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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81화 (81/359)

81화 관음장-4

아미파 제자들은 바로 본산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조사대로서 결진 사태와 함께 왔던 정혜 소저는 물론 그간 우리와 함께했던 정연, 정안 소저들도 함께였다.

며칠간 함께 움직여 왔기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들이 결한 사태의 경고를 무시하고 움직이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일 테고 무엇보다 그녀들의 실력으로 정협방으로 침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그녀들이 출발하기 직전, 비사영과 나는 아미파의 소저들이 화영빈을 둥글게 둘러싼 채 꺅꺅거리며 소녀들처럼 인사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정인을 바라보듯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화영빈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을 보니, 그가 아미파의 모든 제자들이 연모하는 남자라는 것이 확실히 실감이 됐다.

“화 사형, 이번에 또 저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 사형, 정인 사저도 꼭 구해 주세요! 항상 몸조심하시구요.”

“화 사형, 아미파에 또 와 주셔야 돼요. 꼭이요!”

“화 사형…!”

“화 사형…!”

정안 소저 역시 그녀들 중 한 명이 되어 두 손을 꼭 모은 채 화영빈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옆에서 씁쓸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비사영을 슬쩍 보며 얘기했다.

“화 대협은 그 정선 소저라는 분을 진짜 많이 사랑하셨나 봐. 저렇게 많은 소저들이 바라보고 있는데도 전혀 흔들리지 않으시는 걸 보면.”

대충 저쪽은 어차피 안 될 테니 너무 실망하지 말란 위로의 소리였다.

그러자 비사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 진짜 고수가 되어야겠다.”

그 뜬금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러자 녀석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외모로 화 대협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 아니냐. 무공이라도 비슷해져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

“아아.”

그야 그렇긴 한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외모로 능가할 수 없다는 거야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무공은 가능할까?

화영빈도 앞으로 놀고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이제 일류에 불과한 비사영이 초절정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무공으로 따라잡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기로 했다.

‘외모, 무공 다 안 되니 포기하라고 할 순 없잖아?’

그러자 녀석이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며 물었다.

“너 지금 그것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

쿨럭!

느닷없이 정곡을 찔린 나는, 슬쩍 바라본 녀석의 표정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는 그냥 솔직히 웃으며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인마. 사실 네가 화 대협과 비교가 되냐? 외모, 무공, 배경에 성격까지 모두 다 절정 앞에 선 삼류 무사지.”

“윽! 갑자기 사실 폭행 뭔데? 그리고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성격은 내가 좀 낫지 않냐?”

할 수 있는 한 가장 단호하게 대답해 줬다.

“응, 전혀 낫지 않아.”

“…하, 친구란 놈이 진짜….”

“친구였으니 이 정도지, 친구 아니었으면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다고 했을걸?”

“뭐, 인마?!”

우리가 이렇게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화영빈에게 인사를 마친 정연, 정안 소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정연 소저가 먼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내게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선우 공자,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한 점이 너무 많아요. 혹시 다음에 또 만나게 된다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빙긋이 웃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감사는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소저. 아, 아미검봉 정인 소저는 제가 반드시 구해 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요.”

“아, 네. 감사합니다.”

내가 비록 여자 경험은 없지만 비룡대에서도 최근 나를 연모한다는 여인들이 꽤 많아졌기에 그녀의 속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다른 걸 다 떠나 늘 상기된 표정으로 내 얼굴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을 모르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여지를 남겨 주고 싶지 않았다.

어설프게 좋은 사람이 되느니 단호해지는 것이 낫다는 걸 최근 깨달았던 것이다.

그녀는 너무도 선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내 마음엔 빈자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정연 소저는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살짝 물기 어린 눈을 내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더 이상 대화를 이어 가지 못할 때, 내 옆에서 정안 소저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비사영 녀석은 조금 비장해 보였다.

“부디 몸조심하시오, 소저. 내가 화영빈 대협 못지않은 고수가 됐을 때 다시 찾아뵙겠소.”

하지만 녀석의 비장한 인사에 정안 소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네? 우리 그 전엔 못 봐요?”

“…예?”

환했던 정안 소저의 표정이 조금 시무룩해 보이고 있었다.

“저는 함께 있었던 시간이 너무 즐거웠어서 우리가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제 착각이었나 보군요.”

그러자 이제 당황한 건 비사영이었다.

“…예? 아니, 소저. 그건 착각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비사영에게 풀이 푹 죽은 표정의 정안 소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또 착각했나 봐요.”

그러자 비사영이 황급히 소리쳤다.

“아, 아니오! 나도 소저와 함께 한 시간이 정말 즐거웠소!”

오오!

급 튀어나온 강렬한 고백이었다.

옆에 있던 내가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네? 정말요?”

다시 고개를 들어 비사영을 바라보는 정안 소저의 얼굴은 아까처럼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그러자 그녀를 보던 비사영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너무 예뻐 보여 정신을 차리기 힘든 모양이었다.

