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85화 (85/359)

85화 정협방-4

“음?”

갑자기 들려온 외침에 사원양은 멈칫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본전 쪽에서 웬 젊은 놈이 날아오며 소리치고 있었다.

“마군 어르신! 정파 놈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놈들이! 놈들이 본전을!”

그 말에 문득 본전 쪽을 바라본 사원양의 눈에 멀리 불길이 일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여기서도 보일 정도의 불이면 아마 큰불이 난 모양이었다.

‘양동이었나?’

사원양의 눈빛이 복잡해질 때 젊은 놈이 계속해서 외쳤다.

“괴선! 괴선이었습니다! 괴선이 왔습니다!”

그 말에 사원양이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그의 실눈이 눈동자가 살짝 보일 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절대자 청성괴선이라니, 좀처럼 청성산에서 움직이지 않던 그자가?

하지만 화영빈을 힐끗 본 사원양은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하긴, 제자가 왔다면 그 스승도 올 수 있을 터.

그때였다.

사원양을 향해 날아오던 놈이 갑자기 급가속했다.

파앙!

엄청난 신법.

사원양조차 살짝 놀랐을 정도의 속도였다.

이미 근거리까지 왔던 놈은 그대로 기습적으로 검초를 전개하고 있었다.

“하아압!”

하지만 사원양은 코웃음을 쳤다.

“흥!”

처음부터 못 보던 놈이 자신을 마군이라고 불렀기에 의심은 하고 있었다.

다만 불이 난 본전과 괴선의 얘기가 신경 쓰였기에 잠깐 접근을 허용했던 것이었다.

‘꽤 머리를 쓰는 놈이로군. 좋은 기습이긴 했지만 본좌를 위협하기엔 수준이 너무 낮구나.’

하지만 바로 놈을 향해 손을 쓰려던 찰나, 사원양의 눈엔 문득 당황의 빛이 떠올랐다.

놈의 검이 갑자기 수십, 수백 개로 분열해 자신을 둘러쌌던 것이다.

오랜 세월 수많은 환검을 겪어 봤던 사원양으로서도 처음 보는 환검이었다.

“호오!”

사원양은 조금 감탄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환검.

몸을 팽이처럼 한 바퀴 회전시키며 손을 한번 긋는 것으로 모든 환검을 걷어 낼 수 있었다.

화아악!

그러곤 바로 놈을 향해 손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사원양은 그사이 놈이 이미 저 멀리로 재빠르게 도망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응?”

정말 신법 하나만큼은 대단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저렇게 도망갈 거라면 대체 왜 기습했단 말인가? 그저 찔러볼 생각이었나?

어이없는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던 사원양은 문득 놈의 손에 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고개를 돌려 화영빈을 바라봤다.

그러자 아까까지 놈의 손에 있던 흑색의 검이 어느새 화영빈에게 들려 있었다.

아마 아까의 한 수는 화영빈에게 검을 주기 위함이었던 모양이었다.

놈이 화영빈을 향해 외쳤다.

“화 대협! 괴선께서 도착하실 때까지 놈을 좀 붙잡아 주십시오!”

그 말에 사원양이 눈썹을 꿈틀했다.

음?

괴선이 온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건가?

사원양은 약간의 혼란을 느꼈다.

놈이 지금까지 잔머리를 굴려 했던 짓을 보면 분명히 거짓말일 것 같기는 한데, 또 가능성이 완전히 없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사원양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새로운 검을 든 화영빈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압!”

다시 노을과도 같은 검강이 펼쳐지는 것을 본 사원양이 중얼거렸다.

“상관없겠지. 다 죽이고 확인해 볼 것이다.”

사원양의 손에서 다시 붉은 강기가 선명하게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화영빈의 검이 빛의 속도로 그어졌다.

적하검법 구초.

검단낙일.

샤아악!

붉은 노을처럼 퍼져 가던 검기가 일순간 두 쪽으로 갈라졌다.

마치 지는 석양을 반으로 갈라 버리는 듯한 참격, 적하검법의 가장 간결하면서도 위력적인 초식이었다.

“흥!”

하지만 사원양의 대응은 그저 그것에 손바닥을 갖다 댄 것뿐이었다.

너무나도 밀도 높은 강기에 진짜 거인의 손처럼 보이는 그의 손이 가볍게 상체를 뒤덮었던 것이다.

