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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64화 (64/359)

64화 거력마-2

거력마 저웅원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무려 내공 칠십 년 이상인 놈들 둘을 붙여 줬는데 다 말아먹고 혼자서 돌아오다니.

귀잔도 소유릉의 말로는 부하 한 명은 무사할 거라고 했지만, 그것도 진짜 돌아와야 알 수 있는 얘기였다.

만약 그놈도 돌아오지 못할 경우 열 명이었던 인원은 이제 다섯 명으로 줄어 버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

거력마가 부하들의 목숨을 아껴서가 아니라 소면마군 사원양이 시킨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경우 자신의 목숨 또한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이 멍청한 놈 같으니!”

저웅원이 치솟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자 소유릉은 무릎을 꿇은 채 푹 고개를 숙였다.

그 짜증 나는 머리통을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그를 죽이면 이제 달랑 네 명만 남게 될 테니까.

더군다나 소유릉은 남은 놈들 중 그나마 제일 쓸 만한 부하가 아니던가.

“으아아아아아아악!”

끓어오르는 분노를 풀 길이 없어 포효하던 저웅원은 문득 뒤의 부하에게 맡겨 놨던 여인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그녀는 데리고 온 열 명 중 여섯 번째 여인이었다.

사원양이 보내 준 열 명의 여인 중 다섯 명은 이미 가지고 놀다 죽인 상태였던 것이다.

그나마 그것도 사원양이 더 이상 시선을 끌지 말라고 경고했기에, 다른 곳에서 여자를 잡아 오지 않고 데리고 있는 여자만 아끼고 아껴서 한 명씩 차례로 꺼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그래서 아직도 다섯 명이나 남아 있었던 것인데….

하지만 오늘 이 기분으론 도저히 그렇게 못 할 것 같았다.

마음껏 가지고 놀다 엉망으로 부숴 버려야 그나마 마음이 좀 풀릴 것 같았다.

“그년을 다오!”

저웅원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여인을 안고 있던 부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이미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던 여인의 눈이 절망의 빛으로 가득 찼다.

아무래도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그때였다.

“웃차!”

갑자기 흑의 복면인 한 명이 담장을 넘어 마당에 착지했다.

그를 본 혈교도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누구냐?!”

“웬놈이냐?!”

하지만 그 복면인 또한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그가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너는 거력마 저웅원?!”

그러자 ‘이건 또 뭐 하는 놈인가?’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저웅원의 눈이, 자신을 알아보는 놈의 목소리에 급작스럽게 확대됐다.

나를 알아보다니! 어떻게?!

저웅원이 황급히 소리쳤다.

“네놈은…?!”

하지만 저웅원은 그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놈이 다시 황급히 몸을 날리더니만 담장을 넘어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파박!

너무나도 신속한 도주에 당황한 혈교도들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 함께 몸을 날렸다.

“이놈!”

“멈춰라!”

하지만 저웅원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멈춰! 너희는 이곳을 지켜라! 내가 잡아 온다!”

그 목소리에 우뚝 멈춘 부하들을 뒤로한 채 저웅원의 육중한 몸이 날렵한 제비처럼 담장을 넘어 복면인을 쫓아갔다.

‘나를 알아보다니, 절대로 살려서 보낼 수 없다!’

만약 놈이 자신의 존재를 소문내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정말 끝장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소면마군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부하들에게 맡겨 놓는 것도 불안했다.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만 했다.

저웅원은 최고 속도로 달려갔다.

하지만 별로 강해 보이지도 않던 복면인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아마 신법의 고수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웅원으로선 알 수 없었다.

지금 이 속도도 비사영이 그를 끌어내기 위해 적당히 맞춰 주고 있는 것이라는 걸.

비사영은 속도를 조절하며 저웅원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법 빠른 놈이군, 그렇다면….’

저웅원은 내공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저웅원이 비사영을 쫓아 담장을 넘자 삭무흔이 내게 전음을 보내왔다.

- 놈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네. 바로 가지!

하지만 나는 그를 만류했다.

