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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41화 (41/359)

41화 음영대-2

창백한 상현달이 밀림에 깊은 음영을 만든 밤.

무림맹 음영대 사 조의 조장이자 전 음영대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무사라고 평가받고 있는 삭무흔은 밀림 속에서 목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표는 비룡십삼대의 칠 조원인 청연이라는 여인.

오늘이 바로 그녀를 죽이기로 한 날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가 무슨 죄를 지어 죽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현재 전선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여인이라면 아마 억울한 죽음일 확률이 높을 테니까.

하지만 명령이 내려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들에겐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다.

[명령에 불복종한다면 죽임을 당해도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들이 음영대에 들어오기 위해 작성했던 서약서의 내용이었다.

그러니 이곳에 한번 발을 들인 이상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삭무흔에게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이 생활도 이제 일 년만 더 버티면 끝이 난다는 사실이었다.

일 년 후, 드디어 십 년을 채우게 되면 그는 이제 양지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삭무흔은 늘 그렇듯 임무 전에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일 년을 더 버텨 그분의 앞에 당당하게 나서고야 말리라.’

출전 의식처럼 마음을 다진 삭무흔은 다시 이번 임무에 집중했다.

이번 임무는 다른 때와 비교해 조금 귀찮은 점이 있었다.

그냥 전역자였다면 전역일을 알아 놨다가 밖으로 혼자 나왔을 때 죽이면 됐을 텐데 아직 현역이다 보니 일이 좀 복잡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귀찮아졌을 뿐 전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벌써 일주일 전 무림맹의 감찰관 신분으로 십삼대를 방문해 대원들 개개인의 정보와 근무 순서에 대해 상세히 알아 놓은 상태였다.

무림맹 감찰관의 표식을 보여 주자 부대주 헌영보는 전폭적으로 협조하며 모든 정보를 순순히 넘겨줬었다.

그 정보를 토대로 삭무흔은 오늘 있을 칠 조의 야간 순찰 때 그녀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그가 조원들을 모아 놓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오, 육, 칠 호는 간귀들을 모아 온다. 할 수 있겠지?”

조장이 아니기에 아직 번호로 불리고 있는 조원들이 짧고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또한 근무자들 못지않게 전선에 익숙한 자들이었으니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일 호와 이 호는 조장 설풍이라는 자를 막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절정 고수, 그것도 초입도 아닌 원숙한 경지라고 한다. 어쩌면 나와 비슷하거나 내 이상일 수도 있겠지.”

그러자 음영 사 조에 속한 세 명의 절정 고수 중 하나인 이 호가 반박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아직 이십 대에 불과한 자가 어떻게 전 음영대에서도 최고라고 평가받는 조장과 비슷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의 말대로 이제 삼십 대 후반의 삭무흔은 음영대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일 년 후 양지로 나간다면 바로 정식 무력대의 대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자였다.

하지만 삭무흔은 냉정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적을 과대평가해서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과소평가해서 방심하는 것보단 낫다. 너희가 질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절대 방심하지 말도록.”

“네! 조장!”

“알겠습니다!”

삭무흔의 계획은 간귀들을 유인해와 칠 조와 부딪치게 한 후 청연이란 여인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요주의 인물인 설풍은 절정 고수인 일 호와 이 호가 견제하게 하고, 다른 자들을 나머지 조원들이 견제하면 삭무흔이 직접 나서서 빠르게 여인만을 납치해 빠지는 것. 그것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일 호, 이 호를 제외한 나머지도 모두 일류 최상급의 무인들이니 전혀 어려움은 없을 것이었다.

전선에서 혈교의 마두들이 여인을 납치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 그 정도면 모두가 혈교의 짓이라고 생각하리라.

그러니 이제 남은 건 목표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 후 반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작은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온 것이었다.

“부우우우! 부우우우! 부우우우!”

삭무흔은 입으로 산새 울음소리를 냈다.

진짜 산새와도 전혀 차이가 없는 소리였지만 이제껏 함께해 온 조원들이라면 특유의 강세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곤 저들에게 감지되지 않도록 조원들과 함께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오, 육, 칠 호가 간귀들을 유인해 올 때가 행동을 시작할 때였다.

***

- 전방에 매복한 자들이 있어. 우리 속도에 맞춰 뒤로 물러서고 있군. 원하는 습격 지점이 있는 모양이다.