사원양은 한 손으로 놈의 검을 막은 후, 바로 다른 손으로 일장을 날릴 생각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저 정도 수준의 강기로 자신의 강기를 뚫을 수 있을 리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다음 순간, 사원양은 손바닥에 느껴진 섬뜩한 통증에 깜짝 놀라 뒤로 황급히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뒤로 물러나 바라보니 손바닥이 베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때였다.

그의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퓨퓨퓩!

암기?!

사원양은 바로 몸을 회전시켜 날아오던 암기를 손바닥으로 쳐냈다.

타타탕!

아까 그놈이었다.

그놈이 뒤에서 갑자기 돌진해 암기를 날리고는 다시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버러지 같은…!”

그때 또 뒤에서 화영빈이 공격해 왔다.

이번엔 소나기 같은 찌르기 공격이었다.

“하아압!”

동시에 멀어지던 놈 역시 바로 방향을 바꾸더니 돌진하며 암기를 날리고 있었다.

앞뒤로 톱니바퀴처럼 정신없이 몰아쳐 오는 공격에 사원양은 이를 갈아야만 했다.

“으득!”

***

통한다!

놈의 뒤를 향해 암기를 던지고는 다시 꽁지 빠지게 후퇴했다.

최근 성장한 내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저런 초절정의 괴물은 절대 사양이었다.

아까 발견했던 본전의 기둥에서 이어진 지하 통로는 땅 밑을 통해 정협방의 외곽까지 이어져 있었다.

거기까지 빠르게 이동해 보초를 처리했던 나는 붙잡혀 있는 여인들의 구조를 비사영에게 맡기고 전속력으로 이곳에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론 화 대협이 제발 이미 도망쳤기를 바랐었는데.

결국 내 불길한 예감대로 그는 혼자 남아 사원양과 맞서고 있었다.

‘젠장.’

정말이지 앞이 막막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저런 괴물과 맞서 싸워야만 하다니….

하지만 곧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중간에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가 사원양과 맞서게 된 건 모두 내 계획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만약 그로 인해 그가 죽었다면 대체 그 죄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러니 아직 그가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그를 무사히 살려 빠져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그게 제일 막막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건방진 놈들!”

사원양은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화영빈의 공격과 내 암기를 막아 냈다.

티티티티팅!

그러곤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한 손을 내게 뻗었다.

슈학!

강환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짓쳐들어오는 강환.

순간 침이 꿀꺽 넘어갔다.

하지만 이미 놈의 주변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나는, 폭진보를 이용한 급가속으로 강환의 진로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었다.

파박!

‘이쯤이야!’

엄청난 위력이라고 생각했던 강환의 진로에서 간단히 벗어나자 약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 정도라면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문득 놈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간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화영빈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온 것도 동시였다.

- 피하게!

그때 문득 떠올랐다.

일전에 비사영이 거력마에게 어떻게 붙잡혔었는지를.

그 순간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파앙!

피했다고 생각한 강환이 폭발한 것과 내가 폭진보를 전개한 것은 동시였다.

“으윽!”

폭진보로 튀어 나가는 내 몸이 폭압에 밀려 엄청난 속도로 가속됐다.

아무래도 간발의 차로 살아난 모양이었다.

그때 엄청난 속도로 지나가던 주변이 문득 묘하게 느려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속도감이었는데… 그 속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건….’

그때 문득 사원양 쪽을 바라보니, 놈은 나를 처리했다고 확신한 모양인지 바로 화영빈을 향해 공세를 전개하려 하고 있었다.

기회였다.

그대로 반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꿔 놈의 등 뒤를 향해 소리 없이 돌진했다.

놈의 열린 등판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었다.

‘흡!’

삼 장 거리에서 온 힘을 다해 암기를 투척했다.

놈의 왼쪽 등, 심장이 위치한 곳을 향해서였다.

쉬이익!

암기가 놈의 왼쪽 등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느리게 보였다.

삼 장 거리에서 날린 암기가 놈의 등에 닿기까지가 마치 일각만큼이나 긴 것 같았다.

놈이 암기의 소리에 반응했는지 움찔하고는 급히 몸을 돌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푸욱!

“큭!”

실패였다.

