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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6화 (36/359)

36화 마유겸-1

해청연은 귀주성 인근의 객잔에서 홀로 식사를 하다 동료들에 관한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광풍비룡 설풍, 비천흑랑 선우진, 질풍비응 비사영이라니, 선우진이 왜 흑랑이란 별호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멋진 별호들이 아닐 수 없었다.

“좀 아쉬운걸?”

해청연은 문득 떠오른 아쉬운 마음에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선우진을 따라갔었다면 그 재밌는 일들에 동참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여간 옆에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평생을 옆에 있어도 그럴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번 휴가 때 해청연이 따로 볼일이 있어 선우진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사실 모든 이들이 의아해했었다.

그녀가 선우진을 연모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나서유와 천주은은 물론, 그걸 모르는 다른 남자 조원들에게도 그녀가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선우진과 함께 행동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뒤에서 비사영이 선우진에게 드디어 차였다며 놀려 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사자인 선우진 역시 처음 있는 낯선 상황에 조금 어색해하는 것 같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도 있어야겠지?”

좀 아쉽긴 했지만 전략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밌긴 하지만 가끔 자신의 빈자리를 인식시키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하지만 해청연이 이번에 선우진을 따라가지 않은 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간 알게 된 전선의 상황들, 그리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사들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 많은, 그리고 커다란 사건들이 무림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과장 좀 보태 소문의 속도가 절정 고수보다 빠르다는 무림에서 이렇게까지 비밀 유지가 잘 되고 있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걸까?

고작 비밀 유지 서약서 하나 썼다고?

해청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여기엔 분명히 비밀이 유지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이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는 게 해청연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아마도 무림맹인 것 같았고 말이다.

해청연은 그에 관해서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무림맹이 진짜 그녀의 의심과 같은 일들을 행해 왔다면, 그대로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

그건 자신이 알고 있는 정파의 기둥 무림맹이 아닐 테니까.

그래서 해청연은 홀로 귀주성 흥인 쪽으로 나와 표국에 전서를 전달해 줄 것을 의뢰했었다.

그것도 가장 빠르고 비싼 비표를 이용해서.

그러고는 인근 무관에서 수련실을 하나 빌려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며칠 만에 막 나온 참이었다.

전선은 수련하기에 무척 효과적인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잠시도 게을러질 수 없을 만큼 생명의 위협이 가득한 것은 물론 좋은 대련 상대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곳이었으니까.

처음엔 놀랐지만 지금은 전선의 젊은이들이 무림맹의 젊은이들 이상의 성취를 이룬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선과 같은 환경이라면 강한 자들만 있을 수밖에 없겠지. 그러지 못한 사람은 대부분 죽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해청연은 최근 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막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려 하는 그녀에겐 조금 더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고수는 환경을 따지지 않는다지만 전선에는 너무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 자기 자신에게만 온전히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다.

예를 들면 선우진이라든가, 선우진이라든가, 선우진이라든가.

아무튼, 그래서 그녀는 며칠간의 폐관 수련을 마치고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저녁쯤 도착한 칠 조의 숙소에는 그녀를 제외한 모든 조원들이 모여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청연이 휴가 마지막 날 저녁에 맞춰 돌아오다 보니 본가에 간다던 나서유나 천주은은 물론 네 명의 남자들도 이미 복귀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를 본 조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줬다.

“청연 소저! 어서 오시오!”

“연아,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해청연은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사람보단 사물에 좀 더 관심이 많았던 그녀였는데, 이상하게도 이제 만난 지 사 개월 정도밖에 안 된 칠 조원들이 마치 가족처럼 반갑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 또한 엷게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언니, 주은아. 본가엔 잘 다녀왔어? 세 분은 멋진 별호가 생기셨던데요? 아주 즐거운 일이 있었나 봐요.”

그러자 비사영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으하하하!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고 있던 참이라오! 청 소저도 함께 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오!”

딱 봐도 비사영이 신나서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딱히 거기에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설풍과 선우진의 표정도 무척 밝아 보이는 것이 즐거웠던 휴가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다만 배종관만은 혼자만 별호를 얻지 못해서인지 풀이 좀 죽어 보였는데, 역시 나서유가 자상하게 옆에서 말을 걸어 주며 그의 얘기를 들어 주고 있었다.

