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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73화 (73/359)

73화 청성파로-5

“저기다! 쫓아라!”

“놓치지 마!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우리는 여전히 밤거리를 도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저들이 우리를 놓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면서 말이다.

저들이 우리에게 신경을 집중하고 계속 쫓아오게 하기 위해 나는 여전히 부상당한 여인인 척 정연 소저에게 부축을 받고 있었다.

물론 무게는 전혀 싣지 않았기에 정연 소저가 움직이기에 불편함은 없을 것이었다.

사실 불편함은 오히려 내 쪽에 있었다.

처음 빼도 박도 못하고 여인인 척하기로 했을 때 나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었다.

‘나보고 여장을 하라고?’

이게 무슨 망측한 소린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막상 작전을 시작하니 중요한 건 여장이 아니었다.

사실 축골공을 쓴 채 피풍의를 뒤집어썼을 뿐 딱히 여자인 척할 필요도 없었다.

정연 소저가 놀라운 연기력을 발휘해 줘 그냥 묻어가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렇게 조용하고 항상 잔잔하던 소저가 대체 어떻게 이렇게 실제같이 몰입해 연기를 할 수 있는지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진짜 불편한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있었던 것이다.

그건 바로 신체 접촉이었다.

- 선우 공자, 진짜처럼 보이려면 제게 좀 더 기대셔야 해요.

- 네, 네? 아, 네.

정연 소저는 처음부터 연기에 혼을 불태우듯 내게 더 밀착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래서 아까부터 우리의 자세는 몸을 완전히 밀착한 가운데 나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얹고 그녀의 팔은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 너무도 견디기 힘든 고난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 선우진, 두 번의 삶, 삼십여 년의 세월을 겪는 동안 부끄럽게도 여인과 신체를 밀착해 본 경험이 이제껏 단 한 번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한 번도 지난 삶이 아닌 이번 삶에서 당 소저를 구해 줬을 때였지.’

그때도 물론 수없이 떠오르는 잡생각에 고통스럽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땐 당 소저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보니 다른 생각이 떠오를 틈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엔 적들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서 여유가 있어 그런지 자꾸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대체 왜 여인들은 단련된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몸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인가.

그 부드러운 감촉이 자꾸 신경이 쓰여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정연 소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검을 펼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죄스럽기만 했다.

아아, 실망스럽구나, 선우진.

이 한심한 놈 같으니.

죄송합니다, 나 소저. 큭.

***

“하아압!”

정연은 앞을 가로막는 무사를 향해 거침없이 검초를 펼쳤다.

이번에도 아미파에서 가장 공격적인 멸절검법의 초식이었다.

채채채채챙!

“으으윽, 크아악!”

푸화악!

눈앞을 가로막았던 무사가 순식간에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놀라웠다.

자신과 동급인 일류 중급의 무위, 심지어 내공은 자신보다 더 위인 자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정연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일류 중급에서 한참을 정체되어 있던 자신의 무위가 지금 이 순간 한 단계 이상 상승했음을.

그녀는 이제껏 상대방과 검을 맞댈 때마다 늘 머릿속에 어지럽게 떠오르는 잡생각에 항상 망설이기만 했었다.

과감하게 검을 뻗는 것도, 기회를 포착하는 것도 그녀에겐 너무도 어려운 얘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전혀 달랐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그저 본능적으로 검이 나가고 있어.’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더 신기한 건 지금 계속 사용하고 있는 멸절검법이 그녀가 이제껏 거의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검법이라는 점이었다. 너무 공격 일변도라 방어가 불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몸이 어딘가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도 들려오고, 아무 잡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는 것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이게 정말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왜 이렇게 된 것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선우 공자.’

그녀의 몸과 밀착되어 있는 선우진의 몸이, 그 강철같이 단단한 근육질 육신의 느낌이, 심장을 쉴 새 없이 쿵쿵 뛰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사실 이건 지금 갑자기 생긴 감정은 아니었다.

