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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47화 (47/359)

47화 당가검봉-3

해청연 소저의 일을 해결했지만 정작 원래 벌어질 것이라고 알고 있던 일을 막아 내지 못했다.

매여경 소저의 죽음도, 명사현의 죽음도….

너무도 화가 나고 실망스러웠다.

그간 잘해 오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고 믿어 왔었는데.

이 일들은 마치 내게 아무리 그래 봐야 소용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수색이 종료된 후에도 홀로 주귀의 흔적을 조사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내게 다가온 청연 소저가 말했다.

“마유겸 조장이 당여은 소저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가던데요?”

“예?”

“그 두 사람, 선우 공자가 신경 써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인 것 같아 말해 주려고요.”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신통방통한 소저가 아닐 수 없었다.

대체 말한 적도 없는 그걸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이쯤 되면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어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좀 고마웠다.

홀로 미래를 바꿔 보려 노력하고 있던 내게, 누군가 ‘내가 당신을 알아주고 있어요.’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웃으며 대답해 줬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아마 상처받은 두 사람이 드디어 서로 어울리게 되는 모양이었다.

지난 삶에서도 두 사람은 곧 교제하게 되었으니까 이번에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러고 나서도 지난 삶처럼 된다면 아마 당여은 소저의 삶이 불행해지긴 하겠지만, 남녀 간의 일에 딱히 내가 끼어들 명분은 없는 것 같았다.

그때 청연 소저가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확실치는 않은데….”

“예?”

“마 조장이 뭔가 환약을 먹는 걸 봤는데, 그게 석 어르신께서 주셨던 독단과 비슷해 보였어요. 물론 확실치는 않아요.”

“아, 그래요?”

그렇게 말하며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번개가 번쩍이듯 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혈마의 전음, 그 이후로 이상해져 나중에 혈교로 전향하기까지 하는 마유겸, 게다가 혈교의 독단과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주귀까지….

그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청연 소저에게 물었다.

“혹시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도 보셨습니까?”

“네, 동쪽 숲으로 가던데요? 가 보게요?”

“예, 좀 확인해 볼 것이 생겨서요.”

그러곤 바로 동쪽 숲으로 달려갔다.

동쪽 숲이란 말을 듣곤 바로 감이 왔다.

매여경 소저가 발견된 그곳이라는 걸.

그리고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던 나는 은신한 채 그들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따라 해라. ‘당여은은 마유겸의 것입니다.’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마유겸이 하려는 것이 섭혼술과 비슷한 무언가라는 것을, 그리고 지난 삶에서 당여은이 그렇게 마유겸에게 끌려다녔던 이유도 말이다.

급했다.

기습을 하려면 소리를 안 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저 일의 진행을 막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바로 소리를 지르며 암기를 던졌다.

“무슨 짓이냐?!”

하지만 역시 마유겸, 놈이 어렵지 않게 몸을 날려 내 암기를 피해 냈다.

그러곤 나를 확인한 놈의 얼굴이 광인처럼 일그러져서는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챵!

바로 검을 뽑아 든 그의 검에서 푸른 강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압!”

나를 덮쳐 오는 그를 피해 몸을 날리며 외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마 조장?! 색마 짓으로 모자라 이젠 살인멸구까지 하려는 거요?!”

그러자 놈이 잠시 움찔했다.

나는 일부러 놈이 섭혼술 같은 걸 쓰는 건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정신 차리시오, 마 조장! 매 소저를 잃어서 힘든 건 알겠지만 이렇게 망가지면 그녀도 슬퍼하지 않겠소?! 선을 넘기 전에 그만 정신 좀 차리시오!”

그러자 마유겸이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선을 넘기 전에 정신을 차리란 말은 내 진심이었다.

물론 정말 매여경 소저를 그가 죽인 것이라면 이미 선을 넘은 것이겠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할 수만 있다면 그를 되돌리고 싶었다.

“당 소저를 풀어 주고 사과한다면 나도 지금의 일을 못 본 것으로 하겠소! 어서 당 소저부터 풀어 주시오!”

그러자 마유겸은 문득 당 소저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땅에 쓰러진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까 그것 때문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유겸이 문득 지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검에서 강기를 풀며 내게 말했다.

“그래, 내가 못난 꼴을 보였군. 면목이 없네. 여경이 죽고 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군. 당 소저에겐 내가 사과하지. 다만 지금은 술이 많이 취했으니. 그녀를 옮기도록 도와줄 수 있겠는가?”

너무나도 처연한 표정이었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가 망가진 이유가 매 소저 때문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지금 당 소저가 술에 취해서 저러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돌아올 수 없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바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파박!

“마 조장이 혈교의 무공을 익혔다! 마 조장이 혈교로 전향했다!”

그러자 경악한 마유겸이 바로 몸을 날리며 나를 뒤쫓았다.

“이놈!”

힐끗 뒤돌아본 그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코웃음을 치며 속도를 높였다.

내공 칠십 년 이상의 삭무흔도 나를 따라잡지 못했는데 그가 나를 따라올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마유겸이 배신했다! 혈교의 무공을 익혔다!”

그렇게 외치며 날아가던 나는 거리가 벌어져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바로 나무 그늘에 몸을 은신했다.

그러자 바로 약간 후에 마유겸이 괴성을 지르며 나를 지나쳐 갔다.

“이노옴!”

이대로 십삼대로 도망치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당 소저를 그곳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야생 동물이나 마인은 물론 마음이 바뀐 마유겸이 다시 돌아와 그녀를 데리고 도망갈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가 전방으로 사라지자마자 바로 몸을 날려 당 소저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울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당여은은 마유겸의 것입니다. 당여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이미 섭혼술에 걸린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급히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소! 당여은은 당여은 자신의 것이오!”

