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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5화 (15/359)

15화 飛龍十三隊(비룡십삼대)-5

달도 뜨지 않는 삭월의 밤.

마침 우리 조의 야간 순찰이 있는 날이었다.

몇 년 이상을 전선에서 보낸 고참들에게도 야간 순찰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을 효귀와 같은 마인들, 때때로 흡정이나 색욕을 위해 대원들을 노리는 혈교의 마두들은 설사 절정 고수들이라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우리 조는 좀 달랐다.

우리 조에는 설풍 조장이 있었으니까.

“대기.”

선두에서 우리를 이끌던 설풍 조장이 낮게 중얼거리자 우리는 모두 제자리에 멈춰 주변을 경계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효귀로군.”

그 말이 끝나는 즉시 어둠 속에서 마인이 소리 없이 튀어나왔다.

파악!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다면 엄청나게 위협적이었을 기습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해 몸을 날렸던 놈의 머리는 도중에 그대로 터져 버리고 말았다.

퍼석!

효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간 설풍 조장의 퇴법이 놈의 머리를 수박처럼 부숴 버렸기 때문이었다.

찰나의 순간 효귀 한 마리를 죽이고 돌아온 설풍 조장이 우리에게 말했다.

“상황 해제. 더 이상은 없군.”

언제 봐도 듬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남자인 내가 봐도 반할 정도였다.

평상시에도 눈을 가리고 수련하는 설풍 조장에게 있어서 야간 순찰은 다른 순찰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일 뿐이었던 것이다.

나서유 소저와 천주은 소저가 생글생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조장님.”

“역시 조장님이 최고예요! 너무 멋져요, 조장님!”

그녀들의 말에 설풍 조장은 눈에 띄게 당황해서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아, 아니오. 머, 멋지긴 무슨. 벼, 별거 아니오. 어, 어서 계속 갑시다!”

그렇게 말한 설풍 조장이 도망치듯 다시 선두로 나서자 나 소저와 천 소저가 킥킥거렸다. 사실 도망치듯 간 것이 아니라 진짜 도망친 거라는 점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방금 전의 멋진 모습을 완벽히 지우는 어리바리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여간 조장은 저 여자 공포증만 아니었다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말이다.

어려서부터 산에서만 수련했다는 설풍 조장은 여인을 대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했다.

아니, 어려워가 아니라 두려워한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았다.

하여간 저런 모습 때문에 완벽하지 못한 걸 아쉬워해야 하는 건지, 그나마 인간적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삶에서도 저 모습이 고쳐진 건 한 명이 죽은 이후였었지.

잠시 씁쓸한 기억을 떠올렸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삶에서는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되니까.

그러기 위해선 먼저 그 원인이 됐던 저 녀석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우리 한참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점창검비 주태경과 그의 똘마니들 쪽을 힐끗 바라봤다.

설풍 조장을 인정하지 않는 주태경은 늘 저렇게 자신의 똘마니들을 데리고 따로 행동하곤 했다.

심지어 정말 자신이 있다면 우리보다 앞서서 가면 될 것인데 늘 저렇게 뒤에서만 따라오면서 말이다.

역시 뱀 같은 놈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와 청연 소저가 오기 전 주귀에게 두 명이 당한 것도 저렇게 행동하다 후방을 습격당했다고 들었으니까.

내가 그들 쪽을 보고 있자 비사영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이 주 후면 저놈과 대결할 시간이로군. 자신 있나?”

“글쎄. 자신이야 있겠나?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흥! 무슨 말이 그런가? 꼭 묵사발로 만들어 줘야 하네. 자네를 믿겠네.”

그러자 선두에서 걸어가던 설풍 조장이 어느새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공만 동등했다면 진의 실력이 당연히 위일 텐데. 내공이 문제로군. 최소한 반 갑자가 되어 검기만 쓸 수 있어도 좋았을 텐데.”

“으음.”

아닌 게 아니라 내공이 문제이긴 했다.

지금 현재 내 내공은 대략 이십 년에서 삼십 년 사이. 검기를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내공이 반 갑자(삼십 년)임을 감안하면 불과 이 주 사이에 해결되긴 힘든 문제였다.

문득 나서유 소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내공 반 갑자가 넘는다고 다 검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깨달음을 얻어 검기상인의 벽을 넘어야 할 텐데요.”

그녀의 말도 맞는 얘기였다.

일류의 벽이 검기상인, 절정의 벽이 이기성강이라고 할 때 사람에 따라선 강기를 만드는 것보다 검기를 만드는 것이 더 힘들었다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물론 이미 지난 생에 검기상인의 벽을 넘었던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였지만 말이다.

