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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61화 (61/359)

61화 실마리-1

산검문이 정협방을 격파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귀주성과 사천성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불과 이백여 명의 인원으로 오백여 정협방도들을 격파해 지난 패배를 설욕하고, 심지어 철장대협 황장곤까지 사망하게 만든 대승이었다.

이 전투의 결과를 들은 사람들은 처음엔 불신했고, 그 다음엔 경악했으며, 마지막으론 감탄했다.

그리고 이 전투와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히게 된 이름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신지 절강성에서 왔다는 독수 오 남매였다.

지금 귀주성의 무인들, 특히 낭인들 사이에선 어느 곳이든 이들에 관한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특히 이 전투를 실제로 겪었던 이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그래서! 막 지검삼녀의 막내 지상임 소저의 환검이 수십 개로 분열하고 온 사방이 검영으로 가득 찼는데! 그때 쾌도묘랑 천주은 소저가 딱 이형환위를 사용하자…!”

“뭐?! 이형환위라고?! 그게 말이 되나?! 아직 일류의 무인이라며?!”

“아, 거참 답답하네! 내가 직접 봤는데 틀림없는 이형환위였다니까! 눈 깜짝할 사이 막 상대방의 등 뒤에서 ‘쌱!’하고 나타나는데 그게 이형환위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아, 잡음 좀 넣지 말게! 열심히 듣고 있는데! 빨리 계속 해 보게. 그래서 어떻게 됐나?”

“아, 그래, 그래. 그래서 천 소저가 눈 깜짝할 사이 막 상대방의 등 뒤에 나타나더니 여유 있게 도를 거두는데, 그때서야 지상임 소저의 배에서 피가 푸와악! 크아아! 그 광경은 진짜! 그걸 직접 봤을 때 난 너무 멋있어서 오줌까지 지릴 뻔했지 뭔가!”

천주은이 새롭게 갖게 된 별호는 쾌도묘랑이었다.

십삼대 칠 조에서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배종관과 천주은은 가명이 아닌 본명을 쓰기로 했기에, 이 별호는 천주은이란 이름이 갖게 된 최초의 별호이기도 했다.

낭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뿐인가?! 지검삼녀의 맏이 지상화 소저가 동생의 복수를 하겠다며 천 소저에게 딱 검을 겨누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천 소저의 앞에 그녀의 셋째 언니인 유검선자 서유 소저가 나타난 거야! 어우! 난 무슨 하늘에서 선녀가 나타난 줄 알았다니까! 근데 그녀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는데! 와아, 그건 정말! 그건 진짜 천상에서 강림한 선녀의 춤사위였다네! 다시 떠올려 봐도 말이 안 나올 정도로군!”

나서유가 서유라는 이름으로 갖게 된 별호는 유검선자였다.

이야기를 풀던 낭인은 문득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는지 잠시 몽롱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주변의 낭인들이 짜증을 내며 이야기를 재촉했다.

“아,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면 어떡해?! 빨리 계속 하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다른 낭인들의 재촉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낭인이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아, 그래, 그래. 서유 소저의 검무를 떠올리니 또 그 환상적인 기분이 떠올라서 말이지. 이건 정말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니까. 서 소저의 검이 어찌나 아름답고 우아한지 말일세! 난 대결이 아니라 무슨 검무를 보는 줄 알았지 뭔가! 근데 또 놀라운 건 그 부드러운 검에 지상화 소저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패배를 인정했다는 거지! 이제껏 난 유능제강이란 말이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개소리인줄 알았는데, 그걸 보는 순간 처음으로깨달았다네! 아! 유능제강이란 것이 바로 저런 것을 말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말일세!”

거기까지 말한 낭인은 문득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주변 낭인들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하지만 말일세. 이때까지는 까마득하게 몰랐다네. 별들이 아무리 밝아 봐야 태양 앞에선 그 빛을 감추고 만다는 사실을 말이야. 지검삼녀의 지상임 소저도, 쾌도묘랑 천주은 소저도, 유검선자 서유 소저도 모두 엄청나게 아름다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태양이 뜨기 전까지의 일이었거든.”

그의 의미심장한 표정과 말에, 듣고 있던 낭인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다른 낭인들 또한 이미 그 태양이 누구를 말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질 급한 낭인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녀가 바로 연해 소저였구먼?! 그 천상미희라는?!”

“그렇지! 그녀가 바로 천상미희 연해 소저였네. 진정한 태양, 진정한 선녀, 아름다움 그 자체인 천상미희 말일세!”

그러자 한 낭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녀가 진짜 그렇게나 아름다운가? 무슨 모든 사람들이 얼어붙어 버렸다느니, 시간이 정지했다느니. 소문이 너무 과장된 거 아닌가 싶던데?”

