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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0화 (20/359)

20화 毒林(독림)-2

대충 알아들은 청년의 얘기는 이랬다.

혈교에 의해서 많은 묘족이 잡혀갈 때 이들은 독노라는 노인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고 또 지금까지도 밀림 속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었는데, 그 독노가 지금 위급한 병세로 피를 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충 설명을 듣고 유추하건대 그 독노라는 노인은 무림인이고 아마 주화입마의 증세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묘족 청년은 무공을 익힌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일부러 전선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체발 토와 주세요. 톡노는 우리 은인입니다. 또 톡노가 없다면 우리 형제들은 모두 죽케 될 컵니다.”

이 유례없는 사태에 설풍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중이었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다 멈춰 있는 이들에게 합류한 주태경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뭘 고민하는 거냐? 당연히 거짓말이지. 애초에 마인들이 가득한 저 숲속에서 무공도 익히지 않은 묘족들이 살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조원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묘족 청년은 바로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커짓말 하닙니다! 톡노가 준 냄새가 쾨물 쫒아 줍니다! 톡노 덕분에 우리 무사했습니타!”

그 말에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선우진이 반응을 보였다.

“냄새라고? 무슨 냄새를 말하는 거지?”

그러자 청년은 조잡하게 만든 향낭을 하나 내밀었다.

“이 냄새 쾨물이 싫어합니다! 톡노가 준 냄새 있으면 쾨물 오지 않습니타!”

뭔가 독특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는 이것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때 선우진이 눈을 빛내며 설풍에게 말했다.

“가 봅시다, 조장.”

“응?”

“이 향낭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러자 주태경이 사나운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무슨 개소리냐?!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를 이 향낭 때문에 저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그리고 설사 이게 진짜라고 해도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냐?! 마인들을 찾아서 죽여야 할 우리가 마인들이 피해 다니는 향을 사용하겠다고?!”

하지만 코웃음 친 선우진은 그를 무시한 채 계속 설풍에게 말했다.

“조장, 저들은 숲 안쪽에서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안쪽의 지리를 안다는 뜻이지요. 언제까지나 여기서 지키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저 안쪽의 지리를 알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선우진의 말뜻을 알아들은 순간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지금 수비가 아닌 공격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혈교를 치기 위해선 안쪽의 정보가 필요하다고.

십삼대의 누구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급진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간의 고정 관념을 깨는 선우진의 발언에 모두 침만 꿀꺽 삼켰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분노를 토하려 했던 주태경마저 말을 더듬었을 정도였다.

“그, 그런….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 혈교와 무림맹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었지 않은가?! 그걸 네놈 맘대로…!”

그러자 선우진이 비릿하게 웃으며 주태경에게 대꾸했다.

“아,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어서 우리는 매일 마인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있었군. 그리고 주태경 너는 점창파의 제자가 아니었던가? 점창파의 제자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미처 몰랐는데?”

점창파의 이름이 나오자 사문이 모욕당했다는 생각에 주태경이 검파를 잡아 갔다.

“네놈이 감히!”

하지만 주태경은 바로 다음에 이어진 선우진의 말에 검을 뽑을 수 없었다.

선우진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혈교를 쳐서 점창파의 본산을 회복하는 것이 너희의 숙원이 아니었던가? 그냥 천년만년 여기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던 거냐? 그거 놀라운 일이군.”

주태경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몇 마디 말로 주태경을 잠재운 선우진은 다시 설풍을 보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조장?”

만약 안 된다고 하면 그 혼자만이라도 가겠다는 눈빛이었다.

설풍은 잠시 생각하다 묘족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거기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그러자 오가는 대화를 긴장된 얼굴로 살피고 있던 청년이 바로 대답했다.

“한나절! 빨리 탈리면 한나절이면 툅니다!”

그의 대답에 설풍이 인상을 찡그렸다.

“한나절, 왕복 하루라 치면 좀 애매하군. 최소한 모레 오후 순찰 전까지는 돌아와야 할 텐데 거기에 도착해서 치료를 시도해 본다고 하면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어. 또 치료가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고.”

잠시 침묵했던 주태경 또한 다시 끼어들었다.

“그리고 근무지 이탈이기도 하지. 무단 근무지 이탈은 중징계감이다. 잊은 것은 아니겠지?”

그러자 선우진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염려 마라, 너에게 같이 가자는 얘기는 아니니까.”

“뭐라고?!”

