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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99화 (247/359)

99화 나가장-2

나서유와 선우진은 한참 후에야 다시 그녀의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서유는 이제야 전선에서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선우진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선우 공자. 이게 다 선우 공자 덕분이에요.”

그러자 선우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당연한 거죠. 저희는 가족이잖습니까?”

그 말에 나서유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가족이요?”

그러자 선우진이 황급히 부연했다.

“저희 칠 조는 모두 가족이잖아요? 모두 다. 아하하!”

“아, 맞아요. 저흰 모두 가족이나 다름없죠.”

헛기침을 한 선우진이 그녀에게 물었다.

“흠흠,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러자 나서유가 생각에 잠기며 물었다.

“글쎄요. 혼인이야 당연히 안 하겠다고 할 거고, 제일 중요한 건 아버지의 치료겠죠.”

나서유는 그간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었지만, 나가장주는 몇 달 전 인근의 산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내상을 입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던 상태가 어느 날 갑자기 확 악화된 것이다.

나가장주는 자신이 노쇠해 기력이 딸려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나서유가 중얼거렸다.

“아버지를 치료하고 있는 의원을 좀 만나 봤으면 좋겠는데, 아마 만나게 해 주진 않겠죠?”

민 부인이라면 나서유가 혼인을 승낙하지 않는 이상 어떤 일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러자 선우진이 슬쩍 말해 봤다.

“이런 건 어떻습니까?”

“네?”

“그 여자에게 가서 사실 나 소저에게 정혼자가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미 혼인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혼인할 수 없다고. 그러니 혼인 때문에라도 아버님을 만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말에 나서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한다고 민 부인이 포기할 것 같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 말을 믿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그런 얘길 한다고 믿어 줄까요?”

그러자 선우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나서서 정혼자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진짜는 아니고, 이번에 잠깐만 말이죠. 아하하하….”

“네?!”

그 말을 들은 나서유의 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선우 공자. 지금까지도 충분히 고마운데 그런 무리한 부탁까지 드릴 순 없어요.”

“아, 그, 그런가요?”

선우진은 애써 실망한 표정을 숨겨야 했다.

‘전혀 무리하지 않은데….’

그런 선우진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나서유가 말했다.

“아버지를 뵈었으니, 일단 나가장 밖으로 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용한 의원부터 수소문해 보는 거죠. 어떻게 생각해요?”

“네, 네? 아, 그것도 괜찮겠군요. 뭔가 쓸 만한 방법이 나올 것도 같은데요? 한번 계획을 짜 볼게요.”

거기까지 의논한 선우진은 나서유의 방에서 나왔다.

나서유가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선우 공자. 제대로 된 방을 잡아 드려야 하는데….”

“하하! 괜찮습니다! 은신할 일이 많다 보니 이제 반쯤은 살수가 된 것 같더라고요.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선우진이라고 제대로 된 방에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 안 들 리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기분도 어쩐지 싱숭생숭했다.

나 소저를 기쁘게 해 줬다는 건 좋았지만, 어쩐지 선우세가에 계실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서유의 마음속에 자신이 아직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쓸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선우진이 은신한 채 나가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 누군가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 어디를 가십니까, 공자님?”

“친우들과 약속이 있어 다녀오겠다.”

거만한 표정으로 호위무사 몇 명을 데리고 집을 나서는 이는 나서유의 이복동생인 나서황이었다.

그를 보는 선우진의 눈이 깊어졌다.

“흠.”

그리고 몰래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나서유의 동생 나서황이 향한 곳은 흥의의 외곽에 위치한 기루였다.

“아이고! 나 공자님, 이제 오셨습니까?! 애향이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요!”

“흠, 공사가 다망해 좀 늦었네. 설마 내가 좀 늦었다고 그사이 다른 손님을 받은 것은 아니겠지?”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애향이는 오로지 공자님만 한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요! 어서 들어가 보시지요!”

대화를 들어 보건대 나서황은 자주 기루를 찾는 단골손님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마 친우들을 만난다는 말도 모두 거짓인 것 같았다.

“쯧.”

뭐 별다른 건질 게 있을까 기대를 하며 따라왔던 선우진은 혀를 찼다.

이제 더 두고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선우진은 기루 근처의 나무 위에 은신한 채 운기에 들어갔다.

최근 은신술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이젠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젠 진짜 웬만한 살수보다도 낫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서황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기루에서 나오고 있었다.

“살펴 가십시오, 공자님!”

“오냐. 또 오마.”

그는 호위무사 두 명을 대동한 채 다시 나가장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선우진은 그를 앞질러 나서황이 돌아갈 길목으로 먼저 가 매복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나서황은, 문득 거만한 걸음걸이로 길을 걸으며 목소리를 냈다.

“오늘 밤공기가 참 좋구나!”

귀주성의 뜨거운 낮보다야 밤공기가 선선하고 좋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오늘이라고 특별히 더 좋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 평소보다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일 것이었다.

나서황은 요즘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 자신이 가야 했던 전선 문제는 바보 같은 누나를 보내서 해결했고,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가 곧 돌아가시면 자신이 장주의 자리를 물려받게 될 것이었다.

그것도 이제 갓 스물이 된 어린 나이에 말이다.

물론 나가장 제일의 고수인 나가장주의 사망이 나가장 전력의 급감을 의미하는 것이긴 했다.

그러니 이후에 주변 세력에 의해 나가장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나서황은 그런 것들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나서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멍청한 년을 살상방에 시집보내면 되니까 말이지, 크크크.’

나서유를 살상방에 시집보내려는 이유가, 요즘 욱일승천하는 살상방을 나가장의 뒷배로 만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 혼사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이 근방에서 나가장을 위협할 곳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서황은 새어 나오는 흐뭇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편안한 나가장주로서의 삶밖에 없다는 얘기지! 크흐흐흐!’

