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70화 (70/359)

70화 청성파로-2

먼저 인근 마을로 가 객잔을 잡아 놓은 비사영은, 세심하게도 방 두 개는 물론 목욕물까지 데워 놓도록 한 상태였다.

그녀들은 먼저 자신들의 방으로 가 오랜만에 개운하게 씻은 후 한결 상쾌해진 표정으로 내려왔다.

묵은 때를 씻어 내서 그런지 두 사람의 모습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져 있었다.

객잔에서 빌린 옷을 펑퍼짐하게 입고 왔음에도 화사한 광채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다른 탁자에 앉은 사람들도 눈을 떼기 힘든 듯 힐끗힐끗 그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와아아! 이제야 진짜 살아난 것 같아요! 꼭 다시 태어난 기분인 거 있죠?! 정말 감사드려요, 두 분!”

환하게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하는 정안 소저에게 마주 웃어 주며 대답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전부 다 이 녀석이 한 건데요.”

내 말에 두 사람은 비사영을 쳐다봤지만, 녀석은 관심도 없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객잔 주방 쪽을 바라보고 투덜거렸다.

“아까 시켰는데도 요리가 늦네. 이래서 장사하겠어?”

두 소저들은 표정이 좋지 않은 비사영에게 차마 말을 걸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녀석이 왜 이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까 화사하게 웃으며 내려오는 정안 소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것을 내게 딱 걸렸던 것이다.

그러더니 막상 그녀가 앞에 앉으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저러고 있는 거였다.

귀여운 자식 같으니.

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요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소저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체면을 내려놓은 채 음식을 흡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전히 살짝 눈치를 보고 있는 정연 소저에 비해 정안 소저는 거침없이 음식을 입속에 마구 쑤셔 넣고 있었다.

“왑! 왑! 이거 정말 맛있네요! 공자들도 빨리 드셔 보세요. 왑! 왑!”

말은 먹어 보라고 했지만 그렇게 말을 한 본인이 다 먹어 버려서 먹어 볼 수가 없었다.

비사영과 나는 아까완 다른 의미에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옆에 있는 정연 소저만이 사매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 역시 손을 멈추지는 않았고, 잠시 후 결국 그녀 역시 음식에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간 정말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조금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비사영이 문득 말없이 일어나더니 객잔 주인에게 다녀왔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뭐 하고 왔어?”

“아, 주인에게 물어볼 것이 좀 있어서.”

하지만 잠시 후 다시 요리가 나오는 걸 보니 녀석은 아마 요리를 추가로 시켰던 모양이었다.

‘이 녀석!’

조금 충격을 받았다.

원래 배려심이 없는 녀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자상한 모습은 너무 낯설지 않은가.

이게 진짜 사랑의 힘이라는 건가?

문득 반성이 되기도 했다.

내가 나 소저에게 저렇게까지 해 준 적이 있었던가?

그때, 문득 머릿속에 나 소저가 아닌 다른 여인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우, 깜짝이야.

그녀의 얼굴이 왜 갑자기….

황급히 고개를 저어 그녀의 얼굴을 지웠다.

죄송합니다, 나 소저.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건 비사영이 다시 한번 조용히 일어나 요리를 추가한 이후의 일이었다.

드디어 배를 채웠는지 두 소저들이 행복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이제야 우리 얼굴을 바라봤다.

“하아, 너무 잘 먹었….”

하지만 드디어 고개를 든 그녀들은 쌓여 있는 접시의 개수를 이제야 인식하게 된 모양이었다.

폐허가 된 채 쌓여 있는 접시의 탑을 보고는 정연 소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별로 그런 걸 신경 쓸 것 같지 않았던 정안 소저마저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 저, 죄, 죄송….”

하지만 그녀들이 사과를 하기 전에 비사영이 먼저 탁자 밑에서 손가락으로 나를 쿡쿡 찔렀다.

뭔가 말을 하라는 신호인 것 같았다.

내가 황급히 소리쳤다.

“이야! 여기 음식 정말 맛있네요! 죄송합니다! 소저분들을 앞에다 두고 저희가 너무 음식에만 집중했네요. 원래 맛있는 게 앞에 있으면 주변을 잘 못 보는 성격들이라. 하하하! 이해를 좀 부탁드립니다. 아, 사영. 이건 너의 기사회생을 기념하는 자리니까 이 정도는 쏠 수 있겠지?”

그러자 녀석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장난하냐? 내 목숨값이 고작 이 정도일 리가 없잖아? 주인장! 여기 싹 치워 주시고 한 판 더 깔아 주시오!”

뭐, 뭐?!

녀석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소저들은 나보다 더 놀란 모양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가 하는 짓을 지켜보던 소저들은, 비사영이 다시 음식을 시키겠다고 하니 깜짝 놀라 급히 말했다.

“아, 고, 공자! 또 음식을 시키실 필요까지는…!”

하지만 비사영이 먼저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두 분께는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소. 우리가 워낙 대식가라 보시기에 좀 과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소.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오! 안 그러냐?!”

그렇게 말하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녀석에게 애써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 그럼. 이 정도는 아직 식전 요깃거리지.”

