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生死怪醫(생사괴의)-3
마종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자네 괜찮은가?”
그의 시선이 내 팔에 박힌 동패경의 수전 쪽에 향해 있었다.
일단 삼채시사를 먼저 회수하고는 웃으며 대답해 줬다.
“괜찮습니다. 제가 외공을 익혀 피부가 단단하거든요. 통증도 좀 둔하고요. 아까 주신 해독제 덕분에 독 기운도 바로 해독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예의상 하는 말만은 아니었다.
아까 달리는 도중 마종환이 건네줬던 해독약 덕분에 동패경의 수전에 발라진 독이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아까 하급 무사를 족쳐 놈이 쓰는 독의 종류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팔의 상처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기를 머금은 암기이니 팔은 물론 몸을 관통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검을 관통하며 속도가 준 데다 외공을 익힌 덕분에 그리 깊지 않은 상처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놈이 혹시 알아볼까 봐 묵랑이 아닌 예전에 쓰던 검을 썼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배종환과 함께 외공을 수련했던 것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
마종환이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말했다.
“다행한 일이지만 상처를 우습게 보면 안 되네. 잠깐 보세나.”
마종환은 간단히 내 팔에서 수전을 뽑아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을 발라 줬다.
“외공을 익힌 것이 정말이었군. 이 정도면 상처가 크지 않네.”
그러고는 내게 물었다.
“자넨 대체 누군가? 그 나이에 벌써 일류 최상급 정도로 보이는 무위에다 절정 고수를 능가하는 신법, 놀라운 임기응변에다 외공까지 익히고 있다니. 자네 같은 사람에 대해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는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네. 신분을 밝혀 줄 수 있겠는가?”
그의 질문에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물론입니다, 어르신. 저는 비룡십삼대 소속 칠 조 조원인 선우진이라고 합니다. 마침 휴가를 나왔다가 우연찮게 어르신의 사연을 접하게 됐습니다. 아마 인연이 닿았던 모양이지요.”
그러자 그가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비룡대라고?! 아, 그래서 알려지지 않았던 거로군?!”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계속 얘기를 나눴다.
주로 그의 자녀들을 구해 줬던 과정에 대한 얘기였다.
얘기를 듣던 그가 탄식하며 말했다.
“아이들이 그런 오해를 하고 있었군. 그래, 나야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지만 아이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겠지.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이 나를 원망하며 죽어 갔을지도 모르겠어.”
“아, 그건 제 친구가 한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자녀분들을 구한 것도 그 친구였죠. 감사 인사는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해 주시지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문득 흠칫 놀라 손가락을 입에 대며 말했다.
“잠시!”
그리고 귀를 기울여 보니 전방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듯한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의 기척이었다.
“전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벌써 여기까지 포위망을 좁힌 모양인데요?”
반 포위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완전 포위였던 모양이었다.
문득 이대로 포위망을 뚫고 나가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는 쪽에도 아마 절정 고수들이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절정 고수가 세 명이나 남아 있으니 함부로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다시 돌아가시지요, 어르신. 아무래도 제가 뚫고 온 쪽이 가장 포위가 헐겁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확히는 조장이 오고 있는 쪽이 가장 헐겁고 안전할 것 같기는 한데 그 방향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다시 업겠습니다, 어르신.”
“미안하네.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되다니.”
생사괴의를 등에 업은 나는 다시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진로는 아까 동패경을 죽였던 곳보다 좀 더 북쪽으로 치우친 쪽이었다.
조장이 북쪽에서 오고 있으리란 생각에 그렇게 진로를 잡았던 것인데 그 생각은 불행히도 잘 들어맞지 않았다.
조장이 아닌 다른 놈을 먼저 만나고 말았던 것이다.
“저기 있다! 저놈을 잡아라!”
그렇게 소리치며 수많은 부하와 함께 북서쪽에서 달려오는 자는 시커먼 털북숭이 얼굴에 거대한 철퇴를 든 배종관만 한 거한이었다.
아마도 놈이 흑상방주 고주용의 셋째 동생인 흑산철퇴 한적삼인 모양이었다.
내가 진로를 잡은 방향은 서쪽, 북서쪽에서 포위하듯 달려오는 놈들 때문에 그대로 달려가기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잠시 주변을 훑은 나는 다시 뒤돌아 왔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놓치지 마라! 포위해! 암기를 던져라!”