자제력 하나는 자신 있는 정연이기에 애써 외면했지만, 그녀는 처음 자신을 구해 줬을 때부터 선우진에게 눈길을 빼앗겼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인 데다 그 잘생긴 얼굴, 사심 하나 깃들지 않은 선한 눈빛, 부드러운 말투와 배려심까지.

무엇 하나 여인의 방심을 흔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으니까.

심지어 알고 보니 그는 뛰어난 무위와 의협심까지 갖춘 유명한 협객이 아니던가.

사매인 정안이야 화영빈 사형의 골수 추종자이기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정연이 보기엔 선우진이 모든 아미파 문도의 이상형인 화 사형보다 모자랄 구석이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지.’

늘 슬퍼 보이기만 하는 화 사형보다는, 가볍지 않으면서도 밝은 성격의 선우진이 훨씬 더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근데 그런 선우진의 몸이 지금 정연 그녀와 완전히 밀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오랜 시간 그녀를 정체되게 만들었던 망설임과 잡념을 모두 날려 보낸 상태였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점점 더 많은 혈교도들이 그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이제 한 단계 이상 성장한 정연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저년, 실력이 제법이다!”

“한꺼번에 쳐!”

“으하아압!”

세 명의 적들이 둘러싸고 한꺼번에 달려들자 들떠 있던 정연의 얼굴에도 당황한 표정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순간 역시나 선우진의 전음이 들려왔다.

- 소저! 오른쪽 끝 놈만 상대하시오! 나머지는 신경 쓸 필요 없소!

오른쪽?

정연이 지금 선우진을 왼쪽으로 부축하고 있었기에 오른쪽 적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편하긴 했다.

정연은 망설임 없이 왼쪽 두 개의 검을 무시한 채 오른쪽 한 명에게만 집중했다.

완벽한 신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앗!”

멸절검법 이초.

천왕분뢰.

슈하악!

정연의 검이 세 개의 낙뢰가 되어 혈교도를 찔러 갔다.

검을 찔러 오는 상대방의 검에 맞서 방어 없이 같이 검을 찌르는, 그래서 상대방보다 먼저 검을 찔러 넣는 살초였다.

“이, 이년?!”

동귀어진의 한 수에 혈교도는 화들짝 놀라 정연의 검을 방어하려 했다.

자신 말고도 두 명의 동료가 더 있으니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연이 검을 찌르는 동시에 선우진의 피풍의 안쪽에서 다시 두 개의 빛이 쏘아져 나왔다.

근접한 거리, 일류 경지의 무사들로서는 반응하기 힘든 속도의 암기술이었다.

푸슉!

“컥!”

챙!

한 명의 목이 바로 꿰뚫리고, 한 명은 간신히 암기를 방어해 냈다.

그것도 실력이 아닌 우연이 도운 결과였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심장이 서늘해진 혈교도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정연과 검을 맞부딪치던 동료가 벼락같은 그녀의 검을 다 막지 못하고 피를 뿜어내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 이런!”

혈교도는 물러섰다가 동료들과 함께 다시 덮치겠다고 결심했다.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였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피풍의 안에서 빛줄기 하나가 날아들었다.

푸슉!

깜짝 놀란 혈교도가 황급히 몸을 날렸다.

어떻게든 도주할 생각이었다.

암기를 확인할 정신도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몸을 날린 그의 옆 목에 암기가 꽂혔다.

그는 그대로 절명할 수밖에 없었다.

푸욱!

“커흑!”

그로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인지할 수도 없었다. 분명히 암기의 사정권을 피한 것 같았는데….

그저 한순간 의식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정연은 자신의 상대를 격살하고 선우진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선우진이 쏘아 낸 비도가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적을 쫓아가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마치 전설의 어검술을 보는 것 같았다.

“저, 저건!”