- 잠시만요, 삭 형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이대로 우리가 들이친다 해도 저들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저쪽 전력은 절정 초입 정도로 보이는 자 하나와 내공 칠십 년 이상인 것이 확실한 절정의 무인 하나. 거기다 일류 최상급으로 보이는 자들이 두 명 더 있었으니까.

그에 비해 우리 쪽 전력은 절정 초입인 나와 내공 칠십 년 이상인 삭무흔, 단 둘뿐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대로 정면으로 부딪치면 열세일 것이 틀림없었다.

삭무흔이 조급한 말투로 전음을 전해 왔다.

- 어차피 위치상 저들을 치기 위해선 우리가 장원의 마당 안쪽까지 가야 하네. 기습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야. 그럴 바엔 차라리 기세를 살려 한꺼번에 들이치는 것이 낫네.

그의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저들을 기습할 수도 없는 것이고 거력마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 딱 열을 셀 정도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 시간만 지나도 아마 놈들은….

내가 그렇게 전음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안에 있던 거력마의 졸개들이 안고 있던 여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년을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겁니까, 형님?”

그 말에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혈교도다운 놈들.

열을 셀 필요도 없었군.

그러자 개중 가장 고수로 보이는 녀석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하! 그냥 보고 있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건드렸다가 안 그래도 분노하신 저 단주님께 갈기갈기 찢겨지고 싶기라도 한 거냐?”

혈교도답지 않게 무척이나 이성적인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놈의 단호함에 내가 살짝 실망하고 있을 때, 그 부하들은 역시나 혈교도다운 근성을 보여 주었다.

놈의 단호한 대답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부하가 은근슬쩍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먼저 안는 건 안 되겠지만, 주무르는 것 정도야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표시가 남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음?”

그 말에는 놈도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구미가 당기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놈은 역시 기대한 대로의 대답을 들려줬다.

“하긴, 그저 만지는 거야 별 상관없겠지? 들키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그러자 의견을 제시한 부하가 환한 얼굴로 동의했다.

“예, 형님! 바로 그거지 말입니다!”

“흠, 그럼 저 단주님께서 돌아오시는지 한 명만 망을 보고 나머지 사람들은 즐기기로 할까?”

“예! 좋습니다, 형님!”

혈교도들은 희희낙락하며 망을 볼 사람을 정했다.

당연하게도 절정인 두 명은 망을 볼 생각이 없었기에, 일류 최상급 졸개 두 명 중 한 명이 망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결국 망을 보게 된 자는 처음 의견을 냈던 졸개였다.

“이, 이럴 수가….”

“크크크, 안됐구나.”

“네 팔자려니 하거라.”

“시간이 충분하다면 교대해 줄 테니, 잘 보고 있어야 한다.”

망을 보기로 한 졸개가 나라 잃은 표정으로 터덜터덜 담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자, 나머지 세 사람의 시선은 이제 여인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여전히 점혈당해 꼼짝도 못 하는 채로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움직였다.

- 지금!

파박!

담장 밖에서 우리가 번개처럼 튀어 나가자 무방비 상태로 걸어오던 졸개의 눈이 크게 확대되며 황급히 도를 뽑았다.

“저…!”

챙!

샤악!

하지만 우리가 놈의 양옆을 스쳐 가자, 벌어진 놈의 목에서 얇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 검이 놈의 도와 부딪친 사이, 삭 형님의 검이 놈의 목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 결과였다.

그러곤 바로 놈들에게로 들이치며 둘이 함께 암기를 던졌다.

“하아압!”

“훕!”

휘리리리리릭!

여인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놈들은 깜짝 놀라긴 했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맨 앞의 놈이 죽는 순간 이미 병장기를 뽑아 든 상태였다.

그러곤 양옆으로 퍼지며 우리가 던진 암기들을 피하거나 튕겨 냈다.

“흥!”

“어딜?!”

채챙! 챙! 채채챙!

확실히 절정의 고수들은 그렇게 쉽게 해치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일류인 자는 아니었다.

“꺼억….”

