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독수 오 남매-2
“왜 숨기신 겁니까?”
한동안 청연 소저의 미모에 넋을 잃고 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내가 첫 번째로 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게 싫어서요?”
“아아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주변 남자 모두가 이런 반응이라면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으리라.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조 남자 조원들이 아직도 멍한 얼굴로 청연 소저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나 소저와 천 소저만이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남자 중 그나마 제일 빨리 정신을 차린 것이 나였던 것이다.
십일대 대원들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당여은 소저에게 단련된 우리들과 달리 미인에 대한 면역이 없었던 것인지 넋이 나간 것은 기본에 침까지 질질 흘리고 있는 자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 추잡한 자가 십일대 일 조장인 점창검호 제원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동안 나와 청연 소저는 앞으로의 대략적인 계획을 짤 수 있었다.
그러곤 정신을 차린 사람들 앞에서 선언했다.
“우리는 낭인의 신분으로 위장해 산검문으로 들어갑니다. 지금부터 질문 받겠습니다.”
그러자 나 소저가 바로 손을 들고 질문했다.
“산검문은 절대 혈교도가 아닐 거라고 하셨지 않나요? 근데 왜 산검문으로 가나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해 줬다.
“좋은 질문입니다, 나 소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산검문으로 가는 겁니다. 우린 지금 청연 소저를 미끼로 놈들을 끌어들일 생각인데, 다른 곳으로 가면 내부와 외부를 모두 경계해야 하지만 산검문으로 가면 외부만 경계하면 될 테니까요. 또한 산검문의 현재 상황이 매우 안 좋다고 하니 좋은 대우도 받을 수 있을 테고요.”
그런 상황이니 청연 소저나 다른 여인들에게 헛짓거리를 하는 놈들도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건 굳이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제원영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우리 모두가 다 산검문에 낭인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세 개의 역할로 나뉘게 될 겁니다. 그중 세 분 소저께서 미끼의 역할을 맡으실 테니 나머지 사람들이 호위조와 잠입 추격조로 각각 역할을 분담합니다.”
“호위조와 잠입 추격조라고요?”
“예, 호위조는 함께 낭인으로 들어가 세 분 소저들을 지켜 주는 역할입니다. 저희 십삼대 쪽에선 설풍 조장과 배종관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제 생각엔 제원영 조장을 비롯한 십일대 대원들도 따로 모르는 사이처럼 낭인으로 들어가 그 역할을 수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제원영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의 얼굴이 환해진 이유가 내 말을 이해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좀 의심스러웠다.
그때 비사영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럼 나는 잠입 추격조가 되는 건가? 어디를 잠입하고 누구를 추격하면 되는 거지?”
“맞아, 사영 너와 내가 잠입 추격조를 맡게 될 거야. 우리는 낭인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에 잠복해 있다가 소저들을 노리고 온 혈교의 마두들이 호위조에게 패퇴하면 그들을 몰래 추격해 본거지를 파악하는 역할을 할 거다.”
삭무흔 형님 또한 우리와 함께 하겠지만 십일대원들의 앞이기에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그러자 천주은 소저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우리가 낭인으로 산검문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무리 그들이 급하다고 해도 신분도 확실하지 않은 우리를 낭인으로 고용해 주진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질문에 청연 소저와 눈을 마주치고 빙긋이 웃었다.
그러곤 바로 후회해야 했다.
마음이 통했을 때 그녀와 마주 보며 웃는 건 예전부터의 습관이었는데, 지금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타격이 컸던 탓이다.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한 기분이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간신히 대답했다.
“아, 그건 청연 소저께서 해결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소저의 아버님께서 아마 산검문 쪽 인사와 친분이 있으신 모양이더군요.”
그러자 그녀의 아버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우리 조원들이 ‘아아!’하며 감탄성을 터트렸다.
과연 천의검성의 인맥은 대단했다.
그때 배종관이 약간 소심하게 손을 들며 물었다.
