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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86화 (86/359)

86화 정협방-5

그때였다.

화영빈을 덮치려는 사원양의 등으로 푸른색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슈학!

“!”

사원양은 깜짝 놀라 화영빈을 공격하려던 것을 멈추고 그것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앙!

사원양이 휘두른 손이 그것과 부딪치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은 강환이었다.

아까 사원양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강환을 막아 낸 사원양이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어떤 놈이냐?!”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군가. 진짜 사원양이 아닌가? 소면마군이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

정협방의 담장 위에 서 있는 그는 푸른색의 옷을 입은 청수한 인상의 중년 도사였다.

그를 본 화영빈이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장문인?!”

응? 장문인이라고?

그럼 청성파의 장문인인 청명진인?

그러자 사원양 또한 일그러진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청명, 네놈이….”

“감히 전선의 이북으로 침입하다니. 이제 끝이다, 소면마군.”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속속들이 담장 위로 나타나고 있었다.

청성파의 고수들이었다.

화영빈이 조금 당황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장문인이 어떻게?”

화영빈이 해 준 얘기에 따르면 그는 친무림맹 쪽 인사였다. 또한 그렇기에 정혈대전에 참가한 후 무림맹의 힘을 등에 업어 청성파의 장문인이 된 사람이라고 했었다.

그렇기에 화영빈은 애초에 그가 정협방을 공격하는 것을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가 직접 정협방으로 내려온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영빈에게 전음으로 전달했다.

- 무림맹에서 전서가 온 모양입니다. 아미파와 같은 상황인 거겠죠. 그래서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구요.

사원양이 시뻘게진 눈빛으로 광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크하하하하! 이 사원양이 청성파 따위에게 당할 것 같으냐?! 모두 저승길 동무로 삼아 주마!”

그러자 뒤쪽에서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성이 모자라다면 우리는 어떤가?!”

뒤쪽을 바라보니 반대쪽 담장 위에도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번엔 녹색 옷을 입은 고수들이었다.

화영빈이 이번에도 당황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당문도?”

당문이라. 저들이 사천당문이었군.

생각해 보면 아미파, 청성파, 당문은 모두 정혈대전에 참가했던 문파들이었다.

아마 세 문파 모두에게 무림맹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다행한 일이었다.

덕분에 목숨은 건진 것 같으니 말이다.

나는 사원양의 신경이 다른 곳에 쏠려 있는 틈을 타 빠르게 튀어 나갔다.

파앙!

그러고는 화영빈을 낚아채 청성파 쪽으로 이동하며 그에게 속삭였다.

“하늘이 아직 화 대협이 오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삶이 끝나는 것을 오히려 후련해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에게 해 주고 싶던 말이었다.

그러자 그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엷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런가?”

소면마군 사원양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우리를 바라보면서도 차마 손을 쓰지 못했다.

양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청성파와 당문 고수들의 압박감에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당문 쪽 수장으로 보이는 고수가 소리쳤다.

“사원양! 저항해도 소용없다! 얌전히 투항해라!”

하지만 사원양은 마지막 힘을 불태우듯 손에서 붉은 강기를 뿜어내며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정파의 병신들! 네놈들 따위에게 본좌가 잡힐 것 같으냐?!”

그러자 당문의 대표가 청명진인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정 벌주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군. 좋다! 소원대로 해 주마!”

그러곤 몸을 날려 사원양의 주변으로 몸을 이동했다.

타닥!

다른 당문 고수들과 청성의 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민첩한 몸놀림으로 사원양의 주변을 둘러쌌다.

대략 청성과 당문을 합해 모두 백여 명의 사람들.

게다가 얼핏 보기에도 양쪽의 몇 명은 사원양 못지않은 초절정의 고수들인 것 같았다.

외통수였다.

이제 사원양이 이곳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황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 원! 양!”

대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저 먼 밤하늘로부터 누군가가 유성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얼핏 배종관이 연상될 정도의 거구를 지닌 남자였다.

하지만 저런 엄청난 위압감을 지닌 고수가 배종관일 리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것도 전선에서.

설마?!

엄청난 거리를 날아 유성처럼 날아온 그는 그대로 사원양을 향해 내리꽂히며 소리쳤다.

