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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94화 (94/359)

94화 변화-1

철귀의 시신을 가지고 십삼대에 돌아가자 바로 조장들의 비상 회의가 열렸다.

원래는 오늘 복귀한 설풍을 위해, 내일 아침에 회의할 예정이었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도저히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설풍은, 모인 조장 중 한 명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 조장?!”

그러자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설풍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하하! 또 만났구려! 그러게 내가 금방 만나게 될 거라고 하지 않았소?! 하하하하!”

그는 바로 산검문에서 정협방에 대항해 함께 싸웠던 점창검호 제원영이었다.

비룡십일대의 일 조장이었던 그가 십삼대의 조장 회의에 참석해 있었던 것이다.

설풍이 멍해진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하하하! 돌아가자마자 십삼대로 전출을 신청했지 뭐요. 뭐, 허가는 아직 나지 않았지만 어차피 날 거, 더 기다릴 게 있겠소? 그래서 바로 왔다오. 하하하!”

그 말을 들은 설풍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그럼 그렇게 서둘러 돌아갔던 게?”

“맞소. 이것 때문이었다오. 이제 나를 비룡십삼대 사 조장이라고 불러 주시구려. 하하하하!”

설풍은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제원영은 정협방의 침략을 물리친 후, 십삼대 인원들이 선우진과 비사영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 서둘러 십일대로 복귀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마도 십삼대로 전출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칠 조원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십삼대로 와 있었다니, 역시 호쾌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남자였다.

제원영이 옆에 선 이 조장 점창검룡 사군일을 툭 치며 말했다.

“원래도 나는 군일 이 녀석과 함께 근무하고 싶었다오. 그랬던 걸 마유겸 그놈이 있어 오지 않고 있었던 건데, 이번에 마유겸 그놈이 사라진 데다 와야 할 중요한 이유가 생겨 잠시도 미룰 수가 없었소.”

“…중요한 이유?”

그들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을 때, 십삼대 부대주인 헌영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자, 이제 그만 회의를 시작하세. 칠 조장에게 신임 사 조장부터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

그러곤 대주 풍양을 보며 물었다.

“말 나온 김에 새로운 마인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조원 이동에 관해 먼저 설풍 조장에게 말해 줘도 되겠습니까?”

그의 질문에 풍양이 과묵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헌영보가 다시 설풍을 보며 말했다.

“자네들이 없는 동안 검성 어르신 덕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네. 다른 것들이야 천천히 얘기해도 되겠지만 일단 인원 충원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말해야겠지. 그동안 대대적인 인원 충원이 있었네. 덕분에 다른 조는 모두 열 명씩을 꽉꽉 채울 수 있었지.”

그러고는 오 조장 독수광을 힐끗 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이번에 또 대규모 결원이 발생하긴 했지만 말일세. 흠흠. 뭐, 아무튼 그 와중에 반드시 칠 조로 배정받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신입 두 명이 있었네. 그래서 이제껏 조 배정을 하지 않고 대기시키고 있었지.”

헌영보의 말에 설풍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반드시 칠 조로 배정받겠다고 했다고요?”

“그래.”

“대체 누가 말입니까?”

그러자 헌영보가 문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오게나!”

그리고 들어온 사람들은 두 명의 여인, 아니 한 명의 여인처럼 생긴 남자와 나른한 표정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설풍의 눈이 한순간 크게 확대됐다.

“아, 너는?”

그러자 예쁘장한 청년이 반갑게 웃으며 달려왔다.

“설풍 조장님! 잘 지내셨어요?!”

그 청년은 바로 마맹운이었다.

예전에 휴가 때 선우진의 꼬임(?)에 넘어가 구해 주게 된 생사괴의 마종환의 아들 말이다.

그를 알아본 설풍이 반갑게 웃으며, 한편으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맹운이로구나! 네가 여기엔 무슨 일이냐? 괴의 어르신은 어쩌고?”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서 비룡대에 지원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은인분들께 힘이 되어 주라고 하셨어요. 또 좀 남자다워질 필요도 있다고 하셨구요.”

“하, 그랬구나. 잘 왔다.”

설풍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겨 주었다.

