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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4화 (14/359)

14화 飛龍十三隊(비룡십삼대)-4

내가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간귀 떼의 습격 사태가 정확히 며칠에 일어나는지까지 기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특정할 수는 있었다.

우리 바로 앞 조인 육 조에게 일어난 일이었고, 우리가 오후 근무를 설 시점, 그러니까 육 조가 오전 순찰을 나갔을 때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우리가 오후 순찰을 나가는 날은 나흘에 한 번씩 반복된다. 그러니 내가 온 지 두 달쯤 됐을 때의 그날만 대비하면 특정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을 알고 있다고 해도 대비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내게 혼자서 그 많은 간귀 떼를 상대할 실력 따위가 있을 리 없었고, 그렇다고 사람들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딱 이들뿐이었다.

꿈속에서 선인이 나타나 간귀 떼를 막으라는 계시를 내렸다는 개소리를 그래도 믿어 줄 만한 사람들이.

배종관이 맨몸으로 돌진해 간귀들을 조약돌처럼 튕겨 내며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가볍다! 너무 가벼워!”

그는 꿈을 이룬 것처럼 즐거워 보였다.

반면 이젠 살이 빠져 중량도 모자라고 아직 배종관만큼 외공을 단련하지도 못했던 나는 강철 조끼를 입어 중량을 늘린 채로 간귀들을 튕겨 내야 했다.

가능하면 이런 무식한 방법을 쓰고 싶진 않았지만 일단 육 조원들의 앞에서 간귀들을 밀어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간귀들이 쓸려 나가 잠깐 틈이 생긴 사이 육 조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고 있소?! 빨리 후퇴하시오!”

그러자 우리를 멍하니 보고 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육 조장 원청원이 소리쳤다.

“후퇴! 전속력으로 도망쳐라!”

그러고는 정작 본인은 내 옆으로 다가와 소리쳤다.

“칠 조원인가?! 너희도 물러서라! 저 숫자는 무리야!”

그 사실이야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멀리서 달려온 추진력으로 측면을 기습해 놈들을 쓸어 낼 수 있었지만, 곧 놈들이 배종관에게 집중해 달려든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제자리에 멈춘 채로 놈들에게 둘러싸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배종관만 믿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었다. 큰 소리로 외쳤다.

“사영! 네 차례다!”

그러자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사영이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씨팔! 내게 이딴 미친 짓을 시키다니!”

비사영은 자신의 눈부신 속도를 이용해 배종관에 의해 균형을 잃은 마인들을 스쳐 지나갔다.

짜짜짜짜짜짜짜짝!

그것도 마인들의 뺨을 초고속으로 갈기면서 말이다.

비사영이 뺨을 때리고 지나간 마인들의 얼굴에는 붉은 액체들이 묻어 있었다.

바로 비사영의 피였다.

비사영이 손바닥에 상처를 낸 채로 간귀들을 때리고 지나간 것이었다.

지능이 떨어지는 간귀의 특징은 한번 집중한 상대를 끝까지 노린다는 것이었다.

비룡대에서도 그 특징을 이용해 이인일조로 간귀를 혼란시켜 상대하도록 교육하곤 했었다.

그리고 놈들에겐 또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인간의 피와 살에 환장한다는 것.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을 뜯어 먹는 일을 우선시하도록 만들어진 놈들인 것이다.

비사영은 지금 그런 놈들에게 자신의 피 냄새를 묻혀 준 것이었다.

도저히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비사영의 따귀를 맞은, 심지어 피까지 묻은 간귀들은 벌떡 일어나 정말 개떼처럼 맹렬하게 비사영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반드시 유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중급 간귀들을 포함해서였다.

“캬아아아아아!”

“키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

무려 삼십여 마리의 간귀들이 우르르 그를 쫓아가자 비사영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선우지이인! 이 개자식아아아!”

그의 욕설을 한 귀로 흘리며 씨익 웃음 지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비사영이야 좀 무섭긴 하겠지만, 비종문의 대제자인 그가, 심지어 그간 그렇게 신법 훈련을 빡시게 받은 그가 설마 간귀 따위에게 잡힐 리가 있겠는가?

놈들은 절대 비사영을 잡을 수 없을 것이었다.

…아마도 말이다.

그러니 이제 비사영이 시선을 끌어 주는 동안 우리는 남은 이십여 마리의 간귀들만 상대하면 됐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비사영이 중급 간귀들을 데려간 이상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원청원에게 말했다.