한 명 남았던 일류의 혈교도가 목에 박힌 내 비도를 손으로 쥐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이제 남은 건 절정 두 명뿐.

슬쩍 시선을 마주친 삭 형님과 나는 바로 양쪽으로 갈라져 남은 절정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내가 칠십 년 이상인 놈, 그리고 삭 형님이 절정 초입 쪽이었다.

“하압!”

선우십삼검 일초.

신응비상.

내 검이 날개를 펼치듯 찬란한 검광을 뿜어내며 놈을 덮쳐 갔다.

하지만 놈은 코웃음을 치며 바로 도를 마주쳐 왔다.

“흥! 어디서 잔재주를!”

촤아악!

그의 도가 맹렬한 기세로 공간을 갈랐다.

그러자 내 검광이 만들어 낸 날개는 단 일도 만에 두 쪽으로 찢겨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날개 뒤에 나는 없었다.

이미 천풍신법으로 흐르듯 빠지며 그의 후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곤 다시 한번 신응비상, 검광으로 만든 날개를 펼쳐 냈다.

“하아압!”

슈하아악!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신속한 공격이긴 했지만, 실력 차가 있다 보니 역시 그 정도로 유효타를 바랄 수는 없었다.

놈은 바로 몸을 돌리며 다시 도를 수평으로 그었고, 그 일격만으로 내 검초는 다시 흩어지고 말았다.

“개수작!”

촤아아악!

그리고 그 순간 내 신형은 또 다시 놈의 후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놓고 환검을 이용해 시선을 돌린 후 우세한 신법을 이용해 후방을 노리는 전법이었다.

놈은 나보다 실력이 우위임에도 좀처럼 공격을 하지 못하고 끌려다니자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인상을 팍 찡그리며 소리쳤다.

“쓸데없는 짓! 귀신 놀음이라도 하자는 거냐?!”

귀신 놀음이라….

틀린 얘기는 아니지.

삭 형님과 서로 수준을 바꿔 상대를 맡은 이유가 바로 내가 그 귀신 놀음에 능하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나보다 고수라고 해도 충분히 시간을 끌 자신이 있었거든.

슬쩍 시선을 돌리자 옆에서 삭 형님이 자신의 상대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절정 초입인 혈교도의 검이 어지러워 보이는 것이 아마 금방 끝날 듯했다.

그러자 내 상대의 시선 또한 그쪽을 향하더니만 바로 다급해진 표정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아주 돌머리는 아닌 모양이었다.

“이놈! 죽어랏!”

추화아악!

붉은빛 도강을 뿜어내는 놈의 도가 그물처럼 공간을 넓게 찢으며 짓쳐들어왔다.

피할 공간을 안 주려는 의도인 듯했다.

내 수준으로 감당하기 힘든 붉은 도강이 마치 그물처럼 넓게 펼쳐져 조여 오는 상황, 놈보다 하수인 나를 상대하기에 적절한 전법이라 할 수 있었다.

무척 곤란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천풍신법을 익히지 않았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놈의 도강을 피해 유령처럼 뒤로 물러선 나는 씨익 웃으며 천풍신법을 전개했다.

천풍신법 오의.

천풍난화.

샤아아악!

내 신형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잔상을 뿌리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천풍난화, 절정의 경지에 올라서야만 쓸 수 있기에 아직 비사영도 사용하지 못하는 천풍신법의 비기였다.

놈은 도강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는 내 잔영에 당황한 눈빛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쳤다.

“뭐, 뭐냐 이건?!”

이 초식을 처음 익혔을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환검을 사용하는 나와 이 천풍화엽은 상성이 아주 좋았다.

놈이 아직 내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 바로 역공에 들어갔다.

선우십삼검 십삼초.

환검경.

슈하아아악!

한순간 내 검이 수십, 수백 개로 분열했다.

그러곤 놈의 사방팔방을 둘러싼 채 유성우처럼 쏟아지려 했다.

쏴아아아아!

“이, 이럴 수가?!”

