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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98화 (246/359)

98화 나가장-1

나가장에 온 첫날 민 부인을 만났던 나서유는, 결국 그 후 이틀 동안을 아무것도 못 한 채 방에 멍하니 앉아 꼬박 대기만 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 민 부인이 드디어 다시 나서유를 호출했다.

그녀를 없는 사람처럼 방치해 둔 지 이틀만의 호출이었다.

민 부인이 다시 마주한 나서유는 단 이틀 만에 무척 수척해져 있었다.

아마도 마음고생이 극심했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힐끗 보고 잠시 비릿하게 웃음 지은 민 부인은, 다시 엄격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네 동생을 보고 인사도 안 하느냐?”

그 말에 나서유는 민 부인의 옆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바라봤다.

민 부인을 꼭 닮은 오만한 표정으로 비릿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 남자, 그는 바로 나서유의 이복동생인 나서황이었다.

동생이 먼저 누나에게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누나가 먼저 동생에게 인사를 건네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 자리에 앉은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껏 늘 그래왔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나서유가 애써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서황이구나. 잘 지냈니?”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서황은 그저 경멸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나서유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서황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민 부인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나서유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 혼사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보았느냐?”

지난 이틀간 민 부인이 나서유를 방치한 것은 그녀를 길들이기 위함이었다.

오랫동안 나서유를 지켜봤던 민 부인은, 나서유의 성격상 혼자 두면 둘수록 더 죄책감을 느끼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아이가 아닌 나서유 또한 민 부인이 뭘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겁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니오. 저는 그런 혼인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자 방안엔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민 부인과 나서황은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서유를 말없이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민 부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넌 결국 끝까지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을 생각인가 보구나.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그만 나가 보거라.”

나서유는 힘겹게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방을 빠져나갔고, 민 부인과 나서황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모습을 말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나간 잠시 후, 나서황이 민 부인에게 물었다.

“왜 그냥 내보내십니까? 전처럼 뺨도 때리고 막 혼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민 부인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

“난들 그냥 보내고 싶겠느냐? 당장이라도 저년의 머리채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저년이 그래도 전선에 있던 년이 아니냐? 지난번에 눈빛을 보니 좀 심상치가 않더구나. 꽤나 날카로운 것이 경지가 높은 무인들을 보는 것 같았어. 아무래도 함부로 건드려선 좋을 것이 없겠더구나.”

그 말에 나서황이 코웃음 쳤다.

“흥! 그래 봐야 저년이 설마 일류의 무사라도 됐겠습니까? 또 설사 일류가 되면 어떻습니까? 무사들을 불러다가 제압하면 되지. 하여간, 겁만 많아지셨습니다.”

아들의 불만스러운 말에 민 부인은 그를 달래듯 좋게 타일렀다.

“원래 이런 일은 몸을 제압하는 것보다 마음을 제압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 저년 스스로 마음을 꺾을 때까지 좀 기다려 보자꾸나.”

그러자 나서황이 버럭 소리를 쳤다.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고집을 안 꺾으니 하는 말 아닙니까?! 저러다 끝내 고집을 안 꺾고 전선에 돌아가 버리기라도 하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살상방에 벌써 혼담을 넣었는데 취소라도 하라는 겁니까?!”

그건 놀라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두 모자는 나서유에게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살상방에 혼담을 넣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민 부인이 표독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흥! 그런 염려는 말거라. 무공이 강해진다고 사람이 바뀐다더냐? 저 멍청한 년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두고 보거라. 며칠만 더 방치하면 지가 먼저 찾아와 내게 사정할 테니까. 부디 혼사를 수락할 테니 제발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고 말이다. 그년이 얼마나 멍청한지 너도 잘 알지 않느냐?”

“흥! 그년이 바보같이 착하긴 하지요. 얼굴도 반반하고. 피만 안 섞였다면 남 주기보단 내가 가졌을 텐데.”

