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파견-3
무림맹 소속 음영대 팔 조의 조장 휴자승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개돼지라고? 감히….”
옳고 그름의 판단도 없이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들, 그들 음영대를 그보다 정확하게 비난하는 말이 또 있을까.
혹시 뭘 알고 비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 자기혐오를 외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가.
이제야 좀 아무 감정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비룡대원 하나가 그 상처를 다시 후벼 파 버렸던 것이다.
한참을 분노를 짓씹던 휴자승은 잠시 후 결국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의 자신은 그저 개돼지에 다를 바가 없지.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개돼지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면 더 충실히 개가 되어 주는 수밖에.
휴자승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칠 조와 팔 조를 호출해라. 전선에서 벗어나려 하는 비룡대원 삼십 명 정도를 척살해야 한다고.”
“넵, 조장!”
그는 결국 자신의 감정대로 그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어차피 개돼지가 될 바엔 눈에 거슬리는 자들 정도는 마음대로 처리해도 되지 않겠는가.
음영대에겐 전선에서 벗어나려는 무인을 선처리 후보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자신의 상처를 헤집은 대가라고 생각하면 죽는 것도 그리 억울하지 않을 거라며 휴자승은 비릿하게 웃음 지었다.
***
음영대 칠 조의 조장 전상구는 조원들과 함께 숲속을 비호처럼 달리며 소리쳤다.
“서둘러라! 목표 지점에 가서 먼저 매복해 있어야 한다!”
“네! 조장!”
전상구는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드물게 찾아온 살인의 기회였던 것이다.
최근 자신의 구역 쪽에선 한동안 척살 대상이 없어 무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삼십여 명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이건 절대 빠질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자신이 몽땅 다 해결하고 싶을 정도였다.
전상구는 살인을 즐겼다.
그는 이 무료한 음영대 생활에서 살인이 주는 자극이라도 없었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거란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또한 처음엔 정파의 무인들을 척살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지금의 그는 죄책감 따윈 모두 버리고 순수하게 살인을 즐길 수 있게 된 상태였다.
그리고 음영대에는 그 외에도 그와 같이 살인을 즐기게 된 무인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그들이 숲속을 바람처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문득 전방에 한 명의 인영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흑의 무복에 깊게 눌러 쓴 죽립, 바로 음영대원의 복장이었다.
그걸 본 전상구는 조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정지! 모두 잠시 정지하라!”
그러곤 자신이 먼저 흑의인의 앞으로 내려섰다.
“팔 조의 조원인가?!”
하지만 죽립을 슬쩍 들어 얼굴을 보인 남자는 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전상구에게 물었다.
“칠 조 조장 전상구인가?”
그러자 그의 얼굴을 알아본 전상구가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당신은 사 조장 삭무흔?! 사 조장이 왜 여기에?”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조원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크어억!”
“크으윽!”
“으윽!”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디선가 나타난 세 명의 남녀가 자신의 조원들을 기습해 학살하고 있었다.
은신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웬 놈들이냐?!”
바로 검을 뽑으며 놈들에게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푸욱!
전상구의 등을 관통한 검이 가슴 앞으로 검 끝을 드러냈다.
“커헉!”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사 조장 삭무흔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그가 왜 자신을…?
“왜…?”
전상구가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뒀을 때 삭무흔은 이미 검을 뽑아 다른 조원을 덮쳐 가고 있었다.
“사, 사 조장님?!”
칠 조장 전상구와 더불어 절정의 무인인 칠 조 이 호는 황급히 검을 휘둘러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전체 음영대원 중에서도 최고라고 인정받던 삭무흔의 검을 받아 내기엔 무리였다.
채채채챙!
몇 번의 부딪침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옆으로 검이 튕겨 나가고. 그러자 활짝 열린 가슴으로 삭무흔의 검이 공기를 베듯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샤악!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신속의 베기였다.
삭무흔이 다시 그를 떠나 다른 조원을 덮쳐 갈 때 한 박자 늦게 쩌억 갈라진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푸하악!
“커어어억!”
칠 조장 전상구, 이 호와 더불어 역시 절정의 경지인 일 호는 자신의 조장이 죽어 가는 걸 알았음에도 그곳으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양손에 강철로 된 호조를 달고 있는 남자가 마치 무인지경을 통과하듯 자신에게로 덮쳐 오고 있었던 것이다.
설풍이었다.
그가 스쳐 지나간 주변으로 세 명의 조원들이 폭풍에 휘말린 듯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가고 있었다.