하지만 그의 물음에 이야기를 하던 낭인은 코웃음을 치며 반문했다.

“흥! 과장이라고? 진짜 웃기는 개소리로군. 연해 소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모두 환상을 보고 있는 줄 알았다네. 아무렴! 환상이 아니라면 사람에게서 그렇게 광채가 난다는 게 가능이나 할까? 다른 소저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녀가 나타나기 전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던 다른 소저들은 그때부터 눈에도 들어오지도 않았다네! 크으! 내가 그 싸움으로 부상만 안 당했어도 여전히 산검문에서 연해 소저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낭인의 안타까운 탄식에 다른 낭인들이 슬슬 눈치를 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직접 산검문으로 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현재 산검문에 지원한 낭인 무사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난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천상미희 연해의 소문을 듣고 산검문으로 몰려가는 낭인들의 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낭인 한 명이 물었다.

“근데 그 독수 오 남매의 오라버니들이라는 자들은 어떤가? 그들도 대단하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러자 이야기를 하던 부상당한 낭인이 갑자기 뭔가 끔찍한 것을 떠올린 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으으으! 독수 오 남매의 맏이, 그자에 대한 얘기는 하지도 말게. 그자는 정말… 사람이 아니고 괴물임에 틀림없다네. 아마 혈교에서 만들었다는 마인들이 아닐까 싶네. 아무렴! 틀림없을 걸세!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일류 무사가 내리친 도끼를 맨몸으로 버텨 낼 수 있겠는가? 아니, 버텨 낸 것도 아니었지. 오히려 부숴 버렸다니까! 철신유성 배종관, 놈은 정말 끔찍한 괴물이라네! 혹시나 산검문에 가더라도 그자의 옆에는 절대 얼씬도 하지말게나!”

얼굴 가득 두려움이 담긴 낭인의 표정에 다른 낭인들 역시 두려운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다른 낭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둘째는 어땠나? 유독 둘째에 대한 소문만 없더군?”

“둘째? 재림자룡 창혁 말인가? 나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본 사람들 말로는 그자의 창 솜씨야말로 귀신같다고 하더군. 그 전투에서 오히려 철신유성 배종관보다도 더 많은 정협방도들을 참살했다던가? 오죽하면 딱히 사람들 눈에 띈 적이 없는데도 재림자룡이라고 불리겠나? 귀신같은 창술이나 잘생긴 외모가 삼국지의 조자룡을 연상케 한다지 아마?”

그 말에 낭인들이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과연 신지 절강성에서 온 자들이라 그런가? 이제껏 이름도 들어 보지 못했던 자들이 어떻게 그렇게나 비범할 수가 있지?”

“그러게. 그들과 함께 절강성에서 온 괴산사검이란 자들도 대단한 실력들이라고 하던데 말일세.”

백여 년 전, 절강성에서 무림의 절대자 무신, 뇌신, 검신이 차례로 등장하며 연이은 위기에서 각각 무림을 구해 낸 이후, 무림인들은 절강성을 신지라고 부르며 신성시했다.

사실 해청연 또한 그런 이유로 자신들을 절강성 출신이라고 속인 것이었다.

문득 한 낭인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재림자룡이라니, 참 부러운 별호로군. 그러고 보니 첫째인 철신유성 배종관에게도 삼국지 인물에 관한 별호가 하나 붙었다고 하지 않았나?”

“응? 아아아! 그거 말이로군. 맞네. 그 괴물에게도 재림허저라는 별호가 붙었었지. 그 거대한 체격이며 험상궂은 얼굴이 딱 삼국지의 허저 같았거든!”

***

같은 시각, 이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나 벌써 백여 명을 넘어선 산검문의 낭인들은, 멀찍이 떨어진 채 독수 오 남매의 일거수일투족을 힐끗거리는 중이었다.

특히 그들 대부분의 시선은 해청연에게로 쏠려 있었다.

직접 보게 된 천상미희 연해, 해청연의 자태는 정말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낭인들은 혹시라도 들릴까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저것 봐. 천상미희 연해 소저야.”

“세상에, 정말 저런 미인이 세상에 있을 수 있었구나. 유검선자 서유 소저나 쾌도묘랑 천주은 소저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연해 소저 때문에 아예 보이지도 않잖아?”

“하아. 가까이 가서 말 한 마디라도 걸어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텐데.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구먼.”

“자넨 그런가? 나는 이번 일을 무보수로 일해도 상관없을 것 같네.”

지금 낭인들이 단 한 가지 소원하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한 번 걸어 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는 괴물인지 사람인지 헷갈리는 근육질 거한이 한 명 버티고 있었다.

