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27화 (27/359)

27화 흑상방 습격사건-1

점심을 먹은 오후, 언제나처럼 비사영, 배종관과 함께 외공 수련을 마쳤을 때였다.

웃통을 벗고 몸에 물을 끼얹고 있던 내게로 문득 웬 소저 한 명이 다가왔다.

빨갛게 얼굴이 상기된 꽤 귀여운 소저였다.

“저기….”

훗, 또인가?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시오, 소저?”

그러자 그녀가 더욱 새빨개진 얼굴로 내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이걸로 땀이라도 닦으시라고….”

‘송영영’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예쁜 손수건이었다.

그러자 뒤에서 못마땅한 눈빛으로 보고 있던 비사영이 다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땀은 여기 종관이가 진짜 많이 흘렸는데.”

하지만 그녀에겐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듣고 싶지 않았던가.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계속 손수건을 내밀고 있었다.

차마 그녀의 손을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감사히 쓰겠소, 영영 소저.”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꺄악! 내 이름을 불러 줬어!’라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나란 놈, 실로 죄 많은 남자가 아니던가. 그녀의 마음을 받아 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로구나, 훗.”

그때 비사영이 내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겼다.

빠악!

“웃지나 말고 그런 소릴 해라, 이 자식아!”

외공을 수련해서 그런지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씨익 웃으며 그를 놀려 줬다.

“또 질투하는 거냐?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흥! 이 상황은 이제 익숙해졌지. 너무 빨리 익숙해진 네 녀석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맺힌 게 많은 듯 분노를 토해 내는 놈에게 웃으며 방금 받은 손수건을 내밀어 줬다.

“에이, 마음 풀고 이걸로 땀이나 닦지 그래?”

“이 자식이! 됐거든!”

그때 옆에 있던 배종관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벌써 나흘째잖아? 그것도 다 다른 소저들이었고 말이야. 진이가 살이 빠지고 몰라보게 잘생겨진 거야 이미 훨씬 전부터였는데 왜 이제 와서들 그러는 거지?”

그러자 비사영이 짜증 난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주태경과의 대결 때문이지. 전에는 잘생기긴 했지만 외공이나 익히는 좀 이상한 녀석이었다면 주태경을 꺾고 나서는 외모와 실력을 동시에 갖춘 미공자로 보이게 됐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잘생겨도 무공이 약하면 바보가 되는 곳이잖아? 이 전선은.”

그 말에 배종관이 상처받은 얼굴로 말했다.

“‘외공이나’라니. 사영, 너 설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아니, 나 말고! 다른 소저들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아아아, 다른 소저들이.”

바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배종관이 문득 다시 물었다.

“그럼 나도 무공이 강해지면 진이처럼 인기가 있어질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표정으로 묻는 배종관의 질문에 비사영은 나와 배종관의 얼굴을 번갈아 힐끗 보더니만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곤 이내 꾸짖듯 말했다.

“종관이 너! 설마 천 소저 외에 다른 소저에게 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냐?! 천 소저가 알면 무척 실망하겠는데?!”

그러자 당황한 배종관이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절대 그런 생각이 아니다! 그냥 물어본 거야!”

“그렇지? 나도 네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어.”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빙긋이 웃었다.

미공자라….

사실 어색한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지난 삶에서의 난 여인들의 관심을 받거나 깊은 관계를 맺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 소저가 살아 있을 땐 그저 살아남기에 바쁜 돼지에 불과했고, 나 소저가 죽은 후엔 온통 나를 단련하느라 바빠서, 또 전선의 상황이 너무 급박해져서 그런 관계를 맺을 여유도 없었다.

그런 내가 여인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무척이나 어색하고, 쑥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수련은 다 끝났어요?!”

문득 들려오는 밝고 맑은 목소리.

고개를 돌려 보니 우리 조의 세 여인이 그녀들끼리의 수련을 마치고 우리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세 명 중 가장 중간에 선 나서유 소저에게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됐다.

문득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난 삶에서 나 소저가 살아 있는 동안의 나는 그저 보살핌을 받는 존재였을 뿐이었다.

