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당가검봉-1
삼 조의 부조장 명사현의 하루는 늘 남들보다 일찍 시작되곤 했다.
먼저 일어나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뜨거운 차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펄펄 끓인 물이 입에 댈 수도 없을 만큼 뜨거웠지만 상관없었다.
그녀가 일어나 아침 수련을 시작할 때쯤에는 알맞게 식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차와 간식을 준비해 작은 쟁반에 담은 그는 만족스럽게 웃음 지으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완벽하군. 마치 나처럼 말이야.”
명사현에겐 그렇게 차와 약간의 간식을 준비해 당여은의 수련 장소에 가져다 놓는 것이 매일같이 반복된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아직 그녀에게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걸 거부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이라는 걸.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믿고 있었다.
그녀의 얼어붙은 마음이 언젠간 따뜻한 차에 녹아내리게 될 것이라고.
그게 언제인지도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몇 년 정도 기다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가 오늘도 그녀의 수련 장소에 미리 차와 간식거리를 가져다 놓고 다시 숙소로 들어왔을 때였다.
남자 조원 한 명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부조장, 오 조의 도희영 소저를 알고 있소?”
“응? 오 조의 도희영 소저라면 그 수줍음 많은 귀여운 소저 말인가? 알긴 하지.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 근데 그건 왜 묻는 건가?”
그러자 그 조원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명사현에게 쪽지를 건네줬다.
“그 도희영 소저가 부조장에게 이걸 전해 달라고 하지 뭐요. 부끄러운지 이것만 전해 달라고 하고는 바로 도망치듯 가 버렸소.”
“응?”
의아한 눈으로 쪽지를 열어 읽어 본 명사현은 곧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쪽지에는 그간 그를 계속 연모해 왔다며 서쪽 숲 쪽으로 좀 나와 달라는 얘기가 적혀 있었다.
“뭐라고 하오? 설마 사모하고 있다는 고백이라도 적은 거요?”
“왜 아니겠나? 이것 참, 곤란하군.”
그 말에 조원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놀렸다.
“오오오! 뭐요, 부조장. 설마 조장을 배신하기로 한 거요?”
“그럴 리가 있겠나? 내 매력에 빠져 버린 도 소저에겐 미안하지만 되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잘 얘기해 봐야지.”
그렇게 말하며 명사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엔 그가 당여은을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접근하는 여인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오로지 한 여인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라는 것이 소문난 후 한동안 없던 일이었는데….
오랜만에 이런 고백을 받아 보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거절당해야 할 도 소저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말이다.
***
십삼대 삼 조의 조장 당가검봉 당여은은 간단히 씻고는 아침 수련을 하기 위해 수련장으로 갔다.
그리고 수련장에서 늘 그렇듯 쟁반에 소박하게 담긴 차와 간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적당하게 따뜻해진 차와 수련에 부담을 주지 않을 만큼 소담하게 담긴 간식을 먹으며 당여은은 마음속으로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렇듯 진심을 담아 한결같이 마음을 전해 줘서 고맙다고, 가족에게서조차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던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너 같은 년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이 말은 당여은이 자라며 그녀의 모친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였다.
그녀가 아무리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고, 무공에 뛰어난 성취를 보여도 어머니는 그녀에게 증오스러운 눈빛과 말을 퍼붓는 것을 멈추지 않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모든 게 다 그녀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불행해져 버린 모든 원인이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천당문의 현 가주인 당정후의 셋째 부인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욕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비록 셋째 부인이지만 그녀에겐 야망이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당가의 가주로 만들고 말겠다는….
또한 그녀에겐 그럴 능력도 있었다.
그녀의 본가는 사천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이었고, 그녀 자신의 미모와 능력 또한 출중했으니까.
그래서 아들이 생긴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반드시 그 아이를 당가의 가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까지는 그 배경과 미모와 능력으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당가주와 혼인을 하고 빼어난 미모 덕분에 다른 부인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받았음에도, 그녀에겐 어쩐 일인지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를 진찰한 의원들은 모두 신체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다른 부인들이 아이를 갖는 것을 보건대 당가주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이 그녀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의원들은 모두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만 충고했다.
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좋은 약들을 모두 구해서 먹고,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부적을 써 보기도 했으며, 민간요법을 써 보기도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봤다.
하지만 결국 오 년이 지나도록 그녀는 아이를 갖지 못했다.
그사이 다른 부인들의 아이들은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보다 후에 들어온 부인도 아이를 가졌고 말이다.
남편인 당가주는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잘 대해 주려 노력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하는 데다 집착만 점점 심해지는 그녀에게 점점 질려 버리게 되고 말았다.