“감히 지존을 배신하다니! 용서치 않겠다!”

그의 거대한 몸은 그 자체로 붉은 유성처럼 보였다.

거대하고 붉은 원형막이 그의 몸 주변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아마도 아까 사원양이 간신히 썼던 호신강기로 온몸을 덮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맙소사….”

자신을 덮쳐 오는 거대한 유성을 바라본 사원양의 눈이 경악한 듯 크게 확대됐다.

놈은 황급히 붉은 강기로 덮인 거인의 손으로 유성을 후려쳐 가며 소리쳤다.

“무슨?!”

하지만 호신강기로 온몸을 감싼 거한은 그 기세 그대로 내리꽂히며 일권을 내질렀다.

마치 신의 징벌과도 같은 일격이었다.

둥.

그 거대하고 압도적인 굉격이 사원양과, 그가 서 있던 대지를 두드렸다.

다음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이 찢어질 듯한 폭음과 뒤집어지는 지면, 지진처럼 흔들리는 대지, 그리고 태풍처럼 확 밀려오는 폭압에 우리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세를 낮춰야만 했다.

“으윽!”

“이, 이 정도라고?”

잠시 후, 후폭풍을 막기 위해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그 곳을 바라본 우리는, 다시 한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사원양과 거한이 맞부딪쳤던 곳엔 이제 운석이 떨어진 듯 푹 파인 거대한 화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는 거한 혼자만이 오연하게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사원양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가 어떻게 됐는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아마도 거한의 발아래 짓이겨져 땅에 눌러 붙은 핏자국과 살점이 바로 사원양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젠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던 사원양이 단 한 수만에 저렇게….

믿을 수 없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청성파 장문인인 청명진인이 그를 보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철신광마… 척강?”

그랬다.

그는 바로 정혈회담 때 비룡십삼대에서 기세만으로 모든 비룡대원들을 쓰러뜨릴 뻔했던 혈교의 마두 철신광마 척강이었다.

또한 그는 혈교오마의 일인이자 열다섯 명의 절대자들 바로 밑에 위치한 천하삼십육성의 괴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전선을 넘어 이곳까지 나타났던 것이다.

당문의 수장으로 보이는 관옥 같은 얼굴의 중년인이 굳은 안색으로 소리쳤다.

“척강! 네놈까지 이곳에 나타나다니, 혈교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화영빈의 말에 따르면 그가 바로 당가의 가주인 독암지존 당정후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척강은 오만한 눈빛으로 그를 깔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있는 듯했다.

그때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척강이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였다.

“오해십니다. 이건 저희 혈교의 배반자를 잡기 위한… 이른바 파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목소리와 함께 척강의 그림자에서 흑의를 입은 복면인이 천천히 쑤욱 솟아올랐다.

그의 등장에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다른 이들. 청성, 당문, 심지어 척강까지도 나는 어느 정도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나타난 저자의 기척만큼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도 마치 환영을 보는 듯했다.

아무런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저자는 대체…?”

그러자 화영빈이 대답해 주기에 앞서 독암지존 당정후가 먼저 경악한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소리쳤다.

“구유음마 지기음?!”

구유음마 지기음이라고?

허, 맙소사.

구유음마 지기음은 척강과 같은 혈교오마의 일인이었다.

또한 천하삼대살수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천하삼십육성 중 혈교에 속한 두 명이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났던 것이다.

당정후가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척강에 지기음 네놈까지! 혈교는 정녕 이 차 정혈대전을 원하는 것이냐?!”

그러자 지기음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방금 말씀드렸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존께서는 무림맹의 제갈지강 군사로부터 저희 혈교의 배신자들이 전선을 넘어 무림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소식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무척 분노하시고는 직접 저희를 파견하여 정리하도록 명하셨지요. 이는 무림맹의 제갈지강 군사와도 협의된 일이니 직접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뭐라고?”

제갈지강과 협의된 일이라는 말에 청성과 당문의 사람들은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했다.

“제갈 군사와 협의된 일이라고?”

“저 끔찍한 놈들과 말인가?”

제갈지강은 역시 혈교와 연락할 수 있는 비선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좀 이상했다.

