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거력마-3
비사영은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님에도 자신을 쫓아오지 못하는 거력마의 모습에 내심 웃음 지었다.
이 정도면 도망치는 것보다 오히려 놈이 포기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더 힘들 정도가 아닌가.
아무래도 처음 계획보다도 더 오래 시간을 끌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예 이대로 데리고 조장이 있는 쪽으로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공을 집중했던 거력마가 한순간 땅을 박차고는 포탄처럼 가속해서 돌진해 왔던 것이다.
파앙!
“으악?!”
비사영은 순간 속도를 확 올려 방향을 꺾었다.
그러자 방향을 꺾은 그의 뒤로 아슬아슬하게 거력마의 손이 스쳐 지나갔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역시 내공 구십 년 이상의 절정 고수, 숨겨 둔 한 수가 있었구나.’
그나마 방심하지 않고 계속 놈을 살피고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비사영은 속도를 확 끌어올려 다시 거리를 벌리려 했다.
그러자 거력마는 다시 땅을 박차고는 방향을 바꿔 포탄처럼 쏘아져 왔다.
파앙!
그 거대한 체구가 믿기지 않게도 놀라운 속도였다.
직선적인 속도만큼은 비사영의 최고 속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다만 정말 쏘아진 포탄이 된 것인지 유연하게 방향을 바꾸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빠르게 그 사실을 파악한 비사영은 방향을 날렵하게 바꿔 가며 멧돼지를 피해 도망치는 토끼처럼 거력마를 계속 유인했다.
“이놈이….”
거력마는 폭급한 마두이기는 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비사영이 지금 자신을 유인하려 한다는 것 정도는 이제 깨달을 수 있었다.
“감히 나를 농락해?!”
거력마의 심장이 분노로 뜨겁게 달궈졌다.
거력마는 사실 숨겨 놨던 비장의 수법인 폭진보를 사용한다면 절정도 못된 저런 놈쯤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인정해야 했다.
적어도 신법으로 놈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걸.
벌써 몇 번이나 폭진보를 쓸 때마다 날다람쥐처럼 방향을 바꿔 도망가는 놈 때문에 분통만 더 터지고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놈을 생포하는 건 힘들 것 같았다.
‘그래, 살려서 정체를 캐 보려고 했더니만. 산 채로 잡을 수는 없겠군. 산 채로는 말이지.’
하지만 산 채로 잡을 생각만 없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죽이기로 결심한 이상 꼭 잡을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거력마의 내공이 이번엔 오른손으로 집중됐다.
그러자 그의 꽉 쥔 손안으로 구형의 강기가 생성되어 작게 응축되기 시작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절정 고수들은 강기를 뭉쳐 외부로 발사할 수 있었다.
그것을 강환이라 부르고, 검강을 이용하는 것을 검환, 도강을 이용하는 것을 도환이라고 불렀다.
그 강환을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내공 백 년 이상인 초절정의 경지가 되어야만 했다.
내공의 소모량이 너무 큰 데다 그 운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초절정이 되지 못한 거력마도 그것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집중하면 단발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했던 것이다.
그 강환이 거력마의 손안에서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력마는 다람쥐처럼 요리조리 도망치는 비사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한순간 힘껏 팔을 휘둘렀다.
“죽어랏!”
슈하아악!
불길하게 빛나는 붉은색의 강환이 비사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비사영은 아까의 일 이후 도망치면서도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놈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놈이 팔을 휘두른 직후 자신의 눈앞까지 도달한 붉은 강환에, 비사영은 경악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지나치게 빨랐다.
비사영의 실력으론 그 정도 속도의 강환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니, 반응하는 것조차 무리였다.
하지만 비사영에게는 불가능했어도, 그의 몸에 체화된 천풍신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줬다.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공기와 동화되어 움직이는 것을 그 극의로 하는 천풍신법이, 그 짧은 순간 비사영으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몸을 흘리도록 만들어 줬던 것이었다.
샤아악!
비사영의 심장을 관통할 뻔했던 강환이 부드럽게 몸을 돌린 비사영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본인조차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강환이 비사영에게 명중하지 못했음을 깨달은 거력마가 그대로 주먹을 꽉 쥐며 강환을 공중에서 폭발시켰던 것이다.