푸하아악!
“크아아악!”
“흐아악!”
“아아아악!”
그리 큰 체격이 아님에도 일 호의 눈에는 마치 거대한 맹호가 덮쳐 오는 듯 보이고 있었다.
엄청난 기세였다.
이대론 기세에 눌려 대항도 못 할 것 같았던 일 호는 억지로 기합을 지르며 날아오는 설풍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으아아아아압!”
슈아악!
노란색의 검강이 창끝처럼 공간을 꿰뚫었다.
그의 사력을 다한 찌르기였다.
그 쾌속의 찌르기가 설풍의 머리를 막 꿰뚫을 찰나, 설풍이 기합과 함께 맹호조로 후려쳤다.
“하아압!”
까아아앙!
“크윽?!”
엄청난 거력과 함께 검이 방향을 잃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일 호로선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반대 손으로 그어 오는 네 개의 빛살 같은 강철 발톱.
그것에 맺혀 있는 찬란한 붉은 강기가 일 호가 볼 수 있었던 마지막 광경이었다.
푸화악!
선우진은 해청연, 설풍과 함께 은신해 있다가 제일 먼저 기습으로 두 명을 죽였다.
선우진이 익혔던 천살비기의 은신술은 이제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한 상태라 음영대원들로서도 죽기 직전까지 전혀 그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그림자에서 천천히 올라온 선우진의 검이 세상에 선을 긋자 자연스럽게 의식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샤악!
“!”
“!”
그런 후 선우진은 바로 해청연, 설풍과 함께 또 다른 음영대원을 향해 뛰어들었다.
선우십삼검의 신응비상이 음영대원의 눈앞에서 화려한 날개를 펼치자 당황한 상대가 어지럽게 검을 휘두르며 그것을 튕겨 내려 했다.
“으윽?!”
채채채챙!
그 순간 날개의 중심에서 쏘아진 한 가닥 빛줄기가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푸욱!
“커헉?”
반응조차 할 수 없었던 극쾌의 찌르기, 이제 심법운용마저 완전해진 사일검법의 일시사일이었다.
선우십삼검과 사일검법의 자연스러운 전환에 만족한 선우진이 씨익 웃음 지었다.
그렇게 세 명째를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자 옆에선 해청연이 성라검법으로 막 한 명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자 선우진은 이제 검에서 피를 털며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은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선우진과 해청연이 각각 한 명을 죽인 짧은 사이 설풍이 네 명, 삭무흔이 음영대 조장을 포함해 세 명을 처리했던 것이다.
선우진은 이제 검을 거두며 해청연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쉬우니 오히려 허무하구려.”
“기습이었으니까요. 삭 오라버니가 있어서 가능했던 거지 아니었으면 이렇게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긴, 그것도 그렇구려.”
선우진은 막 세 명을 해치우고 검을 거두고 있는 삭무흔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그가 있어 일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검성 해운백은 맹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무기명 제자가 된 삭무흔에게 해청연의 암중 호위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삭무흔이야 당연히 흔쾌히 승낙했고 덕분에 칠 조는 실질적으로 절정 고수만 네 명을 보유한 극강의 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냥 절정 초입 네 명도 아닌 내공 칠십 년 이상의 고수 두 명이 포함된 네 명이니, 이젠 그냥 일개 조가 아니라 웬만한 비룡대의 핵심 전력과도 거의 동급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 후로 해청연은 그를 통해 여러 가지 암중의 일을 부탁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 와 봤던 선위에서 익숙한 듯 하오문 지부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도 삭무흔의 덕분이었고 말이다.
이번에도 선우진은 음영대원들을 도발한 후 삭무흔에게 그들을 뒤쫓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일단 도발을 해 놨으니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과연 음영대원 중 최강이었던 삭무흔은 몰래 그들의 뒤를 따라가 그들의 이후 행동 방향을 알아내주었다.
선우진이 예상했던 그들의 이후 행동 중 가장 좋은 건, 그들이 맹과 연락해 더 이상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그걸 택해 주길 바랐는데….’
삼십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인 데다 전선으로 돌아가게 할 명분도 딱히 없을 테니 어쩌면 그냥 놔두자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설사 맹과 접촉 후 다시 자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온다 해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부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들도 충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일 테니까 말이다.
생각했던 가장 최악은 그들이 자신들을 죽이겠다고 결정하는 거였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자신들도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랬는데…. 설마 그보다 더 최악의 결정을 택할 줄이야.’