천주은이 문득 환한 얼굴로 말했다.

“언니, 언니! 우리 조원들이 영약을 한 보따리나 챙겨와 줬어! 나도 이제 일류의 조건을 채울 수 있게 됐다고!”

영약?

아, 생사괴의를 구해 줬다더니 그에게서 받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웃는 얼굴로 천주은을 축하해 줬다.

“잘됐다. 축하해, 주은아.”

그때 선우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청연 소저도 왔으니까 모두 꺼내도 되겠구려.”

그는 보따리를 들고 와 사람들 앞에 풀어 놨다.

그러자 그 보따리는 입구가 열리자마자 깊고 청아한 향으로 온 방 안을 가득 채워 버렸다.

해청연은 그 안에 가득 든 영약들의 모습에 드물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게 다… 영약이에요?”

선우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흑상방 방주의 창고에서 긁어 온 것들이라오. 뭐, 이제 주인이 없어졌으니 우리라도 요긴하게 써 줘야 하지 않겠소? 여기 있는 영약들은 우리 조원 모두가 공용으로 필요할 때 쓰면 될 것 같소. 그리고 이건….”

그렇게 말하며 선우진이 꺼낸 것은 작은 단환이었다.

“생사괴의 어르신께서 소환단 이상이라고 장담하신 생사환이라오. 마침 딱 일곱 개를 주셨으니 각자 하나씩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 쓰면 될 것 같소.”

해청연은 진심으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야 아예 접할 기회가 없어 그 가치를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소환단이라는 게 돈이 있다고 해서 막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연이 닿지 않으면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기물, 무림인에게 있어선 또 하나의 목숨이 될지도 모를 가치 있는 영약이었던 것이다.

근데 심지어 그 소환단 이상이라는 영약을 이렇게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 주다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간식거리를 나눠 주는 것처럼 보였을 지경이었다.

해청연이 참지 못하고 선우진에게 물었다.

“이걸 이렇게 막 나눠 줘도 되는 건가요?”

그녀의 질문에 선우진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잃기 싫은 게 있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라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투자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청연 소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으시오?”

해청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녀 자신도 조원들에게 정이 많이 들었고 가끔 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제 만난 지 사 개월밖에 안 된 사람들이 아닌가.

선우진이 가끔 이들에게 보이곤 하는 짙은 애정도, 어째서인지 조금 쓸쓸해 보이는 저 깊은 눈빛도 그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이내 언제 깊은 눈빛을 보였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자자,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오! 우리 아름다운 소저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여기 또 있다오! 짜잔!”

어쩐지 약장수 같은 선우진의 말투에 천주은이 신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악! 최고예요, 선우 공자!”

그리고 바로 꺼내 온 것은 각각 한 개의 검과 도, 그리고 얇은 상의였다.

해청연은 빠르게 그것들을 스윽 훑어봤다.

그 물건들은 검집에 검파, 호수구까지 모두가 백색으로 이루어진 검 한 자루와 아마 해동의 것으로 보이는 얇은 환도, 그리고 무슨 재질인지 금속광택이 나는 천으로 만들어진 얇은 상의였다.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지만 어려서부터 많은 명품들을 봐 왔던 그녀는 그것들이 상당히 괜찮은 물건들이란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검파와 검집의 재질, 그리고 마감 상태로 봤을 때 저 백색의 검이 명장의 작품이란 건 검날을 보지 않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또한 해동의 환도는 동영의 왜도와 더불어 무인들에게 보물 취급을 받는 병기고 말이다.

게다가 저 상의 또한 범상치 않았다.

금속광택을 보건대 금속을 실처럼 얇게 뽑아서 옷을 만든 모양인데 저 정도 수준의 기술은 사천당문, 또는 그에 비견될 만한 명장들이나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저 정도면 도검불침의 천잠보의까지는 아니어도 웬만한 외공을 익힌 수준으로 몸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우진이 말했다.

“셋 중 원하시는 걸 아무거나 하나씩 가지시면 됩니다.”

