리따운 소저가 오셨구려!”

점소이의 호들갑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봤다.

그러곤 모두 다 놀란 눈빛이 되고 말았다.

“응?”

“저 소저는 그때 그?”

그녀는 얼마 전까지 선우세가에 있었던 청연이라는 소저였던 것이다.

앞머리를 코앞까지 내린 독특한 외모의 그녀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때 객잔 안을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 또한 우리 쪽으로 고정되었다.

그러자 서로 어색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잠시 침묵이 감돌았고, 장 무사가 내게 슬쩍 말했다.

“아는 사람인데 자리를 함께하자고 권해 보시지 그러오.”

“네? 아, 네. 그러죠. 청연 소저! 여기서 다 뵙습니다!”

객잔에서 아는 여자랑 마주치다니 이런 상황은 두 번의 삶 중 처음이라 매우 어색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말을 걸자 아무렇지도 않게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하하! 괜찮으시다면 이쪽으로 와 저희와 함께 합석을…. 벌써 앉으셨구려, 아하하.”

전에도 느꼈지만 무척 행동이 거침없는 소저였다.

눈을 가려서 그런지 주변 시선은 아예 안 보는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낭인들이 어색함을 없애려는 듯 친근하게 말을 걸어 주었다.

“어서 오시오, 소저. 어떻게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려.”

“우리는 술을 한잔할 생각인데 어떻게 요리부터 시키시겠소?”

그들의 질문에 그녀가 고저 없는 평이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평이하지 않았다.

“저도 전선에 지원해 보려구요. 요리는 조금 이따가 시킬게요.”

응? 뭐라고?

잠시 눈을 껌뻑거린 우리가 다시 물었다.

“…지금 뭐라 하셨소?”

“소저가 전선에 지원한단 말이오?”

“아니, 대체 왜?”

좀 충격적이었다.

보통 무림인들도 전선의 실상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사망률이 엄청나게 높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협명이 높은 협객들조차 요즘엔 전선으로 가기를 꺼려 하는 중, 오죽하면 무림맹에서 귀주성의 문파들에게 강제 징용 공문까지 보냈겠는가.

‘근데 거기를 스스로 자원해서 가겠다고? 그것도 여자 혼자서?’

그곳의 실상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괜히 어설픈 영웅심으로 후회할 짓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걱정마저 됐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녀에게 물었다.

“저, 소저. 혹시 거기를 왜 지원하시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그녀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예? 아! 하하하! 아무래도 전선에서 생활하려다 보니 살을 뺐습니다! 소저께서도 알아보실 정도인가 보군요.”

“네, 아주 홀쭉해지셨어요.”

“아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살이 빠졌단 얘기는 언제 들어도 짜릿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방금 했던 질문에 답이 없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넘겨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낭인들도 덩달아 나를 칭찬해 줬다.

“선우 공자가 정말 지독하게 노력했다오! 정말 대단했지. 우리에게도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소!”

“늘 같이 있어 몰랐는데 살이 빠지고 보니 선우 공자가 인물이 사는구려! 아주 호남이 되셨소!”

“와하하하! 제가 살 빠지면 인물이 좀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습니다!”

그때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난 청연 소저가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저는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 모습이 묘하게 기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여자를 잘 모르는 내가 무슨 일인지를 추측하기엔 무리였다.

그러다 곧 술이 나오며 그녀에 대한 생각을 뒷전으로 넘기고 말았다.

***

해청연은 선우진과 낭인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는 객잔의 바깥으로 나왔다.

하늘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주변에 보이는 빽빽한 숲들이 검은 그림자처럼 보이고 있었다.

문득 선우세가에서 나올 때를 생각했다.

전선에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친구 제갈서율은 경악해서 소리를 질러 댔었다.

‘뭐어어?! 말도 안 돼! 너 미쳤어?! 아무리 나라고 해도 거긴 못 따라가 준단 말이야! 해 대협께서 아시면 어떻게 하려고?!’

‘아버지는 이해하실 거야.’

‘이해가 아니라 포기하시는 거겠지!’

‘어쨌든.’

워낙 취향과 행동이 독특하고 한 가지에 꽂히면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다 보니, 이제까진 뭘 해도 아버지는 물론 가족들도 다 그러려니 포기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선에 간다는 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잡혀가면 정말 집에 감금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후우우.”

긴 한숨을 내쉬며 선우진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려 봤다.

그녀는 정말 깜짝 놀랐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의 수제 인형 ‘만두’와 그렇게 꼭 닮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인형(?)과 같은 외모, 우연인 듯 보여 준 한 수, 조사해 보고 알게 된 그의 과거. 그 모든 것이 그렇게도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뛰어서 운남까지 가겠다며 뛰기 시작했던 순간, 호기심에 그를 지켜보던 해청연은 정말 혼이 나갈 뻔하고 말았다.