삭무흔이 알아낸 그들의 결정은 기가 막힌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맹에 알리지도 않고 본인들의 의지만으로 죽이겠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젠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맹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 일을 더 쉽게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먼저 설풍, 선우진, 해청연 세 명이 삭무흔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세 개 조가 모여 습격할 계획이라는 것과 다른 조들이 어느 쪽으로 올지를 미리 파악해 놨으니 굳이 기다려 줄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사태였다.
음영대 칠 조가 오히려 기습에 의해 각개 격파 당하게 됐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칠 조 일 호의 머리가 설풍의 맹호조에 의해 다섯 조각으로 쪼개지자 삭무흔이 말했다.
“간단히 사체만 정리하고 이동하세. 가능하면 세 개조 모두 각개 격파하고 싶었는데 시간상 나머지는 불가능할 것 같군.”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삭무흔의 얼굴은 손쉬웠던 전투에도 불구하고 무척 어두워 보였다.
아마 같은 처지였던 음영대원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에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착잡한 표정에 일행은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대표로 설풍이 말했다.
“삭 형님, 내키지 않으시면 저희끼리 해도 됩니다.”
“맞아요, 삭 오라버니.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예, 저들을 정탐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삭무흔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닐세. 다만…. 이들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짐작 갈 것 같아서 그랬던 걸세. 꽤 있다네. 음영대에 들어와 무인들을 죽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걸 즐기게 되는 사람들이 말일세. 아주 급한 일이 아님에도 보고 없이 척살부터 행하는 대부분의 대원들이 그랬지.”
거기까지 말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웃기지 않은가? 의와 협을 좇아 무림맹에 입맹했던 자들이 어느샌가 무고한 자들을 죽이는 일을 즐기게 되어 버리다니, 심지어 그런 자들이 나중에 무림맹의 정식 무력대에 들어가게 된다니 말일세.”
넋두리하듯 그렇게 말하던 삭무흔은 이내 고개를 젓고는 웃으며 말했다.
“시간도 없는데 괜한 소리를 했군. 자, 어서 가세.”
그러자 해청연이 그에게 말했다.
“바꿀 수 있을 거예요.”
“음?”
자신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삭무흔에게 해청연은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
“아버지를 믿어 보세요, 오라버니. 이미 이루어진 것을 되돌릴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다시 반복되지는 않게 해 주실 거예요. 그리고 오라버니도 거기에 한몫을 담당할 수 있으실 거구요.”
그녀의 확신이 담긴 말에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삭무흔은 결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어르신, 스승님을 믿네.”
***
음영대 팔 조 조장 휴자승은 수풀 속에 매복한 채로 인상을 찌푸렸다.
저 앞에 척살 대상들이 매복 지점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목표물들이 도착한 지금까지도 아직 칠 조원들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칠 조장 전상구가 이런 일에 빠질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구 조 조장 양원당이 전음을 보내왔다.
- 어떻게 할 건가? 그냥 우리끼리 할 건가?
휴자승은 다가오고 있는 척살 대상자들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인원은 이십오 명. 세 명이 이탈했는지 처음 봤을 때보다는 부족한 상태였지만 역시 두 개 조 스물두 명으로 상대하기엔 만만치 않은 인원이었다.
더군다나 비룡십이대의 대주인 증악도객 만종임은 내공 팔십 년 이상의 고수가 아니던가.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 쪽에서도 희생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재 자신들 쪽 절정 고수의 수는 팔 조에 두 명, 구 조에 두 명. 합쳐서 네 명이었다.
절정 고수만 세 명인 칠 조가 합류했다면 일곱 명이 되니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고민하던 휴자승은 일단 이번 기회는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단 좀 오래 걸리더라도 칠 조와 합류해 다시 기회를 노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이번엔 그냥 보내도록 하지. 칠 조와 합류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낫겠군. 모두 귀식대법을 유지하고 저들을 보낼 수 있도록 구 조원들에게 전달해 주게.
- 알았네.
휴자승은 그렇게 전음을 보내고는 자신의 조원들에게도 전음을 보내 가만히 숨어 있을 것을 지시했다.
그러곤 은신한 채 만종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적들에게 들킬 거라곤 걱정하지 않았다.
편복혈살 조우손의 살수비기를 익힌 자신들의 은신술은 거의 완벽했으니까 말이다.
휴자승은 자신했다.