“하압!”
콰아아아아앙!
비사영을 지나친 강환이 공중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자, 그 폭발에 휩쓸린 비사영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나뭇잎처럼 휩쓸려 날아갔다.
그러곤 오 장 정도를 날아간 후에 인형처럼 땅에 내팽개쳐졌다.
쿠당탕탕탕!
그 폭발은 비사영보다 먼 곳에 있었던 주변의 나무들도 모두 터져 나갈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그러니 바로 근처에 있던 비사영이 살아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거력마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비사영의 옆에 착지했다가는, 이내 놀란 눈빛이 되어 중얼거렸다.
“아직도 살아 있다고?”
그 폭발에서조차도 흐름에 거스르지 않았던 천풍신법의 덕분이었음을 거력마로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 이유를 알 필요까지도 없었다.
그가 다시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크흐흐, 잘됐군. 정체를 캐 볼 수 있겠어.”
거력마는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비사영의 몸을 들고는 다시 장원 쪽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
“사영….”
내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삭 형님이 서둘러 아미파의 여인을 들쳐 업고는 소리쳤다.
“어서 빠져나가세! 어서!”
삭 형님은 비사영이 잡히고 거력마가 돌아온 이상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분명히 옳은 것이었다.
아까 운 좋게 한 단계 위의 고수를 잡았다곤 하지만, 초절정을 바라보고 있는 거력마에게 그런 행운을 기대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흥! 놓칠 것 같으냐?!”
거력마가 땅에 비사영의 몸을 내팽개쳐 놓고는 우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무 힘도 없는 인형처럼 땅을 구르는 비사영의 모습이 내 눈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사영….’
내가 왜 과거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선우세가의 가보인 홍연검에 뭔가가 있지 않았을까 예상은 하고 있지만, 그게 아닐 확률도 있었다.
홍염검에 심장을 찔렸다고 모두 과거로 돌아온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 정확한 원인도,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굳게 결심했었다.
‘다시는 지난 삶의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지난 내 삶은 온통 후회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형제들과 싸우기 싫어 나 자신을 방치했던 것도.
가전 무공을 익혀 놓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무공을 훔쳐 배워야만 했던 것도.
그리고 혈교의 무리들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 그들에 의해 선우세가를 빼앗기고 말았던 것도 말이다.
하지만 그중 내가 가장 후회스러웠던 건, 아무 능력도 갖추지 못해 내 친구들이 나를 위해 죽어 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내 가족들에게조차 받아 보지 못한 호의와 정을 베풀어 준 내 친구들이 나를 위해 죽어 가는데,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만큼이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우며 후회스러운 것은 없었다.
내가 지금 혈교를 공격해 그들을 무너뜨리겠다는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 역시도 내 소중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에 불과했다.
그들이 없다면, 내가 굳이 혈교와 싸울 이유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호위 대상을 보호하듯 그들을 절대 죽지 않도록 보호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우리는 어쨌든 칼끝 위를 살아가는 무인이니까.
무인인 내 친구들이 무인으로서 죽게 된다면 그것까지는 존중해 줘야만 할 것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구할 가능성이 있는 사영을 두고 도망간다면, 그건 내가 정했던 내 회귀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일 테니까.
“삭 형님! 먼저 가요!”
삭무흔이 뒤로 몸을 날릴 때 나는 오히려 거력마를 향해 튀어 나가며 검초를 전개했다.
선우십삼검 십삼초.
환검경.
푸화아아앗!
내 검이 수십, 수백 개의 환영으로 분열하며 거력마를 둘러쌌다.
그러자 온통 자신을 둘러싼 검영에 거력마 역시 잠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음?”
물론 당황은 아주 잠깐이었다.
놈은 바로 손을 휘둘러 단 한 번의 손짓만으로 주변의 환검을 모두 날려 버렸으니까.
“잔재주를!”
화아아악!
선우십삼검의 비기 환검경은 너무도 어이없이 무력화됐다.
아까의 그놈처럼 뒤를 기습해 보기에도 너무도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다.
너무도 짧은 순간이었지만, 놈의 눈을 혼란시킨 사이 쓰러진 사영을 향해 몸을 날리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파박!
