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초일류 검법-2
어디서 어떻게 초일류 검법을 얻을 것인가에 관해 계속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러운 호출로 대주에게 다녀왔던 설풍 조장은 조원 모두를 모아놓고 얘기했다.
“이번에 우리 조가 파견을 가게 됐네.”
파견?
갑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말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네?”
“갑자기 파견이라니요?”
“어디로 말입니까?”
그러자 설풍 조장이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내용을 설명해 줬다.
“며칠 전 십이대에 변고가 있었다는군. 거력마 저웅원이 부하들을 이끌고 두 개 조를 몰살시킨 뒤 전선을 넘어갔다는 소식이야. 그래서 십이대주이신 증악도객 만종임 대협께서 추격을 위해 십일대와 십삼대에 파견을 요청하신 모양이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이 일이 지난 삶에서도 있었다는 걸 기억할 수 있었다.
내공 구십 년 이상으로 알려진 혈교의 마두 거력마 저웅원은 지난 정혈대전 때도 활약했던 꽤 유명한 고수였다. 그런데 그가 이때쯤 혈마에게서 벗어나 십일대와 충돌하고는 전선을 넘어 북상했던 것이다.
혈교도들이 혈마의 강력한 지배에 반발해 운남성을 떠나는 건 사실 꽤나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애초에 세상의 이목이나 규칙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던 혈교의 마두들이, 무림맹과 불가침 협정을 맺어 자신들을 운남성에만 처박혀 있게 만든 혈마를 따르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걸 혈마의 차도살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혈교도들을 무림맹의 손을 빌어서 처단하는 느낌?
지난 삶에서 나중에 운남성을 벗어나 세력을 뻗치기 시작하던 혈마를 생각해 보면 그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의견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 놈들을 추격하려던 파견자들이 무림맹의 복귀 명령에 소득 없이 돌아왔던 것도 기억이 났다.
다만 그때 파견을 나갔던 건 한교성 조장의 일 조였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우리 조가 나가게 된 모양이었다.
흠, 그렇다면?
문득 조장에게 물었다.
“우리 조가 십삼대 최고의 전력이라고 인정받은 모양이로군요.”
그러자 씨익 웃은 설풍 조장이 대답했다.
“뭐, 당연한 것 아니겠나. 전원이 일류의 경지에 들어선 유일한 조인 데다 조장급 인재만도 네 명이나 되니 말일세.”
그런 것이었다.
파견은 각 대의 가장 최정예들을 보내는 것이 관례, 우리 조가 일 조 대신 파견을 나간다는 건 십삼대의 최정예라고 인정을 받았다는 뜻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조원들이 밝은 얼굴로 놀랍다는 듯 감탄성을 터트렸다.
“오오오!”
“그거 멋진데?!”
나 또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좋았다.
누구 개개인이 아닌 우리 조 전체가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조장의 표정도 그래서 저렇게 밝은 모양이었다.
그가 문득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공석이 된 사 조 조장을 우리 조에서 채워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었네. 다만 사 조 조장은 그래도 절정 고수가 맡아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려 무산됐었지.”
그렇게 말한 조장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와 청연 소저를 힐끗 쳐다봤다.
음, 그건 좀.
새삼 절정의 경지를 감춰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설풍 조장과 나 소저는 물론 우리 조원들을 떠나 다른 조로 옮기는 건 영 내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때 비사영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만약 진이 녀석이 사 조 조장으로 갔으면 진짜 웃겼겠는걸? 주태경 녀석, 진이를 피해서 사 조로 도망간 거였잖아? 근데 졸지에 조장으로 다시 만나게 되면? 크크크, 진! 혹시 사 조 조장으로 갈 생각은 없냐? 꼭 구경하고 싶은데.”
윽, 그놈을 다시 만나는 건 나도 좀.
하지만 상상하니 웃기긴 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호칭부터 제대로 형님이라고 부르도록 시켜야겠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새삼 내가 그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 조원들을 성장시키겠다는 생각만 했지 그렇게 성장한 조원들이 다른 조의 조장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 조의 한교성 조장과 더불어 십삼대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설풍 조장이 하위 조인 칠 조의 조장인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더군다나 청연 소저나 나도 당장 일개 조의 조장으로 임명돼도 이상하지 않은 실력이 아닌가. 그것도 상위 조에 말이다.
나 소저나 비사영 또한 하위 조라면 충분히 조장을 할 만한 실력이었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조원들이 이렇게 함께 모여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구나.’
문득 조원들의 얼굴을 둘러봤다.
이제는 가족처럼, 아니 내게 있어선 가족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지는 그들의 얼굴이 새삼 정겨웠다.
조장의 얘기를 듣고 모두들 파견을 위한 개인 짐을 싸기 시작했을 때였다.
나만은 숙소 밖으로 나와 걸음을 옮겼다.
파견을 나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두 개 정도 있었다.