하지만 해청연은 그렇게 말한 선우진이 슬쩍 나서유의 눈치를 보는 것을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벽에 기대어져 있는 선우진의 새 검 묵랑을 힐끗 본 그녀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세 여인 중 해동의 환도를 가질 사람은 천주은밖에 없었다. 도를 쓰는 것이 그녀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나머지 두 개를 나서유와 해청연이 나눠 가져가야 하는데, 해청연에게는 이미 꽤 보검이라 부를 수 있는 다홍색의 애검 ‘연홍’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선우진은 해청연 자신이 당연히 보의를 가져갈 테고, 그러면 나서유가 백색 검을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선우진의 묵랑과 마치 한 쌍처럼 대비되는 백색의 검을 말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각하는 게 뻔해서 귀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그렇게 하도록 놔두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해청연은 바로 손을 들고 말했다.

“저 검을 제가 갖고 싶네요. 너무 마음에 드는데요?”

그러자 선우진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했다.

“예?! 아, 예. 청연 소저가 저 검을….”

이어서 선우진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천주은과 나서유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멋진 도는 제가 가질게요. 우와아, 정말 멋지다!”

“그럼 저 옷은 제 거군요. 고마워요, 선우 공자!”

“아, 네. 고맙긴요,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풀 죽은 모습을 감추는 모습도 무척 귀여웠다.

약간 미안한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어차피 나서유도 저 검을 택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녀가 백색의 검과 선우진의 검을 슬쩍 훑어보는 모습 또한 해청연은 예리하게 포착했던 것이다.

자신이 연모하고 있는 여인의 눈이 어느 곳으로 향해 있는지 저렇게 모를 수 있다는 것도 참 신기했다.

***

휴가에서 복귀한 다음 날, 우리는 오후 순찰을 다녀온 후 저녁 수련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두 함께 하는 대련이었다.

나는 문득 자신들의 새 병장기에 만족해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세 여인들을 힐끗 바라봤다.

그중에서도 나 소저를 위해 야심 차게 준비했던 백색의 검이 청연 소저의 손에 들려 있는 모습에 무척이나 속이 쓰렸다.

청연 소저는 그 백색의 검에 ‘백연’이란 이름을 붙여 주고는 원래 갖고 있던 검 ‘연홍’은 나 소저에게 선물해 주었다. 정이 들었을 애검을 다른 이에게 선물까지 하며 그 검을 갖다니, 어지간히 그것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속이 쓰리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 속 쓰린 마음과는 별개로 새 병장기들은 첫 순찰에서 그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모든 무기들이 검기 없이도 순찰 중 조우했던 간귀들을 베어 내는 놀라운 예리함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물론 완전히 동강 낼 수 있었던 건 내 묵랑 하나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두 다 뛸 듯이 기뻐했었다.

특히 아직 도기를 발현하지 못해 자신만 도움이 못 된다며 고민하곤 했던 천주은 소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물한 내가 다 뿌듯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젠 도기를 발현할 수 있게 된 비사영은 그야말로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예전에는 빠른 신법으로 침투해 마인들을 혼란하게 하거나 유인하는 역할만 전담했다면, 이젠 그때보다 더 빨라진 신법으로 침투해 단칼에 간귀를 두 동강 내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저 정도 수준이라면 대여섯 마리의 간귀 무리 정도는 혼자서도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대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신법을 제외하고 보면 비슷한 수준이었던 천주은 소저를, 신법 없이도 완전히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우리 조의 대련을 구경하고 있던 다른 조 조원들이 놀랍다는 듯 감탄했다.

“지나치게 멋진 별호가 생겼다고 놀려 주려고 했더니만 진짜 엄청 늘었잖아? 어이, 질풍비응! 어떻게 된 거야?”

그러자 비사영이 거만하게 대답했다.

“훗! 너희는 돈오점수라는 말도 모르냐?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당연히 대오각성할 시기가 오는 것이지.”

“그것참, 진짜 신기하네. 어디 나랑도 한번 붙어 보겠어?”

“글쎄? 이 질풍비응님께서 별호도 없는 것들과 상대하기는 좀….”

그 거만한 말에 역시 구경하고 있던 육 조 조장 원청원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하! 맞아, 맞아, 별호도 없는 것들과 상대하는 건 격이 안 맞지. 그런 의미에서 이 쾌난원후 원청원이 질풍비응 비사영 대협에게 한 수 청해도 되겠소이까?”