삭 형님 또한 그 사이에 이미 여인을 데리고 장내를 벗어난 것 같았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해 왔던 환검경에 이런 쓸 만한 효용이 있었다니, 역시 선조들의 지혜는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막 바닥에 쓰러져 있는 비사영을 낚아채려고 다가갔을 때였다.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에 문득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뭔가를 던질 듯 팔을 뒤로 젖힌 거력마의 손에 맺혀 있는 불길한 붉은 강기를.
설마….
“강환?!”
비사영을 잡으려던 나는 그것을 보고 경악해서는 황급히 방향을 바꿔 옆으로 몸을 날렸다.
파박!
그러자 강환을 던지려던 놈이 멈칫하더니만 제법이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호오! 감이 꽤 좋은 놈이로구나.”
믿기지가 않았다.
강환이라니.
그건 초절정의 고수들이나 가능한 거 아니었나?
설마 거력마가 초절정이었다는 건가?
입술을 깨물었다.
비사영이 왜 붙잡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겨력마는 아직 강환을 던지지 않은 채로 빙글빙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동료를 구해 가고 싶으냐? 목숨을 걸고 동료를 구하려 하다니, 그놈이 꽤 가치 있는 놈이었나 보군.”
그러곤 바로 몸을 날려 다시 비사영의 앞을 막아섰다.
타닥!
“크흐흐흐! 이제 어쩔 테냐?”
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막막했다.
비사영을 구하겠다는 의도도 들켰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도망갈 수도 없었다.
등을 돌려 도망가다 저 강환을 피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환을 쓰는 걸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나보다 신법이 뛰어난 비사영이 피하지 못했다면 아마 나 역시 피하지 못할 확률이 높을 것이 아닌가.
‘젠장, 어쩐다.’
아주 잠깐 고민했던 나는 결국 다시 검을 들어 놈을 가리켰다.
그러곤 씹어뱉듯 말했다.
“한 번 제대로 붙어 보자, 거력마.”
내 손에 쥐여진 묵랑에서 내 눈빛만큼이나 매서운 연보라색 검강이 불꽃처럼 뿜어져 나왔다.
화아악!
그걸 본 거력마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호오? 덤벼 보겠다는 거냐?”
역시.
어서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놈의 손에서 강환이 사라지고 있었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굳이 사용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래, 어차피 도망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부딪칠 수밖에.
마음을 굳힌 나는 기습적으로 놈을 향해 튀어 나갔다.
파앙!
“하압!”
사일검법 칠초.
흑천검우.
뿌연 안개 같은 검기가 자욱하게 일어나 시야를 혼란시키는 가운데 소나기 같은 검영을 쏟아 냈다.
슈슈슈슉!
언젠가 주태경 놈이 내게 쓴 적이 있었던 사일검법의 절초였다.
“사일검? 점창의 떨거지냐?”
내 검을 본 놈이 눈을 살짝 찡그리며 귀찮다는 듯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가볍게 휘두른 놈의 손에서 폭풍 같은 거대한 경력이 뿜어져 몰아쳐 왔다.
후와아아앙!
콰콰콰콰쾅!
“크윽!”
소나기처럼 쏟아 낸 쾌검이 단 한 번 손짓에 바위에 부딪친 빗방울들처럼 가볍게 튕겨 나고, 내 몸 또한 속절없이 뒤로 튕겨 났다.
그러자 그 틈을 노린 놈이 몸을 날려 내게 손을 뻗으려 했다.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이 번뜩였다.
어차피 안 될 줄 알면서도 이 초식을 썼던 이유가 바로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서며 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으니까.
천풍신법 오의.
천풍난화.
순간 가속한 내 몸이 꽃잎이 흩어지듯 여러 개의 잔영으로 분열됐다.
그러자 순간 내 신형을 놓친 거력마.
살짝 당황한 놈이 두리번거렸다.
됐어!
통한다!
바로 다음 수법을 전개했다.
선우십삼검 십삼초.
환검경.
파아아아아앗!
다시 한번 수십, 수백 개의 검영이 놈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아까 나보다 한 단계 무위가 높은 마두를 잡아냈던 바로 그 수법, 내가 생각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공격법이었다.