왼쪽 등을 뚫고 심장을 꿰뚫기를 바랐는데, 놈이 몸을 트는 바람에 왼쪽 어깨에 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젠장!”

아쉬움을 삼키고 바로 몸을 날려 놈에게서 멀어졌다.

근거리에서 아까처럼 강환을 날린다면 피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물러나자 방금 공격당할 뻔했던 화영빈 또한 놈이 멈칫한 사이 일단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러자 사원양이 제자리에 멈춰서는 암기가 꽂힌 자신의 어깨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들어 나를 바라봤을 때, 나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놈의 눈을 가득 채운 채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분노의 불길을….

놈이 악귀처럼 포효했다.

“이 모기 같은 놈이!”

그러고는 나를 향해 양손을 휘저었다.

슝! 슈웅! 슈슝!

또 다시 강환이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

엄청난 속도의 강환 네 개가 연달아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같은 방향이 아닌 내가 피할 것까지 계산한 탄막을 형성한 채였다.

“이런!”

깜짝 놀라서는 최고 속도로 몸을 날렸다.

폭진보까지도 두 번 연달아 사용해야 했다.

파팡!

콰콰콰콰아아앙!

등 뒤로 거대한 폭음과 함께 폭압이 밀려왔다.

화아악!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었다.

간신히 폭발권에서 벗어난 나는 여전히 등 뒤로 밀려오는 후폭풍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돌려 놈 쪽을 바라봤다.

방금 진짜 죽을 뻔했고 놈이 너무도 두려웠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아무리 놈이 무서워도 이대로 화영빈을 둔 채 도망갈 수는 없었으니까.

그때 내 눈에 문득 사지가 떨어진 채 정신을 잃고 있는 결한 사태와 근처에 떨어져 있는 검 한 자루가 들어왔다.

꽤나 괜찮아 보이는 검이었다.

“흠.”

눈을 돌려보니 화영빈은 막 사원양을 공격했다가 막히고는 반격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내게 강환을 던지는 것을 막으려고 달려들었던 모양이었다.

사원양의 손톱에서 검처럼 길게 뻗어 나간 강기들이 화영빈을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콰콰콰콰콰콰콰!

“크으윽!”

빨리 도와줘야만 했다.

폭진보를 사용해 놈의 등 뒤로 돌진했다.

그러곤 사 장쯤 앞에서 암기를 던진 후 재빨리 옆으로 지나쳐 갔다.

퓨퓨퓩!

하지만 놈은 이제 이런 식의 공격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암기 소리만 듣고도 알겠는지 한 바퀴 몸을 회전시켜 간단히 암기를 쳐내고는 다시 화영빈을 몰아쳐 가고 있었다.

티티팅!

‘젠장.’

안타까웠다.

주변이 어둡기만 했어도 암기의 효과가 조금 더 괜찮았을 텐데.

어두운 밤이긴 하지만 주변 건물이 불타며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퓨퓨퓩!

멀어졌다 다시 접근하며 암기를 투척하길 세 번째.

놈은 이제 내 존재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 않기로 한 듯 간단히 암기만 쳐내고는 계속해서 화영빈에게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아마도 화영빈을 먼저 끝내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콰콰콰콰콰콰쾅!

“크으으윽!”

위기였다.

화영빈은 이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금도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중,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다시 접근하며 세 개의 암기를 날렸다.

퓨퓨퓩!

그러자 놈이 자연스럽게 회전하며 암기를 쳐냈다.

티티팅!

여기까진 지금까지와 똑같은 과정.

하지만 놈이 한 바퀴 회전해서 다시 화영빈에게 공세를 가하는 순간, 나는 소리 없이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놈에게로 바람처럼 짓쳐 들었다.

이제껏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었던 거리 안으로.

선우십삼검 삼초.

신응강하.

아까 주워 온 결한 사태의 검이 매의 강하처럼 놈의 등을 향해 내리꽂혔다.

쉬이익!

그때였다.

화영빈을 튕겨 낸 놈이 바로 몸을 돌리며 외쳤다.

“걸렸구나!”

돌아본 놈의 얼굴이 환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동시에 거인처럼 거대해진 놈의 붉은 손이 나를 후려쳤다.

퍼어엉!

“?!”

놈의 거대한 손바닥이 내 신형을 짓이기는 순간, 환하게 웃던 놈의 얼굴에 순간 당황의 빛이 어렸다.

