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아미파
다행히도 비사영의 몸은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단지 정신을 잃은 후 점혈을 당했을 뿐인 모양이었다.
안심한 나는 녀석을 해혈해 준 후 그 얄미운 머리를 손바닥으로 세게 후려쳐 줬다.
“에라, 이 자식아!”
철썩!
“으아악! 뭐, 뭐야?!”
머리를 강타당한 녀석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잠시 멍하니 내 얼굴을 보더니만, 이내 퍼뜩 뭔가가 생각난 듯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여, 여긴…. 진? 아! 거력마, 거력마가!”
하지만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녀석의 눈이 거력마의 시체를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력마, 거력마가! …죽었네?”
황망하게 중얼거리는 녀석을 보며 삭 형님이 말해 줬다.
“선우 소제의 말로는 느닷없이 은거 고수가 나타나 거력마만 참살하고는 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고 하더군.”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삭 형님의 눈이 슬쩍 나를 바라보는 것을 나는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쩌란 말인가.
내가 죽이긴 했지만, 내가 죽인 게 아닌 것을.
그런 우리 둘 사이의 분위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비사영은 그저 감탄한 얼굴로 탄성만 내뱉을 뿐이었다.
“오오! 그런 일이! 아까 보니 그놈은 강환까지 사용하던데, 그런 거력마를 순식간에 참살했다고요?! 역시 무림은 넓고 기인이사는 많았군요!”
맞는 말이긴 한데….
민망했다.
아무튼 우리는 삭 형님이 정연 소저를 데려다 놓은 곳으로 가서 그녀와 합류한 후, 그녀가 말했던 다른 네 명의 여인들도 구해 줄 수 있었다.
그곳엔 또 한 명의 아미파 제자와 세 명의 일반인 여인이 갇혀 있었다.
그녀들을 보고 한 가지 무척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녀들이 모두 대단한 미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미파는 불가 여제자들의 문파지만 같은 비구니들의 문파인 항산파나 검각과는 달리 제자들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하지 않았고, 심지어 사문의 허락을 받는다면 혼인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정연 소저를 처음 봤을 때도 아미파 제자란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고, 그저 미인이라고만 생각했던 건데.
갇혀 있던 다른 여인들을 보고 나니 심지어 그녀들 모두가 정연 소저보다도 더 미인들이었다.
비사영이 문득 전음까지 동원해서 내게 속삭였다.
- 어쩐지 거력마 놈들이 무슨 순서로 여인들을 희생시켰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좋아 보이는 걸 마지막에 꺼내는 놈들이었나 보군.
응? 그게 그렇게 되나?
가장 미인들을 뒤에 남긴 건가?
그때 구조받은 다른 아미파 제자 한 명이 한동안 정연 소저와 눈물을 흘리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더니만, 눈물을 닦으며 우리에게 인사했다.
“아미파의 정안이라고 합니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오랜 점혈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기운이 없을 텐데도 무척 씩씩하고 밝은 소저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침착함을 유지할 것 같아 보이는 정연 소저와 비교되어 더욱 기운차 보였다.
게다가 그녀는 남아 있는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꺼내지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특히 비사영은 그녀의 미모에 감탄한 듯 얼굴이 살짝 붉어져서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피식 웃으며 그에게 전음을 날렸다.
- 어째 청연 소저 얼굴을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누가 보면 순박한 시골 청년인 줄 알겠다?
그러자 비사영이 나를 살짝 노려보고는 대답했다.
- 해 소저나 당 소저는 너무 인간 같지가 않아서 현실감이 별로 없었단 말이다. 저 소저는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어서 잠시 당황한 것뿐이라고!
응?
뭔 소리야, 그게?
청연 소저나 당 소저는 너무 지나치게 예뻐서 신경 쓰이지도 않았는데 저 소저는 좀 덜 예뻐서 신경이 쓰인다고?
어느 쪽에다가 얘기해 줘도 매장당할 것만 같은 얘기였다. 꼬투리를 잡아 놀리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내 친구의 앞날을 위해 그냥 묻어 두기로 했다.
그런 후 우리는 그녀들에게 왜 혈교의 마두들에게 붙잡혀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정연, 정안 소저가 대답한 이야기에는 놀라운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예? 정협방을 조사하고 있었다고요?”
우리의 질문에 그녀들이 분노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무림인, 일반인 할 것 없이 여인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서 조사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러다 그 실종들이 정협방 쪽과 뭔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었는데….”
여인들의 실종에 정협방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의 습격을 받고 납치됐었다는 게 이들의 얘기였다.
그리고 점혈되어 많은 여인들이 갇혀 있는 곳에 있다가 그곳으로 찾아온 거력마 무리들에 의해 이곳까지 운반되었다고 했다.
내가 급히 물었다.
“그럼 저자들이 혈교의 무리라는 것, 저자가 거력마 저웅원이라는 사실도 모르셨습니까?”
그러자 두 사람 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혀 몰랐어요. 전선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갑자기 혈교의 마두들이라니.”
그녀들의 말에 우리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할 증거인 것 같은데?”