‘저걸 저렇게 쉽게 얘기한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인들이 웅성거릴 때 구유음마 지기음은 다시 군웅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혈마께서는 배신자의 수뇌인 사원양은 반드시 처단하되, 나머지 것들을 처리하는 것은 정파인들의 양해를 구한 후 행동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금부터 이 정협방이란 곳을 지울 생각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이곳과 이곳에 속한 모든 자들을 다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그의 정중한 질문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협방을 정리하는 것을 마치 자기 앞마당 정리하는 것처럼 쉽게 얘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척강이 방금 사원양을 죽인 것은 누가 봐도 혈마가 꼬리를 끊은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또 그것이 사실일 테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지기음은 저렇게 선택권을 정파인에게 줌으로써, 자신들은 그저 배신자를 처단한 것이지 꼬리를 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 줬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미 꼬리를 잡힐 것이 전혀 없다고 자신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일 것이었다.

당정후가 무서운 눈빛으로 지기음을 노려보다 씹어뱉듯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나머지는 우리 사천 무림인들의 손으로 정리하도록 하지.”

그러자 지기음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요.”

그러고는 지기음은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정파인들을 훑어보고 있는 척강을 향해 말했다.

“설마 지존의 명을 잊은 것은 아니라 믿겠소. 이만 돌아갑시다.”

혈마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살짝 움찔한 척강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짝 몸을 숙였다 밤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퍼엉!

그는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붉은 유성이 되어 밤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의 광폭한 도약에 모두가 잠깐 눈길을 빼앗긴 사이 구유음마 지기음은 어느새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실로 유령 같은 자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문득 당정후가 청명진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청명진인. 근처에 당가의 분타가 있으니 좀 쉬신 후에 논의하시는 건 어떠신지요?”

그러자 청명진인이 기다렸다는 듯 자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허, 청성의 제자가 사천 무림의 안위를 위해 이렇게나 고생을 했는데 사문의 존장이 된 이로서 어찌 쉴 수 있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한 청명진인이 화영빈을 바라봤다.

아마도 그가 말한 청성의 제자는 화영빈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당정후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흠, 화영빈 소협은 청명진인과 그다지 뜻이 잘 맞지 않다고 사천 무림에 소문이 자자하던데, 갑자기 사문의 존장임을 강조하시다니 좀 당황스럽습니다.”

“허허허! 무림에 뜬소문이 많은 것이야 어디 하루 이틀이겠습니까? 저희가 서로의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어디 청성을 위한 마음도 다르겠습니까?”

웃는 얼굴로 대화하는 두 사람의 분위기는 겉보기와 달리 무척 치열해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야 두 사람의 대화에 숨겨진 속뜻을 파악해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당가가 청성에게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고 말한 건 이 근처가 당가의 영역이니 정협방의 영역에 대한 우선권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가? 청명진인이 화영빈의 얘기를 꺼낸 건 정협방이 혈교의 무리임을 밝혀 낸 것이 청성의 제자였으니 자신들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얘기고?’

쉽게 말해 양측은 척강과 지기음이 사라지자마자 정협방의 영역에 대한 탐욕부터 드러냈다는 얘기였다.

제갈지강과 혈교의 관계에 대한 것은 물론 아미파의 문도들이 희생당한 것, 납치된 여인들에 대한 관심은 모두 젖혀 둔 채 말이다.

가슴이 답답해져 오고 있었다.

문득 청성파와 당문의 무인들을 살펴보았다.

대충 백여 명의 무인들을 대동한 것 같은데 얼핏 봐도 각각 삼십 명 이상씩은 절정 고수들로 보였다.

게다가 그 수준도 놀라웠다.

설전을 벌이고 있는 양쪽의 수장은 물론 양쪽 다 두세 명 정도는 소면마군 사원양과도 비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세력들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까 철신광마 척강이 나타났을 때를 떠올려 봤다.

이 엄청난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단신으로 나타나서는 모두를 눈 아래로 내려다보던 그의 오연한 존재감.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양측의 무인들이 그를 향해 드러냈던 감정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문득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하, 하하.”

절정의 경지에만 도달하면 혈교에 대해 유의미한 공세를 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게 얼마나 어이없는 생각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마는 것이다.

고작 일류의 경지에서 바라봤던 세상과 절정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은 이토록 달랐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다.

과연 내가 정말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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