그러던 그녀에게 갑자기 아이가 생긴 건 혼인한 지 육 년째가 되었을 때였다.
갑자기 아이가 생기게 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좋다는 것은 다 해 봤기 때문에 뭐가 효과를 봤는지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다른 방법 때문이 아니라 드디어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상관없었다.
그것이 점점 포기해 가던 그녀를 회생시켜 줬으니까.
더군다나 진찰한 의원들은 모두가 이렇게 얘기했다.
배 속에 두 명의 아이가 들어 있다고.
아이는 쌍둥이였다.
이제 그녀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였다.
두 아이가, 아니 두 아이 중 하나만이라도 사내아이로 태어나는 것.
그러기만 해 준다면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아이를 차기 가주로 만들어 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그녀는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이루어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어난 아이는 사내아이와 여자아이의 이란성 쌍둥이였으니까.
다만, 사내아이가 죽어서 태어났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간신히 얻게 된 기회가 어이없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꿈이 이루어지기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좌절되고 말았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격분했다.
오히려 아이가 없었을 때보다도 더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절망을 이제 막 태어난 어린 딸에게로 돌렸다.
처음 품에 안게 된 어린 딸을 집어 던지려던 것을 옆에서 간신히 막아 낸 당가주는 엄마와 딸을 격리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무척 잘한 일이었다.
그녀는 호시탐탐 자신의 딸에게 증오를 퍼부으며 죽이려고 들었으니까.
그러곤 빨리 다시 새로운 아이를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 질릴 대로 질려 버린 당가주는 더 이상 그녀에게 아이를 가질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차기 당가주의 어머니가 되겠다던 그녀의 야망은 완전히 끝나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증오밖에 없었다.
자신이 못 가진 아들을 가진 다른 부인들과 그 아들들, 이제 자신을 찾지 않는 남편과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믿고 있는 딸에 대한 증오를.
그래서 당여은의 유년기는 자신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가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딸이 건강한 마음으로 자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당여은은 늘 착하고 뛰어난 아이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한 채 잊혀 버릴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관심을 받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이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받는 그 애정들을 그녀도 받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건 그녀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밖에서 볼 때 모두가 한 핏줄인 가족들로 이루어진 당가는 사실 어느 곳보다도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였으니까.
당여은이 암기술과 독술을 포기하고 검에 집중한 이유 또한,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암기를 던지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후련해진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암기나 독으로 뛰어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날 전선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이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계라는 간판을 가진 동시에 방계보다도 못한 위상을 가진, 생색을 내며 버리기 가장 좋은 말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전선에 가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계속 살아갈 이유도 없었다.
또한 자신이 계속 살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전선에 왔던 그녀의 삶은, 그 전과는 백팔십도 달라지고 말았다.
자신의 얼굴이 꽤 예쁘다는 것이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과거 사천제일미라고 불렸던 그녀의 어머니를 닮았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를 닮은 외모를 이제껏 한 번도 감사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동경을 볼 때마다 보이는 얼굴이 자신을 저주하고 있는 것만 같아 괴로울 뿐이었다.
그랬었다.
그랬었는데, 전선에 와 보니 모두가 그녀의 외모를 칭찬하고 선망하고 있었다.
당가에선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반응이었다.
검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선에 오기 전 이미 절정의 경지에 올랐었지만 가주인 아버지께 형식적인 칭찬을 받은 적이 있을 뿐 아무도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었다.
사천당문에선 암기술과 독술이 아닌 것은 평가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검술이 뛰어난 무사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외부에서 고용된 무사들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달랐다.
이곳은 무엇을 익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익혔느냐, 그래서 얼마나 마인들을 더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했다.
그러니 이십 대에 벌써 절정에 달한 그녀는 당연히 최고의 검사로서 존중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그녀에겐 너무나 낯설었다.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을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려웠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될까 봐,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하는, 증오받아야 마땅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될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바라보는 모습 그대로의 강하고 냉연한 당가검봉의 모습을 연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랬었다.
그랬었는데….
매일 아침 수련장에 놓인 따뜻한 차를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게 됐다.
혹시 이 사람은 당가검봉이 아니라 당여은, 증오받아 마땅한 그 여자아이를 정말 사랑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말이다.
차의 온기를 마음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믿어 보고 싶었다.
세상에 진심으로 그녀 자체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있다고….
그래서 오늘도 명사현을 생각하며 차를 마시던 당여은은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제 한 번쯤은, 직접 그에게 고맙다고, 늘 고마워하고 있다고 얘기를 해 줘도 괜찮지 않을까?’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야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몇 년간 변함없이 자신을 바라봐 준 그 사람에게라면 용기를 좀 내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수련을 마친 그녀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며 결심했다.
