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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42화 (42/359)

42화 음영대-3

삭무흔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은신술로 자신에게 대항하겠단 말인가?

무려 구 년간을 음지에서 활동해 온 자신에게?

삭무흔이 음영대에 들어와 좋았던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 전까진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최고의 무공들을 무림맹에서 아낌없이 퍼 줬다는 것이었다.

내공심법, 검법, 신법은 물론 은신술 또한 마찬가지.

그가 익힌 살수비기는 전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살수였던 편복혈살 조우손의 비기였다.

근데 그걸 익힌 자신의 앞에서 감히 은신술로 대항해 오다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삭무흔은 녹아내리듯 그림자 속으로 형체를 감췄다.

감히 자신에게 은신술로 싸움을 걸어온 놈에게 진짜가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상대의 위치를 가늠해 보던 삭무흔은 상대의 기척을 전혀 잡을 수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뱀이나 동물 같은 것들의 기척은 느껴지지만 어디에도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놈 또한 살수 출신이었던 모양이었다.

삭무흔은 더욱 몸을 은밀하게 움직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싸움이 좀 길어질 것 같군. 그녀는 결국 놓친 건가?’

삭무흔이 선우진의 출신을 착각하는 동안, 선우진은 처음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중이었다.

선우진이 삭무흔에게 감지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익힌 살수비기가 백 년 전 손꼽히는 살수였던 무영살의 천살비기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비사영에게 배운 비종문 천풍신법의 오의가 바람과 동화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절정의 고수인 데다 전문적인 살수로서 활동해 왔던 삭무흔보다 은신술이 뛰어날 수는 없었다.

경험과 경지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걸 잘 아는 선우진은 그를 찾아다니는 삭무흔과는 달리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물론 그건 절대로 현명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삭무흔의 위치를 찾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러다 삭무흔에게 발각되는 순간 승부가 끝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선우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발견하지 않아도 다른 것들이 발견해 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부탁한다, 예쁜이들아.’

한동안 삼채시사를 키워 온 선우진은 알고 있었다.

특정한 종류의 뱀들에게는 은신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상하게도 뱀들은 빛이 있든 없든 사람이나 동물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곤 했던 것이다.

그게 생명체의 체온을 감지하기 때문이라는 것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독림까지 가서 잔뜩 잡아 온 삼채시사들이 이제 상대방을 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쉬이익!

“!”

삭무흔은 갑자기 암기처럼 날아든 뱀들의 습격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은신술을 펼치고 있을 때는 급작스러운 움직임이 힘들었기에 하마터면 뱀들에게 물릴 뻔했던 것이다.

그는 간신히 은신을 풀고는 몸을 날려 뱀의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뱀들이 사방에서 몸을 날려 그를 덮치기 시작했다.

쉬이익! 쉬이익!

“칫!”

삭무흔은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뱀들을 두 동강 냈다.

슈아악!

“쉬이익!”

“시이익!”

살수로서의 은신술 싸움에선 아무래도 자신이 패한 모양이었다. 자신은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상대는 자신을 드러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은신술에서 패했다고 싸움에서 패한 것은 아니었다.

삭무흔은 정신을 칼날같이 가다듬었다.

적이 살수가 맞다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아마 분명히 이 시점에 습격해 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날아드는 뱀들 속에 섞여 있는 암기의 파공성을 잡아낼 수 있었다.

“잡았다!”

삭무흔은 암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같은 수준이라면 모를까 아직 절정도 안 된 상대가 날리는 암기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까는 상대가 던진 암기들을 피하는 것으로 대응하던 자신이 어느새 날아오는 것을 모두 검으로 쳐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슈하악!

채챙! 채채챙!

빛살처럼 몸을 날리며 상대가 던진 암기들을 모두 검으로 베어 냈을 때, 삭무흔은 문득 그중에 이상한 가죽 주머니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써엉!

“!?”

그의 검이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베어 버리고 그것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러자 그 안에서 수십 마리의 벌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푸스스슥!

“윽?!”

완전히 허를 찌른 한 수였다.

전력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기에 피할 새도 없었다.

이미 거리 또한 너무 가까워진 상태, 삭무흔은 그저 눈을 질끈 감고는 몸을 팽 회전시켜 쏟아지는 벌레들을 튕겨 내야만 했다.

투두두둑!

얼굴 여기저기에서 따끔한 통증들이 느껴졌다.

삭무흔은 서둘러 얼굴을 털어 벌레들을 떨쳐 내야 했다.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적을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황급히 땅에 착지해서는 바로 얼굴과 몸을 털어 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바라본 그의 손에는 여전히 몇 마리의 벌레들이 이빨이나 꼬리를 박은 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독충이었다.

선우진이 독림에 가서 잡아 왔던 독충으로 암기를 만들었던 것이었다.

삭무흔은 꿀꺽 침을 삼켰다.

이제까지는 임무를 완수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였는데, 어느새 자신의 생명이 걸린 문제가 되어 가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통증이 시시각각 얼굴 전체로 얼얼하게 퍼져 갔다.