“어어, 근데 가서 뭘 해야 해? 호위조면 거기서 소저들을 호위만 하면 되는 거야?”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그럴 리가. 미끼를 널리 알리기 위해 최대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야지.”
“이, 이목을 집중시키라고? 어떻게?”
“어떻게긴. 전투에 나가면 적들을 마구 깨부숴야 할 테고, 전투에 나가지 않았을 땐….”
“나가지 않았을 땐?”
“같은 편을 깨부숴야지.”
“…응? 뭐라고?”
순박한 얼굴로 되묻는 배종관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음 지었다.
종관, 너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 크단다.
***
산검문 외당의 연무장.
수십 명의 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별생각 없이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산검문으로 왔다가, 모두가 산검문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되자 당황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 지난 싸움으로 산검문 서부지부를 정협방에게 빼앗겼으니 다음은 바로 본문으로 올 거라고.”
“그렇긴 하지만…. 선금을 받아 버렸잖아? 이대로 도망간 것이 알려지면 앞으로 큰 판에는 발붙이기 힘들어질 텐데?”
낭인들이 높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의외로 실력보다도 신뢰도가 중요했다.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낭인에게 큰돈을 주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만약 선금을 받고도 싸우지 않고 도망쳤다는 소문이 나게 된다면 자잘한 의뢰면 모를까 큰 임무들에선 완전히 매장당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뢰도야 중요하지. 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잖아? 이대로 있다간 거의 십 할의 확률로 죽게 될 거라고.”
“꼭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번 일로 산검문도 앙숙이었던 운씨세가와 동맹을 맺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두 문파가 힘을 합친다면 아무리 정협방이라도….”
“자네, 정말 답답하군. 지난 두 번의 전투에서 산검문이 어떻게 패했는지 소식도 못 들었나?”
“응? 어떻게 패했는데?”
“첫 번째 전투에선 이백 명의 정예를 모두 끌고 간 산검문의 앞에 천 명도 넘는 무사들이 나타났다네. 그것도 정협방 동부지부의 무사들만 그 정도였다더군.”
동료의 말에 낭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말이 쉬워 천 명이지 그 정도 규모의 병력은 각 성을 지배하는 문파들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사천성에서도 네 번째에 불과하다는 정협방이 동원할 수 있는 규모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처, 천 명이라고?”
“그래, 그래서 산검문이 아무것도 못 해보고 도주해 온 것이 아닌가. 그뿐인 줄 아나? 두 번째 전투에선 고작 오십여 명의 정협방 사절단을 이백의 정예로 습격했는데도 전멸당하고 말았다지 않은가?”
“어엉? 오십을 이백으로 기습했는데 전멸당했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사절단에 절정 고수가 세 명이나 있었다는군. 원래 철장대협 황장곤만 온다는 정보를 듣고 산검문 부문주인 분소검객 허중이 정예를 데리고 습격했던 건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지. 그러니 모두 몰살당한 것이 아닌가.”
“허어, 그럼 산검문은 완전히 정협방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던 거로군.”
“그랬던 거지. 더 놀라운 건 그때 황장곤과 함께 움직인 절정 고수들이 기존에 알려졌던 정협방의 인물들이 아니었다는 걸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자들이 있었다는 모양이야.”
그 말에 낭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정협방에는 원래 일곱 명의 절정 고수가 소속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귀주성의 어떤 문파보다 더 많은 절정 고수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 말대로라면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다는 얘기였던 것이다.
“그, 그럼 정협방은 절정 고수를 아홉 명이나 보유하고 있다는 건가?”
“일단은 그런 것 같긴 한데 자세한 건 누가 알겠나? 알려지지 않은 고수들이 또 있을지.”
그때 듣고 있던 다른 낭인이 끼어들며 말했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사천성에서 네 번째에 불과하다는 정협방이 어떻게 그렇게 강력할 수 있단 말인가?! 귀주 제일세라는 흑오방도 그 정도는 안 되겠군! 그거 다 헛소문 아닌가?!”
