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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7화 (17/359)

17화 蛛鬼(주귀)-2

우리는 나무 위를 날듯이 달려 서쪽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배종관이 달리며 소리쳤다.

“우리끼리 가도 괜찮을까?!”

그러자 비사영이 자신만만하게 되물었다.

“왜?! 겁나냐?!”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밀림은 좀 위험하잖아?!”

“헹! 우리 셋의 외공과 신법이라면 간귀 떼 정도는 이제 아무 문제 없을걸?! 뭐, 정 안되면 도망가도 될 테고 말이야! 또 주귀는 동쪽 숲에 있다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간귀는커녕 요즘은 효귀도 그리 두렵지 않았다.

물론 놈은 어차피 밤에 나올 테니 신경 쓸 필요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녀가 간귀 떼에 의해 살해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주귀만 아니라면 해치우지는 못해도 도망쳐 나올 자신쯤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밀림 속에서 소저 한 명의 행방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각 정도 밀림 속을 달렸음에도 도무지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도 조장들이 동쪽 숲으로 주귀를 수색하러 간 사이 서쪽 숲에서 변을 당했다는 것 이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손 소저!”

“손하랑 소저! 근처에 계시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이동했지만 여기저기서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을 뿐 딱히 성과가 없었다.

결국 발걸음을 멈추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일단 흩어지자.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흩어져서 찾아보는 거야.”

손 소저가 정확히 이곳에 있다는 보장도 없건만 친구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새삼 그 신뢰에 감사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더 깊은 숲 쪽이었다.

“꺄아아아아악!”

깜짝 놀란 우리는 시선을 교환하고는 바로 몸을 날렸다. 이 밀림 속에서 여인의 비명 소리라니, 손 소저가 틀림없을 것 같았다.

“가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는 건 뭔가를 만났다는 뜻일 터였다.

아마도 간귀 떼겠지만 혹시 혈교의 마두라도 만난 것이라면….

혈교의 마두들이 대부분 일류 상급 이상의 무위를 지닌 것으로 볼 때 우리들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안도와 탄식의 한숨을 동시에 내쉬어야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그녀를 습격한 게 혈교의 마두들이나 주귀가 아닌 예상과 같은 간귀 떼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탄식의 한숨을 내쉰 건….

“으아아아아앗! 금강유성!”

배종관이 스무 마리 정도 모여 있는 간귀 떼를 향해 돌진했다.

마치 투석기에서 발사된 바위와도 같은 엄청난 몸통 박치기였다.

퍼퍼퍼퍼퍼펑!

“께에에에엑!”

“끼아아아앙!”

모여 있던 간귀들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조약돌처럼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내가 남은 간귀들을 덮쳤다.

“하아압!”

퍼버버버벅!

배종관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간귀들이 내 권각을 맞고는 허공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바람처럼 표횰하고 태풍처럼 거센 권각들, 선우세가의 권각법인 질풍십팔박이었다.

그러자 잠시 공터가 된 내 뒤로 비사영이 손 소저로 보이는 여인의 앞에 착지했다.

하지만 그녀를 본 비사영은 차마 손을 대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간귀들에게 뜯어 먹혀 팔, 다리는 물론 몸통까지 처참하게 뜯겨 있는 상태였다.

비사영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한발 늦었군.”

응? 한 발?

그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아까 비명 소리가 들렸던 걸 생각하면 한발 늦은 게 맞긴 했다.

하지만….

“합!”

퍼억!

나는 다시 달려드는 간귀를 발로 차서 뒤로 날려 버리고는 그녀의 몸을 한 번 더 자세히 바라봤다.

그러자 처참하게 뜯긴 그녀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배종관이 우리 앞에서 간귀 하나의 다리를 잡아 몽둥이처럼 휘두르며, 다가오는 놈들을 후려치고 있었기에 살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간귀들이 많다지만 그 잠깐 사이에 저렇게까지 뜯어 먹을 수가 있는 건가?

그러곤 그녀의 몸을 자세히 훑는 순간, 문득 아직 멀쩡히 남아 있는 그녀의 목이 눈에 띄었다.

