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11화 (11/359)

11화 飛龍十三隊(비룡십삼대)-1

“따라오게, 이쪽이 바로 칠 조의 막사라네.”

우리는 설풍 조장과 나서유 부조장을 따라 모두 칠 조의 막사로 안내되는 중이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조 배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나와 청연 소저, 천주은 소저는 모두 칠 조로 배정됐다.

최악의 경우 마유겸의 사 조로만 배치되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두 칠 조로 배치되다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잠시 후 도착한 칠 조의 막사는 내 기억과 똑같았다.

지난 삶에서 칠 년을 살았고 나를 무인으로 만들어 줬으며 또 많은 친구들을 얻었다가 잃어버리게 했던 그곳.

문득 가슴이 아련해졌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막사는 중앙부가 통합 대기실이고 그 양쪽 끝이 각각 남자와 여자 숙소인 구조로 되어 있었다.

부조장인 나서유 소저가 청연 소저와 천주은 소저를 여자들 숙소 쪽으로 데리고 가자 설풍 조장이 내게 말했다.

“조원들 중 텃세를 부리려는 자도 분명히 있을 걸세. 부디 너무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렇게 말하는 설풍 조장의 눈엔 약간의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이미 지난 생에서 혹독하게 겪어 봤으니까.

문득 지난번 처음으로 숙소 안에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뭐야? 푸하하하! 저건 돼지냐, 사람이냐? 마인들에게 먹으라고 던져 주면 되는 건가? 설마 같이 싸우라고 데려온 건 아니겠지?’

‘선우세가의 삼남? 아아! 기억이 나는군. 그 선우세가의 수치라던. 근데 그런 수치를 우리 조에 데려오다니 조장 제정신인가?’

‘꺼져! 이 혐오스러운 돼지 새끼야! 얼굴만 봐도 재수가 없어!’

그걸 텃세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받는 끔찍한 혐오와 따돌림에 밤마다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얼마나 괴로웠던가.

물론 결국 그 모든 괴로움을 딛고 일어나 나를 바꿀 수 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게 사실이었다.

근데 그랬던 곳을 지금 다시 한번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숙소 문을 열자 그들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오, 조장! 신입이오?”

“으하하하! 체격을 보니 형씨도 나만큼 먹겠구려! 반갑소!”

그들 나름대로 반갑게 맞이해 주는 전생의 친구들 비사영과 배종관의 반가운 모습도,

“뭐야? 웬 돼지가 왔대?”

“뭘 기대해? 제대로 된 신입이 들어올 리가 있겠어? 조장이 우리 조장인데.”

“킬킬킬, 그건 그렇지.”

기억과 똑같은 모습으로 뭉쳐서 비웃고 있는 하무진, 지만금, 만구인의 세 얼간이도.

그래도 과거보다 훨씬 수위가 낮아진 반응들을 보니 새삼 살을 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보고 있자 설풍 조장이 나를 소개해 줬다.

“자자, 여기 선우진 공자는 귀주의 명문 선우세가의 삼남이다. 아직 전선이 낯설 테니 옆에서 많이 도와주도록.”

“응? 선우세가라고?”

내 소개를 들은 하무진, 지만금, 만구인 삼 인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들은 각각 귀주 하씨세가, 만도문, 지가장 출신이기에 선우세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무진이 비릿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뭐야? 네가 바로 그 선우세가의 수치라던 그 자식이냐? 사람이 아니라 돼지라던?”

그러자 지만금이 야비하게 웃으며 동조했다.

“맞네, 맞아. 그 선우세가의 셋째가 맞네. 전에 본 기억이 난다. 동생한테도 맞고 살던 그 병신. 근데 살은 그때보다 좀 빠졌는데? 그땐 진짜 무가의 사람이 맞나 싶었는데 말이야.”

그 말을 들은 하무진이 앞으로 와서 내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야, 여기까지 오느라 좀 힘들었냐? 돼지가 살이 다 빠지다니. 빨리 다시 찌워야겠다? 그래야 마인들의 시선을 끄는 역할이라도 할 거 아니냐? 크크크.”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설풍 조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비사영, 배종관 역시 인상을 팍 찡그리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일단 그들의 말하는 수위가 내 기억보다 한참 낮았던 데다 내게 있어 이들은 모두 이미 죽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나를 구하기 위해 죽었던 친구도 있고, 혼자 살려고 도망치다 죽었던 개새끼들도 있지만 어쨌든 모두 죽었던 사람들, 그러니 이들의 이런 행동조차도 너무도 반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환한 웃음과 함께 하무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반갑다, 하무진.”

