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독수 오 남매-6
배종관은 정협방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 나는 독수 오 남매의 맏이 배종관이오! 정협방의 오백여 형제 중 정녕 나와 겨루어 보실 분이 한 명도 더 없단 말이오?!
배종관이 양호웅을 쓰러뜨린 후 약간의 시간이 지나도록 정협방 쪽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한 배종관이 도발하듯 소리를 질렀던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협방의 무사들은 차마 나갈 수가 없었다.
배종관의 주먹 한 방에 턱뼈가 으스러진 채 기절해 버린 양호웅은 정협방의 일류 무사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자였다.
엄청난 거력에 타고난 민첩성, 거기에 탁월한 전투 감각까지.
정협방 무사들 사이에서도 그는 기피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를 한 방에 침묵시켜 버린 배종관과 감히 싸우겠다고 나올 수 있는 자가 있을 리 없었다.
믿었던 양호웅을 잃고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황장곤의 얼굴만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반면에 산검문의 문주 허경은 부하들 사이에서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으하하하하하! 아이고, 웃겨! 오백 명 중에서 나올 사람이 한 명도 없냐고?! 으하하하하하! 아이고, 시원해! 아이고, 통쾌해!”
살면서 이렇게나 통쾌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할 수만 있다면 정협방 쪽으로 당장 달려가 황장곤의 표정을 한번 보고 싶을 정도였다.
한참을 시원하게 웃던 허경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외총관 허전삼을 불렀다.
“외총관!”
그러자 역시 그의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던 허전삼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예, 예! 문주님!”
허경은 잠시 뜨거운 눈빛으로 허전삼을 바라보더니만 갑자기 달려들어 그를 와락 껴안았다.
“어이쿠!”
“수고했네! 수고했어! 대체 어디서 저런 인재들을 데려왔는가?! 이 모든 게 자네 덕분일세! 고맙네!”
그렇게 허경이 허전삼을 끌어안고 기뻐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정협방 쪽 무사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흥! 보잘것없는 외공 따위로 운 좋게 양호웅을 꺾었다고 기고만장했구나! 네놈은 이 어르신들께서 상대해 주마!”
그렇게 소리치며 뛰어나온 자들은 사천성에서 꽤 이름을 떨치고 있는 쾌도의 달인들인 번쾌오도였다.
다섯 명 모두 일류의 무인들인 그들은 빠른 도법과 더불어 빠른 신법으로도 유명한 자들이었다.
누구를 내보내야 할지 몰라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황장곤은 그들이 스스로 뛰어나가자 ‘호오’하는 탄성을 토해 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황장곤의 옆에 있던 무인이 그에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번쾌오도가 양호웅보다 뛰어난 실력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러자 황장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분명 저들은 양호웅보다 약하지. 하지만 자네는 이제껏 저 배종관이라는 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네? 아아, 그럼?”
“그래, 아마 빠른 신법으로 저자를 혼란하게 해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겠지. 그러곤 약점을 찾아보려 하는 모양일세.”
그리고 은신한 선우진 또한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이거 잘하면….’
선우진이 옆에 있던 비사영에게 급히 말했다.
“사영! 지금 당장 청연 소저에게 가서 내 말을 좀 전해 주겠어?”
“응? 무슨 말을?”
“만약….”
선우진의 말을 들은 비사영이 깜짝 놀라 물었다.
“뭐?! 그게 정말 가능할까?”
“아마도?”
“크크크, 알았다. 지금 당장 갔다 오지!”
비사영이 산검문 쪽으로 움직이자 선우진은 삭무흔에게도 이후의 계획을 전달했다.
그러자 설명을 모두 들은 삭무흔이 대답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근데 저 친구 정말 괜찮겠나? 외형만 봐서는 상대방이 신법으로 공략하려는 것도 틀린 선택처럼 보이지는 않네만.”
하지만 그의 걱정에도 선우진은 빙그레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종관은 분명히 느립니다. 하지만 그건 사영이나 저와 비교했을 때 얘기지요. 더군다나 요즘은 자신보다 빠른 상대에 대한 대책도 마련한 것 같더군요.”