당황한 놈은 사력을 다해 도를 휘둘러 자신을 방어했다.

전에 마유겸과 싸웠을 때 알게 된 사실인데, 원래 나보다 경지가 높은 상대에게 환검은 그리 효과적인 공격 방법이 아니었다.

어설픈 환검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빈틈을 노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우십삼검 원래의 마지막 초였던 환검경에 그런 빈틈은 없었다.

극단적으로 엄청난 수의 환검을 만들어 내기에 빈틈이 생길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사위를 가득 채운 내 환검에, 놈의 도가 온 사방을 찢어발기듯 도강을 뿜어냈다.

“하아아압!”

추화아악!

그러자 허깨비처럼 흩어져 버리는 내 환검들.

이게 환검경의 가장 허무한 점이었다.

엄청난 공력을 들여 수십, 수백 개의 환검을 만들어 내지만, 모두가 허상이기에 실질적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공력 소모를 노린다기엔 내 공력 소모가 더 많은 괴이한 검초, 그것이 환검경이었다.

그래서 이제껏 사용을 자제해 왔던 건데….

자신을 덮쳐 왔던 수많은 검영들이 모두 환검임을 깨달은 놈의 눈빛이 안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비웃는 눈빛이 되어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짓을….”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걸 사용한 이유가 있거든?

놈은 아직 내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와중에 환검경을 파훼하느라 무리하게 큰 동작으로 도를 휘둘러 버리기까지 한 상황.

그에 비해 내겐 이전까진 없었던 무기가 하나 장착되어 있었다.

바로 초고속으로 상대의 허점을 찌를 수 있는 점창파의 사일검법이 말이다.

놈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내가 망설임 없이 검을 뻗었다.

사일검법 일초.

일시사일.

한순간 빛줄기로 화한 내 검이 놈의 등을 꿰뚫었다.

푸욱!

“커헉!”

놈이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힘겹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놈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줬다.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설마 될까 싶었는데, 나보다 한 단계 높은 고수를 진짜 잡아 버리고 만 것이었다.

머릿속에 희열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이것 참, 자네가 이러면 내가 민망해지지 않나?”

고개를 돌려 보니 방금 상대의 가슴을 갈라 버린 삭 형님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제 실력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방심해 줬거든요.”

“지난번엔 나를 죽일 뻔하더니만, 자네는 무슨 이 세상 최고의 행운아인가 보군. 운도 반복되면 실력이라네.”

그의 칭찬에 민망하게 웃고는 우리는 일단 놀란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여인의 점혈부터 풀어 주기로 했다.

그러자 얼굴이 눈물 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여인은, 생각보다 침착한 말투로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미의 제자 정연이 은인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 말에 우리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 아미파의 제자시라구요?!”

“네, 저는 아미파의 이십오대 제자입니다.”

그건 상상치 못했던 얘기였다.

아무리 정혈대전 때 큰 피해를 입은 이후로 아미파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그래도 구대문파의 하나인 아미파의 제자가 여기서 혈교의 마두들에게 붙잡혀 있었을 줄이야.

우리가 그런 생각들로 놀라고 있을 때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 장원의 지하에는 제 동문 한 명과 다른 여인 세 명이 아직 붙잡혀 있습니다. 염치없지만 그녀들의 구원도 좀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너무 오랜 점혈로, 점혈이 풀렸음에도 아직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흔쾌히 대답했다.

“아, 예. 당연한 일이지요. 걱정 마십시오, 소저.”

서둘러야 했다.

비사영이 언제까지 거력마를 유인해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숲에서부터 무언가가 날아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거력마인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삭무흔에게 말했다.

“삭 형님! 저 소저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일단 놈을 다시 유인해…!”

하지만 그렇게 말하려던 나는 큰 덩치에도 새처럼 가볍게 날아와 담장 위에 선 거력마의 모습에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뭐야? 역시 쥐새끼들이 더 있었나?”

경악한 내 눈이 크게 확대됐다.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는 놈의 손에, 축 늘어져 생사를 알 수 없는 비사영의 몸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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