그러자 설명해 주고 있던 낭인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자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물론 귀주성이었다면 귀주 제일세가 되었겠지. 하지만 거긴 사천성이 아닌가? 사천성에 어떤 문파들이 있는지 잊은 건가?”
“아무리 사천성이라도…!”
하지만 반발하려던 낭인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는 질린 얼굴로 물었다.
“서, 설마?”
“그래, 그 설마일세. 정협방의 위를 차지하고 있는 문파들이 바로 청성, 아미, 그리고 사천당가란 말일세. 이제 정협방이 그런 전력으로도 사천성에서 네 번째밖에 안 되는 이유를 알겠는가?”
의문을 제기했던 낭인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대문파 중 둘인 청성파와 아미파, 그리고 오대세가의 하나인 사천당문이라니.
오히려 그들 사이에서 세력을 키워 왔다는 것 자체가 정협방이 얼마나 강력한 문파인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도저히 안 되겠군. 그렇게 대단한 저력을 지닌 자들이었다니. 당장 도망가야겠어.”
낭인들의 분위기가 당장이라도 산검문을 빠져나갈 듯 소란스러워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들인가?!”
꽤 고강한 내공이 깃든 목소리였다.
놀란 낭인들이 소란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자, 어느새 산검문의 외총관인 허전삼이 두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와 있었다.
허전삼은 귀주성에서 꽤 유명한 일류의 고수였다.
그렇기에 차마 그의 앞에서 산검문을 떠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던 낭인들은 일단 입을 다물고 허전삼과 그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소개하겠네. 이분들은 내가 신지 절강성에서 힘들게 초빙해 온 낭인분들이시네. 절강성 독수에서 오신 독수 오 남매분들과 괴산에서 오신 괴산사검이란 분들이시지.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뛰어난 무위로 유명하신 분들이니… 이제 정협방은… 승리만이….”
두 무리의 낭인들을 소개하는 허전삼의 말이 계속됐지만 그건 소용없는 짓이었다.
낭인들의 귀에는 이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지금 그들의 눈에는 오직 독수 오 남매의 가운데에 서 있는 해청연의 모습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흑수정을 깎아 만든 얇은 막으로 푸른 눈동자를 가렸음에도 해청연의 신비함은 전혀 감해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소란 피우지 말고 대기하고 있도록!”
허전삼이 말을 마치고 다시 연무장에서 나갔을 때였다.
멍한 표정의 낭인들이 천천히 해청연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빨라지더니 한순간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소저! 저를 봐 주시오! 제 이름은…!”
“소저께서 네 놈 따위의 이름을 알아 주실까 보냐?!”
“에잇! 다 꺼져라, 이것들!”
몇십 명의 낭인들이 마치 사흘 만에 먹잇감을 만난 굶주린 늑대들처럼 청연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 기세는 마치 거대한 파도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 파도는 갑자기 해청연의 앞으로 한 걸음 옮긴 거대한 바위와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퍼어억!
“어어억!”
“뭐, 뭐야, 이건?!”
“으아아악! 갑자기 웬 바위가?!”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달려들던 낭인들을 튕겨 낸 배종관이 자신의 앞에서 나뒹구는 낭인들과 멈춰 선 낭인들을 내려다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고한다. 내 허락도 없이 여동생에게 함부로 접근하는 놈들은 죽이겠다.”
그제야 배종관이 눈에 보이게 된 낭인들은 그 말에 멍하니 배종관과 해청연을 번갈아 쳐다봤다.
“…여동생이라고?”
하지만 근육질의 거대한 덩어리인 배종관과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해청연과의 닮은 점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낭인들이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라! 너 같은 괴물이 저 소저의 오빠라니, 누가 믿어 줄 것 같으냐?!”
“맞다!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비켜!”
“비키지 않으면 베겠다!”
그 말에 배종관의 눈이 꿈틀했다.
“…괴물이라고?”
이번 일을 계획하며 선우진은 배종관에게 이렇게 주문했었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이 있거든 절대 참지 말라고.
너는 이제부터 분노 조절을 못 하는 사파의 무뢰배가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배종관이 선우진의 말을 충실히 따른다는 건 지난 흑상방 사건 때 이미 증명된 일이었다.