이번에도 역시 다짐뿐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 보겠다고.
그에게 말해 보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숙소로 걸어가던 당여은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명사현이 굳은 얼굴로 숙소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부, 부조장?”
직접 그에게 말해 주겠다고 다짐하긴 했지만 이건 너무 빠르지 않은가.
입이 턱 막힌 듯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때 명사현이 평소와 다르게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조장, 할 얘기가 있소. 나와 같이 좀 갑시다.”
당황한 그녀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그, 그래.”
명사현은 당여은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려는 모양이었다.
당여은의 가슴이 점점 더 쿵쾅거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그에게 말을 해 주기에도 역시 사람들이 없는 곳이 나을 것 같긴 했다.
평소와 같지 않은 명사현이 좀 이상하지만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어쩌면, 오늘 그가 내게….
그리고 그를 따라 점점 더 숲속으로 들어갈 때였다.
앞서서 가던 명사현이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당황한 당여은이 물었다.
“왜, 왜? 부조장, 왜 여기서…?!”
하지만 명사현의 얼굴을 본 당여은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안… 돼. 조장, 나를 따라오면….”
“응? 부조장, 왜 그래? 왜?”
그러자 다시 순식간에 무표정해진 얼굴의 명사현이 딱딱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오. 나와 같이 갑시다, 조장.”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당여은은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너무도 끔찍한,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올리고 말았던 것이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부조장?”
하지만 그는 여전히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어서 갑시다. 나와 갈 곳이 있소.”
당여은의 눈에서 문득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그녀가 알고 있던 명사현이 아니었다.
그녀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안 돼. 아니지? 이건 아니야. 사현, 제발.”
그러자 명사현이 거칠게 당여은의 팔을 움켜잡으며 기계적으로 말했다.
“어서 갑시다. 나와 갈 곳이 있소.”
당여은은 망연한 얼굴로 멍하니 고개를 내저었다.
당여은이 아는 명사현은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도 자신의 용무만을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이런 식으로 자신을 거칠 게 대할 사람도 아니었다.
당여은은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그가… 명사현이 아니라는 것을….
명사현이 섭혼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당여은은 이제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며 악을 썼다.
“사현! 정신 차려! 안 돼! 돌아올 수 있어! 돌아올 수 있어! 어서 정신 차려!”
그러자 명사현의 얼굴이 다시 괴롭게 일그러졌다.
고통스러운 얼굴과 간절한 눈빛.
그가 힘겹게 말했다.
“나를… 죽여 줘…. 당신을 해치기 전에….”
몸에서 힘이 쭉 풀렸다.
그를 죽이라니.
이제야 간신히 누군가를 믿어 볼 수 있게 됐는데.
이제는 그가 없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게 됐는데.
그런 자신보고 그를 죽이라니.
심장이 뜯겨 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당여은은 마침내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돼! 그러지 마! 그런 말 하지 마. 내 옆에서 떠나려 하지 마, 제발!”
그러자 일그러진 얼굴의 명사현이 괴성을 지르며 검을 뽑아 들었다.
“으아아아아악!”
챵!
“사현!”
명사현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검을 쳐들었음에도 당여은은 방어를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차마 검을 겨눌 수도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울며 그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사현! 사현!”
그러자 역수로 검을 쳐들었던 명사현이 마침내 그것을 힘껏 내리찍었다.
푸욱!
“쿨럭!!”
당여은의 눈이 망연해졌다.
명사현의 검이, 그녀가 아닌 명사현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던 것이었다.
“사혀어언!”
비명처럼 그의 이름을 외친 당여은이 달려들어 힘없이 무너지는 그를 안았다.
“안 돼! 안 돼! 안 돼애애애!”
심장에 검이 박힌 채 그녀의 품에 안긴 명사현은 이제야 평소의 그처럼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그가 피에 젖은 손으로 그녀의 볼을 살며시 만지며 속삭였다.
“미안… 하오…. 사랑….”
그러곤 힘을 잃은 그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안 돼애애애애애애!”
명사현을 안은 채 절규하는 당여은을, 큰 소리를 듣고 달려왔던 십삼대원들은 주변에 멍하니 선 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쾌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전선의 많은 이에게 호감을 받았고, 당여은에게 있어선 삶에서 처음 찾아온 구원과도 같았던 남자 명사현은 이렇게 숨을 거뒀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공교롭게도 매여경의 시체가 발견된 것과 비슷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