“육 조장님, 저와 같이 저 속에 들어가 남은 놈들의 시선을 좀 끌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러자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원청원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귀들 속으로 먼저 용감히 뛰어들었다.

청성파의 절기인 원공권이 마치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간귀들을 튕겨 내고 있었다.

퍼퍼퍼퍼퍼퍽!

설풍 조장에 이어 십삼대의 두 번째 권사다운 멋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나 나나 저 속에서 얼마나 버텨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청연 소저가 빨리 수를 줄여 주기를 바랄 수밖에.

“키아아아아아!”

내게 달려드는 간귀 한 마리를 금나수로 잡아 가볍게 뒤로 던지고는 나 역시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간 설풍 조장과 대련하며 연습해 왔던 질풍십팔박이 드디어 진가를 드러낼 시간이었다.

“으하아아압!”

빠바바바바박!

손발을 휘둘러 파도처럼 달려드는 간귀들을 후려치고 밀어냈다.

못 막을 것 같으면 강철 조끼로 받아 내고 손이 부족하면 몸통 박치기로 튕겨 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차피 설풍 조장처럼 강기로 부수지 못하는 나로선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는 간귀들을 후려치고, 붙잡아 휘두르며 내 동료들을 힐끗 바라봤다.

그러자 처음에 던져 준 간귀의 양팔을 배종관이 공중에서 낚아채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청연 소저! 잡았소!”

“알았어요.”

나는 간귀에게 둘러싸여 급박한 와중에도 씨익 웃음 지었다.

저렇게 잡힌 간귀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거구의 근육질 장사인 배종관의 팔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게 설사 중급 간귀라 해도 말이다.

이건 순찰 때 간귀를 만날 때마다 수없이 실험해 본 결과 얻은 결론이었다.

또한 놈이 자유로운 발로 배종관을 걷어찬다 해도 소용없을 것이었다. 손톱이나 이빨이 아닌 것으로는 배종관의 외공을 뚫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저렇게 된 놈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입을 크게 벌린 채 괴성을 지르는 것뿐.

“키아아아아!”

그럼 기다리고 있던 청연 소저가 그 속으로 간단히 검기를 찔러 넣는 것이다.

입천장을 통해 뇌까지 뚫어 버리는 숙련된 일격으로 말이다.

그렇게 한 마리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세 호흡 정도, 순찰 때마다 늘 이런 식으로 간귀들을 처리해 왔던 우리 조원들은 이제 숙련된 장인에 가까워져 있었다.

심지어 우리는 간귀들이 습격하면 일부러 한 마리씩만 남기고 그것을 이용해 간귀를 상대하는 연습이나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기도 했었다.

‘정확히는 우리가 아닌 청연 소저였지만….’

그녀는 간귀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고 싶어 했다.

배종관의 외공이 간귀에게 얼마나 유효한가, 또는 나나 비사영의 피부는 얼마나 단련되었는가와 같은 실험을 말이다.

이 모든 건 물론 간귀가 가장 최하급의 마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단한 피부를 제외하면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야생 짐승과도 같은 놈들이었으니까.

이제 이 사건이 끝나면 곧 새로운 마인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땐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없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십삼대의 누구도 우리 조원들보다 간귀들을 잘 처리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으하아아압!”

몸을 휘둘러 간귀들을 튕겨 내고 간간이 한 마리씩 배종관을 향해 던져 주며 더 힘을 끌어올렸다.

지금부턴 버티기 싸움이었다.

***

십삼대주 풍양을 비롯해 절정 고수 여섯 명이 전속력으로 달려가 보게 된 광경은 매우 묘한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악! 나 힘들어!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는 비사영이 삼십여 마리의 간귀를 뒤에 달고 숲을 빙빙 돌고 있는 모습도, 간귀들의 무리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원청원과 선우진의 모습도,

그리고 마치 장인들이 분업을 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간귀들을 한 마리씩 척척 처리하고 있는 배종관, 청연의 모습도 매우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잠시 멍하니 그 모습들을 지켜보던 절정 고수들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간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강, 도강과 같은 강기를 쓸 수 있는 그들에게 있어선 중급 간귀들도 그저 좀 흉포한 맹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선우진은 검강으로 간귀를 동강 내고 권강으로 머리를 터트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람들로선 알 리 없지만, 선우진의 지난 삶에서 육 조의 조장 원청원 한 명을 제외하곤 모든 육 조 조원들이 몰살당해야만 했던 간귀 떼 습격 사건이 이렇게 최소한의 희생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

간귀 떼 습격 사건이 지나간 며칠 후의 오후 수련.