내 한 몸도 추스르기 힘들었던, 감히 그녀에게 당당히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그런 존재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은 후 나는 달라졌었다.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가 볼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나는 드디어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젠 가끔씩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곤 했다.

‘지금이라면 그때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말이다.

얼마 전 나는 고민 끝에 원래 내가 먹으려고 했었던 영약 하나를 그녀에게 양보했었다.

지금 내 내공은 거의 일 갑자에 근접한 상태였다.

이제 몇 년 치의 내공만 있으면 완전히 일 갑자를 채울 수 있는 상황.

그러니 절정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당장 영약을 먹는 것이 조금 아까운 상태였다.

물론 나중을 위해 그냥 놔두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겠지만, 그래서야 내게 영약의 반을 양보했던 비사영에게 미안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하다 결국 아버지가 주셨던 두 개 중 하나를 나서유 소저에게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물론 착한 그녀는 깜짝 놀라며 거절했었다.

하지만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는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얘기해 줬다.

‘소저, 물론 이것을 종관이나 천 소저에게 줘 우리 조의 평균 무위를 높일 수도 있소.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우리 조에 조장 이외에도 절정 고수가 반드시 더 있어야 함을 깨달았소. 들으셨겠지만 이번에 조장은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단 말이오. 그러니 청연 소저나 나, 나 소저가 빠르게 절정에 올라 조장을 도와줘야 한다고 판단했소. 그래서 나 소저에게 드리는 것이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시오.’

내 말을 들은 나 소저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며 영약을 복용했었다.

그때 난 내가 준 영약을 복용하는 그녀를 보며 마음 깊이 뿌듯함을 느꼈었다.

마치 그녀가 내 마음을 받아 준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내가 아무리 여자 경험이 없기로서니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다만 약간의 기대는 하고 있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내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밝은 얼굴로 다가온 나 소저가 문득 내 손에 쥐어진 손수건을 보고는 웃으며 물었다.

“또 손수건을 받은 거예요? 이번엔 누구였어요?”

“아, 이, 이건.”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 바보 같은 놈, 이걸 그녀 앞에서 보이다니.

당황한 내가 변명하려 할 때, 비사영이 먼저 불퉁한 말투로 대답해 줬다.

“오늘은 삼 조의 송영영 소저더구려.”

그러자 나 소저가 깜짝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송영영 소저요? 어머, 그 소저는 남자들에게 인기도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문득 기대가 되기도 했다.

좀 질투를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곧 환하게 웃으며 나를 축하해 줬다.

“우와, 선우 공자 정말 인기인이 됐군요? 내가 다 뿌듯하네요. 이게 바로 성공한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기분인가요? 정말 대견해요!”

…어머니인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준 영약은….

효자가 된 건가?

좌절해서 살짝 비틀거리는 내 어깨를 문득 청연 소저가 툭툭 두드려 줬다.

뭘 알고 그러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위안이 됐다.

그런 내 기분을 전혀 모르는 나 소저는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우리 새 조원은 정혈 회담이 끝난 후에 받기로 확실히 결정됐대요. 아무래도 회담 전에 신입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하니까 삼 주만 지나면 새 식구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다들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 잘됐군요!”

“잘됐기는, 제대로 된 놈들이 들어와야 잘된 거지.”

“에이, 설마 또 주태경 같은 자가 들어오기야 하겠어요? 분명히 좋은 사람이 들어올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전생의 기억을 뒤적거려 봤다.

흠, 정혈 회담 이후 들어오는 녀석이라면 그 녀석인가? 다른 조여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얼핏 무척 싹싹하고 기운 넘치는 녀석이었던 것 같았는데.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주태경 같은 놈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대결에서 패해 나를 형님으로 모셔야만 했던 주태경은 또다시 점창검비다운 행동을 보여 줬었다.

놈은 나를 형님으로 모시기보단 사 조의 마유겸 조장에게 사정해 사 조로 옮겨 갔던 것이다.