어째서인지 간귀들이 뜯어 먹지 않은 목과 얼굴, 그리고 그 목에 나 있는 뭔가에 뚫린 듯한 네 개의 구멍.

…네 개의 구멍?

설마?!

급하게 소리쳤다.

“종관! 당장 돌아와! 도망쳐야 해!”

내 다급한 목소리에 배종관과 비사영 모두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 당장 가야 해! 근처에 주귀가 있어!”

손 소저의 목에 나 있는 네 개의 자국들, 그것은 지난 생에도 본 적이 있던 주귀의 이빨 자국이었던 것이다.

주귀라니.

대체 놈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놈이 돌아오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만 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치고 바로 몸을 날리려던 나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왔던 방향의 나무 위에 이미 그것이 와 있었다.

까만 피부의 벌거벗은 묘족 여성 한 명이 우리를 지켜보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입 안으로 뾰족이 튀어나온 네 개의 송곳니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런 제기랄….”

주귀였다.

절정 고수들마저 쉽게 상대할 수 없다는 현존 최강의 마인. 놈이 이미 우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놈을 발견한 비사영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거… 우리를 보고 웃고 있잖아? 마인 주제에.”

나 역시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지능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때 놈이 웃으며 입을 벌렸던 것이다.

“꺄아아아아아악!”

놈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소름 끼치는 여자의 비명 소리였다.

아까 들었던 바로 그 비명 소리.

비사영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비명 소리를… 저게 낸 거였다고? 우리를 유인하려고?”

저 정도면 짐승이 아닌 요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내가 이를 악물고 조용히 말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모두 남쪽으로 달리는 거다. 자, 하나, 둘, 셋! 뛰어!”

말과 동시에 비사영과 내가 팡! 튀어 나갔다.

배종관 또한 붙잡아 휘두르고 있던 간귀를 던져 버리고는 땅을 박찼다.

우리는 신법만이라면 절정 고수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간귀들 따위는 우리 발끝조차 따라올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파박!

우리가 남쪽을 향해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을 때, 놈도 우리와 함께 몸을 날렸다.

그것도 우리와 비슷한 속도로.

깜짝 놀라 속도를 최대한 높였지만 놈은 우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옆에서 같은 속도로 달리며 우리를 향해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

결국 우리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비사영이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너무 빠르잖아? 어쩌지? 찢어져야 하나?”

셋이 각자 찢어진다라….

냉정하게 판단하면, 놈의 속도는 나와 비슷하게 빠른 것 같긴 하지만 비사영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니 만약 셋이 찢어진다면 살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단, 두 사람 정도만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한 명은 희생양이 되고 말겠지.

그리고 그 사람은 아마도….

배종관이 문득 입을 열었다.

“도망가라, 친구들. 내가 놈을 잡아 놓고 있을 테니.”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순박하게 웃고 있는 그의 뒤로 간귀들이 미친 듯 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캬르르르릉!”

“캬아아아악!”

그리고 눈을 돌리자 전방엔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짓고 있는 주귀가 있었다.

이럴 때 전선의 근무자들이 해야 하는 선택은 명확했다.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이 희생해 주는 것. 그것이 전선 근무자들의 불문율이었다.

그걸 알기에 비사영 또한 배종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주먹만 꽉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 명이라도 살기 위해 먼저 배종관부터 버려야만 했다.

그리고 내 친구 배종관은 늘 그렇듯 평소처럼 순박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내 몫까지 잘 부탁한다. 꼭 살아남아야 돼.”

녀석은 지난 삶에서도 그랬다.

너무 약해 시간조차 끌 수 없었던 나를 보내고 뒤에 남아서는 지금과 똑같은 웃음을 지으며 똑같이 말했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냉정해라, 선우진. 냉정해야 해.

최대한 냉정하게 상황을 살펴봤다.

우리 뒤에 거의 근접하고 있는 간귀 떼,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를 바로 덮치지 않고 가지고 놀 듯 지켜보고만 있는 주귀.