철신유성 배종관.

그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낭인들은 차마 천상미희의 옆으로 다가가 볼 수도 없었다.

직접 보게 된 천상미희 연해가 아름다운 것만큼이나, 직접 보게 된 철신유성 배종관의 거대한 체격이 두려운 것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보수는 받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목숨까지 걸 자신은 없었던 낭인들은 오늘도 천상미희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먼발치에서 그들의 모습만 힐끗거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낭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지금, 독수 오 남매는 둘째인 재림자룡 창혁이 자리를 비운 가운데, 첫째 배종관을 중심으로 세 명의 미인들이 그에게 뭐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낭인들은 또한 부러움에 가슴을 움켜잡아야만 했다.

“저것 봐, 저거! 저 철신유성이란 자는 어떻게 저런 미인들 사이에서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한 차가운 표정으로 있을 수가 있지? 나 같으면 벌써 하늘을 날아가는 표정이 되고도 남았겠다.”

“너는 그게 궁금하냐? 나는 대체 저 괴물이 전생에 뭔 짓을 했기에 저런 복을 받고 있는지 부러울 따름이다. 엉?! 저거, 저거, 서유 소저가 저렇게 다정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 주는 것 좀 보라고. 근데도 표정이 시큰둥하네.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서유 소저뿐인가? 연해 소저와 천주은 소저도 계속 말을 걸어 주고 있잖아. 진짜 전생에 나라라도 몇 개 구한 놈인 건가? 얼씨구? 저놈 저거, 소저들이 웃으며 말을 걸고 있는데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냥 일어나 버리네?”

“하아, 저게 진짜 영웅의 모습인 건가? 미인들을 얻으려면 저런 부동심을 가져야만 했던 건가?”

“크으, 멋지군! 좋아! 나도 이제부터 저런 남자가 되고야 말겠네!”

“좋아! 나도 그래야겠군!”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영웅 배종관의 실상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서유는 지금 풀이 죽은 채 쭈그려 앉은 배종관을 위로하고 있던 중이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배 공자.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 걸 거예요.”

그러자 배종관은 애써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나 소저.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 얼굴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 배종관의 표정을 보며, 나서유는 과장된 말투로 화를 냈다.

“어휴, 사람들이 정말 어쩜 그렇게 무식할까? 언월도를 쓰는 허저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언월도 하면 딱 관운장이 나와야 하는데 말이에요! 재림허저가 뭐야, 재림허저가!”

칠 조의 동료들은 잘 알고 있었다.

배종관이 그간 왜 그렇게 열심히 월도술을 익혀 왔는지, 그가 얼마나 삼국지의 관우를 좋아하는지를 말이다.

처음 선우진이 언월도를 건네주며 관우의 얘기를 한 이후로, 배종관은 관우와 관련된 별호를 얻겠다는 일념 하나로 외공수련만큼이나 열심히 월도술을 익혀 왔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언월도를 휘둘러 활약하는 날만을 기다려 왔었는데, 심지어 그래서 이름도 배종관이란 본명을 사용했던 건데.

막상 언월도를 휘둘러 얻게 된 별호가 생뚱맞게도 관우가 아닌 재림허저였던 것이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천주은 역시 나서유의 말에 맞장구쳐 줬다.

“맞아요! 당연히 재림관우라는 별호가 붙었어야죠! 음, 그리고 어쩌면 배 공자가 아직 절정 고수가 아니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아직 일류에 불과한 배 공자에게 관운장에 관한 별호를 붙여 주기는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 말에 배종관의 눈이 조금 빛을 되찾았다.

꽤 설득력이 있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천 소저?”

“그럼요! 아무래도 관운장은 무신이라고 불리는 분이시잖아요? 그러니까 배 공자가 절정 고수가 된다면 당장이라도 재림관우라는 별호를 붙여 줄 거예요!”

그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해청연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근데 같은 일류로 꾸몄어도 설풍 조장은 재림자룡이라고 불리고 있잖아?”

“아, 그, 그건, 언니 쫌….”

“아하하, 청연아? 우리 잠깐 나갈까?”

평상시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여인인 듯하다가도 사람의 정서와 관련된 부분에서만큼은 그렇게 눈치 없을 수가 없는 해청연의 사실 폭격에, 천주은과 나서유가 이를 악물고 그녀를 격리하려고 해 봤다.

하지만 배종관은 이미 풀이 푹 죽은 후였다.

배종관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 몸이나 좀 풀고 오겠습니다.”

“아, 배, 배 공자?”

산검문의 영웅으로 등극한 독수 오 남매가 이런 얘기들이나 하고 있음을, 먼발치에서 하염없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낭인들은 전혀 알 리가 없었다.