하나는 하필 파견 나간 사이 등장하게 될지도 모를 철귀의 문제였고, 또 하나는 초일류 검법에 관한 문제였다.
지난번 당 소저를 찾아갔을 땐 결국 화골산에 관한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다 간신히 진정해서는 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사실은 화골산 때문에 왔다고 얘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설사 그녀가 힘들어 보인다 하더라도 얘기를 해야만 했다.
동료들이, 어쩌면 당여은 그녀가 철귀에게 희생될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까.
근데 그녀에게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어쩐지 좀 이상했다.
‘아니, 발걸음이 아니라 마음이 이상한 건가?’
긴장은 되는데 발걸음은 가벼운 이상한 상황.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어째서인지 잔뜩 긴장한 상태로 삼 조의 숙소로 가 보니, 이미 어둑해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삼 조원들이 모두 나와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무슨 동기 부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조 못지않은 대단한 열기였다.
그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지도해 주는 당 소저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문득 수련을 방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을 걸기가 좀 망설여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젠 더 시간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당 소저, 잠시만 시간을 좀 내 주실 수 있겠소?!”
목소리를 높여 부르자 그녀의 눈빛이 내게로 향했다.
평소와 같은 차갑고 도도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내게 걸어오며 물었다.
“보시다시피 수련 중인데 급한 용무인가요?”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평소 때의 그녀로 돌아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지 좀 서운한 기분.
약간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좀 급한 용무입니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그럼 저쪽에서 얘기하죠.”
그녀가 조원들과 약간 떨어진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조원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
그리고 그곳에 가자마자 그녀는 차가웠던 표정을 싹 거둬 버리고는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미안해요. 조원들 앞에서 너무 반가워하는 건 안 될 것 같아서. 혹시 기분… 상했나요?”
혹시라도 내 기분이 상했을까 봐 불안한 눈빛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도 귀여웠다.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멋있어 보였어요.”
“아, 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둑해진 상태라 잘 보이지 않는데도 어쩐지 약간 붉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화골산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하나 잠시 망설일 때 그녀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파견… 나간다고 들었어요.”
“아, 네. 맞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작게 속삭였다.
“안 그래도 몸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말조차 직접 하지 못하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돌려 말하는 그녀를 보며, 그간 나나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얼마나 큰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를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빙긋이 웃으며 대답해 줬다.
“고마워요. 잘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한 우리는 잠시 말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대로 있으면 한없이 시간이 지나갈 것만 같은 기분.
계속 이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좀 아쉬웠지만 이젠 용무에 대해 얘기해야 할 것 같았다.
“당 소저, 얼마 전 저와 설풍 조장이 밀림에 들어갔던 것은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석경달이란 분을 만났었는데….”
철귀에 대해 알게 된 이유를 석 어르신을 통해 들은 것으로 할 생각이었다.
화골산으로 그놈을 약화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 얘기에 집중해 줬다.
그러곤 보유하고 있는 화골산이 많지는 않지만 각 조장들에게 나눠 주겠다고 말해줬다.
오랜 시간 고민해 왔던 것치곤 너무나도 간단한 해결이었다.
그녀와 조심스럽게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직접 다른 조장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철귀에 대한 주의 사항은 직접 말해 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임시로 사 조를 인솔하기로 한 대주 풍양을 비롯해 내 이야기를 들은 조장들은 대체적으로 고맙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 조장 독수광의 태도가 좀 불안하긴 하지만, 뭐, 더 이상은 어쩔 수 없겠지.’
다섯 명의 조장을 찾아가고 이제 마지막 한 명의 조장만을 남겨 놓고 있을 때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해야 할 말을 정리해 봤다.
그를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이유는 내 두 번째 문제도 같이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초일류 검법에 관한 문제를 말이다.
계속 고민해 봤지만 검법의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만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했다.
외우고 있는 검법들이야 꽤 많았지만 그중 사일검법은커녕 선우십삼검에 닿을 수 있는 검법도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새로 배워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구대문파의 최고 절기들을 능가하거나 최소한 그에 필적하는 검법을 말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말이 쉽지 그걸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아니, 구하기는커녕 그런 검법이 있기는 한 건가? 전설로 떠도는 검신의 유산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던 나는 문득 구파의 절기를 능가하는 것은 몰라도 그에 필적하는 수준의 검법이라면 이미 내 주변에 세 가지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바로 일 조장 한교성이 익히고 있는 청성파의 청풍검법, 청연 소저가 익히고 있는 검성 어르신의 성라검법, 그리고 점창파의 사일검법, 이 세 가지를 말이다.
알고 보니 구대문파의 최고 절기급 검법이 내 주변에 셋이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중 내가 익힐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긴 나는 자신의 연무장에서 명상에 잠겨 있던 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사군일 조장.”
그는 바로 이 조장인 점창검룡 사군일이었다.
그가 살며시 눈을 떠 나를 바라봤다.
