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毒林(독림)-3
다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팎으로 나올 땐 콕 약초를 몸에 팔라야 해요. 안 크러면 팸과 펄레들이 탈려들어요.”
확실히 다캄에게 딱 붙어서 움직이자 벌레들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는 조장에게 말했다.
“이런 것도 좀 배워 둬야겠군요.”
“그렇군. 아무 준비도 없이 우리끼리 여기 왔다면 난감할 뻔했어. 순찰로에서 고작 한 시진 정도 달려왔을 뿐인데 이렇게 되다니. 예전에 더 깊이 들어가면 독물이 너무 많아져 거기까지만 순찰로를 정했었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그게 독림이라는 곳 때문이었군.”
그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얘기이기도 했다.
숲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구리텁텁하고 불쾌한 냄새가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굳이 설풍 조장처럼 예민하지 않더라도 ‘스스스’거리며 우리 앞을 비켜 주는 무언가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비사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물었다.
“저, 저게 무슨 소리죠?”
그러자 설풍 조장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모르는 게 나을 것 같군. 윽, 저, 저런 것도 있었다고?”
“예? 뭐가 또 있습니까?”
“사람보다 더 큰 지네가 있네. 지금 저쪽 숲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군.”
“사람보다 더 큰 지네라구요?!”
그 말에 반색하는 건 청연 소저밖에 없었다.
사람보다 더 큰 지네라.
혹시 그건가?
꼬리 탄력으로 하늘을 난다는 비천오공?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그건 그야말로 전설 속의 독물이잖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캄이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크건 크렇게 위험하지 않습니타. 꼬리를 땅에 부딪쳐 높이 튀는 놈인테 워낙 머리가 좋아서 사람을 알아봅니타. 제카 예전에 먹을 것을 몇 번 나눠 주고 나서는 철대 콩격하지 않습니타.”
음, 꼬리로 땅을 때려 날아오르다니.
진짜 비천오공이었군.
근데 위험하지 않다고?
지네가 사람을 알아본다는 시점에서 이미 충분히 위험한 것 같은데?
문득 그에게 물었다.
“그럼 독림에서 제일 위험한 놈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러자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톡림 안으로 카면 손파닥만 한 말펄들이 있습니타. 여러 마리가 한커번에 움직이는데 한 마리에게만 쏘여도 바로 축습니다. 그리고 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사람 얼쿨처럼 생긴 커미, 늪 속에 있는 빨칸 커머리 떼, 또 뿔이 달리고 나무처럼 커다란 뱀도 있답니다. 모투 너무 무섭습니다.”
그거 설마 대황호봉에 인면지주, 혈질에 독각화망을 얘기하는 건가?
그게 실존하는 것들이라고?
뭐야, 여긴? 무서워.
옆에서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던 비사영이 중얼거렸다.
“뭔 이런 곳이…. 여기 혹시 용은 없나?”
그 말을 들은 다캄이 대답해 줬다.
“용이효? 네, 용이 있탄 얘기는 못 틀어 봤습니타.”
비사영이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것참 위안이 되는군. 정말 다행이야.”
그래도 다행히 우리는 독림 안쪽이 아닌 외곽으로 빙 돌아서 다캄의 거처로 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그 전설의 독물들을 실제로 볼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무척이나….
다행이었다.
청연 소저는 좀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다캄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크리고 팸들은 타 위험합니다. 착은 펄레들도 위험하쿠요. 아! 크놈도 위험합니다. 까만 표펌인테 톡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이빨과 발톱이 톡이 됐습니다. 호랑이만큼 크고 빠른데 창도 안 들어캅니다.”
그러니까 저 얘기는,
흑표범이 독을 많이 먹어서 독물이 됐다고?
호랑이만큼 큰데 창도 안 박혀?
거기까지 듣자 좀 의심이 생겼다.
이제까지 다캄에게 들었던 것들이 좀 과장되거나 허풍이 아닐까라는 그런 의심이었다.
적어도 설풍 조장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게 바로 저놈인 모양이군.”
“…예?”