***

“으음, 독수 오 남매라고?”

“예, 대주님. 현재 어느 곳을 가든 그들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특히 천상미희 연해 소저라는 여인에 관한 관심은 정말 대단들 하더군요. 아마 그들의 계획대로 혈교의 마두들 역시 관심을 가질 것 같았습니다.”

“흥!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운씨세가의 세력권인 귀주성 금사 근처의 한 객잔.

객잔 이 층의 방 안에서 십이대주 만종임과 십이대 일 조장 도무곤은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선우진들과 떨어져 행동 중인 십이대주 만종임과 십이대 일 조원들은 그간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눈에 띄는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야 듣지 못했겠지만, 선우진이 예전에 했던 말처럼 외부인인 그들이 귀주성에서 운씨세가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해청연이 했던 것처럼 하오문을 이용해 보자는 생각에 일 조장인 도무곤이 만종임에게 건의해 봤지만, 그는 그것조차도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흥! 사파인 하오문 따위에게 의지해서야 정파의 대협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느냐?! 우리의 힘만으로 찾아내겠다!’

결국 만종임이 자신의 말을 번복해 하오문을 찾아가기로 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일주일 정도를 허비한 이후였다.

하지만 그 후로도 일이 안 풀리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연고도 모르는 그들이 하오문 지부의 위치를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며칠이 지나서야 낭인 무사들을 수소문해 간신히 하오문 지부를 알아냈고, 드디어 그곳을 방문하게 된 것이 바로 어제였다.

일 조장 도무곤이 문득 한숨을 푹 내쉬며 만종임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주님? 하오문 지부에서조차 아무 정보를 얻지 못했으니 이제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습니까?”

도무곤의 질문에 만종임이 못마땅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크흠.”

분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어제 방문했던 하오문 지부에서도 그들은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거력마의 행방은 물론 혈교와 관련된 어떤 정보도 말이다.

더군다나 만종임은 도무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운씨세가가 혈교의 세력이 아니냐며 직접적으로 묻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해 그들이 받을 수 있었던 건 그저 어이없는 듯한 비웃음뿐이었다.

문득 어제의 일을 떠올린 만종임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역시 사파의 잡졸들 따위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두고 보자. 혈교 다음엔 너희 사파들 차례다!”

어제의 수치심을 잊지 못한 듯한 만종임의 모습에 도무곤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심으로 십삼대 쪽 인원들과 합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주님, 이렇게 된 거 저희도 그냥 십삼대 쪽 인원들과 다시 합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만종임이 바로 노호성을 터트렸다.

“무슨 소리! 사파들의 편에 서서 정파인 정협방과 싸우고 있는 자들과 어찌 합류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고도 무곤 네놈이 정파의 무사라고 할 수 있느냐?! 비록 혈교의 마두들을 찾아내기 위함이라지만, 감히 정파의 동도들인 정협방을 공격한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라도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인데! 심지어 그들에게 합류하자고?! 네놈이 미쳤구나!”

저 대단한 자존심에 동의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오히려 화를 내는 만종임의 모습에 도무곤이 내심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주님. 답답한 마음에 그만.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도무곤은 사실 선우진의 생각처럼 정협방도 충분히 의심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얘기를 만종임에게 해 봐야 아무 소용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만종임이 못 이기는 척 목소리를 줄였다.

“흠, 흠. 그래. 잘못을 인정했다니 됐다. 하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대주님.”

결국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지만 도무곤은 굳이 꼬집지 않았다.

다시 또 물어보면 이번에도 화를 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막막한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때였다.

휘이익! 타닥!

창문 밖에서 갑자기 날아온 무언가에 만종임과 도무곤이 날렵하게 물러서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누구냐?!”

하지만 그것이 그저 돌멩이일 뿐이라는 것을 확인한 만종임은, 바로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휘이익!

“어떤 놈이냐?!”

돌멩이를 던진 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혈교와 관련된 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다.

확률이야 극히 낮겠지만 그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혈교도가 아니더라도 시비를 걸어온 자에게 답답한 속을 풀겠다는 생각도 좀 있었다.

하지만 만종임은 바로 뛰어나갔음에도 돌멩이를 던진 사람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객잔의 밖에서는 그저 일반 백성들만이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지나다닐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를 갈며 되돌아와야 했던 만종임은, 객잔에서 돌멩이를 살펴봤던 도무곤으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대주님! 돌멩이에 이런 서신이 묶여 있었습니다!”

“뭐? 서신이라고?”

깜짝 놀란 만종임이 황급히 서신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그곳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거력마의 행방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자정에 서쪽 숲으로 오시오.]

만종임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크게 확대됐다.

그가 십삼대와 따로 떨어진 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실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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