그 비도에 얇은 은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선우진이 은사를 당겨 다시 비도를 회수했을 때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정연은 신기한 눈빛으로 그에 관해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자가 날아오고 있었다.

“이 건방진 년들!”

야비해 보이는 인상과 손에 든 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광채, 절정 고수였다.

상대의 도강을 본 정연의 얼굴에 두려움의 빛이 떠올랐다.

아직 절정 초입으로 보이긴 하지만, 설사 초입이라 해도 그녀가 존경하는 아미검봉 정인 사저와 동급이었던 것이다.

그때 선우진의 피풍의 안에서 다시 세 개의 빛살이 뛰쳐나갔다.

푸슈슉!

이제껏 한 명당 한 개 이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선우진의 암기였다.

하지만 놈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어딜!”

채채챙!

세 개의 암기를 쳐내면서도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은 놈이 덮쳐 오고 있었다.

붉은 도강을 뿜어내는 도가 정연을 향해 힘껏 내리찍히려 할 때, 선우진이 쓰고 있던 피풍의가 한순간 확 펼쳐졌다.

화아악!

장산사마의 넷째 장우도 효우부는 한순간 자신의 시야를 완전히 가린 피풍의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제법 귀찮은 한 수였다.

안전하게 가기 위해선 잠시 물러섰다가 시야부터 확보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그러기는 너무 귀찮았다.

“흥!”

코웃음을 친 효우부가 그대로 나아가며 전력을 다해 도초를 전개했다.

“으하압!”

촤아아악!

여러 개의 가지로 갈라지는 붉은 낙뢰를 보는 듯한 위력적인 한 수였다.

정연은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붉은 낙뢰에, 피풍의가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비록 적이 시전한 공격이긴 하지만, 너무도 위력적이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는 또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 있던 선우진이 자신의 옆에서 움츠렸던 몸을 일으켜 검을 뻗어 가는 모습을.

그의 잘생긴 옆얼굴이 사납게 웃음 짓는 모습과, 그의 앞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검광의 날개.

그것은 마치 이야기 속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검광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던 상대를 감싸자, 정연에게는 너무도 거대해 보였던 그 마두의 눈이 당황의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두는 이를 악물고 사방으로 도를 휘둘렀다.

정연이 보기에도 무척 다급해 보이는 몸짓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을 정연은 볼 수 없었다.

슉!

아니, 본 것 같기도 했다.

그저 한 줄기 빛이 번쩍하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정연이 보게 된 광경은, 어느새 선우진의 검이 마두의 심장을 관통해 있는 모습이었다.

정연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선우진이 검을 찌르고 그 검이 적의 가슴을 관통한 중간 과정이 삭제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 자신만 시간을 건너뛴 듯한 기분.

방금 선우진이 전개한 극쾌의 검초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덕분이었다.

“일시사일? 점창파 놈이냐?”

정연이 깜짝 놀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험악한 인상의 중년인 한 명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으로 뿜어내는 듯한 엄청난 기세, 어쩐지 보는 것만으로 섬뜩한 느낌이 드는 남자였다.

게다가 그 남자뿐만이 아니라 그의 좌우에 서 있는 자들 또한 상당한 고수로 보였다.

선우진은 원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정식 점창파 제자는 아니지만,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런 너는 누구냐? 혈교의 마두?”

그들을 대하는 선우진은 전혀 흔들림 없이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정연은 그의 여유 있는 모습에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직후 정연의 귀에 들려온 전음은 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다급한 목소리였다.

- 제가 상대할 수 없는 고수로군요. 내공 팔십 년 이상의 고수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력으로 도망쳐야 할 것 같군요. 하나, 둘, 셋을 세면 제게 업히셔야 합니다. 준비하세요. 하나, 둘….

***

같은 시각,

비사영과 정안은 여인들이 갇혀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장소를 발견한 상태였다.

과검문의 심처, 본전과 가까운 곳인 데다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유독 두 명의 보초가 경계를 서고 있는 곳.