설풍 조장의 전음이었다.

우리는 안타까운 얼굴로 청연 소저의 얼굴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아마 제일 안타까운 사람이 그녀일 것이라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청연 소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만일 정말 습격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오늘일 것이라고.

얼마 전 맹의 감찰관이라는 자들이 부대주 헌영보에게 십삼대의 정보를 얻어 갔다는 걸 그녀가 알아 왔었다.

그러곤 만약 그들이 습격자들이라면 높은 확률로 야간에 습격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게 바로 오늘일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예상했던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한마디를 덧붙였었다.

‘물론… 이 모든 게 괜한 노파심이면 좋겠지만요.’

그녀에겐 그녀 자신의 예상이 틀리는 것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습격자가 진짜 온다는 건 그녀의 가설대로 무림맹이 진짜 전선 출신의 무인들을 죽여 왔다는 의미였고, 또한 그녀 개인에게 있어서도 어려서부터 숙부라고 생각해 왔다는 천뇌 제갈지강이 정말 그녀를 죽이기로 결정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친한 지인이라 믿었던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기분이라니.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나이기에 그녀의 마음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홀로 남게 된 듯한 그 더러운 기분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위로보다는 대응을 할 때였다.

절대 그녀가 죽도록 놔둘 수는 없었으니까.

습격자들은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그들은 이미 두 가지 큰 실수를 저지른 상태였다.

당당하게 맹의 감찰관 신분으로 정보를 캐 간 것, 그리고 설풍 조장의 감지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이 두 가지를 말이다.

그러니 저들은 곧 깨닫게 될 것이었다.

은밀한 습격은 이미 시작부터 실패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사냥꾼의 역할을 맡은 쪽이 자신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계속해서 전진했다.

설풍 조장은 일단 저들의 의도를 알게 될 때까지는 따라가 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일각쯤 전진했을 때였다.

조장이 소리쳤다.

“간귀다, 사영! 세 방향으로 간귀들이 오고 있다!”

그러자 비사영이 조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빛살처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이런 젠장! 또 이 짓거리야!”

***

“간귀다, 사영! 세 방향으로 간귀들이 오고 있다!”

설풍이라는 자의 목소리에 매복해 있던 삭무흔은 당황했다.

아직 저들이 눈치챌 만한 거리가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벌써?

그리고 이어진 저들의 대응은 더 당황스러웠다.

남자 한 명이 엄청난 신법으로 몰려오는 간귀들 쪽을 향해 날아가더니만 간귀들에게 무언가를 확 뿌렸던 것이다.

“옛다!”

촤아악!

그러자 황당하게도 이쪽으로 몰려오던 간귀들이 광분해서는 그의 뒤만을 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크르르릉!”

“크아아앙!”

남자는 그런 식으로 세 방향의 간귀를 모조리 유인하더니만 순식간에 이곳을 이탈해 버렸다.

간귀들을 몰래 유인해 오고 있던 음영대원들은 상상치도 못했던 전개에 그저 당황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습격자들이 마인들을 유인해 습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미 해청연의 예상 안쪽이었다.

그래서 비사영은 미리 자신의 피를 받아 유인할 준비를 해 놨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삭무흔과 음영대 사 조원들은 초장부터 틀어진 계획에 잠시 혼란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삭무흔은 잠시 고민했다.

마인들로 혼란시키겠다는 계획이 좌절된 이상 그대로 강행할 경우 목표 이외의 사상자가 생길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는지 그대로 강행해야 하는지를 아주 잠깐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크아아악!”

갑작스럽게 들려온 비명 소리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설풍이었다.

맹호조의 네 발톱을 꺼내 든 설풍이 어느새 덮쳐 와 매복해 있던 조원의 몸을 꿰뚫었던 것이다.

삭무흔이 상황을 깨달았을 땐 이미 두 명째의 몸이 꿰뚫리는 중이었다.

푸욱!

“으아아아아악!”

불현듯 깨닫게 된 사실에 삭무흔은 경악했다.

매복을 알고 있었어?!

우리가 습격할 거라는 것도?!

대체 어떻게?!

상황을 깨달은 삭무흔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일 호! 이 호! 저자를 맡아라!”

그러곤 자신 또한 빛살처럼 뛰쳐나갔다.

파박!

목표는 저들의 맨 뒤에 있는 앞머리를 내려 얼굴을 가린 여인이었다.