그러자 멈칫한 그녀가 내 말을 따라 했다.

“당여은은… 당여은의 것?”

효과가 있었다.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황급히 다시 말했다.

“맞소! 당 소저는 당 소저 자신의 것이오! 누구의 것도 아니란 말이오!”

그녀가 멍하니 되뇌었다.

“나는 나의 것….”

하지만 그러던 그녀는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 죄송해요. 태어나서 죄송해요, 제가 살아서 죄송해요, 어머니.”

이게 무슨….

갑자기 횡설수설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뒤쪽 숲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유겸이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예상했던 대로 내 종적을 놓치자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급하게 그녀를 안아 들고는 몸을 날렸다.

마침 숲에서 뛰쳐나온 마유겸이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이놈! 멈춰라! 그녀를 돌려놔라!”

당 소저를 돌려 놓으라는 건 내가 할 소리거든!

속으로 외치며 몸을 날렸다.

다시 또 추격전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녀를 안은 채로, 은신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말이다.

이건 시작부터 불리한 추격전이었다.

차라리 그녀가 업힐 정신이라도 있다면 좀 나았을 텐데 안고 달리는 것은 자세가 너무 불편했던 것이다.

도저히 속도가 나질 않았다.

게다가 내 품에서 그녀가 계속 울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살 자격이 없어요.”

이게 마유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힘든 와중에 나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속삭여야 했다.

“아니오. 당 소저는 태어날 가치가 있소. 사랑받을 가치도 있고 말이오. 당신은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이오.”

하지만 이젠 그녀에게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채 흐느끼며 계속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제가 태어나서 죄송해요, 제가 살아서 죄송해요,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게다가 마유겸은 눈에서 불을 뿜을 듯한 얼굴로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선우지이이이인! 당장 거기서 멈춰라아아아!”

난감했고, 정신도 없었다.

근래 기억나는 대부분이 누군가에게서 도망쳤던 기억인 것 같았다.

흑상방에게서 도망치고, 무림맹의 살수에게서 도망치고, 이젠 마유겸에게서까지.

요즘 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망할 만큼 막막하진 않았다.

적어도 내 지난 삶만큼은 말이다.

마유겸과의 거리가 지금 당장 좁혀지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그와의 공력 차이가 있는 데다가 내가 더 무거우니 곧 좁혀질 확률이 높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은 당 소저에게 집중할 때였다.

달리며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무슨 얘기를 하면 당 소저를 돌려 놓을 수 있을까.

생각나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명사현.

당 소저를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했던 바로 그 남자.

명사현의 얘기를 듣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지난 삶의 기억까지 모두 되짚어 봐도 혈교에게 섭혼당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행동을 멈추거나 자결을 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설사 연인, 사제, 가족 관계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의지가 굳은 사람이기에, 대체 얼마나 깊은 사랑이기에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러니 만약 당 소저의 마음도 그와 같다면 분명히 되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 소저! 명사현, 명 부조장을 생각하시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그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말이오!”

그러자 진짜로 반응이 있었다.

그녀가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고 그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사현….”

“그래, 기억나시오? 명사현, 명 부조장은 남자인 내가 봐도 감탄할 만큼의 멋진 사람이었소. 그리고 당 소저는 그런 그가 사랑한 사람이오. 심지어 자신의 목숨도 버릴 수 있을 만큼 사랑했던,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말이오.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그를 믿으시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자신을 말이오.”

효과가 있었다.

그녀가 자학하는 것을 멈추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도 아까처럼 뭔가에 붙잡혀 있는 듯한 느낌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느낌이었다.

“사현, 사현….”

울고 있는 그녀의 귀에 계속해서 속삭여 주었다.

“괜찮소. 다 괜찮아질 거요. 당신은 가치가 있는 사람이오.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훌륭한 사람이오.”

계속해서 그렇게 한참을 속삭여 주자 그녀는 마침내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고 편안히 잠이 드는 듯했다.

드디어 한 가지를 해결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제 다음 문제만 해결하면 됐다.

“죽여 버리겠다, 선우지이이인!”

끈질기게 나를 뒤쫓고 있는 절정의 고수 마유겸과 점점 떨어져 가는 내 체력에 대한 문제였다.

둘을 다른 문제로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둘 중 좀 더 심각한 건 내 체력 문제였다.

당 소저에게 계속 말을 하며 도망치다 보니 체력이 너무 소모됐던 것이다.

원래 나는 독림 쪽으로 그를 유인할 생각이었다.

지난번 삭무흔과의 일전 때도 독물의 덕을 많이 보기도 했고, 피독향을 항상 소지하고 다니니 독림에만 들어가면 그를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속도로 독림까지 가려면 최소한 한 시진은 달려야 했다.

그리고 내겐 절대 그럴만한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더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녀를 버리고 도망치든, 아니면 절정 고수인 그와 맞서 싸우든.

문득 삭무흔과 싸웠던 함정을 다시 만들어 놓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당여은의 귀에 마지막으로 속삭여 주고는 도망치다 눈에 띈 평평한 바위에 그녀를 내려놨다.

그리고 뒤돌아보자 마유겸이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날아오며 내게 검을 날려 오고 있었다.

놈의 검날 위에서 푸른 검강이 지옥의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나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묵랑의 검파를 잡았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고!”

그러곤 놈에게로 뛰어나가며 벼락같이 발검했다.

슈하아악!

검집에서 뛰쳐나온 묵랑의 검날 위로 보랏빛 검강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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