청연 소저가 대답해 줬다.

“그건 괜찮을 거예요. 선우 공자는 정신은 이미 일류의 경지를 넘어섰는데 내공만 아직 일류가 아닌 이상한 사람이니까요.”

…역시 날카로웠다.

그러자 비사영이 답답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내가 보기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시원하게 얘기해 주면 안 되나? 어차피 우리만 듣고 있는데.”

흠, 먼저 얘기해도 될까?

어차피 이 주 후엔 다들 알게 될 일이기도 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믿을 수 있기는 한데.

살짝 고민했던 나는 결국 말을 해 주기로 결심했다.

“사실 여기 오기 전 아버님께서 주신 영약이 하나 있다네. 대충 십여 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영약이지.”

사실 두 개였지만, 일단 하나는 숨기기로 했다.

그러자 얼굴이 확 밝아진 비사영이 다시 물었다.

“오오, 잘됐군. 그럼 지금 먹지 그러나?”

그때 설풍 조장이 말했다.

“정순함의 문제가 있나 보군. 외기가 많은 건가?”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씁쓸하게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몇 할이나?”

“영약을 섭취할 경우 대략 오 할쯤 될 것 같습니다.”

“으으음.”

설풍 조장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닫자 우리 대화를 따라오지 못한 천주은 소저가 물었다.

“이건 무슨 얘기예요? 저만 못 알아들은 건가요?”

그녀의 말에 설풍 조장이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자 청연 소저가 대신 대답해 줬다.

“영약과 같은 외기가 전체 내공의 오 할 이상이면 주화입마의 위험이 올라가요. 선우 공자는 지금 영약을 섭취할 경우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아아, 주화입마요.”

그랬다.

이게 내가 영약 섭취를 마지막까지 미루고 있는 이유였다.

물론 지금도 혼원무극공의 뛰어난 공능으로 몸속의 내공을 급속도로 정순화시키고 있으니, 최대한 좀 더 안전해진 후에 섭취할 생각이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주태경 놈이 일류 상급에 오른다면 모를까 일류 중급인 지금이라면 그 정도로도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천주은 소저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는 웅얼거렸다.

“힝, 영약을 먹으면 다 좋은 건 줄 알았는데 문제점도 있었군요.”

키도 작고 동안인 천주은 소저가 그런 동작을 하면 그렇게 깜찍해 보일 수가 없었다.

다들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빙긋이 웃음 지을 때 귀여운 것을 치명적으로 좋아하는 배종관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나, 나도 그런 건 먹어 본 적이 없다오, 천 소저.”

배종관의 말에 천 소저가 배시시 웃으며 대꾸해 주었다.

“아, 그러시군요. 배 공자도 저랑 같네요.”

“크으윽!”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배종관이 가슴을 움켜잡자 우리는 모두 고개를 저으며 그를 외면했다.

나서유 소저가 문득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당분간 일이 많겠네요. 선우 공자의 대결도 있고, 그 후엔 바로 맹주님과 혈마의 회담이 있을 거구요. 뭔가 어색하네요. 전선에 와서 마인들과 싸운 적만 많았지 이런 행사들은 겪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것도 있었다.

주태경과의 대련이 끝나고 한 달쯤 후엔 무림맹과 혈교의 정상 회담이 하필 십삼대에서 열렸던 것이다.

무림맹의 맹주인 협왕 모용검과 혈교의 교주 사혜혈마 전무광이 만나는 회담이었는데, 회담이 아니라 다시 제이 차 정혈대전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전생에서 내가 겪어 본 바로는 그들은 의외로 정말 평화롭게 만나서 대화만 하고 헤어졌었다.

비사영이 문득 투덜거렸다.

“쳇, 헌 부대주가 잘 보이겠다고 난리 칠 거 생각하면 끔찍하군. 그걸 왜 하필 십삼대에서 한다는 거야?”

비사영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윗사람에게 잘 보여 여기를 벗어날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부대주 헌영보는 지금부터 벌써 부대 정리를 해라, 청소를 해라 난리를 치고 있었으니까.

그때 자기가 궁금한 게 생기면 주변 대화의 흐름은 전혀 생각지 않는 청연 소저가 문득 물었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외기가 오 할만 넘어도 주화입마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데 대부분의 내공을 흡정으로 섭취하는 혈교의 마두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요?”

“응?”

“그렇… 군요?”

보통 청연 소저가 그런 질문을 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곤 했는데 이번엔 성공한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좀 궁금했다.

그러게.

그놈들은 대부분 타인의 정기를 흡수해 내공을 쌓는데 어떻게 멀쩡히 살아 있는 거지?