한적삼이 그렇게 외치자 진짜 북쪽에서 포위해 온 놈들이 내게 암기를 던져 대기 시작했다.
한적삼이란 놈이 과연 단순 무식하다더니만 생사괴의를 죽이면 안 된다는 것도 까먹은 모양이었다.
핑! 핑! 휭! 휘리릭!
왼손에 묵랑검을 들고 간단히 암기들을 쳐 냈다.
팅! 팅! 팅!
이 정도는 굳이 보지 않아도 간단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러자 한적삼이 다시 소리쳤다.
“저놈, 묵랑검을 들고 있잖아?! 이놈 그걸 어떻게 얻은 것이냐?!”
역시.
온통 검은색에다 호수구에 늑대 머리가 새겨진 특이한 검이다 보니 놈도 묵랑을 알아봤던 모양이었다.
이래서 아까 동패경을 상대할 때도 원래 쓰던 검을 썼던 거였는데, 암기에 날이 파손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흑상방을 멸문시켜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는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속도를 조절해 놈들이 아슬아슬하게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조절했다.
그래도 절정 고수라고 한적삼이 가장 선두로 나서 나를 쫓고 있었다.
놈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 들고 있었다.
삼 장, 이 장, 일 장.
“이놈! 잡았다!”
라고 한적삼이 착각한 순간, 내 신형이 갑자기 전방에 있던 큰 나무를 수직으로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뭐, 뭐냐?!”
깜짝 놀란 한적삼이 끼익 정지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을 때 순식간에 위로 올라갔던 나는 가지 위를 바람처럼 달려 원래 가려던 서쪽을 향해 멀리 도약했다.
파박!
“우와앗!”
“노, 놓치지 마라! 암기를 날려!”
당황한 흑상방도들이 내게 암기를 뿌려 댔지만 급가속한 내 속도감을 따라오기엔 무리였다.
핑! 핑! 핑!
등 뒤로 어림없이 지나가는 암기들의 파공성을 들으며 내 착지 지점에 있는 흑상방도들에게 암기를 뿌렸다. 동패경의 시체에서 가져온 검은 수전이었다.
퓨슈슈슉!
“크아아악!”
“으아악!”
“아아아악!”
암기의 폭격을 맞은 놈들이 비명을 지를 때 놈들 사이로 가볍게 착지한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검초를 전개했다.
선우십삼검의 이초 신응피익이었다.
슈하아악!
검광이 날개를 펼치듯 환상적으로 뻗어 나가자 흑상방도들의 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 피의 통로 속에서 비호처럼 튀어 나간 나는 다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 뒤로 한적삼의 비명 같은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놈! 절대 살려 두지 않겠다!”
저자, 의외로 나와 통하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여유 부릴 때는 아니었다.
포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좁혀 오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남서쪽에서도 적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저기다! 저놈의 등에 업힌 자가 마종환이다! 절대 놓치지 마라!”
오십 대 정도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도객, 저자가 바로 흑상방주 고주용인 모양이었다.
북쪽과 남쪽에서 절정 고수 두 명이 나타나다니, 동쪽으로 계속 갔으면 흑광륜 각기효를 만났으려나?
역시 서쪽을 진로로 잡았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만만하단 얘기는 절대 아니었다.
흑상검객 고주용은 내공이 구십 년에 가까운 고수라는 소문이 있었으니까.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추격해 오는 그의 속도는 결코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신법이 특기인 자가 아니었음에도 아까 흑살표 동패경 정도의 속도를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신법만으론 거리를 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전방에 길이 끊어진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아까 생사괴의를 업고 올라왔던 그 절벽에까지 도달했던 것이다.
아까는 올라왔지만, 지금은 뛰어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절벽의 높이는 대략 삼십 장 정도(1장=약 3.3m), 아무래도 생사괴의를 등에 업고 뛰어내리기엔 무리일 듯했다.
그리고 고주용 또한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끝은 절벽이다! 좌우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양쪽으로 흩어져 포위해라!”
그러자 등에 업힌 생사괴의가 말했다.
“나를 저 끝에서 내려 주게. 자네가 내려갈 동안 시간을 좀 끌어 보겠네. 저놈들은 절대 나를 잡을 수 없을 걸세.”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긴 했다.