그러자 그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응? 나를 알아?”

고개를 끄덕이며 반갑게 대답해 줬다.

“그래, 잘 알지. 근데 일단 좀 맞자.”

“뭐?”

다음 순간 그의 몸이 공중을 붕! 한 바퀴 돌아 땅에 그대로 처박혔다.

퍼억!

“끄어억!”

금나수로 전개하는 질풍십팔박의 한 수였다.

엄청난 충격에 그가 입에서 거품을 물었다.

“끄르르륵!”

뒤에서 웃고 있던 지만금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무, 무슨 짓이냐?!”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도 달려들었다.

“무슨 짓은? 병신이라며?”

“이, 이놈!”

그가 급하게 일어나며 내게 주먹을 뻗었다.

슈슉!

하지만 아직 이류의 도객에 불과한 그의 주먹은 내게 우스울 뿐이었다.

내가 육체는 아직 이류라도 정신만큼은 이미 일류 최상급이 아니던가.

게다가 질풍십팔박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일류의 박투술. 간단히 그의 주먹을 흘려 낸 내 손이 그의 목을 낚아챘다.

콰악!

“컥! 컥!”

그러곤 확 끌어당기며 무릎으로 복부를 강타.

퍼억!

“커어억!”

마지막으로 다시 가볍게 공중에서 빙글 돌려 땅에다 내팽개쳐 줬다.

퍼어억!

“끄어어억!”

전생부터 묵혀 놨던 빚을 갚아 준 기분이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아아, 개운하다.

정말 다시 돌아오길 잘했어.

개운한 마음을 가득 실어서는 공중에 몸을 붕 띄웠다가 쓰러져 있는 하무진의 몸 위로 가뿐히 착지해 줬다.

퍼어억!

“끄어어억!”

미안, 내가 아직 좀 무거워.

살을 덜 뺐거든.

그리고 아직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만구인을 바라보자, 그가 겁먹은 표정으로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나,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확실히 머리가 좀 둔한 그는 딱히 뭘 할 만큼 야비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냥 놔둬야 하나 공평하게 두들겨 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문이 열리더니 한 명이 숙소로 들어서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그의 얼굴을 보자 다시 반가운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우두머리의 등장이었다.

하무진, 지만금, 만구인. 하. 지. 만. 세 얼간이를 대동해 그렇게도 설풍 조장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칠 조 내부의 암적인 존재 점창검비 주태경. 그가 뒤늦게 숙소로 들어왔던 것이었다.

자신의 추종자인 두 명이 처참하게 뻗어 있자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환한 웃음과 함께 포권하며 대답해 줬다.

“반갑습니다, 형장. 오늘 칠 조에 새로 들어온 선우진이라고 합니다. 처음 얼굴을 보자마자 이들이 친근하게도 저를 돼지, 병신이라고 불러 주기에 저도 친근함을 좀 표시해 봤습니다. 한데 형장께서는?”

내 말에 그는 눈을 살짝 찡그렸지만 이내 차갑게 대답했다.

“나는 점창파의 주태경이라고 한다.”

그는 점창파의 제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자였다.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점창 제자인 자신이 근본도 없는 무명에 불과한 설풍 조장의 조원이라는 것을 참지 못할 만큼 대단했고, 또 자신의 추종자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세 얼간이의 수준 낮은 얼간이 짓에는 절대 동참하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그렇기에 일단 그들이 나를 돼지, 병신이라 놀렸다는 얘기를 듣고 상관하지 않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그건 내게도 일단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지금 무위가 아마 대략 일류 중급 정도, 아직 이류의 몸을 가진 내가 상대하기엔 버거운 자였으니까.

그래서 그가 자신의 이름만 남긴 채 오만하게 걸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보려고 했는데, 설풍 조장이 문득 그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여자 조원도 둘이나 들어왔다네. 저녁 때 같이 식사하며 인사라도 하겠나?”

그러자 주태경이 대답도 없이 경멸 섞인 시선으로 힐끗 그를 보고는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 아닌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 무례한 태도에 나는 순간 울컥해 버리고 말았다.

‘저 자식이?!’

저자는 지난 생에도 어떻게든 다독여서 조를 이끌어 가려고 했던 설풍 조장에게 줄기차게 저런 식으로 대응하며 사사건건 각을 세우곤 했었다.

그러다 결국 잃어선 안 될 사람을 잃게 만들고야 말았었지.

그 후에야 결국 설풍 조장도 더 참지 못하고 대응 방법을 바꿨지만, 그땐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잠시 고민이 됐다.