같은 시간, 배종관의 앞으로 나온 번쾌오도의 맏이 초우선은 거리를 벌린 채 배종관에게 도를 겨누고 있었다.
“네놈이 양호웅의 도끼조차 몸으로 받아 낼 정도의 외공 고수라면 조문은 더욱 치명적이겠지? 내가 천천히 너의 조문을 찾아내 주마!”
외공을 익혀 몸을 단련한 무인들에겐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약한 부분인 조문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조문은 외공의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더 치명적이곤 했으니, 초우선은 지금 그곳을 찾아내 공격하겠다고 예고한 것이었다.
그러자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배종관은 말없이 등에 메고 있던 짧은 월도와 장봉을 꺼내 들더니, 그것을 간단히 조립해 긴 언월도를 만들어 냈다.
일전에 선우진이 흑상방에서 가져와 선물해 줬던 그 언월도였다.
그걸 본 초우선이 코웃음을 쳤다.
“흥! 사거리를 늘려 접근을 막을 셈이냐? 제법 머리를 썼구나! 하지만 그런 걸로 내 신법을 잡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마라! 자, 이제 시작해 볼까?!”
그러곤 비릿하게 웃으며 자세를 낮춰 앞으로 뛰어나갈 태세를 갖췄다.
그때였다.
파박!
배종관의 거대한 몸이 그보다 먼저 폭발적인 속도로 돌진해 왔다.
마치 투석기가 쏘아 낸 바위와도 같은 돌진이었다.
“으윽?!”
막 앞으로 뛰어나가려던 초우선은 경악한 표정으로 황급히 방향을 틀어 옆으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배종관이 수평으로 휘두른 언월도가 그를 덮쳤다.
부아아아앙!
엄청난 지름의 반원을 그리며 덮쳐 오는 언월도에 초우선은 황급히 도를 휘둘러 언월도를 쳐내려 했다.
“이익!”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채캉!
배종관의 거력이 담긴 언월도와 부딪치는 순간 그의 도가 수수깡처럼 부서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무, 무슨?!”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도를 부순 언월도가 그다음으로 초우선의 몸마저 과격하게 갈라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푸화악!
“커헉!”
단 일격에 초우선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아까 양호웅이 했던 것과도 겹쳐 보이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대원을 그린 과격한 일격이었다.
그러자 사위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정협방도들은 물론 산검문도들도 경악한 얼굴로 입만 떡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산검문도들 쪽에서였다.
“우와아아아아아!”
“대단하다!”
“배종관!”
“독수 오 남매!”
소리를 지른 것은 번쾌오도의 다른 형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들은 비통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대형!”
“이놈이 감히?!”
“다음은 내 차례다!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야 말겠다!”
“우상! 내가 먼저다! 차례를 지켜라!”
“하지만 둘째 형님!”
번쾌오도의 나머지 형제들이 서로 먼저 나서겠다며 다투고 있을 때였다.
배종관은 스산한 표정으로 다시 자세를 낮췄다.
저 정도의 상대들이라면 한 명씩 상대하는 것도 귀찮았다.
“만약 내가 죽거든 내 복수를…!”
셋째 초우상에게 뒤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있던 둘째 초우영은 미처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파박!
배종관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이놈?!”
“무슨 짓이냐?!”
경악한 형제들이 도를 들어 대항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전면까지 돌진해 온 배종관은 또다시 언월도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부아아아아앙!
언월도가 거대한 반월을 그리자 초우선이 그랬듯 그의 동생들도 배종관의 언월도를 막아 낼 수 없었다.
채캉! 푸화악!
“끄아아악!”
“으어어억!”
“크허억!”
“허어억!”
단 일격에 네 명의 병장기와 몸이 분리되는 광경은 늘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왔던 무인들에게 있어서도 비현실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 정협방의 무인들은 할 말을 잃었고,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산검문의 무인들은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뜨거운 함성을 쏟아 냈다.
“우와아아아아아!”
“금강역사 배종관!”
“항우재림 배종관!”
정협방의 황장곤과 산검문의 허경마저도 할 말을 잃은 채 입을 떡 벌리고 배종관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해청연으로부터의 전음을 들은 산검문의 외총관 허전삼이 허경에게 급히 말했다.