“으윽, 냄새.”

외공 단련액을 바르며 비사영은 오늘도 투덜거리고 있었다.

“색도 시커먼 게 찐득하고 냄새까지 지독하니 사람들이 더 안 배우려고 하는 거지. 에이, 진짜.”

투덜투덜하면서도 혼자서 몸에 찹찹 처바르고 있는 그를 보며 나와 배종관이 슬며시 웃음 지었다.

사실 그는 간귀 떼 사건 이후 꽤나 적극적으로 수련에 임하는 중이었다.

자기가 성장했음을 느낀 데다 이제 사람들로부터 인정까지 받게 됐으니 더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 투덜거리는 입만큼은 결코 다물지 않았다.

“저거 보라고. 저기서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 이 액체만 아니었어도 당장 같이 수련하겠다고 달려들었을걸?”

그 말에 내가 대꾸해 줬다.

“글쎄, 내가 보기엔 실제로 돌아가는 건 이후의 것을 보고 나서였던 것 같던데?”

그의 말대로 멀리서 몇몇 다른 조의 조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비단 오늘 일만은 아니고 근 며칠 새 우리 외공 수련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꽤 많아진 상태였다.

이 모든 게 간귀 떼 습격 사건의 여파였다.

나와 원청원이 권각을 이용해 간귀 떼 이십여 마리 사이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원들은 이제 심각하게 권각을 익히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가장 좋은 것이야 어서 빨리 절정의 경지에 올라 강기를 발현하는 것이겠지만, 그건 오늘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해 빨리 부자가 되겠다는 것만큼이나 먼 얘기였으니까 말이다.

당장 간귀들을 처리하지는 못해도 생존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권각을 익히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간부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하게 다뤄질 모양이었다.

또 외공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나와 배종관이 몸통 박치기로 간귀들을 날려 버렸다는 증언들이 전해지자 약장수의 차력에 불과했던 외공을 다시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수상해 보이는 단련액을 바르는 걸 보고 한 번 흠칫하다가, 배종관이 변태처럼 해맑게 웃으며 대나무로 찰싹찰싹 때리는 걸 보면 다들 돌아가 버리곤 했지만….

물론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진 않았다.

“여어! 친구들! 오늘도 열심이로군!”

유쾌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그는 긴 팔이 인상적인 육 조의 조장 원청원이었다.

“그건 매일 바르나 보지? 그걸 바르면 그 금강비성인가 하는 걸 쓸 수 있는 건가? 나도 한번…!”

원래 권사인 데다 우리와 함께 싸웠던 그는 진심으로 외공을 익혀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다만 그 주변 사람들이 원하지 않아서 그렇지.

육 조 부조장인 공종화가 바로 뒤따라와 그의 귀를 잡고는 다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조신하게 웃으며 인사를 남긴 채였다.

“호호호! 실례했어요!”

“아아아! 부조장 왜 이래?! 나 진짜 그거 써 보고 싶다니까!”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난 육 조원들도 원청원의 팔다리를 하나씩 잡아 들고 가며 우리에게 인사했다.

“수고하시오!”

“진흙을 바른 모습이 멋지구려!”

역시 십삼대에서 가장 단합이 잘 되고 유쾌한 육 조다운 모습이었다.

그 단합이 자기 조장의 행동을 막아 내는 것으로 잘돼서 그렇긴 하지만 말이다.

한바탕 폭풍처럼 육 조가 지나간 뒤 잠시 후, 다음으론 삼 조원들이 우리 옆쪽을 지나쳐 갔다.

그들이 삼 조라는 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을 이끌고 가는 조장이 바로 당가검봉 당여은이었으니까.

그녀의 차갑고 이지적인 미모는 마치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뒤를 따르는 조원들과 추종자들이 그림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당 소저다.”

“당 소저네.”

“와아아, 역시.”

외공 수련 중이던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녀 쪽으로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은 보는 얼굴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미모였다.

나야 사심 가득 담아 우리 부조장인 나서유 소저가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래도 눈이 있는 이상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냉정하게 외모로 비교할 수 있는 이는 선우세가에서 봤던 천혜검봉 제갈서율 소저 정도일까?

그때 당여은의 바로 뒤에서 걸어가던 체격 좋은 호한 한 명이 문득 우리를 향해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반갑네! 항상 지나가며 보긴 했는데 이제야 인사를 하게 되는군!”