저 녀석을 그냥 놔둔다면 어차피 암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러니 어떻게든 싹을 밟아 주는 것이 최선인 것만은 확실했다.

‘문제는 지금 내가 건드리기에는 일류 중급의 무위가 좀 부담스럽단 말이지.’

하지만 고민하던 나는 결국 마음을 결정했다.

내가 직접 밟지 않아도 설풍 조장을 이용해서 밟을 수도 있는 거고,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지금 자극만 해 놓고 나중에 밟아도 되지 않겠는가?

어찌 됐든 저런 환부 같은 인간은 그냥 놔두면 점점 곪아 버릴 뿐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게다가 나는 이미 일류 최상급의 경지를 밟았던 경험을 갖고 있는 상태, 그러니 육체가 일류의 벽만 넘어 준다면 어떻게든 승산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자, 그럼 자극을 좀 해 볼까나?

저 녀석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뭐였더라.

문득 떠오른 기억에 씨익 웃음 지은 나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형장께서 주태경 소협이셨군요.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점창검비라고 불린다지요?”

점창검비(蜰). 벌레, 뱀이라는 뜻이었다.

점창검룡, 검호, 검응처럼 동물의 이름을 딴 별호로 지칭되는 점창의 제자들 중 뱀에 불과한 자, 그게 주태경의 현 위치이자 그의 열등감이었던 것이다.

주태경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홱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나는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되물었다.

“점창검비. 그게 형장의 별호 아니셨습니까?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요?”

그러자 그가 검파를 잡아 가며 차갑게 말했다.

“너무 대충 알아봤구나. 그게 네가 죽는 이유이다.”

나는 화들짝 놀란 척하고는 설풍 조장의 등 뒤로 얼른 숨으며 말했다.

“어이쿠, 왜 이러십니까?! 점창검비 주태경 소협!”

이제 내가 대놓고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그가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비켜라, 설풍! 감히 대 점창파의 제자인 나를 우롱하다니, 절대 살려 둘 수 없다!”

하지만 설풍 조장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방금 와서 아직 잘 몰라 그런 것이 아닌가. 자네가 한 번만 참게. 게다가 그 검파를 놓지 않으면 선을 넘게 된다네. 정말 그러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다독이는 듯한 말이었지만 설풍 조장의 몸에서는 무거운 기세가 서서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주춤하며 이를 악물었다.

절정의 고수인 설풍 조장이 진심으로 손을 썼을 때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살짝 혀를 찼다.

격분시켜서 조장과 충돌시키려 했었는데, 인상 한 번 썼다고 꼬리를 말다니.

역시 뱀은 어쩔 수 없는 뱀이었다.

하지만 그도 주변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그대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이류 주제에 일류의 무사를 기만했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조차 막겠다는 건가, 설풍?”

그 말에 내가 바로 대꾸해 줬다.

“아, 제가 실례했군요. 사과드립니다. 일류 주제에 절정의 고수인 조장에게 함부로 대하길래 저는 점창검비 주태경 소협께서 그런 사소한 것들은 신경 쓰시지 않는 대범한 분이신 줄 알았지 뭡니까?”

“뭐, 뭐라고?!”

그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전생의 친구 비사영이 폭소를 터트리며 박수를 쳤다.

“으하하하! 걸물이다! 이거 걸물이 들어왔구먼!”

원래부터 주태경과 앙숙이었던 비사영은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는 모양이었다.

그에게 씨익 웃어 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제가 보기에 점창검비 주태경 소협께서 조장님의 무위를 따라잡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 같군요. 그에 반해 저와 소협 정도의 차이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기껏해야 한두 달 정도?”

“…뭐라고?”

이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주태경이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느냐?”

씨익 웃으며 반문해 줬다.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주태경이 독기가 철철 넘쳐흐르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세 달, 세 달을 주겠다. 그 후에 나와 싸워 증명해 보여라. 그 대가는 네 목숨으로 받겠다. 스스로의 말이니 억울함은 없겠지?”

“좋습니다. 만약 제가 이기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절대 질 리 없다는 듯 빙글빙글 웃는 내 표정에 그는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하! 그럼 나 또한 죽으면 될 것이 아니냐?!”

비장한 대답이긴 했지만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아, 그럼 안 되지요. 마인들과 싸울 소중한 동료를 그렇게 죽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이기면 그때부터 저를 형님으로 모시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그거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러자 그가 잠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는 설풍 조장을 향해 소리쳤다.

“저자가 자초한 짓이다! 이것까지 막지는 않겠지?!”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쾅!