“아아, 팔 할 이상의 확률로 확신할 만하군. 혈교의 전진기지는 바로….”
내가 거기까지 말하자, 나머지는 우리 셋 다 동시에 말했다.
“정협방.”
“정협방이었군.”
“정협방이었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혈교의 전진기지를 찾아냈던 것이다.
만약 그곳을 지금 만인에게 공개하고 부숴 놓을 수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지난 삶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변수임에 틀림이 없었다.
지난 삶에서 나의 선우세가는 물론 귀주성 대부분의 문파들이 경험해야 했던 대규모 섭혼 사태를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문득 혈교의 꼭두각시가 되어 나를 공격했던, 그래서 내 손으로 죽여야 했던 선우세가 식솔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그것을 막아 내리라!
더군다나 아미파의 소저들 덕분에 그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들 말고도 아직 정협방에 붙잡혀 있는 제자들이 더 있다는 것 같지 않은가.
그것도 일반 평제자들보다 좀 더 중요한 제자가.
“아미검봉 정인 소저라고요?”
“네, 저희 아미파의 미래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평을 듣는 사저세요. 사저가 아직 그곳에 갇혀 있어요.”
그건 물론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었지만, 그런 제자가 갇혀 있다면 아미파에서도 이제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점에선 내게 나쁠 것이 없었다.
구대문파의 하나인 아미파가 전력을 기울인다면 정협방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내가 기대감을 품고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그럼 소저들은 어서 아미파로 돌아가셔서 정협방과 그 정인 소저에 대해 보고하셔야겠군요. 그래야 그녀를 구해 낼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그녀들은 어쩐지 무거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만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래야겠죠.”
응?
뭔가 대답이 시원치 않은데?
그녀들의 석연치 않은 대답에 우리는 의아한 눈빛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왜 그런 표정으로…?”
그러자 씩씩한 정안 소저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하지만 그녀의 말을 정연 소저가 막았다.
“사매, 안 돼!”
그러고는 우리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사문의 문제라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사문의 문제라….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다는 얘기였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미파가 전면에 나서서 지금까지의 사실을 공개해 주고 정협방을 압박해 주지 않으면 우리도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산검문이나 운씨세가였다면 모를까 거대 방파인 정협방을 상대로 우리 조원들만으로 싸울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사문의 문제라는데 그게 무엇인지를 따져 물을 수도 없는 거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내 표정을 힐끗 살핀 비사영이 갑자기 나서서 입을 열었다.
“정연 소저, 우리는 소저 사문의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혈교의 마두들과 관련된 일이 아닙니까? 설마 구대문파의 하나인 아미파 제자로서 이 일을 외면하시겠다는 겁니까?”
응? 갑자기?
마치 추궁하는 것 같은 거침없는 비사영의 말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나보다도 정연 소저가 더 당황한 모양이었다.
“네, 네?”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는 목숨을 걸고 소저들을 구했는데 사문의 곤란함 때문이라고만 하시고 혈교의 마두들과 관련된 일을 외면하려 하시다니….”
“아, 아니, 외면하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럼 무슨 얘깁니까?”
“그, 그건….”
좀 무례한 거 아닌가 싶었던 비사영의 말에 정연 소저가 당황하며 입을 열려 하고 있었다.
뭐야? 이게 되네?
비사영 이 자식, 제법이잖아?
정연 소저는 입을 열 듯 말 듯 하면서도 곤란한 듯 사매인 정안 소저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자 정안 소저가 그녀에게 말했다.
“사저, 저도 은인분의 말씀에 동감이에요. 생명의 은인이신 분들 앞에서, 그것도 무림 공적인 혈교의 마두들과 관련된 일에서 사문의 내부 사정이라 하여 입을 닫는 것은 아미의 제자로서 옳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역시 정안 소저는 시원시원했다.
그사이 나는 전음으로 비사영에게 물었다.
- 사영, 대단한데?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생각을 했어?
그러자 녀석이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 누가 누구한테 묻는 거냐? 정파의 제자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네 녀석이 맨날 우리한테 써먹던 방법이잖나?
아, 그게 그렇게 되나?
그래도 처음 만난 소저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했다.
역시 어디서나 막 나가는 비사영답다고나 할까?
결국 한숨을 내쉰 정연 소저가 입을 열었다.
“후우, 어쩔 수가 없군요. 사문의 치부가 드러나겠지만…. 그냥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예상엔 아마 저희가 그런 보고를 올린다고 해서 사문에서 정협방을 적대하거나 뭔가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상한 얘기였다.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해가 안 가는군요. 아까 분명 아미검봉 정인 소저가 붙잡혀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혈교의 마두들과 관련된 일이구요. 그런데도 아미파에서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요?”
내 질문에 정연 소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그녀의 설명은 이랬다.
현재의 아미파 수뇌부는 몇 개의 파벌로 분열된 상태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현재 실권을 잡고 있는 건 친무림맹, 친정협방의 인사들이라고 했다.
“친무림맹, 친정협방이라고요?”