그는 삼 조의 부조장인 명사현이란 남자로, 당여은에게 반해 그녀의 부조장을 하고 있다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밝힐 정도로 호쾌한 남자였다.

또한 워낙 인망이 좋아 다소 사람들과의 관계를 불편해하는 당여은 대신 삼 조의 실질적인 조장 역할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가 호감 가는 미소로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나는 그간 자네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네.”

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삶엔 친구인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자네들은 그렇지 않음을, 그 수련이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직접 증명해 냈지.”

그렇게 말한 그는 우리에게 정중하게 포권하며 사과했다.

“그래서 꼭 사과하고 싶었네. 비록 마음속으로나마 자네들을 무시했던 것을 말일세.”

듣던 대로 호쾌한 남자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마주 포권하며 그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귓속말하듯 소곤소곤 말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기회가 된다면 나도 자네들에게 외공을 한번 배워 보고 싶다네. 다만 나의 여신께서 그걸 싫어하실 것 같아 망설여지는군.”

그때 저만치 걸어가던 당여은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부조장! 안 올 건가요?!”

그러자 그가 흠칫 놀라는 척을 하더니 우리에게 웃으며 소곤거렸다.

“저것 보게나. 우리 여신께서는 겉보기와 달리 집착이 꽤 심하시단 말일세. 그럼 이만 가 봐야겠군. 다음에 보세나.”

그렇게 뒤돌아가려는 그를 나도 모르게 급히 붙잡았다.

“명 부조장!”

“음?”

“아, 그게…. 아니오. 몸조심하시구려. 다음에 꼭 같이 수련할 수 있기를 빌겠소.”

“응? 하하하하! 고맙네! 나도 그러길 빌겠네!”

유쾌하게 웃으며 당여은에게로 달려가는 그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기다려 주는 당여은을 나는 무거운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난 삶에서 그는 죽었었다.

그것도 그가 사랑하는 당여은의 검에 의해.

혈교에게 섭혼되어 꼭두각시가 된 그를 당여은은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것을 경고해 주고 싶어도 나 역시 언제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혈교에게 섭혼된 그를 당여은이 직접 죽였고, 그 이후 당여은이 무너져 버렸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십삼대의 모두가 명사현 혼자 일방적으로 당여은을 쫓아다닌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던 당여은은 그 후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 사 조장인 마유겸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거의 노리개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

최후의 순간, 혈교로 갈아탄 마유겸의 배신에 절망해 흐느끼며 쓰러져 가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것처럼 완전무결한 얼음 여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비사영이 웃으며 나를 놀렸다.

“뭐야? 진, 자네도 당 소저에게 마음이 있는 건가? 이거 안 되겠구먼. 포기하시게. 이루지 못하는 연심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 내가 설마 당 소저에게 연심을 품겠나? 나도 저 수많은 동료에게 칼을 맞고 죽고 싶지는 않다네. 그저 말을 좀 걸어 보고 싶긴 한데….”

사실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간귀 떼 습격 사건이 지나갔으니 이제 얼마 후면 철귀들이 등장할 테니까 말이다.

검강으로도 벨 수 없고, 권강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철귀들을 처리하기 위해선 당 소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어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 중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자 내 말을 오해한 비사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뭐야? 진짜였나? 그저 말만 걸 수 있어도 좋을 만큼 마음이 깊었던 건가? 마음은 있지만 동료들 때문에 참고 있었던 거고?”

그 엄청난 비약에 이번엔 진짜 좀 당황했다.

입을 떡 벌린 채 반문하려 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뭐? 진짜? 진이 자네가 당 소저를 연모하고 있다고?”

배종관까지 끼어들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을 때 나는 깨달았어야 했다.

원래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해의 여지는 초반에 없앴어야 했다는 걸 말이다.

어느새 인사하기 위해 뒤에서 다가오고 있던 우리 조의 천주은 소저가 놀란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다.

“네?! 지금 들으셨어요?! 선우 공자가 당 소저를 연모하고 있다는데요?!”

그녀가 그렇게 말한 상대는 바로 나서유 소저와 청연 소저였다.

눈앞이 하얗게 되고 있었다.

“아, 아니! 천 소저, 나 소저! 그, 그게 아니라!”

하지만 변명해 보려는 내 눈엔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 소저의 얼굴만이 가득 들어올 뿐이었다.

“으으윽!”

차마 진심을 말할 수 없는 나는 그저 하늘만 억울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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