모두들 골똘히 생각해 봤지만 불행히도 답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다음 날, 칠 조의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수련을 하고 있을 때 점창검비 주태경 또한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아아압!”

슈하아아악!

희뿌연 검기가 창끝처럼 뻗어 나가 대기를 꿰뚫었다.

과연 구대문파였던 점창파의 제자다운 모습이었다.

그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던 사 조장 점창검응 마유겸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목표가 생기니 발전이 빨라지는구나. 확실히 늘었어. 이젠 일류 상급의 무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걸?”

그의 칭찬에 주태경이 공손히 포권하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장문사형. 다 사형께서 지도해 주신 덕분입니다.”

멸문된 점창파에는 공식적으로 장문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유겸을 장문사형이라고 부르는 주태경도, 그것을 듣고 있는 마유겸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마유겸이 전선에서 사문의 복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수많은 점창 제자 중에서도 세 번째의 실력자이자, 혈교에 의해 죽은 점창 장문인 마원웅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점창파가 여전히 멀쩡했다면 당연히 다음 대 장문인이 되었을 인물.

그런 배경과 실력을 지닌 데다 관옥같이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그런 마유겸의 대 내에서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비단 십삼대 내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대에서도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진 상태였다.

마유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대원들이 그놈을 보고 금강비성이니 철신유성이니 떠들고 있긴 하지만, 고작 이류에 불과한 놈에게 네가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 지지 않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은 하지 마라. 점창파 제자다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장문사형!”

마유겸은 문득 그 괘씸한 선우진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선우진, 청연, 천주은 세 사람이 처음 십삼대에 왔을 때, 그들의 조 배정을 위해 모든 조장이 모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마유겸은 사실 선우진을 자신의 조로 데려오려고 시도했었다.

살이 너무 쪄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첫인상과는 달리, 선우진과 청연이 바로 전날 효귀 한 마리를 잡았었다는 얘기를 들은 마유겸은 바로 그에게 흥미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아직 아무 경험도 없는 자들이 효귀를?! 그게 정말인가?!”

하지만 선우진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낮추려 했다.

“그 눈이 안 보이는 마인을 잡은 건 제 옆에 계신 청연 소저셨습니다. 고작 이류에 불과한 저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사실 선우진으로선 마유겸의 관심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마유겸에겐 그 모습조차 겸손한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호감 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선우진의 옆에 있던 청연 소저 또한 이렇게 말했었다.

“무공이야 제가 높을지 모르지만 검기도 통하지 않는 그 마인을 의자로 후려쳐 제 목숨을 구해 준 것도, 마인의 눈꺼풀을 벌려 입을 벌리게 해 준 것도 다 선우진 공자가 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곤 그저 선우 공자가 벌려 준 마인의 입에다 시키는 대로 검기를 찔렀을 뿐이지요.”

그 얘기를 들은 마유겸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인을 접해 보지도 않은 자가, 그것도 이류의 경지밖에 되지 않는 무사가 목숨을 걸고 마인에게 다가가 눈을 벌리게 하다니.

더군다나 효귀가 빛에 약한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전선에 올 것에 대비해 미리 정보를 모았었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정보 통제로 전선의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정보를 모으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직 이류이지만 충분히 키워 볼 만한 놈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마유겸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효귀가 빛에 약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놈의 눈꺼풀을 실제로 벌리는 건 전혀 다른 얘기지. 준비성도 훌륭하고 용기는 더 훌륭해. 마음에 드는군. 대주, 사 조로 데려가겠습니다. 마침 저희 조에 결원이 생겼으니 그래도 되겠지요?”

마유겸의 요청에 대주인 풍양마저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을 때였다.

놈이 갑자기 소리쳤다.

“안 됩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거부에 마유겸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물었다.

“뭐? 안 된다고?”

한순간 마유겸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졌다.

감히 점창파가 멀쩡했다면 장문제자가 되었을, 그래서 지금도 십삼대 내의 영향력이 대주에 못지않은 자신 의 제안을 거부하겠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마유겸은 인상을 쓴 채로 사납게 물었다.

“지금 내 조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건가?”

소리를 질렀던 선우진도 사실 당황했었다.

마유겸이 싫기는 하지만 수많은 추종자를 지닌 그와 처음부터 척을 지기엔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잠시 당황한 듯 그를 바라보던 선우진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구석에 여유롭게 앉아 있던 칠 조장 설풍을 향해 소리쳤다.

“설풍 조장이시죠?! 저는 전선의 정보를 접했을 때부터 꼭 설풍 조장의 조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디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설풍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 나?”