무공은 아직 좀 부족하지만, 괴의의 의술을 이은 그의 합류가 도움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마맹운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설풍은, 이제 한쪽에 나른한 표정으로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설풍의 기억에 없는 여인이었다.

아니, 애초에 설풍의 기억에 여인들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살면서 말을 섞어 본 여인조차 손에 꼽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설풍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특유의 나른한 표정과 몽롱한 눈빛으로 설풍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찾았군요. 광풍비룡 설풍.”

그 말이 설풍을 당황시키고 말았다.

드디어 찾았다고? 나를?

설풍은 의아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생을 아시…!”

그 순간 설풍의 머릿속에 문득 과거에 만났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른하고 몽롱한 표정으로 흑룡 같은 강편을 휘두르던….

순간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설마?!”

그러자 그녀가 빙긋이 웃음 지으며 물었다.

“이제 기억이 났나요?”

그녀의 나른하고 몽롱한 표정이 이제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녀는 분명 흑상방에서 설풍과 싸웠던 야운향이었다.

흑도인들이 염작이라고 부르는 절정 고수, 혈편서시 야운향 말이다.

설풍이 흑상방의 뇌옥을 부수며 차마 죽이지 못했던 바로 그….

당황한 설풍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다, 다,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그러자 야운향이 나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을 찾아왔어요, 설풍.”

그 나른한 웃음은 옆에 있던 헌영보가 침을 꿀꺽 삼킬 만큼이나 색기가 넘치는 매혹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등장만으로도 하얗게 질려 버린 설풍은 아직 알지 못했다.

이번 회의 때 그를 놀라게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

우리는 칠 조 대기실에 모여서 회의에서 돌아올 설풍 조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조원들에게 철귀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러자 조원들이 입을 열었다.

“걱정이군요. 주귀의 수가 늘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데, 이젠 강기마저 통하지 않는 괴물이라니. 다들 조심하세요. 숲으로 움직일 땐 되도록 조장이나 선우 공자, 청연이와 함께 하도록 하시구요.”

철귀에 대한 얘기를 듣자마자 다른 사람들의 걱정부터 하는 사람은 역시 나 소저였다.

“강기도 뚫을 수 없는 피부라니, 대단해! 그야말로 금강불괴잖아?!”

우리 적들에 대한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피부에 일단 흥분부터 하는 이는 배종관이었고 말이다.

천주은 소저와 비사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무래도 철귀의 존재가 무척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불안해하는 그들을 다독이듯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대응방법을 알고 있으니 다행이 아닙니까? 잘 대비하면 별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자 비사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생각할수록 석 노인을 만났던 게 정말 천운이었군. 이럴 줄 알았으면 존대라도 해 줄걸.”

그의 말에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나는 사람들에게 철귀의 약점을 알게 된 것이 석경달 노인 덕분이라고 말해 놨었다.

전생의 기억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당연한 얘기였지만, 문제는 조장과 청연 소저, 비사영이 나와 함께 석 노인을 만났었다는 것에 있었다.

대충 조장과 청연 소저가 적들과 싸우고 있고, 비사영이 아직 운기 중일 때 먼저 깨어나 들었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것이었는데….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단순한 비사영 녀석이야 거기에 대해 깊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린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 급박한 와중에 어떻게 철귀에 대한 대처법만 딱 골라 들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비사영이면 모를까 청연 소저가 이상함을 못 느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슬쩍 청연 소저의 눈치를 봤는데 청연 소저는 혼자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절대 모를 리 없는 사람이 아무 말 안 하는 것이, 아마 그냥 모른 채 해 주기로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새삼 그녀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때 설풍 조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조장!”

“회의는 잘했어요?”

“뭐 새로운 소식이 있나요?”

그러자 조장이 어쩐지 복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의 눈빛이 나와 청연 소저를 씁쓸하게 스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좀 의아했다.

“그래, 여러 가지 할 얘기들이 있었네. 좋은 일도 있고, 서운한 일도 있군.”

어쩐지 가라앉은 그의 표정에 다들 그에게 집중했다.

그러자 조장이 말을 시작했다.