그러자 옆에서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던 하.지.만 세 얼간이도 얼른 그를 따라갔다.

“태, 태경! 기다리게!”

“같이 가세!”

“나, 나도!”

그들이 나간 후에도 비사영은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으하하하하! 통쾌해! 너무 통쾌해! 자네, 선우진이라고 했지? 우리 친하게 지내세. 난 아무래도 자네를 연모하게 될 것 같다네. 크하하하하!”

비사영은 지금은 거의 멸문된 비종문의 제자였다.

그리고 비종문이 멸문된 이유는 점창파의 탐욕이 원인이 되었던 무황총 혈사 때문이었고 말이다.

그래서 원래도 점창파를 좋아하지 않았던 비사영은 심지어 오만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주태경을 무척 증오했었다.

그런 그에겐 지금 이 상황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과거의 친구 배종관 또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처음 볼 때부터 난 이 친구가 마음에 들었지! 어쩐지 잘 통할 것 같았거든. 자네 혹시 마인들보다 더 단단해질 생각은 없나?! 그 튼실한 살집을 단련하면 훌륭한 갑옷이 될 것 같은데 말일세!”

십삼대의 유일한 외공 수련자인 근육질 거한 배종관 또한 방금의 일이 통쾌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지난 생에서도 친우들이었던, 그리고 나를 살리고 죽었던 그들의 뜨거운 환영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설풍 조장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괜찮겠소? 검비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주태경은 그렇게 만만한 자가 아니라오. 내 보기에 공자는 이류의 끝자락인 것 같은데 일류 중급인 그를 삼 개월 만에 따라잡는 건 솔직히 무리일 것 같구려.”

그의 우려에 씨익 웃으며 대꾸해 줬다.

“그럼 조장님이 단련시켜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죽지 않을 만큼만 굴려 주십시오. 각오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을 편히 해 주십시오. 이제 조원인 데다 나이도 저보다 위이시지 않습니까?”

내 시원시원한 태도에 그가 헛웃음을 짓더니만 이내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선우 공자. 아니, 선우진. 그렇게까지 말했으니 각오해야 할 걸세. 아주 죽고 싶어질 때까지 굴려 주지.”

“옙! 감사합니다!”

그러자 지켜보던 비사영이 배종관과 시선을 교환하더니만 꺼림칙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이봐. 조장의 훈련을 함께 하겠다고? 그건 진짜 좀 아닌데? 아직 못 봐서 그러나 본데 그건 절정 고수에게나 가능한 거라네, 친구.”

미안하지만 이미 예전에도 함께 해 봤거든?

그리고 이번엔 나 혼자만 할 생각도 없고 말이다.

자, 낚시를 좀 해 볼까?

웃으며 조장에게 물었다.

“절정 고수만 가능하다니. 정말 그렇습니까, 조장?”

“아니, 나는 처음 무공을 수련할 때부터 그렇게 해 왔었는데?”

조장의 대답을 듣자마자 무척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비사영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는군요. 그럼 절정만 가능한 훈련이 아니라 절정을 만들 수 있는 훈련인 모양입니다. 형장께선 얼핏 진짜 사내처럼 보이셨는데, 아마 생각보다 자신감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실력은 아직 이류에 불과했지만 자존심만큼은 하늘에 닿은 비사영은, 남들에게 동정받거나 무시받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했다.

그러니 그런 그를 움직이는 방법쯤은 아주 간단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을 전생에 이미 다 터득한 상태였다.

내 도발에 비사영이 바로 욱하며 달려들었다.

“그럴 리가! 난 세상에 자신 없는 것 따위가 없는 사람이라네!”

그의 강한 반발에, 그 말을 믿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넘어가 주겠다는 표정을 얼굴에 잔뜩 담아 무성의하게 대답해 줬다.

“아, 그렇습니까? 흠.”

그러자 분노한 물고기가 스스로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익! 직접 보여 주지! 그따위 훈련쯤이야 얼마든지 함께 해 주겠네!”

역시.

발끈의 대명사 비사영을 끌어들이는 방법쯤이야 너무도 간단했다.

이제 문제는 이 녀석, 그 옆의 근육질 거한 배종관이었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자기만의 신념으로 한길로 우직하게 나아가는 이 녀석에게는 좀 우회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녀석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나도 함께 해 주고 싶긴 하지만 나에겐 원대한 꿈이 있다네. 극한까지 단련한 외공으로 마인들을 부수는 꿈이지. 그러니 내게 다른 수련을 할 시간은….”

그때 그의 말을 끊으며 감동한 눈빛으로 말해 줬다.