놈에게 강타당한 내 신형이 꽃잎처럼 팍 흩어지며 분열했던 것이다.

바람에 흩어지는 꽃잎 같은 움직임, 천풍화엽이었다.

그때 놈의 등 뒤로 화영빈이 짓쳐들어왔다.

그 또한 방금 내 전음을 듣고 거짓으로 뒤로 물러선 덕분이었다.

“하아압!”

화영빈의 온 힘을 다한 일격이 작렬했다.

석양을 베어 내는 일검. 적하검법의 검단낙일이었다.

샤아아악!

얇은 실선이 붉은 석양 같이 퍼져 나간 검기를 한순간에 분리하고 있었다.

“감히!”

사원양이 급하게 그것을 방어하려 할 때 놈의 측면에 나타난 나 또한 사력을 다해 검을 찔러 넣었다.

사일검법 제일초.

일시사일.

쉬익!

그러자 다급해진 놈이 기합을 내질렀다.

“으하아아아압!”

화아아악!

순간 붉은 강기가 놈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와 투명한 막처럼 놈을 뒤덮었다.

예전 탐혈마군 지광옥이 썼던 바로 그것이었다.

경악한 내가 소리쳤다.

“호신강기?!”

놈을 향해 빛줄기처럼 찔러 가던 내 검이 마치 거대한 살덩어리를 찌른 듯 붉은 강기 속으로 푹 파묻히더니, 이내 엄청난 반탄력으로 튕겨 나왔다.

반대편에서 공격했던 화영빈 또한 튕겨 나가고 있었다.

튕겨 나가며 안타깝게 소리쳤다.

“이런 젠장!”

너무 안타까웠다.

이번에 잡았어야 했는데, 이런 기습이 다시 한번 통할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뒤로 빠르게 물러선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포기하면 끝장이야. 다시 기회를 만든다!’

아직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호신강기를 걷어 낸 놈의 표정도 꽤 힘들어 보이지 않는가.

역시 탐혈마군이 그랬듯 저놈에게도 호신강기는 무리할 수밖에 없는 경지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놈이 팔뚝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화영빈을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

“이놈!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

아마도 화영빈의 일검에 베어졌던 모양이었다.

그건 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빠르기는 오히려 내 일시사일이 더 빨랐을 텐데 내 검도 놈의 몸에 닿지 못했는데 어떻게 화영빈의 검이 놈에게….

문득 내 눈이 화영빈이 들고 있는 내 검 ‘묵랑’에 닿았다.

‘설마 묵랑 때문에?’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묵랑 자체가 엄청난 비밀을 지닌 신물이기도 하고, 묵랑의 예리함은 검기나 검강으로만 벨 수 있는 간귀도 그냥 베어 낼 정도가 아니던가.

그러니 어쩌면 강기조차 베어 냈을지도 몰랐다.

빠르게 화영빈에게 전음을 보냈다.

- 화 대협! 제 검이 아마 강기를 뚫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전음에 사원양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던 화영빈의 눈이 힐끗 나를 봤다.

그러고는 바로 휘몰아쳐 오는 놈의 조수를 향해 마주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아압!”

쾅! 쾅! 쾅! 쾅!

나 또한 다시 빠르게 움직이며 암기를 던졌다.

놈은 무척 분노한 표정이었지만 아까처럼 빠르게 화영빈을 몰아치지 않고 있었다.

내 기습을 경계하는 건지, 아니면 힘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놈의 눈은 분명 뭔가 기회를 노리고 있는 눈빛이었다.

다시 암기를 던지고는 빠르게 물러나며 화영빈에게 전음을 보냈다.

놈이 뭔가를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방금 내 마지막 암기를 소모했던 것이다.

‘좋아, 가자!’

파앙!

폭진보를 사용해 빠르게 돌진했다.

그러자 놈의 눈빛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향했고, 그 순간 바로 천풍화엽을 펼쳐 놈의 눈을 혼란시켰다.

“하압!”

푸스스슥!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분열하는 내 신형, 하지만 놈은 이제 수많은 잔상들 속에서도 내 실체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모자람을 느낀 나는 바로 환검경까지 전개했다.

촤아아아악!