배종관은 팔짱을 풀고는 자신의 앞에서 악을 쓰고 있는 한 낭인을 스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당장 비켜라, 이 괴물아! 그렇지 않으면…!”
그러곤 벼락같이 손바닥을 내리찍었다.
퍼어억!
“꾸에에엑!”
낭인은 땅바닥에 처박힌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어야만 했다.
마치 파리를 잡듯 휘둘러진 배종관의 거대한 손바닥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아주 간단하게 한 명을 납작한 개구리로 만들어 버린 배종관이 스산한 눈빛으로 낭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에게 괴물이라고 했겠다?”
그러자 이제야 상황을 깨달은 다른 낭인이 고개를 저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니. 나는 그런 적이…!”
하지만 배종관은 그 변명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감히!”
부아아아앙!
배종관의 두꺼운 기둥 같은 팔뚝이 수평으로 휘둘러지자 그 사정거리에 위치했던 모든 낭인들이 가볍게 쓸려 나갔다.
퍼퍼퍼퍼퍽!
“우워어어억!”
“끄어어억!”
“꾸웨에엑!”
“끼에엑!”
단 한 번 팔을 휘둘러 앞에 있던 네 명의 낭인들을 가볍게 날려 버리는 배종관의 괴물 같은 모습에, 낭인들은 해청연을 보느라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그의 몸을 이제야 주목해 봤다.
그러자 그의 몸이 보였다.
일반 남자들보다 머리 두 개는 커 보이는 신장, 그럼에도 길어 보이기보다 오히려 두꺼워 보이는 엄청난 체격. 게다가 온몸을 울퉁불퉁하게 채우고 있는 바위 같은 근육까지.
그야말로 괴수에 가까운 자였다.
게다가 그 괴수의 분노는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배종관이 포효했다.
“감히 나를 괴물이라고?!”
그러고는 전방에 뭉쳐 있는 낭인들에게로 돌진했다.
당황한 낭인들이 미처 피할 수도 없었던 엄청난 속도였다.
“어어어어?!”
“자, 자, 자, 잠깐!”
“우와아아아?!”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날아오는 듯한 환상에 ‘우워어!’ 소리만 지르고 있던 낭인들은 그의 몸과 접촉한 순간 새로운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콰아아아아앙!
“우와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살려 줘어어어!”
자신들의 몸이 가볍게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이 새하얗게 될 정도의 고통과 다음 순간 느껴지는 아득한 부유감에 낭인들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주변에 흩어져 있다 운 좋게 배종관의 돌진을 피한 낭인들은 입을 떡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배종관 한 명의 충돌로 이십여 명의 낭인들이 조약돌처럼 가볍게 튕겨 나가고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전선의 바깥에서는 처음 선보여진 금강비성이었다.
그러자 연무장 외곽 담장 지붕 밑, 그림자에 은신한 채 지켜보고 있던 비사영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같은 편인데…. 저래도 되는 거냐?”
하지만 선우진은 배종관이 간귀 떼 패듯 낭인들을 짓밟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죽이지는 않았잖아? 다 계획대로라고.”
“그래?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기 일보 직전인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종관이 누굴 패 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 알아서 조절하겠지.”
하지만 배종관이 패 본 경험은 대부분 간귀들이 아니었냐고 반문하려던 비사영은, 문득 여기서 말해 봐야 의미 없다는 생각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연무장에선 이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낭인들이 겨눈 무기를 배종관이 몸으로 돌진해 부숴 버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비사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절정 고수와 진짜 괴물인 마인들이 가득한 전선에서만 있어 잘 몰랐지만, 일류 중급의 무위에 마인보다도 단단한 몸을 갖고 있는 배종관은, 절정에 도달하지 못한 무인들에겐 그야말로 괴수와도 같았던 것이다.
이제 사방으로 도망치는 낭인들을 쫓아가 두들겨 패고 있는 배종관을 바라보며 비사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놈도 사실 마인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