습격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만히 숨어만 있는 상태에서 들킬 확률은, 누군가 미친 척 적들에게 뛰어나가지 않는 다음에야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라고.
그래, 적들에게 뛰쳐나가지 않는 다음에는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만종임들이 자신들이 은신한 곳을 지나갈 때였다.
갑자기 음영대원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닌가.
“쳐라!”
그러곤 제일 먼저 적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 광경에 깜짝 놀란 휴자승이 외쳤다.
“이 바보 같은?!”
자신의 조원이 아닌 걸 보니 아마 구 조의 조원들 중 전달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당황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채앵!
“웬 놈이냐?!”
습격한 음영대원의 검이 벼락같이 도를 뽑은 비룡대원 한 명에게 막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휴자승은 알 수 없었지만 비사영이었다.
“뭐야?!”
“습격이다!”
습격에 깜짝 놀란 비룡대원들이 무기를 뽑으며 경계 자세를 취하고, 그 와중에 몇 명의 음영대원들은 엉겁결에 첫 대원을 따라 이미 뛰쳐나간 상태였다.
채채챙!
“살수들이다!”
“조심해!”
습격하러 뛰쳐나간 음영대원들은 자신들만 밖으로 나오게 되자 오히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이를 악문 휴자승이 외쳤다.
“모두 쳐라! 한꺼번에 친 후 바로 이탈한다!”
그러곤 자신 또한 비호처럼 뛰쳐나가며 십이대주 만종임에게 암기를 날렸다.
휘리리릭!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만종임만큼은 누군가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미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만종임은 어렵지 않게 암기를 막아 냈다.
채채챙!
그러곤 암기에 뒤이어 날아온 휴자승과도 검을 부딪쳤을 때였다.
채챙!
휴자승에 이어 다른 음영대원들도 황급히 뛰쳐나와 암기를 뿌리려 할 때, 갑자기 그들의 뒤에서 세 명의 신형이 유령처럼 덮쳐 왔다.
“하아압!”
푸욱!
“커억?!”
설풍이었다.
설풍의 맹호조가 구 조 조장 양원당의 뒷목을 꿰뚫었던 것이다.
손도 써 볼 수 없는 후방으로부터의 기습이었다.
설풍만이 아니었다.
다른 쪽에선 선우진의 선우십삼검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는 듯한 환상적인 검초로 두 명의 음영대원을 휩쓸고 있었다.
슈하아악!
“으윽?!”
“뭐, 뭐야, 이건?!”
후방에서 덮쳐 온 거대한 빛의 날개에 음영대원들이 당황한 순간, 그 날개가 빛살 같은 검영으로 흩어지며 그들을 난자했다.
푸화아악!
“크아아악!”
“으아아악!”
피투성이가 된 음영대원들이 절명해 추락해 갔다.
선우진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신응비상으로부터 신응피익으로 이어지는 연환초였다.
선우진의 옆쪽에선 해청연의 성라검법이 펼쳐지고 있었다.
기교보단 속도를 택한 해청연의 검이 유성처럼 날아들어 역시 두 명의 등을 순식간에 꿰뚫었다.
쉬이이익!
“허어어억!”
“아아악!”
음영대원들이 반응도 할 수 없었던 쾌속한 공격, 성라검법의 가장 빠른 찌르기 혜성시흑이었다.
만종임과 검을 부딪치고 있던 휴자승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부터의 기습 때문에 당황한 다른 대원들마저도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점창검호 제원영의 검에 두 명이, 십이대 일 조 조장 도무곤의 검에 또 한 명이 숨을 거두고 있었다.
휴자승의 마음이 급박해졌다.
큰일이었다. 이대론 순식간에 전멸할 것만 같았다.
“후퇴! 전원 후퇴해서 이탈하라!”
그렇게 외친 휴자승은 만종임에게 남은 암기를 모두 뿌려 버리곤 바로 몸을 날렸다.
휘리리릭!
채채채챙!
“어딜 도망가느냐?!”
암기를 쳐낸 만종임 또한 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외쳤다.
“쫓지 마십시오, 대주님!”
“응?!”
그 목소리에 만종임이 멈칫하는 모습이 휴자승의 눈에 얼핏 들어왔다.
그 사이 휴자승은 사력을 다해 숲속으로 몸을 날렸다. 왜 쫓지 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자 휴자승은 그제야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살펴봤다.
몇 명의 음영대원들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숫자는 모두 여덟. 자신을 포함해 여덟 명만이 거기서 몸을 뺄 수 있었던 것이다.
기가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