이런 생각을 하며 이미 장주가 된 듯 거드름을 피우며 걸어가고 있던 나서황은, 문득 자신의 앞에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응?”

나서황은 그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밤길이라 행인이 그뿐이어서 더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보자마자 마음에 안 드는 발걸음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걸음이 너무 거침없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서황은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는 두 명의 호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앞에 오는 저자가 좀 눈에 거슬리는구나. 너희가 거슬리지 않도록 좀 만들어 보거라.”

어이없는 지시였지만 두 명의 호위들은 군소리 없이 대답했다.

“네, 공자!”

나서황을 따라다니며, 이런 일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두 명의 건장한 호위가 나서황을 지나쳐 남자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어이, 네놈! 우리 공자님께서 부르신다! 얌전히 이쪽으로 와 보도록 해라!”

그러자 잠시 멈칫했던 남자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원래 방향 그대로 두 명의 호위를 향해서였다.

나서황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와 두 호위의 그림자가 겹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호위들이 적당히 남자를 손봐서 데려오면 놈을 어떻게 가지고 놀지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우두둑!

“크어어억!”

“끄아아악!”

“응?”

생각에 잠겨 있던 나서황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비명 소리가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 명의 그림자 중 두 명이 그 자리에 털썩 무너지는 것도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나서황의 크게 확대된 눈이 껌뻑거렸다.

“설마?”

두 명이 쓰러지다니, 내 호위들이 당했단 말인가?

아니,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다가오는 그림자의 목소리를 들은 나서황은, 그 설마가 사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다가오는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원래 손을 봐줄 생각이긴 했지만 설마하니 먼저 시비를 걸 줄이야. 정말 개새끼도 이런 개새끼가 없구나.”

자신을 지칭하는 듯한 남자의 욕에 나서황이 문득 발끈해 소리쳤다.

“이놈!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런 상황에서도 나서황은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고 말았다. 평생 제대로 된 위기를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발차기가 나서황의 허벅지를 후려 찼다.

빠아악!

“끄아아아악!”

나서황은 내장이 튀어나올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단 한 방에 허벅지 뼈가 부러진 것이었지만, 그걸 파악할 정신도 없었다.

정신이 하얗게 된 가운데 문득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서황, 네놈의 죄를 알겠느냐?”

“뭐, 뭐라고?!”

그 와중에도 상대방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처음부터 노리고 왔다는 것만큼은 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 순간 놈이 발로 정확히 왼손의 엄지손가락만 밟아 짓이겼기 때문이었다.

으드드득!

“끄아아아아악!”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서황이 본능적으로 울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 살려 주세요!”

평생의 습관이 고쳐지는 것은 한순간에 불과했다.

애초에 고통을 당해본 적도, 고생을 해 본 적도 없는 나서황에게 정신력이나 인내심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단 한 가지 생각은 그저 죽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상대방이 차가운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네 죄를 아느냐고 물었다.”

“예, 예?”

그게 무슨 말인지를 나서황이 깨닫지 못했을 때, 남자는 이번에는 새끼손가락을 밟아 짓이기기 시작했다.

으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악!”

또다시 머리가 하얗게 물들 정도의 고통.

지렁이처럼 몸부림치는 나서황에게 상대방은 다시 차갑게 말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죄를 모르는 모양이군.”

이제 나서황의 머릿속에 이성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뿐이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아니, 아닙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피식 웃은 남자가 물었다.

“그래?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예?!”

나서황의 표정이 일순 멍해졌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지만 상대방은 잠시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의 발이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나서황의 약지를 밟아 짓이기기 시작했다.

까드드드득!

“아아아아아아악!”

다시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 나서황은 이제 더 망설이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애향이가 다른 자들에게 장사하지 못하도록 예약 시간보다 일부러 두 시진 늦게 왔습니다!”

그러자 남자의 발이 다시 움직여 중지를 가볍게 밟았다.

아마 원하던 답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걸 본 나서황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다른 죄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가 꽤 예뻐 보이길래…!”

남자의 발은 중지 위에 올려진 채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나서황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시간적으로 가까운 것부터 모든 죄목을 줄줄이 털어놨다.

그 죄목은 무척이나 다양했는데, 무고한 이들을 폭행하거나 일반 백성 여자를 겁탈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중엔 나서유에게 한 짓에 대한 것도 있었다.

누나에게 한 짓이 죄라는 것을 본인이 인식하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중엔 선우진의 흥미를 끄는 고백도 있었다.

나서황이 절절하게 소리쳤다.

“장주 자리를 빨리 물려받을 수 있도록 어머니가 아버지께 독약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독단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호오.”

나가장주에게 독약을 썼다?

과연 내상이 갑자기 도진 이유는 그것 때문인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그 이후로도 나서황이 털어놓는 잘못들을 주욱 다 들었다.

모두 다 듣고 난 감상은 굳이 녀석을 살려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드문 쓰레기 같은 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선우진은 놈을 죽이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서유의 동생이니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죽이면 자기가 죽였다는 걸 그녀가 눈치챌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리고….”

이제 더 고백할 것이 없는지 필사적으로 자신의 죄목을 찾고 있는 나서황을 보며 선우진은 차갑게 말했다.

“자기 죄를 그래도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니 죽이지는 않겠다.”

그 말에 눈물범벅이던 나서황의 얼굴이 순간 극도로 환해졌다.

“네, 네?! 가,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머리에 강한 충격을 느끼고는 정신을 잃었다.

퍼억!

“꺼억!”

머리를 가볍게 걷어차 놈을 기절시킨 선우진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놈이야 다리 한쪽이 부서졌지만, 호위들은 한쪽 팔만 부숴 놨으니 돌아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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