나서황이 그렇게 말하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민 부인이 짐짓 그를 꾸짖었다.

“어허! 곧 나가장의 장주가 될 네가 어디 그런 천한 년에게 시선을 주느냐? 너를 좀 더 높은 자리로 올려 줄 그런 여자를 찾아야 할 것이 아니더냐?”

하지만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모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 방의 위쪽 지붕 위에서 지청술을 통해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지붕 위에 은신한 채 대화를 엿듣고 있던 선우진은 이윽고 중얼거렸다.

“죽어라 달려왔는데, 철귀가 없어 한시름 놨더니만, 웬 짐승이 두 마리 있었군.”

지붕 위에 있는 선우진의 눈에 문득 힘없이 자신의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서유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두 번의 삶을 걸쳐 유일한 연모 대상이었던 그녀의 뒷모습이 말이다.

선우진은 오랜만에 사람을 향해 불같은 살기가 타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나서유는 방 안에 홀로 앉아 또 생각에 잠겼다.

민 부인의 의도는 뻔했다.

아버지와 나가장을 핑계로 자신을 또 좌지우지하려는 것, 그것도 이번에는 정략결혼에 쓰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를 알고 있음에도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몸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편찮으시다는 아버지가 너무 걱정됐다.

지금 상세가 어떠신지 알 수만 있다면, 그게 정 안 된다면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만 있다면 마음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을.

나서유는 정말 너무 걱정이 돼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물론 민 부인이 지금 아버지와 나가장을 인질로 삼아, 자신을 협박하고 있다는 것은 나서유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가장을 인질로 삼았어. 그런 어머니에게 대항해 내가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나서유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가문의 안위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민 부인에 대항해 가문에 분란을 일으킨다는 선택지는 그녀에게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나서유는 결국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혼인을 해야 하는 걸까?”

민 부인의 말대로 차라리 혼인을 허락하고 아버지를 뵙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조장, 저 어떻게 해요.”

그녀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설풍의 얼굴은, 도저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가 아닌 다른 남자와의 혼인이라니,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설풍 조장에 대한 마음 때문에 아버지를 보지 못 하고 있는 자신이, 민 부인의 말대로 정말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너무도 답답하고, 혼란스러웠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내가 희생해야만 해.’

그녀가 이미 성인이 됐음에도, 어린 시절부터 민 부인이 세뇌하다시피 주입시켰던 이 관념에서 벗어나기란 이렇게도 쉽지 않았다.

나서유가 계속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또다시 날이 저물고 있었다.

벌써 사흘째였다.

그때였다.

똑! 똑!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나서유는 깜짝 놀랐다.

아마도 민 부인의 지시 때문이겠지만, 나가장의 누구도 그녀와 접촉하거나 말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다니?

“누구신가요?”

그렇게 물으며 방문을 열었던 나서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기서 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이 방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우 공자?!”

그러자 선우진이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을 입에 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서유가 작게 속삭여 물었다.

“선우 공자, 어떻게 된 거예요?!”

“사실은….”

선우진은 나서유에게 십오대에서 놓친 철귀에 대한 얘기와 그래서 자신이 먼저 급하게 올 수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해 줬다.

그러자 나서유는 이제야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절 구하러 와 주신 거군요. 고마워요, 선우 공자.”

나서유의 따듯한 웃음에 선우진 또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뭘요. 나 소저가 위험할 수도 있는데 당연한 거죠.”

두 사람은 잠시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유는 선우진이 뭔가 달라진 것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선우진이었다면 자신이 웃으며 바라봤을 때, 분명 먼저 화들짝 놀라며 눈을 피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윽한 눈빛으로 계속 나서유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나서유가 먼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눈을 피해야만 했다.

선우진이 칠 조에 들어온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서유가 살짝 당황해서 말을 꺼냈다.

“어, 근데 이제 철귀가 없는 것도 확인했고, 그럼 선우 공자는 다시 돌아가시는 건가요?”