쉬이익!

심지어 뱀 또한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그는 이제 차마 그것을 베지 못하고 몸을 날려 피하기 시작했다.

언제 또 뱀 속에 무엇이 섞여서 날아올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몸을 움직이면 독 기운이 더 빨리 퍼지게 된다는 것을.

내공으로 독 기운을 억누르려고 해도 워낙 많은 부위를 물려 버린 상태였다.

여기서 독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혈행을 제한한다면 움직이지도 못하게 될 것이었다.

사면초가였다.

삭무흔은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해독약을 먹던가 운기조식에 들어가야만 하는데….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적과 뱀을 먼저 처리해야만 했다.

결국 삭무흔은 날아드는 뱀들을 다시 검으로 베어 버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뱀들을 모두 죽여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뱀들 사이로 날아드는 몇 개의 가죽 주머니를 또 베어야 했다.

파스스슥!

“으윽!”

이번엔 그나마 대비를 했기에 벌레에 뒤덮이기 전에 몸을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던진 방향을 습격하는 건 불가능했다.

시야가 희미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시야가 희미해지는 이유가 시력을 잃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눈꺼풀이 부어서 눈을 덮었기 때문인지도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얼굴 전체가 얼얼했다.

삭무흔은 이제 한계가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전히 시력이 사라지기 전에, 그리고 독이 온몸에 퍼지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막 몸을 날리려 할 때였다.

갑자기 선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알고 있어?”

황급히 목소리가 들린 쪽을 경계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로 놈의 위치가 보였다.

나무 위, 거리는 가깝지 않았다.

바로 몸을 날려 봐야 놈의 신법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이 맹에서 왔다는 걸 또 누가 알고 있을까? 나 혼자일까? 아니면 내 조원들? 그것도 아니라면 너에게 우리 근무 상황을 알려 준 부대주?”

그의 말에 삭무흔의 뒷목이 서늘해졌다.

부대주를 만났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니, 설마 그 부대주가 진짜 배후였단 말인가?

그럼 그때의 무능해 보이던 모습은 다 연기였던 거고?

쉬이익!

그사이 날아든 뱀 한 마리를 급히 베었다.

샤악!

그때 선우진의 목소리가 갑자기 다른 위치에서 들려왔다.

“난 정말 궁금해. 대체 어떤 마음을 먹으면 자신의 삶을 희생해 전선에서 혈교를 막고 있는 근무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소름이 끼쳤다.

지금 자신의 감각이 그의 이동을 감지하지도 못할 만큼 둔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정면으로 대결해도 이기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지금 끝을 내야만 했다.

“또 얼마나 생각이 없는 놈이면 그 명령에 그대로 따를 수가 있지? 안 그래? 대체 너희가 혈교의 마인들과 다른 점이 뭐야? 마인들은 사람만 먹지만 너희는 다른 것도 먹는다는 건가?”

놈은 말을 하며 계속해서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한 번, 단 한 번의 순간만 포착하면 될 텐데.

그 순간, 또 뱀 한 마리가 날아왔다.

그리고 그 뱀은 삭무흔의 다리를 꽉 물어 버렸다.

“으윽!”

신음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삭무흔은 완전히 허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삭무흔의 정신은 지금 칼날처럼 벼려진 상태였다.

사실 뱀이 문 다리는 바지 안쪽에 두꺼운 가죽을 댄 곳, 허점을 드러내기 위해 뱀이 무는 것을 일부러 방치했던 것이다.

그러곤 놈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많이도 필요 없었다.

딱 삼 장 안으로만 접근해 준다면….

그때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끝인가?”

그러곤 놈이 드디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금 가장 멀쩡한 감각인 귀로 거리를 가늠해 봤다.

오 장.

사 장.

그리고 삼 장!

파앙!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그러곤 놈의 가슴에 필사의 찌르기를 꽂아 넣었다.

푸른 검강이 창처럼 곧게 뻗어서는 놈의 가슴 안쪽을 관통해 나가는 것이 희미한 눈에 보이고 있었다.

푸욱!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삭무흔의 착각일 뿐이었다.

삭무흔이 찌른 것은 선우진의 잔상, 어느새 찌르기를 흘려 내며 옆으로 이동한 선우진의 검 묵랑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샤악!

선우진은 앞서 그의 신법을 봤을 때 이미 삼 장 정도의 거리에서 온 힘을 다한 찌르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삼 장 안으로 들어가는 척하며 천풍보법을 전개해 바람에 날린 꽃잎처럼 그의 찌르기를 부드럽게 흘려 냈던 것이었다.

제아무리 절정 고수의 공격이라 해도 완벽히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던 상대에게는, 더군다나 선우진과 같은 신법의 고수에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선우진은 그의 목을 망설임 없이 내리쳤다.

절정 고수라 해도 이제는 끝이었다.

상대의 퉁퉁 부은 눈에는 이제 자신이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선우진의 검은 끝까지 휘둘러지지 못했다.