듣기엔 눈물까지 흘리며 사정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 자존심 강한 마유겸이 설풍 조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드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원래 주태경 한 명만을 좀 보내 달라고 부탁한 마유겸에게 우리는 떨이로 나머지 똘마니들도 다 같이 보내 줬다.

어차피 신뢰가 무너진 조원은 없는 것이 낫다는 내 주장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우리 칠 조는 인원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평균 열 명인 다른 조들에 비해 일곱 명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전혀 아쉽진 않았다.

‘일곱 명으로도 전보다 더 강해졌으니까!’

분열된 열 명에 비해 똘똘 뭉친 일곱 명이 더 낫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더군다나 영약을 섭취한 나 소저가 한 단계 올라서며 조장을 제외하고도 일류 상급 이상의 무인이 세 명이나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전투력 부분에서도 이전보다 더 나아지면 나아졌지 부족하진 않은 상태였다.

이 부분에서 좀 아쉽긴 했다.

여기서 영약만 더 있었다면 나머지 조원들의 수준도 더 끌어올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새삼 독으로 영약을 제조했다는 석경달 노인의 지식이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꼭 영약이 아니어도 혈교를 상대하기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게 돌아가시기엔 아까운 분이셨는데….’

지광옥을 죽인 그날 우리는 다캄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석경달 노인의 당부대로 다캄과 동생들은 완전히 종적을 감춰 버렸고, 섭혼당했던 라쿤이란 동생은 지광옥이 이미 죽여 버린 후였다.

모옥 안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석경달 노인의 자료들도 다캄이 모두 가져간 모양이었다.

물론 다행히도 독초와 해독초에 관한 지식들을 어느 정도 배워 놓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비조처럼 날아와 우리 옆으로 착지했다.

간부 회의에 참석했던 설풍 조장이었다.

“조장!”

“잘 끝났어요?”

“뭐 특별한 게 있었나요?”

그러자 쓰게 웃음 지은 설풍 조장이 우리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네. 무엇부터 듣겠나?”

천주은 소저가 제일 먼저 귀엽게 손을 들며 말했다.

“나쁜 소식이요! 좋은 소식을 나중에 들어야 두 배로 행복하죠!”

그러자 설풍 조장이 피식 웃으며 말해 줬다.

“부대주로부터 또 청소 구역을 할당받고 말았다네. 진입로 쪽을 정리해 달라더군.”

그 말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네에?! 며칠 전에도 했던 곳이잖아요!”

“나무까지도 각지게 깎아 놨지 않소!”

“그랬지. 나도 그렇게 얘기했는데 부대주께서 말씀하시길 원래 정리와 청소는 매일매일 해야 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더군.”

그 말에 우리는 모두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청소는 매일매일 해야 한다고?

비사영이 분노를 터트렸다.

“뭔 개소리야?! 그렇게 중요한 짓을 왜 십여 년 동안 한 번도 안 하다가 이제야 매일 하는 건데?! 정혈대전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청소나 하고 있으라니, 진짜 미친 거 아냐?!”

좀 과격한 말이었지만 모두가 그의 분노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주 헌영보는 정말로 이번 무림맹과 혈교의 정상 회담에 자신의 명운을 건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난 삶에서의 회담을 떠올린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 삶에서도 헌영보는 필사적으로 정혈 회담을 준비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부대주로서 십삼대에 남아 있게 됐었던 것이다.

한심한 동시에 한편으론 짠하기도 했다.

무림맹주와 혈마가 만나 대화를 나눈 정혈 회담은 제이 차 정혈대전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모두를 긴장시켰던 것이 무색하게도 의미 없는 대화만 나누다 맥없이 끝나고 말았었다.

‘정말이지 대체 왜 만났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했었지.’

덕분에 가슴을 졸이고 있던 전생의 나는 아무 일 없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지만, 정작 중요한 일들은 그 이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었다.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켜졌다.

‘그땐 정말 무슨 저주라도 받은 것 같았는데.’