“일단 철귀에 대한 정보는 다른 비룡대에 긴급으로 전달했네. 아직 다른 비룡대에선 철귀에 대한 보고가 없는 모양이더군. 우리가 최초로 조우한 것이었다면 좋겠지만 알 수 없는 일이지. 일단 우리 대에선 최대한 빨리 화골산을 확보해 조장들을 중심으로 수색대를 구성하기로 했네. 회의 내용을 전달하고 나면 나도 바로 합류해 출발하게 될 걸세.”

그 말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삶에서도 철귀가 처음 나타난 곳은 우리 십삼대였었다.

그러니 다른 변화가 없다면 지난 삶보다 훨씬 적은 희생만 치르고 철귀를 막아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말한 조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좋은 소식도 하나 있네.”

“좋은 소식이요?”

“그래, 진과 해 소저, 천 소저 이후 오랜만에 신입이 들어왔네. 그것도 두 명이나.”

생각지 못했던 조장의 말에 조원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꺄아악! 신입이라고요?!”

“우와! 드디어 우리도 인원을 늘리는군요. 어떤 사람인가요?”

“남잔가요? 여잔가요?”

조원들의 뜨거운 반응에 설풍 조장이 살짝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일세. 그리고 그중 남자는 우리 중 몇 명과 이미 만났던 사람이지.”

“예?”

“만났던 사람이요?”

“누군데요?”

하지만 설풍 조장은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세한 건 직접 만났을 때 얘기하기로 하지.”

신입이 들어왔다는 좋은 소식에도 밝은 표정을 짓지 못하는 조장을 보며 내가 문득 물었다.

“근데 신입들을 지금 바로 데려오지 않으셨군요?”

나 때도 그랬듯 신입들은 조가 결정되면 바로 데려오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니 지금 조장은 신입이 왔다는 얘기를 전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으로 데려와 소개해 주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아까부터 무거워 보이는 그의 표정이 그 이유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조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끼리 먼저 결정할 것이 있어 조금 나중에 데려오기로 했네.”

그러고는 나와 청연 소저를 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 십삼대의 신임 사 조장으로 점창검호 제원영, 제 조장이 와있네.”

조장의 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뜬금없는 것이었다.

“…예?”

“누가 왔다고요?”

“제원영, 그 사람이요?!”

황당해하는 우리의 반응에 조장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산검문에서 우리와 함께했던 그 제 조장이 맞네. 돌아가자마자 바로 전출을 신청했다더군. 그리고….”

조장의 눈이 무표정한 얼굴의 청연 소저에게로 향했다.

“그가 사 조의 신임 부조장으로 해 소저를 요청했네.”

“…예?!”

“뭐라고요?!”

우리는 제원영의 이름을 들었을 때보다도 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가 청연 소저를 부조장으로 요청하다니.

그러면 청연 소저가 사 조로 가게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조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삼 조의 당 소저가 삼 조의 신임 부조장으로 진을 요청했고 말일세.”

“…예에?!”

나는 너무 놀라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당 소저가 나를 부조장으로 요청하다니, 그럼 나도 다른 조로 가야 한다고?

그러자 비사영이 급히 물었다.

“그 요청을 우리가 꼭 따라야 하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설풍 조장은 푹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는 것도 사실이네. 지금 우리 칠 조에 과도하게 전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거든. 이미 절정의 경지인 진이나 해 소저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소저나 사영 자네도 충분히 다른 조의 조장으로 갈 만한 실력들이 아닌가. 지금의 종관과 천 소저도 얼마든지 다른 조의 부조장 급 인재고 말일세.”

“아….”

조장의 말에 우리는 반론을 찾지 못했다.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아마 진이나 해 소저 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부조장으로 가지 않아도 조만간 다른 조의 조장이나 심지어 다른 비룡대로 발령이 날지도 모르네. 어쨌든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인재는 드무니까 말일세.”

조장의 말에 우리는 망연한 표정이 되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봐야 했다.

나 또한 복잡한 표정으로 설풍 조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 소저를 바라봤다.

내 은인이자 정신적 지주인 설풍 조장과, 또 지난 삶에서부터 연모해 온 나 소저와 떨어져야 한다니.

마음이 너무 무거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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