채앵!

“잠시 기다려 주겠나?”

갑자기 나타난 청의 중년인 한 명이 자신의 검으로 선우진의 검을 막아 냈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은 마치 공간에서 갑자기 나타난 듯한 그의 신형에 경악하고 말았다.

하지만 바로 이를 악물었다.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바로 검을 위로 올려 그를 공격하려 했다.

“?!”

하지만 그게 되지 않았다.

묵랑검이 중년인의 검에 딱 달라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흡자결인 모양이었다.

대체 얼마만큼의 고수인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 중년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 공자, 저희 아버지세요.”

깜짝 놀라 바라보니 해청연이 그의 뒤에 서서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선우진이 멍하니 그녀를 보며 물었다.

“…아버지시라고요?”

다시 청의 중년인을 바라보자 그 역시 선우진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웃고 있었다.

***

해청연은 사실 휴가 기간에 이미 자신의 아버지께 편지를 부친 상태였다.

심지어 그 편지엔 제갈지강에게 맡긴 편지와는 다르게 이런 내용도 들어 있었다.

편지를 제갈지강에게 전달해 달라고 할 것인데 만약 그가 전달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무림맹이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해청연이 제갈지강을 떠보기 위해 추진한 일이었던 것이다.

또한 해청연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선으로 와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만약 자신과 조원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경우 아버지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혈마와 정면 대결을 벌인다든가 하는 일만 아니라면 어떤 위험한 일이든 아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동료들에게 아버지에 관한 것을 말하지 않았고, 아버지에게도 위험해지기 전까진 근처에서 지켜봐 달라고만 부탁했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일을 아버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해결하게 된 지금, 해청연은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보셨어요?”

그러자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훌륭하더구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

뭐가 훌륭한지, 뭐가 충분한 건지 주어가 빠져 있는 얘기였다.

***

마유겸은 며칠을 고민하다 마침내 혈마가 남겨 놓은 상자를 다시 열었다.

상자 안에 있는 것은 영약과 독단, 그리고 얇은 비급이었다.

그는 사실 이걸 받았던 첫날 이미 상자를 열어 봤었다.

하지만 차마 영약을 먹거나 비급을 펼쳐 볼 수 없어서 다시 닫았던 것을 며칠이 지난 지금 다시 열어 봤던 것이었다.

영약을 손에 들고 잠시 바라보던 그는 이내 비급을 펼쳐 보았다.

그저 약간만 훑어보고 다시 덮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비급을 펼친 그는 그것을 다시 덮을 수가 없었다.

안에 있는 내용에서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급에는 혈교의 무공이 쓰여 있지는 않았다.

거기 쓰인 것은 모두 혈마가 직접 선별해 적었다는 잡술에 관한 것들이었다.

혈교의 무공이 아니라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던 마유겸은 계속해서 그 내용을 읽어 갔다.

익히지만 않으면 상관없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비급에 쓰인 첫 내용은 내공이 정순하지 않을 때 독단을 이용해 주화입마를 피하는 방법, 선우진 일행이 석경달 노인에게서 들었던 바로 그 내용이었다.

마유겸 역시 그간 궁금해했었다.

대부분의 내공을 흡정을 통해 얻음에도 불구하고 혈교도들이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은 이유를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 집중해서 비급을 읽게 되고야 말았다.

그러곤 상자에 동봉된 독단을 확인했다.

두 번째 내용은 흡정공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람의 정기를 흡수해 내공을 높이는 방법.

세인들이 생각하는 혈교의 상징과도 같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거기 적혀 있는 흡정공은 생각 외로 전설의 흡성 대법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손바닥을 댄 것만으로 상대의 내공을 흡수한다든가 하는 방법은 적혀 있지 않았고, 그저 여인과 성교 중에 사용하거나 상대방의 피를 빠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마유겸은 자기도 모르게 그 내용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점창파의 몰락 이후 영약을 지원받지 못해 내공을 쌓는 데 고민이 많았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적혀 있는 것은 더욱 눈길이 갔다.

그것은 암시법이었다.

섭혼술처럼 상대를 조종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에게 강력한 암시를 남겨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그런 방법 말이다.

이 방법은 섭혼술과 달리 그 대상이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유용해 보이기도 했다.

마유겸은 자기도 모르게 이것의 사용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만약 사군일에게 이걸로 암시를 걸 수 있다면 사군일이 스스로의 의지로 점창파를 부활시키겠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던 마유겸은 이내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리고 아무리 이게 혈교의 무공이 아니라지만 자신이 이걸 사용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또한 주의 사항을 읽어 보니 기술의 경지가 낮은 상태로는 대상의 마음이 열려 있거나 아니면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있을 때에야 성공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 사군일에게는 어차피 통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러다 퍼뜩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이걸 그녀에게 쓸 수 있다면….

그러곤 다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말이다.

확실한 건 아마도 점창파의 부활에 매진하던 예전의 자신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요즘 습관이 되어 버린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마유겸은 공허한 눈빛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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