여기서 우리 셋이 다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헤쳐 나가는 행복한 결말 따위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장들이 모두 동쪽으로 갔기에 구원을 올 사람조차 없었다.

그러니 분명히 누군가 남아 시간을 끌어 줘야만 나머지 두 명, 아니 최소한 한 명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랬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결정한 나는 배종관에게 말했다.

“종관, 간귀 떼를 부탁한다.”

그러자 배종관이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게 맡기고 어서 가. 빨리 서둘러야 해.”

하지만 나는 다시 비사영을 향해 말했다.

“가라, 사영. 주귀는 내가 맡는다.”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비사영이 번쩍 고개를 치켜들어 나를 봤다.

배종관 또한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뭐라고?”

최대한 냉정하게 주귀를 분석해 보려고 노력했다.

왜 놈이 바로 우리를 덮치지 않고 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놈이 우리 셋 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셋이 아니라면 둘이라도.

그러니 어차피 하나가 남고 둘이 도망간다면 놈은 그 둘을 쫓아올 것이었다.

그리고 또 둘이 흩어진다면 그중 하나를 잡은 후 다시 배종관을 잡으러 오겠지.

하지만 지금 그걸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살짝 검을 뽑아 검날을 손으로 꽉 쥐었다.

섬뜩한 고통과 함께 피가 흘러나왔다.

그 피를 주귀에게 뿌리며 소리쳤다.

화악!

“가라, 사영! 조장을 데려와! 내가 죽기 전에!”

“키이이이이!”

내 피 냄새를 맡은 주귀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놈이 아무리 영리해 봐야 피 냄새를 맡은 이상 이젠 흉성을 참을 수 없을 것이었다.

경악한 친구들이 소리쳤다.

“진!”

“이게 무슨 짓이야?!”

놈이 내 피 냄새를 맡은 이상 나는 이제 도망칠 수 없었다.

놈이 최우선적으로 나부터 따라올 테니까.

그러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배종관이 몸을 날려 달려오고 있는 간귀들에게 돌진했다.

“으아아아압!”

퍼퍼퍼퍼퍼펑!

“키에에에엑!”

“크아아아아앙!”

그러곤 비사영을 향해 소리쳤다.

“사영, 어서 가! 조장을 불러와서 진을 구해 줘!”

비사영은 이를 악물며 신음 소리를 냈다.

“으으윽!”

그의 시뻘게진 눈으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절대 죽지 마라, 이 개자식들아! 죽으면 나도 따라갈 거다!”

나는 씨익 웃으며 주귀에게로 몸을 날렸다.

멍청한 놈,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면 용서할까 보냐?

“키아아아아악!”

주귀가 절정 고수와도 같은 속도로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하아아압!”

사력을 다해 검초를 펼쳤다.

선우십삼검의 일초, 신응비상이었다.

순간 희뿌연 검영이 커다란 날개를 펼친 것처럼 공간을 채웠다.

하지만 그 날개는 주귀가 괴성을 지르며 휘두른 손짓 한 번에 간단히 찢겨 버리고 말았다.

“키이이이이익!”

슈하아악!

너무 쉽게 파훼되는 검초가 유감스러웠지만, 나도 놈과 싸우려고 검초를 전개한 것은 아니었다.

놈이 내 환검을 파훼한 순간, 나는 이미 놈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도망치는 나를 발견한 놈이 분노한 괴성을 지르며 뒤를 쫓아왔다.

“키이이이이익!”

이게 내 노림수였다.

놈의 신체 능력이 아무리 절정 고수를 능가한다고 할지라도, 환검이 뭔지를 파악하는 건 진짜 무공을 알아야만 가능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

내 꽁무니를 따라오는 주귀를 피해 사력을 다해 도망치며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자살하고 싶어서 남은 건 아니란 말이다! 다 계획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

그래, 솔직히 거짓말이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인 거다.

왜냐고?

기껏 돌아와서 다시는 친구들을 잃지 않겠다고 맹세해 놓고, 또다시 친구를 뒤에 남기고 간다면 내 두 번째 삶 역시 실패한 것이 될 테니까.

그런 삶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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