“조장, 모두가 갈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가장 빠른 사람만 추려 최대한 빨리 달리는 겁니다. 조장, 저, 사영 세 사람 정도만요. 저 청년을 조장과 제가 번갈아 업고 가는 거죠.”

최근 선우진의 신법은 그에게 비종신법을 가르친 비사영도 인정할 정도였다.

심지어 무거운 조끼를 입고도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비사영보다 낫기도 했다.

설풍이 괜찮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선우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근무지 이탈에 관한 거라면.”

그렇게 말한 선우진이 다시 묘족 청년을 향해 물었다.

“거긴 마인들, 그러니까 괴물들이 많겠지?”

“네! 네! 많습니다! 하지만 이 냄새만 있으면!”

“아니, 내가 묻고 싶은 건 그 괴물들의 종류라네. 그중에 혹시 사람의 정기를 빨아 먹고 강해지는 그런 괴물도 있나? 거미처럼 소리 없이 움직이며 사람을 습격해서 정기를 빨아 먹는 괴물 말일세.”

“네! 있습니다! 크놈들 엄청 위험합니다!”

소리 없이 사람을 습격해 정기를 빨아 먹으며 점점 성장하는 마인, 그것을 전선의 근무자들은 주귀, 거미 귀신이라고 불렀다.

거기까지 들은 선우진이 씨익 웃으며 설풍에게 말했다.

“주귀가 있다는군요. 놈의 종적을 잡았으니 쫓아가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설풍도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천잰데? 이건 꼭 가야만 하는 일이었군.”

점점 성장하는 마인 주귀는 발견 즉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어떤 근무보다도 우선시되는 원칙이었다.

결국 설풍, 선우진, 비사영 그리고 청연이 그곳에 다녀오기로 했다.

청연은 그녀 자신이 비사영이나 선우진 못지않게 빠르다며 같이 가겠다고 자원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실력적으로도 칠 조에서 설풍 다음의 고수이기에 모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출발하기 전 설풍이 어색하게 웃으며 나서유에게 말했다.

“뒤를 부탁해, 부조장. 자꾸 내 대신 조를 관리하는 일을 시키게 돼서 미안하군.”

나서유가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해 줬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기다릴게요.”

설풍은 어색함에 그녀를 마주 보지 못하고 바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들의 옆에선 주태경이 선우진을 노려보며 말하고 있었다.

“네놈, 설사 네놈이 거기 다녀오느라 지쳐 있다 해도 대결은 미뤄 주지 않겠다. 설마 그 대결을 피하기 위해서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피식 웃은 선우진이 그에게 대답했다.

“망상이 크군. 이 일에 비한다면 너와의 대결은 내게 그리 큰 의미를 지니는 일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뭐라고?!”

이를 가는 주태경을 비웃어 주며 선우진은 몸을 날렸다. 등에는 묘족 청년을 업은 채였다.

***

“우와아아! 험청 빠르다!”

내 등에 업힌 묘족 청년이 소리를 질러 댔다.

설풍 조장과 나, 비사영, 청연 소저는 새벽 수련 때처럼 나무 위를 날듯이 달려가는 중이었다.

어둑해져 가는 저녁, 점점 우거져 가는 빽빽한 밀림 속이었지만 우리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태단합니다! 표펌이 퇸 것 캍아요!”

다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묘족 청년은 기본적으로 무척 밝고 싹싹한 성격인 듯했다.

비록 양해를 구했다고는 하지만 점혈을 당해 전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가운데 짐짝처럼 들려 가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텐데, 연신 어린아이처럼 신나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지난 삶을 떠올렸다.

지난 삶에서도 나는 그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그때도 오늘처럼 간절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부탁을 거절했었지.’

그 결과 뭐가 딱히 안 좋아졌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런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독사귀가 등장했었다.

가까이 접근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중독시키는 독의 결정체와도 같은 마인이 말이다.

그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 대원들은 처음 만난 독사귀 한 놈에게 무려 이십여 명이나 중독되고 말았었다.

그리고 그중에 그녀가 있었다.

‘나 소저.’

바로 우리 조의 부조장이자 내 첫사랑인 나서유 소저가….

설풍 조장이 우리와 떨어져 있다 위기에 처한 주태경과 그 똘마니들을 구원하러 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십삼대에 상주하는 의원도, 당가의 여식인 당여은 소저도 도저히 그 독을 해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료들이 죽어 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던 때에 설풍 조장이 홀로 무작정 밀림 속으로 들어갔었다.

독사귀의 독이 혹시 밀림의 독물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해독약 역시 그 부근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당여은 소저의 원론적인 얘기를 들은 후였다.