넋이 살짝 나간 것 같은 녀석의 표정에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정안 소저는 문득 다시 이상하단 표정이 되어 물었다.

정말 표정 변화가 다채로운 소저가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즐거우셨는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안 찾아올 생각이세요? 혹시 제가 실망할까 봐 거짓말을….”

비사영이 급히 말했다.

“찾아오겠소! 다음 휴가 때 반드시 찾아오겠소!”

그러자 정안 소저가 환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정말요?! 와아, 잘됐다!”

두 소저와 작별 인사를 마치고 그녀들이 멀어지자 넋이 나간 표정의 비사영이 내게 물었다.

“기분이 매우 좋긴 한데… 왜 농락당한 것 같지? 이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냐?”

녀석의 질문에 코웃음을 치며 자신 있게 대답해 줬다.

“훗! 그걸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냐? 내가 여자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

“…하긴. 너나 나나.”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녀석을 보니 어쩐지 씁쓸해졌다.

그래도 녀석보단 내가 좀 낫지 않나?

아미파의 제자들을 보낸 뒤 우리는 바로 인근의 하오문 지부를 방문했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천성의 하오문 미산지부로 찾아갔고, 화영빈 대협 때문인지 하오문의 지부장은 직접 나와 무척 공손한 태도로 정보를 전달해 줬다.

“…그렇게 돼서 산검문에게 대패한 정협방의 잔존 인원들은 다시 사천으로 돌아갔습니다.”

“역시!”

산검문과 정협방의 전투에 관한 정보를 얻은 비사영과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설풍 조장과 청연 소저를 굳게 믿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충 얘기를 들어 보니 역시 내 생각대로 청연 소저의 지략과 조장의 활약이 승부를 결정한 모양이었다.

동료들의 소식을 듣고 안심한 나는 이제 다른 것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정보를 얻을 시간이었다.

“그럼 패배한 정협방은 현재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마 복수전을 벌일 모양입니다. 남은 절정 고수들을 모두 동원해 귀주성 쪽으로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얘기일 것이었다.

이렇게 산검문 따위에게 패하고 물러나는 것을 정협방으로선 용납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제부턴 자존심과 명예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이건 우리에게 꽤나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전력이 귀주성 쪽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건 정협방 본진의 전력이 약해져 있을 것이란 뜻이니까.

문득 다시 물었다.

“정협방주는 어떻습니까? 그도 함께 이동했습니까?”

그러자 지부장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저희도 잘…. 아시다시피 정협방주가 누구인지도 알려져 있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정협방주의 정체는 아직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그가 혈마 직속의 마두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어쨌든 의뢰자로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로 대충 다 얻은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젠 협박을 할 차례였다.

나는 씨익 웃으며 하오문 지부장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군요. 혹시 지금 우리가 질문한 것들도 정협방에 보고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러자 그의 눈빛이 짧은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하오문의 지부장다운 평정심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되물었다.

“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건지 잘….”

역시 오랜 시간 이 세계에서 뒹굴어 온 능구렁이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번엔 상황이 나빴다.

“지부장님께선 제가 아마 지부장님을 떠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계신 모양이로군요. 죄송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마음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게 마지막 기회일 테니까 말이죠.”

그러자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해 줬다.

“하오문 미산지부가 혈교의 하수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미산지부만이 아닐 수도 있고 말이죠.”

“뭐라고?!”

내 말에 지부장은 물론 옆에서 듣고 있던 화영빈의 표정까지 경악의 빛으로 물들었다.

비사영만이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음 짓고 있었다.

화영빈이 분노가 가득한 눈빛으로 지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혈교의 하수인이라고?”

그러자 지부장이 다급하게 반박했다.

“무슨 그런! 모함이요! 공자는 지금 우리를 모함하고 있소!”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모함이라구요? 뭐가 모함이라는 겁니까? 아미검봉 정인 소저의 정보를 팔아 그녀가 혈교도에게 납치당하도록 만들었던 게 모함이라는 겁니까? 함께 납치됐던 아미파의 정연, 정안 소저가 다행히 무사히 빠져나와 증언을 했는데도?”

그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우, 우리가 정보를 판 건 어디까지나 관음장에게였소! 그들이 혈교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리가…!”

“아, 관음장에게 팔았다? 아직도 그런 변명을 하고 계시는군요. 제가 듣기엔 관음장이 정협방에 의해 먹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던데요? 정인 소저 일행에게 그 정보를 파셨던 거 아닙니까?”

“그, 그건….”

그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입만 뻐끔거렸다.

그리고 서둘러 뭔가 말을 해 보려 했지만 내가 먼저였다.

“아, 됐습니다.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아마 이번에는 또 정협방이 혈교도라는 걸 몰랐다고 하시겠군요. 뭐,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몸을 일으켜 화영빈과 비사영에게 말했다.

“가시죠. 더 대화할 가치가 없군요.”