내가 그를 찾아왔다는 것이 의외였는지 약간 이채를 띤 눈빛이었다.
“선우진이로군. 무슨 일인가?”
아까부터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한참 고민했었다.
하지만 사군일이란 남자에게 돌려서 말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사일검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익히기 가장 적합한 절정의 검술이 바로 사일검법이었다.
심법과 운용법을 모를 뿐 초식의 형은 지난 삶부터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배울 수만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 빠르게 체화할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여전히 구대문파로서 성세를 떨치고 있는 청성파의 검법이나 검성의 성라검법보다는, 몰락한 점창파의 검법이 훨씬 배울 수 있는 가능성도 높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사군일 조장은 약간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 물었다.
“사일검법을 배우고 싶다고? 자네가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너무 당당한 태도에 오히려 할 말을 잃었는지 잠시 나를 바라보던 사군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주태경이 내게 와서 무슨 얘기를 떠들고 있는지 아는가?”
응? 주태경? 갑자기 그놈의 얘기를?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가 그러더군. 자네가 점창파의 명예를 땅바닥에 처박은 거라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놈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바로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점창의 제자인 마유겸의 죄를 밝힌 것이 점창의 명예를 훼손한 거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겠지.
뭐,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죄를 지은 마유겸이 아니라 죄를 밝힌 내게 책임을 돌린다는 점에서 너무도 주태경다운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헛소리에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그러자 사군일도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네.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지. 자네가 아니었다면 그가 점창의 이름으로 얼마나 더 큰 죄를 지었을지 상상도 안 가니 말일세.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네. 그러니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을 떠나서 그런 자네가 점창의 사일검법을 익히는 것은 모양이 좀 이상하지 않겠나?”
완곡하게 돌려 말했지만 안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만족했다.
‘내가 왜 그걸 가르쳐 줘야 하지?’라며 화를 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반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오히려 그런 이유라면 더더욱 제가 사일검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가 눈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무슨 소리인가?”
“제가 점창과 전혀 상관없는 외인이라면 외부인에게 치부를 들킨 것이 되겠지만, 점창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면 점창의 배신자를 점창이 처벌한 것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또한.”
내 말을 들으면서도 사군일의 찌푸린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아직까진 설득력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다음부터였다.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제가 사일검법으로 점창의 명예를 드높이겠습니다.”
그 말에 처음으로 그가 놀란 표정이 되어 반문했다.
“…뭐라고?”
“저는 오 년 안에 반드시 혈교로 쳐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엔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오 년 후에는 혈마인들이 등장한다.
검강을 버텨 내는 마인들의 육신을 가진 절정 고수들이.
그때가 되면 전선을 지키기는커녕 살아남기조차 쉽지 않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혈교를 쳐야만 했다.
내 말을 들은 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혈교로 쳐들어가는 것은 점창파 제자인 그의 숙원일 테니까 말이다.
강렬한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말을 이었다.
“그때가 되면 제가 사일검법으로 혈교의 마두들을 소탕하겠습니다. 사일검법이 혈교로 전향한 배신자의 검법이 아닌 혈교를 박살 낸 검법으로 세인들에게 기억되도록 만들겠습니다.”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였다.
그리고 이 얘기에 거짓은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사군일의 표정은 더 이상 찌푸려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강렬한 눈빛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무척이나… 광오하군. 하지만 왜 유겸이 제정신일 때 그렇게 자네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는 잘 알겠네. 혈교로 쳐들어가겠단 말이지.”
그렇게 되뇌는 그의 눈빛은 형형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평상시 그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야성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가 다시 물었다.
“한 가지 더 묻지. 왜 사일검법에 집착하는 건가? 지난번에 본 선우십삼검도 충분히 훌륭한 검법이던데.”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 줬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마유겸과 싸워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선우십삼검으론 도저히 사일검법의 상대가 될 수 없겠더군요.”
그러자 순간 그가 눈을 번뜩였다.
“마유겸과 싸웠었다고? 지난번에 그런 말은 없었던 것 같은데?”
대주와 조장들에게 보고할 땐 그저 신법으로 도망 다니다가 당 소저가 제때 깨어나 마유겸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만 보고했었다.
내가 그와 싸웠었다는 얘기를 하면 절정에 올라섰다는 걸 밝혀야 했을 테니 말이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밝히고 싶지 않은지는 그도 이미 짐작한 것 같았다.
“설풍도 알고 있나?”
“네, 다만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아직 칠 조를 떠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그러자 헛웃음을 지은 그가 말했다.
“설풍은 복도 많군.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이류에서 절정까지 올라섰단 말이지?”
그러곤 뜨거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좋아. 자네를 믿어 보겠네. 자네가 점창의 명예를 드높여 줄 수 있다고 말일세. 대신…. 혈교에 쳐들어갈 때는 절대 나를 빼놓으면 안 되네.”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날, 나는 전생에서부터 형만을 외우고 있던 점창의 사일검법을 드디어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