그러자 선우진은 다시 한번 웃음 지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는 나서유가 너무도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지 못했지만, 이는 이제껏 나서유가 선우진을 보며 늘 했던 생각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아닙니다. 아직 안 온 걸 수도 있으니 좀 더 있어 봐야죠. 그리고… 나 소저에게 알려 드릴 것도 있고 말이죠.”

“네? 제게 알려 줄 거라뇨?”

의아해하는 나서유에게 선우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 소저의 아버님, 의식이 없으신 게 아닙니다.”

나서유는 일순 그게 무슨 말인지를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반문했다.

“…네?”

그러자 선우진이 부연 설명했다.

“몸을 못 움직이시는 건 맞는 것 같지만, 의식은 아주 또렷하셨어요. 오히려 나 소저에게서 서신이 온 건 없냐며 그리워하시던데요?”

“…네?”

이제야 선우진의 말을 알아들은 나서유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선우진은 아까 도착한 후, 은신한 채 그동안 나가장의 이곳저곳을 모두 확인했었다.

그리고 민 부인의 뒤를 쫓아 나서유의 아버지인 나가장주가 누워 있는 방도 확인할 수 있었다.

민 부인이 아예 나서유의 도착을 얘기하지 않은 듯, 서유에게 혹시 서신이 안 왔냐며 묻는 나가장주의 목소리까지도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나서유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울먹였다.

“그럴 수가….”

나서유의 눈이 여러 가지 감정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의식이 있으시다는 것에 대한 안심, 민 부인에 대한 분노, 선우진에 대한 고마움.

그런 그녀를 향해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만나러 갈까요?”

“…네?”

“나 소저의 아버님 말입니다. 지금이라면 몰래 조용히 뵙고 올 수 있을 겁니다.”

몰래 조용히 찾아가 뵙는다.

나서유의 사고방식으로는 이제껏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고.”

선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아직도 그 말을 믿어요? 내가 듣기론 오히려 나 소저가 오지 않아 무척 상심하고 계신 것 같던데요? 소저의 얼굴이라도 봐야 기운이 좀 나실 것 같았어요. 게다가 설마 진짜 그 여자 말대로 혼인을 약속한 후에나 만나실 생각은 아니겠죠?”

나서유는 선우진의 말이 맞다는 걸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건강이, 자신을 만나면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민 부인의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나서유가 이제야 명쾌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그 말을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던 거군요. 지금 바로 뵈어야겠어요.”

나서유의 시원해진 태도에 선우진도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죠.”

두 사람은 바로 은밀한 몸놀림으로 나가장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나가장의 무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지붕을 타는 일은, 선우진은 물론 늘 함께 신법 훈련을 해 왔던 나서유에게도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가는 도중 나서유가 문득 전음으로 선우진에게 말을 걸었다.

- 그런데 선우 공자 어쩐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선우진은 빙긋 웃었다.

자신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을 나서유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금 뿌듯해진 마음에 살짝 기대를 갖고 물었다.

- 제가요? 어떻게 달라졌는데요?

그러자 나서유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 음, 전에는 귀여운 아들 같았는데, 지금은 훌륭하게 장성한 아들?

- 윽.

역시 아직까진 아들인 모양이었다.

입맛이 썼지만, 그래도 변화가 있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귀여운’이라는 단어를 뗀 것만도 어딘가?

두 사람은 곧 나가장주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 앞엔 보초가 둘 있었지만,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에 선우진이 소리 없이 접근해 수혈을 눌러줬다.

아마 언제 잠들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었다.

나서유는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방 안엔 초췌한 얼굴의 중년인 한 명이 이불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

그를 본 나서유의 눈에서 대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서유는 혹시라도 아버지의 잠이 깰까 조심스럽게 움직여 그의 곁에 앉아 중얼거렸지만, 나가장주는 그 작은 기척에도 바로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가 퍼뜩 잠에서 깨자마자 딸의 이름을 불렀다.