그 뒤뚱거리는 귀여운 모습이라니.

심지어 반각도 못 가 쓰러져 버리던 비현실적인 체력이라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도 귀여운 그를 혈교의 마인들에게 살해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있단 말인가!

그녀는 그런 끔찍한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지켜 줘야만 했다.

이것은 세상에 숨겨졌던 귀여움을 목격해 버린 선구자로서의 의무였다.

그래서 여기까지 따라왔던 건데….

이곳엔 더 이상 그녀가 아는 ‘만두’ 인형은 없었다.

아직도 조금은 귀엽지만 그냥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림인일 뿐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산적들도 그가 해치웠다는 것 같지 않은가.

그땐 잘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열정의 목표물을 발견했다며 불타오르고 있던 해청연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푹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돌아갈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간다는 건 아무리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그녀라도 좀 창피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유가 없어졌는데도 전선에 들어가는 건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걱정할 가족들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내일 다시 돌아가자.”

그녀는 결국 그렇게 마음을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객잔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문득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악!”

“아악! 살려…! 으아아악!”

뭐지?

가까운 거리였다.

아까 들어올 때 봤던 울창한 수풀 바로 너머에 있는 집인 것 같았다.

게다가 두 번째 비명은 심지어 말을 하다 끊기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지금 방금 사람들이 누군가, 아니면 뭔가에게 습격을 당한 것 같았다.

해청연은 바로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어떤 놈이냐?!”

상대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수풀을 뚫고 그 뭔가가 이쪽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화아악!

소리도 없는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해청연은 당황하지 않았다.

“하아압!”

그녀가 휘두른 검광이 어두운 가운데 허공을 거미줄처럼 가르며 번쩍거렸다.

슈하악!

상대는 짐승이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도 적수공권, 심지어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은 상태의 남자였다.

그래서 단 일 초식이면 육편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 해청연에게 들려온 소리와 감각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까까까깡! 깡! 깡!

분명 상대의 몸을 베었는데 쇳소리를 내며 검이 튕겨 났던 것이다.

믿을 수 없게도 상대가 맨몸으로 자신의 검을 튕겨 내며 덮쳐 오고 있었다.

“뭐?!”

당황한 해청연은 상대가 휘두르는 팔에 검을 갖다 대 간신히 막아 낼 수 있었다.

콰앙!

“아윽!”

분명히 사람의 팔과 검이 충돌했건만 마치 쇠몽둥이에 부딪친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해청연의 몸이 속절없이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휘익!

공중에서 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착지했다.

상대도 그녀의 검을 후려친 반작용으로 땅에 내려선 상태, 해청연은 어두운 가운데서도 이제야 상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러곤 그녀로선 드물게 경악했다.

“변태?!”

그자는 벌거벗은 남자였다.

흉물스럽게도 거대한 물건을 치렁치렁 내놓고 있는 변태 같은 남자, 웬만한 여인이었다면 그 외모만으로도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아 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해청연은 웬만한 여인이 아니었고, 지금은 그럴 때도 아니었다.

놈이 바로 다시 덮쳐 오고 있었다.

“캬아아아!”

마치 짐승 같은 울음소리, 그리고 역시 짐승 같은 몸놀림이었다.

“하아압!”

해청연이 온 신경을 집중하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일류 최상급의 경지에 달한 검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가고 있었다.

슈하아아악!

하지만 결과는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까깡! 깡! 까가강! 깡!

놈의 맨몸이 그녀의 검기는 물론 검도 다 튕겨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경악하며 황급히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때 옆에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웬 놈이냐?! 하압!”

객잔 안에서 선우진과 함께 있던 낭인이었다.

유난히 넉살이 좋아 보였던 남자.

그가 괴인에게 뛰어들며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깜짝 놀란 해청연이 소리쳤다.

“안돼요! 저놈은!”

하지만 이미 늦었다.

깡! 푸욱!

“꺼억!”

간단히 머리로 도를 받아 낸 괴인의 손이 그의 가슴을 꿰뚫어 버렸던 것이었다.

즉사였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평소에 좀처럼 냉정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시야에 훤하게 열린 놈의 목덜미만이 보이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놈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하아압!”

까아앙!

하지만 그것의 목은 여전히 베어지지 않았다.

강한 진동에 손만 저려 올 뿐이었다.

“으윽!”

그때였다.

놈이 손을 목 뒤로 뻗어 그녀의 검을 턱 붙잡아 버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놈의 입만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안 돼! 이익!”

깜짝 놀란 해청연이 검을 힘껏 잡아당겨 봤지만 전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놈이 낭인의 가슴에서 뽑아낸 손을 다시 겨누자, 그녀의 눈에 절망의 빛이 차올랐다.

“아아아….”

낭인의 가슴을 꿰뚫었던 놈의 손이 이번엔 그녀의 가슴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슈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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