여러 개의 잔상으로 분열된 내 신형에 더해 수십 수백 개의 환검이 놈을 둘러싸자, 드디어 놈이 내 위치를 놓친 것 같았다.

“쓸데없는!”

놈이 짜증을 내며 손을 휘둘렀다.

환검을 걷어 내려는 손짓이었다.

그 순간, 왼손으로 비도를 던졌다.

은사가 달린 비도였다.

쉬이익!

“흥!”

놈은 간단히 팔을 휘둘러 그것을 쳐내려 했다.

하지만 극도로 집중한 내 감각이 놈의 손을 피하도록 은사를 움직였다.

슈우욱!

마치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처럼 움직여 놈의 팔을 살짝 넘는 비도에, 놈의 신경이 좀 더 그쪽으로 쏠렸다.

“잔재주를!”

팅!

그때였다.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 기다렸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공격을 펼쳤다.

“하아압!”

선우십삼검 십사초.

주작현신.

내 검에서 연보라색 강기로 이루어진 주작이 날개짓을 하며 뛰쳐나갔다.

일전에 마유겸에게 쓰다 실패했던 주작현신이었다.

삐이이이!

마치 살아 있는 듯 부리를 벌려 울음까지 토해 내고 있는 주작의 모습에, 사원양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무슨?!”

하지만 놈은 그저 놀랐을 뿐, 무너지지 않았다.

놈은 곧 거인의 손 같은 강기를 휘둘러 주작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강기가 충돌했다.

“크윽!”

초절정의 장력과 맞부딪쳤음에도 주작은 바로 소멸되지 않았다.

믿을 수 없게도 잠시 사원양의 거대한 손과 한데 얽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잠시 물러났던 화영빈이 사원양의 뒤를 덮쳤다.

“검단낙일!”

쉬이익!

유일하게 강기를 뚫고 사원양을 베어 냈던 화영빈 최강의 초식이었다.

그러자 다급해진 표정의 놈이 다시 한번 호신강기를 전개했다.

“으하아아압!”

화아아악!

놈의 온몸에서 뻗어 나간 붉은 강기의 막에, 내 주작현신도, 화영빈의 공격도 헛되이 사그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호신강기의 반탄력을 견뎌 내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크으윽!”

하지만 뒤로 튕겨 나는 와중에도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거짓으로 검단낙일을 전개했던 화영빈이, 놈의 호신강기가 다시 사라지려는 순간 진짜 검단낙일을 전개하는 모습을.

“하아아압!”

붉은 노을처럼 펼쳐진 뿌연 검기가 한순간 위아래로 분리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힘까지 다한 듯, 그 일격은 마치 진짜 석양을 베어 내는 것처럼 장엄하게 느껴졌다.

푸화악!

검초를 펼친 화영빈은 모든 힘을 다 쏟아 낸 듯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주작현신을 펼치고 지쳐 버린 나 역시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내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이 장쯤 떨어진 곳으로 물러난 사원양이 가슴에서 꿀럭꿀럭 피를 흘리고 있었다.

창백해진 얼굴이었지만 그럼에도 멀쩡히 서 있는 모습, 방금 뒤로 잡아당기듯 신형을 이동한 놈의 수법 때문에 화영빈의 검이 얕게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실패였다.

이렇게까지 하고도….

온 힘을 다했음에도 쓰러뜨리지 못한 놈의 모습에 깊은 허탈감이 느껴졌다.

마치 절대 무너지지 않을 철벽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문득 내 귀에 화영빈의 전음이 들려왔다.

- 선우 소제. 자네는 이제 그만 도망치게. 나는 이제 체력도, 내공도 완전히 고갈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네.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 내 마지막 싸움을 함께해 줘서 고마웠네. 그러니 이제 꼭 살아서 내 복수도 부탁하네.

그렇게 말하는 그는 어째서인지 후련한 듯 맑게 웃고 있었다.

마치 이제 죽을 수 있게 되어 기쁜 사람처럼.

내가 이제껏 본 그의 표정 중 가장 개운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때, 사원양이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이 찢어 죽일 놈이!”

그러곤 맹수처럼 화영빈을 덮쳐 갔다.

하지만 화영빈은 놈이 아닌 나를 보고 있었다.

묵랑을 내게 던져 주며 그가 환하게 웃음 지었다.

- 부디 내 대신 꼭 혈교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