그 시작은 사 조의 부조장 매여경 소저가 주귀에게 정혈을 빨려 살해당한 채 발견됐던 것부터였다.

그것도 십삼대 본부 근처에서 말이다.

경악한 우리는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주귀를 수색했지만 결국 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매여경 소저와 사귀고 있던 사 조 조장 마유겸이 막 나가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부터였다.

원래 오만하긴 했어도 뛰어난 무인이자 유능한 조장이었던 그가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를 싫어하는 자들까지도 그게 모두 매여경 소저의 죽음 때문이 아니겠냐며 안타까워했었다.

게다가 일전에 우리와 대화했던 삼 조의 부조장 명사현이 혈교에게 섭혼당하고 삼 조장 당여은이 그를 죽여야 했던 사건도 그때 일어났다.

그런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당시 십삼대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닥까지 가라앉았었다.

문득 생각해 보면 나중에 일어났던 다른 일들도 이 시기에서부터 비롯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당여은이 마유겸의 여자가 됐던 일이나, 나중에 전선이 무너질 때 점창의 장문제자를 자처하던 마유겸이 혈교로 돌아서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것까지도 말이다.

‘으음, 그렇다면?’

갑자기 목덜미가 싸했다.

어쩐지 이 모든 것에 내가 알지 못하는 연관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뭘 대비하고 싶어도 그 당시 칠 조가 휴가 중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에 관해 아는 것도 없었고, 그들과의 친분도 전혀 없어서 대비할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천주은 소저가 다시 소리쳤다.

“조장! 그럼 좋은 소식은 뭔가요?!”

그러자 빙긋이 웃은 설풍 조장이 대답했다.

“우리 휴가가 다음 주로 당겨졌네. 그래서 바로 다음 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네.”

그 예상치 못한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악! 휴가라구요?! 정말요?!”

“우와아아아! 멋진데?!”

“와하하하! 정말 좋은 소식이오, 조장!”

하지만 나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멍해져 있었다.

다음 주로 휴가가 당겨졌다고?

그건 지난 생에서 없던 일인데?

당황한 내가 조장에게 물었다.

“아, 아니, 어떻게 그렇게 된 겁니까?”

그러자 조장이 빙긋이 웃으며 설명해 줬다.

“사 조의 마유겸 조장이 양보해 줬다네. 칠 조의 인원이 모자라니 신입을 받기 전에 미리 휴가를 다녀오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아무래도 주태경에 관한 것 때문에 마음의 빚을 느낀 모양이네.”

“아, 그래서….”

허어, 내가 모르는 미래라니.

당황스럽고 살짝 불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던 나는 이게 전혀 나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지난 삶에선 그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던 시기에 휴가를 가느라 아무런 대응도 못 했지 않은가.

물론 그때는 대응할 능력도, 생각도 없긴 했지만.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지금의 나라면 옆에서 지켜보다 뭔가 다른 변수를 만들게 될 수도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게다가 문득 또 한 가지 일에 대한 기억도 떠올랐다.

가만있자.

이 시기쯤 귀주성에서 재밌는 일이 하나 일어나지 않았던가?

지난 삶에서야 일이 다 끝난 다음에 휴가를 나가 알게 됐었지만 이번엔 잘만 하면….

내 입꼬리가 절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고 있었다.

바로 조장에게 물었다.

“조장! 이번 휴가 때 뭐 하실 겁니까?!”

“응? 난 딱히 갈 곳도 없어 그냥 남아서 수련을 할까 하네만.”

그래, 그럴 것 같았다.

나는 펄쩍 뛰며 조장의 말에 반대했다.

“안 됩니다! 조장!”

내 과격한 반응에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으, 응? 왜 안 돼?”

“조장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휴식도 수련의 일환이라고!”

“아, 그야 그렇지만 난 딱히 갈 곳이….”

“귀주성으로 갑시다!”

“응?”

“귀주성에 가서 제가 제대로 한번 모시겠습니다!”

당황해서 눈만 껌뻑거리는 설풍 조장을 보며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조장만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이번 휴가는 아주 보람찬 날들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