절정 고수인 일 호와 이 호가 각각의 검과 도에서 강기를 뿜어내며 조원들을 학살하고 있던 설풍과 부딪쳤다.

“하아압!”

“타앗!”

“흥!”

콰콰콰쾅!

하지만 기습의 효과는 전혀 없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 호, 이 호의 공격을 막아 내는 모습을 보니 이번 일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모양이었다.

최대한 서둘러 일을 끝내고 빠져야만 했다.

삭무흔이 그들의 머리 위를 순식간에 뛰어넘어 목표를 향해 날아갈 때였다.

설풍이 문득 소리쳤다.

“삼 번!”

삼 번?

삭무흔은 목표를 덮쳐 가면서도 그 말뜻에 대해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다음 순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설풍이 삼 번이라고 외치자마자 해청연은 바로 뒤돌아 몸을 날려 도망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삼 번은 상대의 무위가 심상치 않을 때 해청연이 도주해 시간을 끌기로 한 작전이었다.

“놓치지 않는다!”

이를 악문 삭무흔은 바로 그녀의 뒤를 쫓았다.

제법 머리를 쓴 것 같지만 어쩌면 이게 더 날 수도 있었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동료들과 떨어져 주면 오히려 처리하기가 더 깔끔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이 생각은 일류 최상급에 불과한 그녀를 칠십 년 이상의 내공을 지닌 자신이 쫓아가지 못할 리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해청연의 동료인 잘생긴 청년 한 명이 소리쳤다.

“나 소저! 적이 쫓아가오! 조심하시오!”

나 소저라고?

그의 말에 삭무흔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앞머리로 얼굴을 가린 그녀가 목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얘긴가?

하지만 그가 혼란을 느끼고 다시 한번 다른 여인들 쪽을 살펴봤을 때, 청년의 옆에 있던 여인 한 명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보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청년은 예리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고 말이다.

속았구나!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돌아보니 목표로 보이는 여인은 벌써 저만치 멀어진 후였다.

“이런!”

이를 갈며 다시 몸을 날릴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진! 쫓아가라! 최소 칠십 년 이상이다!”

하지만 조장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몸을 날리던 중이었다. 청연 소저를 쫓는 적의 속도가 심상치 않아 보였던 것이다.

함정을 깔아 놓기는 했는데 저 정도 속도라면 함정까지 가기 전에 청연 소저가 먼저 따라잡힐 것 같았다.

내공 칠십 년 이상의 절정 고수란 말이지….

정면으로 맞붙었다간 순식간에 토막 나겠지?

나는 바로 대응 방법을 결정하고는 행동을 개시했다.

“하압!”

퓨슈슈슉!

그의 뒤를 향해 암기를 뿌렸다.

그러자 그가 뒤를 힐끗 보더니 나무를 박차고 방향을 살짝 바꿔 암기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타닥!

역시.

조심성이 있는 자였다.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텐데 막기보단 피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훌륭한 자세였지만 지금의 내겐 고마운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다시 암기를 뿌렸다.

퓨슈슈슉!

그가 다시 방향을 틀어 암기를 피했다.

사나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는 것이 무척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일부러 청연 소저 쪽으로 치우쳐 던진 암기에 추격을 늦출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좀 귀찮지?

그러니까 한 번 더!

나는 몇 번 더 그의 주변으로 암기를 던져 발걸음을 늦추게 하는 데 집중했다.

이른바 주변에서 왱왱거려서 귀찮게 만드는 모기 전법이었다.

그러자 놈이 드디어 나부터 처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확 방향을 틀어 나를 덮쳐 왔다.

놈의 검에서 푸른 검강이 번쩍이고 있었다.

내공 칠십 년 이상의 절정 고수가 진심으로 덮쳐 오는 느낌이라니, 매우 살벌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달아날 준비라면 아까부터 하던 중이었으니까.

“하압!”

파박!

기합을 지른 나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우리 조의 신법 순위는 설풍 조장, 비사영이 동급이고 그다음이 바로 나였다.

아무리 절정의 고수라 해도 진심으로 도망치는 나를 잡을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내 별호가 바로 비천흑랑이었으니까.

그는 바로 빛살처럼 도망치는 내게 어이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고는 바로 몸을 돌리려 했다.

그 역시 진심으로 나를 상대하기보다는 위협해 쫓아내기만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쩐다.