사실은 이미 아까 전부터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내 친구를 위해서라면야.

두 소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작게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잘 먹었어요.”

그리고 잠시 후 식탁은 다시 상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식탁을 꽉 채운 저마다의 기름진 향기를 뽐내는 화려한 음식들이….

토할 것만 같았다.

막막한 눈빛으로 그 음식들을 슬쩍 바라본 나는, 이제 수저를 내려놓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우리를 보고 있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두 분 소저께선 혹시 배를 채우셨으면 먼저 들어가서 쉬셔도 됩니다.”

그러자 비사영이 얼른 맞장구쳤다.

“마, 맞소! 빨리 쉬셔야 회복도 잘 될 테고, 그래야 내일 또 먼 길을 달릴 수 있지 않겠소?! 어서 먼저 들어가 쉬시오!”

하지만 정안 소저가 그 아름다운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두 분의 식사도 안 끝났는데 먼저 들어갈 수가 있겠어요? 그건 예의가….”

정안 소저의 따뜻한 마음씨에 우리 마음이 썩어 들어가고 있을 때, 정연 소저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아니지만! 물론 예의는 아니지만, 아까 말씀해 주신대로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몸을 빨리 회복해 사저를 구하는 거겠죠? 그러니 죄송하지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표정이 급 밝아진 우리도 황급히 대답했다.

“아, 그럼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편히 쉬십시오, 소저!”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원래 음식을 끝없이, 그것도 천천히 먹는 사람들이라, 하하하하! 하하!”

정연 소저가 아직 영문을 몰라 하는 정안 소저를 이끌고 이층의 객실로 올라가자, 우리는 드디어 깊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눈앞의 진수성찬을 보며 말했다.

“나 솔직히 냄새만 맡고 있어도 토할 것 같다. 이걸 다 어떻게 하지?”

그러자 비사영 놈이 대답했다.

“내가 돈을 낸 거니까, 네가 먹어야지.”

뭐, 인마?

그 말을 들은 나는 경악해서는 쓰레기를 보는 눈빛으로 놈을 바라봤다.

그러자 녀석이 내 눈을 피하며 작게 다시 말했다.

“…미안.”

역시 사랑의 길은 고되고 험한 것인 모양이었다.

그저 친구로서 옆에 있는 것도 이렇게 힘드니 말이다.

하긴 그러니 내가 두 번을 살아도 나 소저에게 마음을 전하기가 이렇게 힘든 거겠지.

***

다음 날 아침, 두 소저들은 거의 쌩쌩하게 회복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됐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밤새 소화가 안 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우리와 비슷하게 맞춰져 오히려 함께 달리기가 더 좋았다.

이 정도 속도라면 하루만 더 달리면 청성산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은 다시 근처의 객잔을 잡았다.

시간적으론 노숙을 하는 것이 더 절약되겠지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배가 너무 무겁고 아팠다.

뒷간만 갈 수 있다면 내장까지 쏟아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소저들에게 차마 어제 너무 과식을 해서 오늘도 객잔에서 쉬어야 한다는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짜 이렇게 얘기했다.

“내일이면 청성산에 도착할 테니 오늘은 특별히 잘 쉬고 단정한 모습을 갖춰야 하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객잔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제 사영이 쐈으니 보답하는 의미에서 오늘은 제가 쏘지요. 다만 저는 사영만큼 돈이 많지 않으니 조금 소박하게 먹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내 말에 소저들은 그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비사영은 그녀들이 못 보도록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객잔에 도착한 우리는 소저들이 씻는 동안 드디어 배 속을 깨끗이 비워 낼 수 있었다.

하루만에야 몸이 다시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런 후 어제완 달리 소박한 식사를 주문한 우리들은 드디어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소속에 대해 제대로 말해 준 것도 이때였다.

처음엔 무림맹이 신경 쓰여 말하지 않았지만, 지켜본 결과 그녀들도 무림맹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함께 지내 본 결과 이젠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우리 소속과 이름을 제대로 얘기해 주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자 이제야 우리의 소속을 들은 소저들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두 분 다 비룡대분들이시라고요?!”

“네, 비룡십삼대 소속입니다.”

“와아아! 전 비룡대분들 처음 봬요. 혈교도들을 추격해 여기까지 오셨던 거로군요?! 너무 대단하세요!”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비룡대라는 건 그저 혈교도들과 싸우는 민병대 같은 존재일 뿐이니까요. 그리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민병대처럼 스스로 나서서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 더 대단한 거죠!”

그때 정연 소저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비룡대 출신의 선우진, 비사영…. 저 두 분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혹시 두 분이 비천흑랑 선우진과 질풍비응 비사영 대협이신 건가요?”

그녀의 말에 우리는 난처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치고 대답했다.

“과분하게도 그런 별호를 얻긴 했습니다만, 대협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정연 소저는 정말 놀란 듯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그러자 정안 소저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듯 궁금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왜요? 유명한 분들이세요?”