“오! 귀하의 존성대명은 익히 들어 봤소이다, 쾌난원후 원청원 대협. 대협과의 비무라면 제가 오히려 청하고 싶소이다!”

장난치듯 그렇게 대련을 시작한 두 사람은 이내 질풍노도처럼 서로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대결은 막상막하였다.

전체적인 무위는 원청원 쪽이 우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사영의 질풍 같은 속도를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접근해서 쾌도를 날리고 불리해질 법하면 뒤로 빠르게 빠지거나 옆으로 돌아 나가는 움직임에 원청원은 좀처럼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까지 무시받던 이류의 무사에 불과했던 비사영이 비록 조장들 중 말석이라지만 엄연한 한 개 조의 조장인 원청원과 막상막하로 대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모습은 다른 조원들에게 있어선 가히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저럴 수가….”

“엄청난 속도야.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군.”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나는 뿌듯한 마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나와 대결 중이던 소저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와 대결하는 도중에 다른 대결을 관전하고 웃기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네, 네?! 아, 송 소저, 그게….”

“됐거든요! 아, 자존심 상해. 두고 봐요. 저도 열심히 수련해서 곧 나만 바라보게 해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송 소저는 검을 거두고 물러나고 말았다.

그녀는 예전에 내게 손수건을 건네줬던 삼 조의 송영영 소저였는데, 그 후로도 종종 우리 수련 시간에 와서 내게 대련을 요청하곤 했었다.

거절할 명분이 없어 잠깐씩 받아 주곤 했는데, 솔직히 수준 차이가 많이 나는 데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대결을 요청하는지 알기에 진지해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대결 중인데도 아까부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던 참인데 비사영과 원청원의 대결이 너무 흥미진진한 나머지 표정을 숨기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살짝 미안했다.

그때 청연 소저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럼 이제 저랑 한번 해볼까요?”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잘 부탁하오, 소저.”

아직까지 내가 우리 조에서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한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이 청연 소저였다.

그녀는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야말로 일류 무인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이기지 못했던 건 어디까지나 휴가를 다녀오기 전까지의 일, 이젠 내공 일 갑자도 가득 채웠겠다 한 번쯤은 이길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사납게 웃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

사 조 조장 점창검응 마유겸은 멀찍이 서서 칠 조원들의 대련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평상시 칠 조 조장인 설풍을 껄끄러워했던 그이기에 그간 일부러라도 그들의 수련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놀라웠다.

칠 조는 원래 절정 고수인 설풍만이 제 몫을 하는 오합지졸들에 불과했었다.

‘적어도 사 개월 전까지는 말이지.’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턴가 두각을 나타내며 공을 쌓기 시작하더니 불과 사 개월 만에 저런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일류 중급에 불과했던 부조장 나서유가 원숙한 일류 상급의 경지로 올라선 것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이류에 불과했던 비사영이 무려 육 조 조장 원청원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다고? 게다가 돼지 같았던 저 선우진의 무위가….’

청연과 더불어 선우진의 무위는 아직 절정의 경지에 닿지 못한 육 조 조장 원청원은 물론 오 조 조장인 흑사영창 독수광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칠 조는 어느새 조장급 인재만 세 명이 포진한 사기적인 조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원인에는 아마도 저 남자가 있을 것이었다.

자신의 조로 데려오고 싶었던, 이젠 비천흑랑이란 별호를 얻게 된 선우진, 그가 말이다.

자신이 미처 얻지 못했던 인재가 대붕의 알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참을 수 없이 쓰라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마유겸의 뒤에서 함께 구경하고 있던 사 조원들 중 점창검비 주태경이 마유겸에게 말을 걸었다.

“저것 보십시오, 장문사형!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류였던 자가 갑자기 저렇게 성장하다니요! 저건 분명히 혈교의 사술과 관련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놈이 저렇게 갑자기 내공이 상승한 게 묘족 놈을 돕겠다고 밀림 속에 들어갔다 온 이후였다고요!”

그 말에 마유겸이 눈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

“혈교라고?”

그러자 주태경이 확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틀림없습니다! 저놈은 분명 혈교에게 섭혼되었거나 혈교의 마두들에게 붙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마유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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