그것도 바깥을 경계한다기보다는 안에서 누가 나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 아마도 이곳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정안이 비사영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 비 공자, 이제 어쩌죠?

비사영은 천천히 그들의 무위를 가늠해 봤다.

둘의 무위는 대략 일류 중급에서 상급 정도. 아마도 비사영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무사들로 보였다.

정안의 무위도 대략 일류 중급이라고 했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적들과 싸우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었다.

이곳은 적진이고 약간의 소란만으로도 얼마든지 적들이 몰려올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친구인 선우진이 온통 적들을 끌고 가서 주변에 아무런 인기척도 느낄 수가 없지 않은가.

비사영은 정신을 집중해 주변의 인기척과 지형을 살펴보고는 정안에게 전음을 보냈다.

- 소저, 잘 들으시오….

잠시 후, 정안은 긴장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건물을 빙 돌아 초병들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비사영의 말로는 그녀가 복면을 벗고 초병들에게 뛰어들면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한다고 했었다.

너무 떨리기도 하고 대체 왜 복면을 벗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해 보고 싶었다.

그를 믿기로 했다.

적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깊게 심호흡을 한 정안은 마음속으로 셋을 센 후, 이를 악물고 적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하나, 둘, 셋!’

파박!

측면이라곤 하지만 거리가 꽤 있었기에 적들은 바로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응?!”

“적습이다!”

챵!

챵!

그 순간 바로 도를 뽑아 자신을 노려보던 그들의 표정이 약간 묘해지는 것을 정안은 볼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 물어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적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린 사이, 그들의 뒤에서 빛살처럼 소리 없이 짓쳐들어온 비사영의 도가 순식간에 그들의 뒷목을 베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푸화악!

두 사람의 머리가 피를 뿜어내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떨어졌다.

아마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도 자신들이 죽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안이 이내 활짝 웃으며 작게 소리쳤다.

“꺄아악! 비 공자, 대단하세요! 역시 질풍비응!”

정안의 칭찬에 비사영은 헛기침을 하며 그녀를 외면했다.

“흠, 흠. 뭐, 뒤에서 기습한 걸 가지고. 어서 들어가 보기나 합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비사영의 입꼬리는 참지 못하고 위로 살짝 솟아올라 있었다.

그때였다.

비사영은 갑자기 뒷목에 느껴지는 섬뜩한 느낌에 황급히 몸을 날렸다.

파박!

슈학!

느낌은 정확했다.

어디선가 비호처럼 날아든 남자의 도가 비사영이 있던 공간을 두 쪽으로 갈라 버렸던 것이다.

심장이 서늘해질 만큼이나 깔끔한 도격이었다.

“호오, 실력은 별로인 것 같은데 감과 신법이 제법인 놈이로구나.”

그렇게 말한 놈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손에 쥔 정안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한 손으론 비사영에게 도를 휘두르고, 다른 한 손으론 정안의 목을 잡아 점혈을 했던 것이었다.

비사영으로선 알 수 없었지만, 놈이 바로 장산사마의 둘째인 짐마도 명대술이었다.

하필 지금 여인을 데리러 왔던 놈과 마주치게 됐던 것이다.

순식간에 점혈당한 정안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비사영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공자! 도망쳐요! 고수예요!”

상대가 고수라는 건 절정 고수들과도 수없이 도를 맞대 봤던 비사영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최소 절정 초입, 어쩌면 그 이상의 고수일 것 같았다.

하지만 비사영은 이를 악물고 놈을 향해 도를 뻗으며 말했다.

“소저를 버리고는 아무 데도 가지 않소.”

그러자 명대술은 가소롭다는 듯 비릿하게 웃으며 이미 점혈된 정안의 목에서 손을 떼고는 비사영을 향해 도를 내밀었다.

그의 도에서 붉은 도강이 길게 뻗쳐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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