그 질문에 정연 소저는 드물게 흥분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얼마 전 귀주 팔세의 하나인 흑상방이 생사괴의의 영단을 탐내 그의 자녀들을 납치하고 겁박하려고 했을 때, 단 세 분이서 그에 대항해 생사괴의와 자녀분들을 구해 냈던 분들이셔. 그 일로 인해서 결국 흑상방이 몰락하게 됐고 말이야.”

“네에?! 우와아!”

상상 외로 자세히 알고 있잖아?

눈앞에서 우리 얘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렇게 말하면 마치 우리가 흑상방을 무너뜨린 것 같지 않은가?

“아, 저, 흑상방을 무너뜨린 건 저희가 아니라 여령색마 손은상 선배님이 하신 일입니다.”

“맞습니다. 다 헛소문이죠.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저희는 그저 빈집을 털고는 줄곧 도망만 다녔을 뿐입니다, 아하하!”

그러자 빙긋이 웃은 정연 소저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럼 혹시 선우진 공자께서 흑상방의 절정 고수 흑살표 동패경을 죽인 것이나, 비사영 공자께서 수상비 신법을 선보이신 것.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의지로 나서서 생사괴의와 그 자녀분들을 구해 줬다는 것도 헛소문인가요?”

“예? 어, 그건 사실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서 가능했던….”

“뭐, 그런 신법 비슷한 걸 쓰긴 했지만 그거야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우리가 민망한 얼굴로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하고 있자, 정안 소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 분 정말 대단하세요! 무림엔 화 사형 이외에도 이런 진정한 협객분들이 정말 존재하고 있었군요!”

억, 진정한 협객.

너무 부끄러워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비사영이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말을 돌렸다.

“그, 그! 화 사형이란 분에 대해 좀 얘기해 주시겠소?! 어떤 분인지 무척 궁금하구려!”

칭찬받는 걸 병적으로 민망해하는 녀석이다 보니 아주 필사적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풋! 웃음 지은 두 사람이 알겠다는 듯 적하신검 화영빈에 대해 말해 줬다.

먼저 얘기를 시작한 건 역시 정안 소저였다.

그녀가 꿈꾸는 소녀 같은 몽롱한 눈빛으로 두 손을 꼭 모으고 입을 열었다.

“그분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협객이세요! 수없이 많은 아미파 제자들을 색마들로부터 구해 주셨죠. 수많은 여인들이 그분께 연심을 고백했지만 그분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셨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평생을 함께할 정인이 있다면서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여인들의 문파인 아미파는 힘이 없으면 당연히 수많은 악적들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러니 정혈대전 이후 전력이 급감한 아미파 문도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적하신검 화영빈은 그런 아미파를 위해 그동안 무척 헌신적으로 봉사해 왔던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현실 속의 남자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몽롱한 눈빛으로 화영빈에 대해 말하는 정안 소저를 비사영이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런 말하면 안 되지만 꽤 재밌었다.

둘만 있었다면 이박삼일도 놀려 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녀들과 함께라서 좀 아쉬울 정도였다.

그러던 중이었다.

먼 길을 움직인 듯 온통 흙먼지로 범벅이 된 중년의 남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무림인분들이십니까?”

우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그저 일반 백성으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다니, 좀처럼 드문 일이었던 것이다.

일반 백성들에게 있어 무림인은 무척이나 두려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겉으로야 어떻게 보이든 실제로는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맹수와 같은 자들.

이것이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무림인이었으니까.

그러니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백성들이 무림인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내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로…?”

그러자 조심스러웠던 남자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지더니만, 털썩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눈물을 흘리며 우리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협객님들! 제발 저희 딸을 좀 구해 주십시오!”

갑작스러운 사태에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를 달래서 탁자에 앉혔고, 그는 두서없이 우리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에게 듣게 된 얘기는 이랬다.

그제 밤에 집에서 잠을 자던 그의 딸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딸이 사라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녀의 방에는 다른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제 딸은 인근 마을에서도 유명한 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정숙해 집 밖으로는 잘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절대 그 아이가 스스로 나갔을 리가 없습니다요!”

그래서 남자는 급히 주변에 수소문하고 관청에도 가 봤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고, 그래서 방금은 인근에서 가장 존경받는 문파라는 과검문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정연 소저가 그에게 물었다.

“그 과검문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과검문에서는…. 지난달에도, 또 그 지난달에도 각각 다른 마을에서 그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며 자신들도 최선을 다해 조사해 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으흐흐흑! 상아야!”

정연 소저는 무거운 눈빛으로 정안 소저와 눈을 마주친 후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저희가 지금 당장은 급히 청성파로 갈 일이 있어 도와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내일 중으로 청성파에 도착할 테니 그곳 분들께 반드시 이 일에 대해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완전히 납득하지는 못한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와 꼭 청성파에게 말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객잔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정안 소저가 정연 소저를 보며 말했다.

“사저, 이건….”

그러자 정연 소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맞는 것 같아.”

그녀들의 말에 우리는 무슨 얘기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우리에게 해 준 그녀의 설명은, 지금의 상황이 지난번 아미검봉 정인 소저와 함께 여인들 실종 사건을 조사했던 상황과 거의 흡사하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들은 비사영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정협방, 아니 혈교의 손길이 이곳까지 미쳐 있다는 얘기로군요.”

두 소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