내가 보내 줄 생각이 전혀 없거든.

그래서 신형을 멈춘 채 그를 붙잡을 마법의 단어를 뱉어 냈다.

“무림맹.”

그러자 몸을 날리려던 그가 흠칫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애써 침착한 척하고는 있었지만 행동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 순간부터 이미 모른 척하기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한마디를 더 던져 줬다.

“비위도 좋군. 맹의 무사가 이따위 더러운 일이나 하고 있다니 말이야.”

그러자 그의 눈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저자의 생각이야 뻔했다.

기밀을 들켰으니 살인멸구 해야겠다는 생각이겠지.

어디까지, 누가 더 알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고 말이다.

파박!

그가 비호처럼 내게 뛰어들 때 대비하고 있던 나 역시 바로 몸을 날렸다.

다시 추격전이었다.

퓨슈슉!

이번엔 그가 내게 암기를 던지며 추격해 왔다.

아까와는 역할이 뒤바뀐 상태였다.

그리고 상황이 뒤바뀌자 나는 방금 전 그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암기를 피하며 도주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쉬이익! 쉬이익!

간신히 피했다.

날아든 암기가 옷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무척 섬뜩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신법 자체는 내가 그보다 조금 더 위였다.

하지만 칠십 년 이상의 내공을 자랑하는 절정 고수의 암기는 그 신법 차이를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쉬이익! 쉬이익!

‘윽!’

암기가 벌써 몇 번이나 내 옷깃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건지 셀 수도 없었다.

아직 몸에 적중된 게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 자신을 칭찬해 줄 만할 정도였다.

언제 내 몸을 관통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등골은 이젠 서늘하다 못해 추워진 상태였다.

그나마 조장을 따라 감각 훈련을 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렇게 도망치지도 못했을 것 같았다.

요즘 내 감각은 조장만큼은 아니어도 웬만한 짐승들만큼은 예리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정 고수가 날리는 암기를 피하며 도주하다 보니 순간순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샤아악!

‘크윽!’

심지어 암기를 회피하며 도망치다 보니 놈과의 거리도 점점 더 좁혀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질수록 암기의 정확도도 점점 더 높아졌고 말이다.

기가 막힌 악순환이었다.

‘이런 젠장!’

문득 이렇게 도망치다 암기에 맞느니 차라리 멈춰서 싸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유혹이 솟구쳤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 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나는 원하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적을 상대하기 위해 함정을 깔아 놓은 곳이었다.

‘됐다!’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른 나는, 몸을 날리며 나무 뒤에 숨겨져 있던 줄을 베어 냈다.

샤악!

팽팽하게 당겨졌던 줄이 끊어지자, 숨겨 놨던 수십 개의 화살이 내 뒤를 따라오던 그를 향해 한꺼번에 발사됐다.

푸슈슈슈슈슈슉!

“음?!”

소나기처럼 덮쳐 가는 화살들에 그는 당황한 경호성을 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놨던 기관이었는데, 역시 내공 칠십 년 이상의 절정 고수는 만만치가 않았다.

잠시 당황하는 것 같던 그가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쳐내 버렸던 것이다.

슈하아아악!

타다다다다다당!

한순간 그의 검이 허공에 푸른 벽을 만들어 낸 것만 같았다.

말로만 듣던 검막인 모양이었다.

과연 어마어마한 고수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큰 걸 바란 건 아니었거든!’

나 역시 이 함정으로 그를 죽일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진짜 원한 것은 그의 이목을 한순간 돌리는 것뿐이었으니까.

화살을 쳐낸 그가 당황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 짧은 사이 내 종적을 놓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무 그림자 뒤에 은신해 있던 나는, 전선에서 마인들을 상대로 단련한 은신술로 모습을 감추고는 눈이 아닌 다른 감각들로 그의 움직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곤 미리 준비해서 나무 뒤에 비치해 놨던 자루들의 입구를 내 양쪽으로 열어 줬다. 그러자 그 안에서 수십 마리의 뱀들이 스르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뱀들은 나오자마자 내 몸에서 나는 향이 싫은 듯 서둘러 내게서 멀어져 갔다.

다캄에게 얻은 비법으로 만든 향낭의 효과는 역시 확실했다.

‘자, 이제부터 이 차전이다.’

이 차전은 은신술을 이용한 대결.

살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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