“네, 무림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분들인데 어쩐 이유에선지 정협방과도 역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실은 얼마 전에도 정협방이 아미파를 위협하고 있다며 성토했던 정인 사저에게 근신을 명하셨었어요.”
무림맹과 친한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친무림맹의 인사들이 정협방과도 친하다는 것은 뭔가 의미심장했다.
혹시 무림맹에서 이미 그들이 혈교의 전진기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설마 그렇게까지?
또한 아미파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 보니 그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짐작이 가긴 했다.
생각해 보면 아미파는 지난 정혈대전에 참가했던 문파들 중 유일하게 문도들이 전멸당했던 문파였다.
함께 참가했던 사천성의 청성이나 당문, 그 외의 귀주나 광서성의 다른 문파들도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는데, 유독 아미파만 문도들이 모두 죽어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을 무림맹에선 아미파의 숭고한 희생이라며 무척 성대하게 추모해 주곤 했었는데.
하지만 정연 소저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온 무림에 성대하게 추모는 해 줬지만, 실제적으로 지원을 해 주진 않았거든요. 저희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어떤 지원도요.”
아미파는 문파의 현재와 미래에 중심이 되어 줄 문도들을 절반 이상 잃어버린 상태였다.
심지어 일반 문도들뿐 아니라 수뇌부 쪽도 그랬다.
그래서 결국 당시 주류가 아니었던 여러 파벌들이 전면에 등장해 난립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지금의 아미파는 도무지 뭘 해 볼 수도 없는 내부 분열을 겪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도 무려 십 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을 지속된….
그러니 아미파는 그저 겉으로만 구대 문파이며 사천성의 삼강이지, 실제로는 이미 정협방에게도 추월당한 지 오래라는 것이 그녀의 한탄 섞인 고백이었다.
전혀 몰랐었다.
아미파의 상황이 그렇게 심각할 줄이야.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현재 친무림맹 인사들이 실권을 잡게 된 이유도?”
그러자 정연 소저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는 무림맹의 비호가 없다면 구대문파의 지위를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아마 그들에게 밉보이면 점창파처럼 구파에서 제외될지도 모르죠. 그래서 사문 어르신들도….”
“하아.”
최악이었다.
본산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점창파보다야 낫겠지만, 무림맹에게 목줄을 잡힌 개가 되어 자유 의지를 잃었다는 점에선 오히려 그보다 더 못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아미파에는 기대를 걸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의 아미파로는 설사 나서서 정협방을 성토해 준다고 해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막막한 한숨을 내쉰 나는, 문득 그녀가 했던 말 중 아미검봉 정인 소저가 근신을 당했던 것에 대해 물었다.
“근데… 정인 소저가 근신을 당하셨다고요?”
“네, 정인 사저는 원래 지금 수련동에서 근신하고 있었어야 해요. 하지만 사저는 현 장문인이나 장로님들의 명을 그리 잘 따르지 않는 성격이세요. 그래서 여인들의 실종에 관한 소식을 듣고는 사문 어르신들의 명령을 무시한 채 몰래 수련동을 나와서 조사를 진행했었던 건데, 하필 일이….”
“아아.”
이제 그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문의 명을 어기고 나왔다가 일을 당했기에 입장이 떳떳하지 않다는 얘기로군.
게다가 그 사문의 어른들이 정협방에 호의적인 사람들이니 더더욱 보고하기가 어렵고 말이다.
그러자 비사영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혈교의 마두들과 관련된 일이 아닙니까? 게다가 자파의 제자가 납치당해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비사영의 말은 분명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연 소저의 표정은 여전히 침중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러자 옆에 있던 정안 소저가 대신 대답했다.
“그분들이라면 아마 정협방과 혈교의 마두들이 관련 있다는 보고를 믿지 않으려고 하실 거예요. 오히려 정협방을 모함하려 거짓말을 한다고 받아들이실지도 몰라요.”
그 말에 우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비사영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정도면 완전히 개판, 읍!”
다행히 말을 끝마치기 전에 재빨리 놈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었다.
그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완전히! 개편이 필요한 상황이군요! 하하, 하하하.”
다행히도 그녀들은 비사영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았…. 근데 왜 정연 소저가 내 시선을 피하고, 정안 소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거지?
다음 순간 더 참지 못하고 정안 소저가 ‘풋!’ 하는 웃음 소리를 냈다.
음, 못 들은 척해 주고 있었던 거였군.
역시 비사영이 멋있는 건 한 달에 한 번 정도뿐인 모양이었다. 초지일관한 녀석 같으니.
아무튼 그녀들에게 들은 상황은 이래저래 난감했다.
소저들이 말한 분위기대로라면 본산에 보고를 하러 갔다간 오히려 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아닌가.
무려 아미검봉이라 불리는 제자의 행방이 위험한 상황인데 그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내부인이 말하는 분위기니 아마도 틀리진 않을 것이었다.
자, 그럼 어쩐다.
아미파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산검문? 무림맹? 아니면 선우세가로 돌아가기라도 해야 하나?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정안 소저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정연 소저에게 물었다.
“사저, 화 사형한테 부탁드리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