“오오! 그거 멋지군요! 극한의 외공으로 마인들을 부수다니! 저도 꼭 배우고 싶습니다! 형장! 저에게도 외공을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어? 응? 저, 정말인가?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약장수나 익히는 외공을 수련한다며 늘 무시받아 왔던 배종관은, 내 요청에 깜짝 놀라서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설풍 조장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 아까도 자네와 비슷한 소리를 하더군. 마인들과 누구 피부가 더 단단한지를 겨뤄 보고 싶다던가?”

“뭐라고?! 정말 그랬는가?!”

정말 그러긴 했었다.

거짓말이었지만.

아까 조 배정 때 나를 자기 조에 넣으려는 마유겸을 피하기 위해 했던 얘기였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배종관은 조금만 더하면 감동해서 내게 입이라도 맞출 것 같은 기세였다.

그게 두려웠던 나는 슬쩍 손을 빼며 대답했다.

“물론 그랬습니다. 다만 제 목표는 그 단단한 몸으로 비호같이 날아서 마인에게 몸통 박치기를 날리는 겁니다. 포탄처럼 날아서 마인들을 산산조각 낼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습니까?”

“포탄처럼 날아서…. 마인들을 산산조각 낸다고?”

내 말을 되뇌는 그의 눈빛이 몽롱해지고 있었다.

거의 다 걸렸다고 생각한 내가 한마디를 더 던져 줬다.

“그러면 무림에서 이렇게 불러 주지 않을까요? 철신유성이라든가, 금강비성이라든가.”

“철신유성…. 금강비성?”

이제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이 뭘 말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과거의 나는 설풍 조장이 가르쳐 주겠다는 박투술은 물론 친구인 이 녀석의 외공도 전혀 배울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 녀석은 좀 한심하게 생각하기까지 했었지.

그땐 너무 늦게 깨달았었다.

병장기가 다 깨져 나간 후에도 계속 싸워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걸.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단련했어야 했다는 걸 말이다.

배종관의 외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늘 외공만 주야장천 익히며 사람들에게 약장수라고 무시받았었지만, 나중에 혼자서 간귀 열 마리를 막아 내는 것으로 결국 그 가치를 증명해 냈었다.

그러곤 결국 뒤에 남아 돌아오지 못했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삶에서 그 모든 걸 다 익혀 볼 생각이었다.

또한 비참하게 죽었던 내 친구들도 다시는 그렇게 죽도록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 소중한 사람들을 두 번 다시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정한 두 번째 삶에서의 최종 목표였으니까 말이다.

이 목표에 비한다면 최선을 다해 강해지기로 한 것도, 혈교와 제대로 싸워 보기로 결정한 것도 결국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물론 아직 내 힘은 미약하기에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었다.

일단은 죽은 듯이 수련에만 매진해야 할 테지.

문득 지난 삶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전선이 무너진 것은 칠 년 차 때지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오 년 차, 혈마인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그러니 그 전에 최대한 빨리 지난 삶에서의 무위를 되찾고, 더 나아가 아직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절정의 영역에 들어서야만 했다.

효귀나 주귀 같은 마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절정의 경지, 그게 내가 주체적으로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이를 악물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번에는 절대 지난 삶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다.

***

다음 날 바로 조장의 훈련이 시작됐다.

새벽 훈련은 울창한 밀림 속의 나무 위를 날다람쥐처럼 뛰어가는 것이었다.

“자! 가자!”

조장이 먼저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나무 위로 올라 나뭇가지 위를 날아갔다.

심지어 삼십 관(한 관=약 3kg)은 족히 될 강철 조끼를 입고 눈을 천으로 가린 채였다.

질린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사영이 이를 악물고는 몸을 날렸다.

“흥! 비종문의 제자인 내게 저 정도쯤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조끼에는 십 관 정도의 강철이 매달려 있었다.

아직 살이 덜 빠진 나와 거구의 근육질인 배종관은 맨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배종관은 질린 표정으로 좀처럼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생에 이미 이 훈련을 겪어 봤던 내가 호기롭게 웃으며 먼저 출발했다.

“별거 아니로군. 내가 먼저 가겠네!”

그러곤 나무 위로 올라가 가뿐하게 출발….하려고 했었다.

우지직!

내가 밟은 가지가 가볍게 부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쿠당탕!

“끄억!”

“진! 자네 괜찮은가?!”

땅바닥에 처박혀 개구리처럼 대자로 뻗은 나는 문득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이 수련을 했던 게 먼저 살을 뺀 이후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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