그리고 이틀 후 그는 묘족들에게 조언을 얻어 채취한 해독초라며 몇 가지 식물을 뜯어 왔었고, 당여은 소저는 그걸로 바로 해독제를 만들어 시험해 봤다.

그 결과 아직 살아 있던 몇 명의 동료들을 간신히 구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몇 명 중에 나 소저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이미 늦었던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었다.

‘설풍 조장이 변한 것도, 내가 변한 것도 그 일이 있고 나서였지.’

설풍 조장은 이전까지의 착하고 순한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차갑고 비정한 사람이 되었고, 나는 내 몸을 갈아 버릴 듯 수련에 몰두했었다.

그리하여 결국 조장은 광풍비룡이 되었고, 나는 일류 최상급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물론 그때 설풍 조장이 조언을 얻었던 묘족이 이 청년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뭐든지 시도해 봐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 시진쯤 달려 해가 지고 밀림이 완전히 깜깜해지자 우리는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설풍 조장이야 어둠 속에서도 대낮과 같이 사물을 판별할 수 있다지만, 아직 나나 비사영, 청연 소저는 무리였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별이라도 밝아서 다행이로군.’

우리는 땅으로 내려서서 묘족 청년 다캄을 내려 주었다. 길 안내를 위해서라도 이제 그가 앞장서야만 했다.

내가 문득 비사영에게 말했다.

“사영.”

“응? 왜?”

“우리도 조장처럼 눈을 감고 사물을 파악하는 수련을 해야겠다.”

“쳇, 그게 되겠냐?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건만 수련할 것만 계속 늘어나는군.”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또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청연 소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이미 그런 수련을 하고 있다는 걸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나 또한 전생에 그런 수련을 해 봤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때는 큰 성취를 얻지 못했지만 지난번 주귀 사건 이후로 많은 진전을 얻은 상태이기도 했다.

그때 다캄이 우리에게 주의를 줬다.

“처한테 터 가까이 오세효. 여키는 톡사랑 펄레가 많은 콧이라 초심…!”

그때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숲에서 뭔가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시이익!

어두컴컴한 암흑 속에서 화살처럼 날아든 그것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나나 비사영은 제대로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윽!”

“뭐야?!”

하지만 설풍 조장은 아니었다.

텁!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가볍게 낚아챈 설풍 조장이 손에서 쉭쉭거리고 있는 얇은 뱀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이건…. 삼채시사?”

그러자 청연 소저가 제일 먼저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네? 삼채시사라구요?”

“잉? 그거 엄청 귀한 독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러자 설풍 조장이 다시 날아온 한 마리를 가볍게 낚아채며 대답했다.

턱!

“여기선 아닌가 보군.”

전선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당가에서 배포한 책자로 기본적인 독물에 대한 지식 정도는 교육받은 상태였다.

그 책에서 세 가지 빛깔을 띠고 화살처럼 날아와 목표물을 물어 버리는 삼채시사는 독공을 쓰는 무인들이 암기로 쓰기도 하는 귀한 독사라고 적혀 있었다.

다캄이 감탄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역시 태탄하세요. 톡노 외에는 아무토 그렇게 못했는데.”

설풍 조장이 그에게 물었다.

“여기선 이런 게 흔한가?”

“그 팸이요? 네, 총종 포입니다. 아직은 아니치만 촘 더 가면 톡림이 있어서 타른 컷도 많아요.”

청연 소저는 다캄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조장에게서 뱀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아마 눈이 보였다면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아무튼 다캄의 말로는 여기서 한 시진쯤 더 가면 독림이라는 거대한 늪지가 나오는데 그곳은 원래 묘족들이 절대 가지 않는 금지라고 했다.

하지만 다캄의 거처는 그 너머에 있었다.

혈교도들에게 동족들이 사냥당하기 시작하자 그 근처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문득 그에게 물었다.

“마인들이 그곳에 가지 않는 이유도 독물이 많기 때문인 건가?”

“네, 톡노가 크렇게 말했어요. 쾨물들은 원래 톡 냄새를 싫어하게 만틀어졌다고. 하지만 나중엔 톡을 뿜는 놈들도 나올 거니까 초심하라고 하기도 했어요.”

그 말을 들은 나와 조장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 독노라는 노인은 마인에 대해 무척 자세히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만약 그가 말한 나중에 나올 마인이 독사귀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무척이 아니라 지나치게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겠지.

그의 정체가 새삼 더 궁금해졌다.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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