“문주님! 지금입니다!”
“으, 응? 뭐가 지금이라는 건가?”
“지금 들이치셔야 합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응?”
허전삼의 뜬금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허경은 한순간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산검문의 무인들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정도로 사기가 오른 상태였고, 반대로 정협방 무인들의 사기는 완전히 가라앉은 상태였다.
확실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물론 오늘은 전면전을 벌이지 않고 일대일 대결만을 하기로 했다지만, 그건 황장곤의 생각이었지 자신이 약속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허경은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절정 고수 두 명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들이 있다면 아무리 우리 사기가 올랐다 해도 결국 패배하게 될 텐데….”
그러자 허전삼이 자신 있게 단언했다.
“제가 따로 조사를 해 봤습니다만, 그 고수들은 아마 정협방 본방으로 잠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저들이 보유한 절정 고수는 황장곤 한 명뿐일 것입니다.”
사실 그가 조사한 것이 아닌 해청연이 알려 준 것이었지만, 허전삼은 이제 해청연이 물고기가 하늘을 날 거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게 된 상태였다.
검성의 딸인 것만도 충분히 믿음직스러웠는데 지금까지 보여 준 독수 오 남매의 모습이 너무도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허전삼에 대한 허경의 생각과도 비슷했다. 독수 오 남매를 데려와 이런 활약을 하게 만든 허전삼의 말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허경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외총관?”
“예! 확실합니다!”
그러자 허경은 비릿하게 웃음 짓고는 산검문 무사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 산검문의 문도들은 들어라!
갑작스러운 허경의 목소리에 산검문 문도들은 함성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 저 정협방이라 자처하는 위선자들은 비겁하게도 예고도 없는 기습으로 우리에게 쳐들어와 부방주와 이백여 명의 형제들을 몰살시켰었다!
물론 정협방이 예고 없이 기습했다는 건 거짓이었다. 또한 부방주와 이백여 명이 죽은 것도 기습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회담을 제안하고 오히려 기습하려다 벌어진 일이었지만 사파인인 그들에게 그런 사소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저들이 먼저 쳐들어왔고 그래서 부방주와 이백여 명의 문도들이 몰살당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한참 사기가 충천해 있던 산검문도들은 이제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비겁한 놈들!”
“정파의 위선자 놈들!”
“우리도 복수하자!”
“형제들의 원한을 갚자!”
잠시 기다리며 분위기가 달아오르길 기다렸던 허경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 문도들이여! 저 위선자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산검문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 형제들의 원한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러자 산검문도들은 이제 각자의 병장기를 뽑아 하늘을 향해 치켜들며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복수!”
산검문주 허경은 이제 직접 몸을 날려 앞으로 뛰어나오며 외쳤다.
- 그래! 복수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복수의 시간이다! 산검문도들이여! 모두 나를 따르라!
“우와아아아아아아!”
허경을 필두로 한 산검문도들이 노도와 같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한 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맹렬한 돌진이었다.
“저런 멍청한 놈들! 기껏 살려 주려고 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산검문들의 돌진에, 흉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린 황장곤이 정협방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원 전투 준비! 저 사파의 떨거지들에게 정협방도의 힘을 보여 주어라!”
그러곤 후방을 향해 외쳤다.
“두 분께서도 준비해 주시오! 나와 함께 허경을 칩시다!”
정체도 알 수 없고 행동도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방주가 딸려 보내 준 두 명의 절정 고수들이 후방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설사 지금 방도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포함한 절정 고수 세 명이 산검문주인 허경부터 죽인다면 그 사기쯤은 바로 뒤집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절정 고수들을 기다리던 황장곤은 곧 당황하고 말았다.
뒤쪽에 대기하고 있었어야 할 두 사람이 앞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 산검문도들은 이제 십여 장 앞까지 돌진해 오는 중이었다.
그들을 기다리느라 대응할 적기를 놓쳐 버렸던 것이었다.
황장곤은 어쩔 수 없이 명령부터 내리기로 했다.