이제 놈이 환검경을 깨기 위해 공력을 쏟아 냈을 때 그 빈틈으로 일시사일을 꽂아 넣을 수만 있다면….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피식 웃음 지은 거력마가 양팔을 가슴 앞으로 교차시켰다가는 그것을 활짝 펴며 맹수처럼 포효했다.
“흐아아아아아아압!”
순간 놈의 몸에서 폭풍 같은 기운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퍼어어어엉!
“크으윽!”
환검경의 검영들은 물론 놈의 뒤를 노리고 있던 내 신형까지도 뒤로 물러나게 할 정도의 거센 폭풍이었다.
결국 놈을 기습해 보지도 못하고 뒷걸음질 쳤을 때 이제 나와 눈을 마주친 놈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기한 수법을 쓰는 놈이구나. 꼭 잡아서, 뒤를 캐 봐야겠군!”
파앙!
말을 마친 놈이 포탄처럼 나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상상도 못 했던 엄청난 속도의 돌진이었다.
“으윽!”
인식한 순간 놈이 바로 내 눈앞까지 짓쳐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움켜잡으려던 놈의 손은 본능적으로 움직인 내 신형이 간신히 흘려 냈다.
몸에 밴 천풍신법 덕분이었다.
부아아아앙!
놈의 손끝이 만들어 낸 풍압에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호오?”
놈이 의외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뒤로 물러나려던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뻗었다.
놈이 나를 잡으려다 손을 헛친 상황,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선우십삼검 십이초.
쌍익연환.
내 검영이 빛의 날개를 펼쳤다.
그것도 연달아 파도처럼 몰려가는 두 겹의 날개였다.
“흥! 소용없다!”
몸의 균형을 완전히 잡지 못했음에도 가볍게 팔을 휘두른 거력마의 조법 한 번에, 두 장의 날개가 모두 찢겨져 나갔다.
촤아아악!
하지만 공격에 실패한 내 입이 엷게 미소 지었다.
그럼으로써 균형을 완전히 잡지 못했던 놈의 팔까지 벌어지며 가슴으로 가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지금!
그 순간, 사력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절초를 꽂아 넣었다.
사일검법 일초.
일시사일.
퓨슉!
점창파 검법의 처음이자 끝이며, 사일검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는 극쾌의 절초, 일시사일이 빛살이 되어 놈의 가슴을 꿰뚫으려 했다.
놈이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려 하고 있었지만 내 검이 닿는 것이 먼저였다.
이겼다!
환희에 찬 내 검이 놈의 가슴 끝에 닿는 순간.
덜컥!
놈의 가슴을 막 꿰뚫으려던 내 검이 그 자리에 붙잡힌 듯 멈춰 버리고 말았다.
“뭐, 뭐?!”
깜짝 놀란 내가 아무리 힘을 써도 공중에 멈춘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뒤로 빼 보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망연자실해진 내가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내 검을 붙잡은 것은 거력마의 양손이었다.
검에 닿지도 않은 거력마의 양손이 공간을 격하고는 그 공력만으로 꼼짝도 못 하도록 내 검을 허공에 붙잡아 놓은 것이었다.
엄청난 내공이었다.
너무 엄청나 맥이 풀릴 지경이었다.
저런 괴물을 대체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그러자 나를 향해 비릿하게 웃음 지은 거력마가 말했다.
“아까웠다, 애송아. 제법이로군. 살려 두기 위험할 수도 있겠어.”
그러곤 강기를 두른 한 손으로 내 검을 꽉 움켜잡은 채 다른 한 손을 휘둘러, 내 머리를 쳐 왔다.
부아아아앙!
정면으로 맞는다면 두개골을 가루로 만들 것만 같은 강맹한 일격이었다.
어서 피해야 하는데, 검이 붙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검을 놓으면 피할 수야 있겠지만 검마저 버리고 어떻게 저런 엄청난 놈을 상대한단 말인가.
이미 대응할 의지가 꺾여 버린 나는 피하지도 못한 채 손이 날아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끝장이었다.
그때였다.
머릿속에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흠, 원래 지금 끼어드는 건 원칙에 어긋나지만, 언제 또 마음에 드는 후보자를 찾을지 알 수 없으니 어쩔 수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