“서유, 서유냐?”

꿈에서부터 그녀를 찾은 듯 간절한 목소리였다.

나서유는 목이 멘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그를 불렀다.

“아버지….”

그러자 초췌했던 나가장주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서유야! 정말 서유로구나! 정말 서유야! 꿈이 아닌 정말 서유가 왔구나!”

“아버지!”

두 사람은 얼싸안은 채 한참을 흐느꼈다.

방문 밖에서 주변을 경계하던 선우진의 눈시울마저 금세 붉어질 만큼 절절한 목소리들이었다.

꿈에서조차 딸을 찾던 아버지도, 아버지가 걱정스러워 차마 찾아갈 수조차 없었던 딸의 마음도, 모두 울컥했다.

문득 선우세가에 계실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가장주와 나서유는 한참을 말도 없이 울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가장주가 애틋한 눈빛으로 나서유를 보며 물었다.

“부인의 말로는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들었었다. 어떻게 그 일은 잘 해결된 것이냐?”

그 물음에 차마 아버지께 진실을 밝힐 수 없었던 나서유는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긴한 사정이 있어 어머니 몰래 찾아뵀어요. 어머니껜 제가 온 걸 비밀로 좀 해 주시겠어요?”

그러자 나가장주가 잠시 딸을 바라보다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혹시… 부인이 만나지 못하게 너를 막은 것이냐?”

부친의 입에서 나온 생각지도 못한 진실에, 나서유는 차마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나가장주가 탄식했다.

“허어, 역시 그랬었구나. 그 간교한 본색을 몸져누운 지금에서야 알아차리다니.”

나가장주 또한 최근에 그녀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안쓰러운 얼굴로 나서유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그녀가 이제껏 내 눈을 가리고 있었음을 자리에 누운 지금에야 알게 되었단다. 그러고 나니 그간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짐작이 되더구나. 착한 너는 분명 내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그녀에 대해 함구하고 있었겠지.”

“아,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그저, 그저….”

하지만 아니라고 말하는 나서유의 눈에서는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준 아버지의 말에,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가장주 또한 눈물을 흘리며 다시 물었다.

“서유야, 혹시 네가 전선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는 것도 그녀의 거짓이었더냐?”

“흑!”

나서유는 터져 나오는 울음에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서유는 삼 년 전 민 부인 때문에 남동생 대신 전선으로 가야만 했다.

그 당시 나가장주는 나서유가 굳이 전선으로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다는 얘기를 민 부인으로부터 듣고 펄쩍 뛰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교묘하게 끼어들어 대화할 틈을 주지 않았던 민 부인 때문에 서로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서유는 아버지 또한 나가장을 이을 남동생보단 그녀가 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걸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이제야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된 두 사람의 눈에선 다시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하구나. 내 착한 딸, 서유야!”

“아니에요, 아버지. 아니에요.”

또다시 한참을 얼싸안은 채 울고 난 후, 나가장주가 다시 물었다.

“그럼 네가 살상방의 사람과 성혼하고 싶어 서신을 보낸 것 또한 당연히 사실이 아니겠구나.”

나가장주는 며칠 전 민 부인이 전해 준 나서유의 서신을 받았었다.

살상방의 사람과 혼인을 하고 싶으니 추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서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는 절대 그런 서신을 보낸 적이 없어요, 아버지.”

그러자 나가장주가 다시 한번 깊이 탄식했다.

“네 필적을 흉내 낸 가짜 서신이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보러 오지도 않으면서 달랑 살상방과 혼인시켜 달라는 요청만 있는 서신에, 당시 나가장주는 깊이 실망했었다.

하지만 역시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가장주가 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서유야, 너는 반드시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도록 해라. 나가장도, 이 아비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냥 아비와 함께 살아도 된다.”

아버지의 애정이 흠뻑 담긴 말에, 나서유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알겠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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