더 늦었다간 선 채로 적들의 돌진을 받아 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전원 돌…!”
하지만 그는 잊고 있었다.
산검문도들 보다 훨씬 앞에서 돌진해 오던 자가 있었다는 것을.
“철신유성!”
코뿔소처럼 돌진해 온 배종관이 가장 선두에 있던 정협방도들에게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커어어어어억!”
그의 몸통 박치기에 십여 명의 정협방도들이 가볍게 공중으로 튕겨 나가는 광경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충돌로 자신의 주변을 휑하게 만들어 버린 배종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며 언월도를 힘껏 휘둘렀던 것이다.
부아아아아앙!
그러자 그의 언월도가 그려 낸 커다란 만월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쩌저정!
푸화아악!
“크아아아악!”
“끄어어어억!”
“살려 줘어어어!”
어떤 사람도, 어떤 병장기도 배종관의 언월도가 핏빛 만월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일류 중급 이하의 무인들에게 있어서 배종관의 괴력은 마치 재앙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류 상급 이상의 무인들은 배종관의 언월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다는 것도, 그가 수평으로 언월도를 휘두르는 동안 위쪽으로 큰 허점이 생긴다는 것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배종관이 다시 수평으로 언월도를 긋는 것과 동시에 몇 명의 일류 무사들이 위쪽으로 뛰어 배종관의 머리를 덮쳐 갔다.
파박!
“걸렸다!”
“죽어라, 이놈!”
물론 놈의 외공을 생각했을 때 바로 피해를 입힐 수는 없겠지만 언월도의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 온몸을 찌르다 보면 조문도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배종관을 향해 무기를 찔러 갈 때였다.
갑자기 배종관의 후방에서 누군가가 비호처럼 뛰어나왔다.
삼국지의 조자룡을 보는 듯 장창을 꼬나 쥔 잘생긴 사내였다.
“하아압!”
그의 장창이 십여 개의 빛줄기로 분열하며 배종관을 덮쳐 가던 정협방도들을 쓸어 갔다.
푸슈슈슈슉!
“뭐, 뭐냐?! 으아악!”
“고, 고수다!”
“끄아아악!”
이미 죽은 이들은 알 리 없겠지만 그는 독수 오 남매의 둘째인 창혁…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설풍이었다.
그의 뒤로 독수 오 남매의 나머지 세 여인들이 정협방도들을 덮치고 있었다.
푸하아악!
“끄아아악!”
“아아악! 살려 줘!”
또한 점창검호 제원영과 세 명의 조원들이 분한 괴산사검도 있었다.
쉬이이이익!
“흐억!”
“뭐, 뭐냐, 이건?! 아아악!”
점창의 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두 번째로 인정받고 있는 점창검호 제원영에게, 두 번의 검격이 필요한 자들 따위는 없었다.
모두가 제원영의 검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두고 있었다.
설풍에 해청연, 제원영까지.
일류의 경지라고 속이긴 했지만 원래 절정의 고수들이 세 명이나 속한 그들을 정협방도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막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뭣들 하는 거냐?! 우리가 훨씬 더 많다! 제대로 대응하기만 해도…! 허억!”
간부급 인원들이 진형을 정돈하려고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 가고 있었다.
- 열두 명쨉니다.
- 열일곱 명이네, 선우 소제. 아직 많이 부족하군.
미리 은신한 채 대기하고 있던 삭무흔과 선우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간부급 무사들을 암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협방의 진형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기세를 탄 산검문도들 전원이 들이받자 이제 이백과 오백이라는 인원 차이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황장곤을 이를 갈며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진형의 붕괴를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눈앞에 역시 절정 고수인 산검문주 허경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허경이 사납게 웃으며 소리쳤다.
“황장곤! 또다시 아까처럼 입을 놀려 보려무나!”
황장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알기로 허경의 경지 또한 자신과 비슷한 내공 칠십 년에서 팔십 년 사이의 절정 고수였다.
그러니 아마 승부를 가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마도 둘의 승부는 본신의 실력보다도 주변 상황에 의해 많이 좌우되겠지.
그러곤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곳에서 정협방도들이 학살당하는 중이었다.
참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