전생에서 내 도움 없이도 결국 생사괴의는 고주용을 죽이는 것만큼은 성공했었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그건 너무 자존심 상하지 않겠는가.
기껏 여기까지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내려놓고 도망간다는 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분명 전생의 나보다 나아진 상태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 한계를 시험해 본 적은 없었다.
문득 생사괴의에게 물었다.
“어르신, 저를 신뢰하십니까?”
그러자 그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자네를? 무, 물론 신뢰하고는 있네. 근데….”
사실 신뢰 못 한다고 해도 저지를 생각이었지만 신뢰한다니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당당히 말했다.
“그렇다면 제게 맡겨 주십시오.”
“응? 뭘 맡겨…?!”
그때 내 신형이 갑자기 급가속했다.
파박!
놀란 생사괴의가 소리쳤다.
“자, 자네!”
그 순간 내 몸은 삼십 장 높이의 절벽 앞으로 새처럼 뛰어나가고 있었다.
“이야하!”
“으아악! 자네!”
까마득해 보이는 땅을 내려다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기분이 그랬단 얘기지 진짜로 나는 것일 리는 없었다.
몸이 점점 아래로 추락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량이 무겁기 때문인지 체감되는 가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나는 생사괴의의 몸을 잡고는 같이 몸을 휘돌렸다.
그러자 우리 두 사람의 몸이 허공에서 공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충분히 회전력이 생겼다 싶었을 때 생사괴의를 떨어지는 반대편, 하늘 쪽으로 힘껏 던져 버렸다.
“하아압!”
화악!
“자네?!”
놀란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를 던진 반작용으로 내 몸이 더 급격히 아래로 추락했던 것이다.
마치 유성처럼 땅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냉정을 잃지 않았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땅을 보는 내 신경이 날이 선 칼만큼이나 점점 예리해지고 있었다.
시시각각 땅이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러던 한 순간, 문득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은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주변의 모든 사물이 정지할 듯 느려진 가운데 나 혼자만이 주인공인 듯 멀쩡히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발이 땅에 접촉했다.
엄청난 충격이 몸을 산산조각 낼 듯 덮쳐 오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신경은 여전히 냉정하고도 날카로웠다.
나는 차분히 계단을 밟듯 충격을 온몸으로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발가락 끝, 다음은 발가락, 발바닥, 발목, 무릎, 골반, 허리. 관절 하나하나마다 조금씩 충격을 분산시켰다.
마치 형체가 없는 물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공처럼 땅을 맹렬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마침내 충격을 완전히 분산시키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마음속이 뜨거운 환희로 가득 찼다.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어느 정도 굴러 충격을 상쇄한 나는 바로 몸을 튕겨 일어나 하늘 쪽을 확인했다.
내가 위로 던져 올렸던 생사괴의가 다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타닥!
바로 하늘로 솟구쳐 떨어지는 생사괴의를 낚아챘다.
“허어억!”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의 그에게 웃으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그러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했던 그가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앞으로 또 자네가 신뢰하냐고 물으면 그땐 아니라고 대답할 걸세. 정말 죽는 줄 알았군.”
씨익 웃으며 대꾸해 줬다.
“사실 아니라고 하셔도 뛰어내릴 생각이긴 했습니다.”
“허억.”
이젠 가벼운 마음으로 농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주용은 입을 떡 벌린 채 절벽 위에서 그저 지켜보고 있었고, 이 앞쪽은 내가 아까 흑상방도들을 청소하며 왔던 곳이니까 말이다.
그저 온 길 그대로 편안히 달려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으하하하하! 이쪽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었지! 역시 이 각 어르신의 손바닥 안이로구나!”
전방에서 매복해 있던 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그들 중 대장인 듯한 남자는 한 쌍의 륜을 든 날렵하게 생긴 중년인, 아마 고주용의 둘째 동생인 흑광륜 각기효인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뚫고 왔던 쪽에서 매복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놀란 내가 급히 발걸음을 멈췄을 때 절벽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고주용이 광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역시 각 이제로구나! 정말 잘했다, 으하하하하!”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갈 곳이 없었다.
뒤쪽으로도, 앞쪽으로도.
그나마 도망친다면 양옆 쪽이겠지만 상대방의 포위가 넓게 펼쳐진 상황이라 그쪽도 만만치는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포위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눈앞이 암담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