설풍 조장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희미한 달빛 아래로 거대한 무언가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호랑이만큼이나 거대하지만 달빛 아래에서도 그림자처럼 까맣게 보이는 검은 피부, 요사스러운 녹광을 뿜어내고 있는 두 눈. 그것은 분명 흑표범이었다.
다캄이 당황해서 말했다.
“처, 처 놈은 톡림 팎으로 찰 안 나오는데! 차, 참시만 키다려 보세요.”
그러곤 등에 메고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나뭇잎에 싼 고기 한 덩어리를 꺼내더니 놈에게 던져 주었다.
독물들을 만날 때를 대비해 늘 가지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고깃덩어리의 냄새를 슬쩍 맡아 본 놈은 다시 고개를 들고는 녹광을 빛내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고기보단 우리에게서 좀 더 맛있는 냄새가 나는 모양이었다.
다캄처럼 피부에 약초를 바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자세를 낮추고 놈을 경계하며 비사영이 말했다.
“이럴 땐 진, 네 살이 빠진 게 아쉬워지는데?”
“왜, 먹이로 던져 주고 도망가게?”
“크크크, 잘 아는군.”
“흥! 너보다 더 빨리 도망가는 것으로 비종신법을 가르쳐 준 은혜를 갚도록 하지.”
그때 청연 소저가 소리쳤다.
“와요!”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던 흑표범이 한순간 빛살처럼 우리에게 쏘아져 왔다.
파박!
비사영과 내가 본능적으로 움찔했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설풍 조장이 있었다.
타닥!
놈과 비슷한 속도로 튀어 나간 설풍 조장이 공중에서 놈과 격돌했다.
펑! 퍼퍼퍼펑!
비사영이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지금 저 흑표범이 조장의 퇴법을 막아 낸 건가?”
“아아, 누가 짐승이고 누가 사람인지 모르겠군.”
“저건…. 마치 절정 고수 같군요.”
청연 소저의 말대로였다.
그건 마치 절정 고수들의 싸움과도 같았다.
설풍 조장은 독이 있다는 발톱이 신경 쓰였는지 놈의 발 안쪽을 걷어차고는 그 탄력으로 몸을 휘돌려 놈의 머리 쪽으로 회오리 같은 연환각을 전개했다.
근데 그 연환각을 표범이 앞발로 방어해 낸 것이었다.
표범보다 더 야수 같은 움직임으로 공세를 퍼붓고 있는 설풍 조장도, 짐승답지 않게 그걸 막아 내고 있는 표범도 모두 놀라웠다.
둘은 나무 위를 핑핑 날아다니며 싸움을 계속 이어 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설풍 조장이 우세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타격은 주지 못하는 상황, 게다가 다캄의 말대로 놈의 발톱에 독이 있다면 단 한 발만으로도 전세가 역전될 위험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기회를 노렸다.
그러곤 놈이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등을 보였을 때 동시에 튀어 나갔다.
파밧!
청연 소저와 나의 검, 그리고 비사영의 도가 빛살이 되어 놈의 뒤를 덮쳤다.
샤아악!
타타타탁!
“큭?!”
“하?!”
“이런 세상에! 기가 막힌 놈이로군!”
놈이 순간 긴 꼬리를 풍차처럼 휘돌려 검과 도를 막아 냈던 것이었다. 그러고는 바로 몸을 펄쩍 날려 멀찍이 뒤로 물러섰다.
놈도 아마 계속 싸우기에는 만만하지 않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녹광을 뿜어내는 눈으로 우리를 한 번 쓱 훑은 놈은 다시 천천히 독림 안쪽으로 사라져 갔다.
잠시 후 설풍 조장이 경계를 풀며 말했다.
“정말 갔군.”
그제야 우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저런 게 세상에 진짜 있었군.”
“놀라워요.”
그러자 비사영이 대꾸했다.
“세상에 있는 건 상관없는데 심지어 우리 근처에 있었다는 게 더 기가 막히는구먼.”
동감이었다.
그 이후론 크게 위협적인 것들은 없었다.
특이한 뱀들은 많았지만 큰 위협은 되지 않아, 설풍 조장이 턱턱 잡아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을 뿐이었다.