그러자 지부장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들이 혈교도라는 건 정말 몰랐단 말이오! 대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오?!”

피식 웃으며 대답해 줬다.

“하오문의 지부장치곤 판단이 무척 느리시군요. 무슨 짓은 이미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 대화를 여기 화영빈 대협에게 들려줬으니까 말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화영빈 대협이 어떻게 하실지, 앞으로 하오문이 어떻게 될지 말입니다.”

내 말을 들은 지부장은 순간 경악한 눈빛이 되어 화영빈을 바라봤다.

그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었다.

화영빈이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또 혈교에 대해 얼마나 큰 원한을 갖고 있는지를 말이다.

지부장은 그런 화영빈의 앞에서 혈교와 협력한 사실이 까발려졌고, 심지어 자신이 한 짓을 숨기려다 들키기까지 했던 것이다.

화영빈은 이제 완전히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청성파는 물론 사천의 모든 문파들과 무림맹에 알릴 것이다. 무림맹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군. 이제 사천성의 하오문도들은 그 죄를 피로 씻어 내야 할 것이다.”

화영빈의 살기가 온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초절정을 앞에 둔 고수가 뿜어내는 농밀한 살기.

그것을 이류에 불과해 보이는 지부장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가 창백해진 얼굴로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대, 대협, 저, 저희는 결코….”

하지만 화영빈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얼음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 등을 돌렸을 뿐이었다.

지부장의 얼굴이 절망으로 가득 차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을 때,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문득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러자 깜짝 놀란 지부장이 절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또한 밖으로 나가려던 화영빈 역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나는 이제 지푸라기를 던져 줘도 절을 할 것만 같은 표정의 지부장에게 천천히 말했다.

“지금 하오문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그게 뭡니까?!”

그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줬다.

“뭐겠습니까? 당연히 혈교를 박멸하는 최선봉에 서는 것이지요.”

“…예?”

비릿하게 웃으며 말해 줬다.

“하오문의 정보를 총동원해서 관음장처럼 정협방이 점령한 문파들을 모두 찾아내 알려야 할 겁니다. 또한 아미파와 그 밖의 정협방 때문에 피해를 입었을 모든 문파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하십시오.”

말을 이어 갈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로선 끔찍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정사마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이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던 하오문이, 이제 혈교와 척을 져야 한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까지 걱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선을 넘어 명분을 잃었고, 계속 중립을 유지하고 싶다면 핏값을 갚아야만 할 테니까.

나는 쐐기를 박듯 말했다.

“무엇보다도 앞으론 혈교와 무조건 적대할 것임을 맹세해야 할 겁니다. 그 후에야 정협방이 혈교의 세력임을 몰랐다는 변명도 약간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아마 그렇게 해도 피가 흐르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나는 화영빈을 쳐다봤다.

그러자 무서운 눈빛으로 지부장을 노려보고 있던 화영빈은 잠시 후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약간의 설득력은 생기겠지.”

그러자 지부장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사정했다.

“그, 그런….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조언을 드렸을 뿐 결정권자가 아닙니다. 결정은 무림의 여러 문파들과 무림맹이 하겠지요. 물론 저도 항상 중립을 표방했던 하오문이 혈교와 같은 거대 세력을 적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거라는 점은 잘 압니다.”

내가 거기까지 말하자, 하오문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듯한 발언에 그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비릿하게 웃으며 다음 말을 이어 가는 순간, 그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최소한 모든 하오문도들이 무림공적으로 몰려 박멸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잘 의논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부장은 우리가 나갈 때까지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밖으로 나온 화영빈이 내게 물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나?”

“네, 정협방이 마수를 뻗친 곳이 관음장과 과검문밖에 없진 않을 테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엄청나게 많은 문파를 괴뢰로 만들어 놨을 겁니다. 그걸 파악하기 위해서는 하오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겸사겸사 앞으로 혈교가 하오문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다면 더 좋구요.”

간단히 말하긴 했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분기점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으로 지난 삶에서 전선 이북 곳곳에 침투해 있던 혈교도들이 이번 삶에서는 원천 봉쇄된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물론 원천 봉쇄까지는 안 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난 삶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무척 만족스러웠다.

이번 일만큼은 나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일이었다.

그러자 화영빈이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대단하군.”

화영빈의 감탄에 비사영이 자랑스럽다는 듯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좀 부끄러운 마음에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어디까지나 화 대협께서 계셨기에 쓸 수 있었던 방법이었습니다. 사영과 저만 있었다면 협박이 전혀 안 먹혔을 테니까요.”

그러자 화영빈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겸손할 필요 없네. 나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정작 나는 못 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내가 비룡대에 있었을 때도 자네처럼 나를 이용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군. 아무튼 그래서 이제부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정협방의 전력이 귀주성 쪽으로 집중되고 있다니 당연히 정인 소저를 구하러 가야겠죠.”

돌고 돌아 드디어 이번 사태의 원흉인 정협방으로 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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