선우진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뜨거운 눈빛과 목소리로 다시 한번 소리쳤다.

“맞습니다! 검기도 안 통하는 괴물들의 대가리를 권각으로 박살 낼 수 있다니! 그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저는 꼭 설풍 조장의 조로 가서 권각법을 배우고야 말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지난 생에서 선우진은 설풍이 권각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권했었는데도 배우지 않았었으니까.

그때 그는 마인들과 손발로 싸우는 것이 너무 무식하고 무섭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마유겸은 오랜만에 마음에 든 녀석을 설풍 따위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 감히 대 점창파 장문인의 아들인 내 제안을 거절하고 고작 칠 조로 가겠다고? 귀주의 명문 선우세가의 삼남이라면서 소문파 출신의 떨거지들과 약장수처럼 외공을 익힌 녀석들이나 있는 곳에 가겠다는 건가?”

최근에야 생겼던 칠 조는 사실 무력으로 보나 무림에서의 신분으로 보나 떨거지들이 모인 곳이 맞았다.

그러니 마유겸은 자신의 배경과 칠 조의 현실에 대해 얘기해 준다면 선우진도 마음을 고쳐먹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선우진을 울컥하게 만들고 말았다.

전생에 자신의 조였던 칠 조를 모욕하는 말이었으니까.

분노한 선우진은 이제 나오는 대로 말을 막 던지기 시작했다.

“외공! 그것도 꼭 배워 보고 싶습니다! 혈교의 마인들과 누구의 피부가 더 단단한지 꼭 겨루어 보고 싶군요!”

이거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외공 한길만 파던 배종관은 전생의 선우진이 유일하게 자신보다 한심하게 생각했던 친구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선우진의 무리수는 다행히 잘 먹혀들어 갔다.

마유겸의 눈이 뜨악해지는 동시에 오히려 설풍이 눈을 빛내며 벌떡 일어섰으니까 말이다.

“훌륭한 정신이군! 권각으로 마인을 때려잡겠다니! 좋아, 선우진 공자! 나와 함께하자! 내 그대의 육체를 마인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우렁차게 대답하는 선우진.

“예! 설풍 조장님!”

그 쿵짝이 잘 맞는 두 명의 바보 같은 모습에 마유겸은 결국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놈에게 매달리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선우진을 포기했음에도 결국 그의 자존심은 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 대신 데려오려고 했던 청연 소저와 천주은 소저에게도 거절당하는 모욕을 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정말 떠올리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눈여겨봤던 그놈은 전선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훌륭한 활약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놈 혼자만의 활약이 아닌 떨거지들이라고 무시해 왔던 칠 조의 비사영이나 배종관 같은 이의 전력을 동반 상승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 가치가 있었다.

역시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의 조로 데려왔어야 했던 것이다.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자 다시 또 분노가 솟구쳐 오른 마유겸이 주태경에게 소리쳤다.

“그놈에게 아주 쓴맛을 보여 줘야만 한다! 점창파가 어떤 곳인지를 아주 뼈에 새겨 주거라!”

“예! 염려 마십시오! 장문사형!”

주태경은 속으로 마유겸의 당부가 쓸데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예 선우진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감히 이류의 떨거지 주제에 명문 점창파의 제자인 자신을 모욕하다니.

그걸 갚는 방법은 목숨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주태경의 눈이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려던 마유겸은 문득 멈춰서 그에게 다시 당부했다.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지만 그렇다고 죽이거나 심하게 다치게는 하지 않도록 해라.”

그 말에 깜짝 놀란 주태경이 물었다.

“예, 예?!”

그러자 마유겸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지? 설마 함께 혈교의 마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동료를 죽이기라도 할 생각이었나?”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그래도…. 좀 제대로 교훈을 주려면….”

그러자 마유겸의 몸에서 순간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악!

그러고는 살기를 띤 눈빛으로 주태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태경, 우리의 지상 과제는 혈교를 물리치고 본산을 되찾는 것이다. 잊은 것은 아니겠지?”

“예! 물론입니다, 장문사형!”

“그 큰 뜻을 위해서는 상대가 설사 사파의 떨거지들이라 해도 협력을 해야만 한다. 하물며 혈교의 마인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동료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을까. 네가 아무리 뱀 같은 놈이라 해도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으리라 믿겠다. 알겠느냐?!”

“예, 예! 물론입니다, 사형!”

차갑게 자신을 지켜보는 마유겸 앞에서 주태경은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일파의 장문인이 될 마유겸과 뱀이란 별호를 지닌 주태경의 그릇은 이토록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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