물론 거기에 제대로 관심을 보인 건 청연 소저뿐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길을 걸으며 다캄에게 가능한 많은 지식을 뽑아내려 했다.
해독에 좋은 식물들, 마인들을 쫓는 독향을 만드는 법. 그리고 독물들을 쫓을 때 쓰는 풀 등등.
다캄의 언어가 미숙해 좀 힘들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것들을 독노에게 배웠다는 다캄은 의외로 설명에 꽤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그는 길을 가는 동안 실제 필요한 풀들을 바로 뽑아서 보여 주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다캄이 머무는 거처에 도착했을 땐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오는 길을 기억해 놓은 내가 조장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끼리 돌아갈 땐 세 시진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럴 것 같군.”
“조금 여유를 갖고 독물을 잡으며 움직여도 네 시진이면 될 것 같아요.”
그러자 비사영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지금 오는 길을 다 외웠다는 겁니까? 이 밤중에? 그것도 세 사람 다?”
“응? 그게 왜?”
“별로 어려운 길은 아니었지 않나?”
“돌아가려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리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입 속으로 웅얼웅얼했다.
뭔가 많이 더럽다는 모양이었다.
다캄의 거처는 작은 모옥이었다.
그는 환한 얼굴로 우리를 이끌고는 모옥 안으로 안내해 줬다.
모옥이 위치한 곳은 독림의 늪지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섬 같은 곳이었다.
아마 그 주변에 독물들이 싫어하는 향초를 벽처럼 쌓은 채 거주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며 다캄이 소리쳤다.
“톡노! 톡노! 토와줄 사람을 테려왔어요!”
“다캄! 다캄이 왔다!”
“다캄, 어디 갔었어!”
모옥 안에는 그가 동생들이라고 말했던 묘족 아이들과 병색이 완연한 노인 한 명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귀여운 아이들, 그리고 무척이나 꼬장꼬장해 보이는 인상의 백발노인이었다.
특히 아이들의 발음이 다캄과 달리 무척 자연스럽다는 것이 재밌었다.
역시 같이 말을 배웠어도 어린 아이들 쪽의 성취가 뛰어난 모양이었다.
“다캄!”
“다캄!”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다캄을 둘러싸고 울먹거리며 안길 때, 침상에 누워 있던 노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애새끼들을 내팽개쳐 놓고는 밤새 대체 어딜 갔다 오는 게냐?! 게다가 도와줄 사람이라니, 뭔 헛소리야?!”
그의 짜증에 다캄이 동생들을 달래며 문밖에 선 우리를 바라보자, 설풍 조장이 대표로 안으로 들어가 노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저희는 다캄의 부탁으로 어르신을 돕기 위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자 노인의 인상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그가 으르렁거리듯 우리에게 물었다.
“네놈들, 누구냐? 설마 비룡대의 정파 놈들이냐?”
그 적의가 가득한 목소리에 우리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노인이 화산이 폭발하듯 소리쳤다.
“당장 꺼지지 못할까?!”
그러고는 근처에 있는 것들을 한 손으로 집어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은 놈들 같으니! 뭘 뜯어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온 것이냐?! 당장 꺼져라!”
그가 던진 나무 그릇이 문 옆의 벽에 부딪쳐 퍼석 부서졌다.
화분에 베개, 수저 같은 것들도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고 있었다.
아마 반신불수인 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한 손으로만 던져 정확도는 없었지만 기세만큼은 만만치 않았다.
놀란 다캄이 달려들어 그를 말리려 했다.
“톡노! 뭐 하는 거예요?! 우릴 토와주러 오신 푼들이라구요!”
“닥쳐라, 이놈! 진작에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내가 설사 죽더라도 저딴 놈들의 도움을 받을 것 같으냐?!”
그 흉흉한 기세에 우리는 서둘러 문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나온 이후에도 길길이 날뛰는 노인의 목소리와 그걸 말리는 다캄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황망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봤다.
비사영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무슨 지랄 맞은 상황이래?”
그 말이 꼭 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