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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01화 (249/359)

101화 나가장-4

민 부인이 행동을 개시한 시점은 선우진의 예상보다 조금 늦은 다음 날 오전이었다.

자기가 직접 손을 쓸 자신까지는 없었던지, 그녀가 의원이 올 때까지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민 부인과 공모해 나가장주에게 조금씩 독약을 먹이고 있었던 양 의원은 갑작스러운 민 부인의 요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바로… 장주님을 죽일 수 있는 독약을 만들란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밤새 초췌해진 민 부인이 퀭한 눈빛으로 급히 대답했다.

“맞아요. 지금 바로! 바로 장주님을 죽여야 해요! 자칫 잘못해서 그년이 진짜 괴의를 데려오기라도 하면 우리가 한 짓이 모두 탄로 날지도 모른다고요!”

“네, 네?! 괴의, 괴의를 데려온단 말입니까?!”

그 말은 양 의원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괴의가 얼마나 뛰어난 의원인지, 또 얼마나 괴팍한 자인지는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얼굴빛 또한 순식간에 민 부인만큼이나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의원은 민 부인의 말에 바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하, 하지만 한꺼번에 독약을 쓰면 인체에 흔적이 남는단 말입니다. 피부색이나 부패 정도가….”

그러자 민 부인이 답답하다는 듯 짜증을 냈다.

“그럼 바로 매장해 버리면 되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시간을 끌다 만약 발각되기라도 하면 양 의원님이 다 책임지실 건가요?!”

“그, 그건….”

결국 양 의원은 민 부인의 뜻대로 독약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미 운명 공동체가 된 두 사람이었기에 둘 모두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양 의원은 갖고 왔던 탕약에 소지하고 있던 독을 모두 섞어 버린 후, 민 부인과 함께 나가장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창백해진 그의 얼굴에선 땀이 뻘뻘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자 방에 누워 있던 나가장주가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도 반갑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양 의원님이 오셨구려. 어서 오시오.”

“자, 장주님을 뵙습니다. 어, 어떻게 차, 차도는 좀 있으셨습니까?”

“요 며칠 몸이 좀 좋아진 느낌이 들긴 한다오. 아마 양 의원의 약이 드디어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이구려, 허허허허!”

“아, 그, 그, 그러시군요.”

별다른 말이 아닌 대화에도 지나치게 말을 더듬고 있는 양 의원이었다.

민 부인은 그런 양의원의 어색한 행동에 몰래 인상을 찡그렸고, 나가장주는 마침내 양 의원을 향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얼굴이 창백하시구려. 땀도 평소보다 더 많이 흘리시는 것 같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시오?”

“아, 아, 아닙니다. 그, 그냥 몸이 좀 안 좋아….”

애써 웃음 지으며 양 의원이 변명하자 나가장주가 탄식하며 물었다.

“허어, 그러면 오늘 내 약은 양 의원께서 드셔야 하는 거 아니오?”

그건 그야말로 기겁할 만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양 의원이 소스라치게 놀라 반문했다.

“네, 네, 네?!”

“응? 왜 그렇게 놀라시오? 내 몸은 오늘 그리 나쁘지 않으니 내 대신 양 의원께서 약을 드셔도 된다고 말한 것이오만?”

“아, 아, 아, 그, 그건….”

양 의원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뒤에서 역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민 부인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호호호! 상공! 농도 잘하십니다! 어찌 상공의 비싼 약을 양 의원께 먹으라고 하십니까? 사람마다 다 체질이 달라 함부로 약을 바꿔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러다 큰일 나는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양 의원도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마, 맞습니다! 체질이 달라 다른 사람의 약은 함부로 먹을 수가 없습지요! 바로 그겁니다!”

두 사람의 격렬한 반응에 나가장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소? 알겠소. 그럼 약을 주시구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가장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 것을, 마음이 급한 두 사람은 미처 눈치챌 수 없었다.

나가장주는 두 사람의 반응을 통해 오늘 나온 약이 제대로 된 독약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서유에게 이미 설명을 들었던 그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두 사람을 한번 떠봤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의 격렬한 반응으로 이 약이 독약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은신한 채 지켜보고 있던 선우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의 천장 모서리에 박쥐처럼 붙어 은신하고 있던 선우진은 서서히 나갈 준비를 했다.

양 의원이 나가장주에게 탕약을 건네는 즉시 뛰어나가 증거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양 의원이 떨리는 손으로 탕약을 꺼내고 그릇에 붓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장주님! 마님! 큰일 났습니다!”

“아이쿠!”

쨍그랑!

너무나도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밖에서 갑자기 들려온 큰소리에 양 의원이 깜짝 놀라 탕약을 쏟아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 아니!”

“이, 이런!”

그걸 본 민 부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갖고 있는 독약을 다 부어서 만든 탕약이라고 했는데, 그걸 엎어 버리다니….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걸 지켜보는 나가장주와 숨어 있던 선우진의 표정 역시 일그러졌다는 것을.

“장주님! 마님!”

그 와중에도 밖에선 여전히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짜증이 난 민 부인은 문을 덜컥 열며 소리쳤다.

“대체 웬 소란들이냐?!”

그러자 밖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가장의 무사 한 명과 나가장 소속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무사 한 명이었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들에게 호통을 치려던 민 부인은 문득 외부 무사의 얼굴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그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너무도 창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민 부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 나가장의 무사가 먼저 급히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마님! 조가장과 곽가장의 사람들이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조가장은 귀주성 흥의의 가장 남쪽, 그리고 곽가장은 그보다 조금 더 북쪽에 위치한, 나가장과 비슷한 규모의 중소문파였다.

또한 곽가장은 나가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무사의 말에 민 부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얼마 전까지 멀쩡하던 그 두 문파가 왜 갑자기 몰살을 당해?”

그러자 이번엔 외부 무사가 덜덜 떨며 설명했다.

“괴, 괴물들이었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조가장의 무사 한 명이 저희 곽가장으로 왔었는데….”

그가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설명한 얘기에 따르면, 새벽에 곽가장으로 찾아온 조가장의 무사 두 명은 무 척 혼비백산한 얼굴로 곽가장에 도움을 요청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세 명의 괴물 같은 자들이 갑자기 조가장을 찾아와 사람들을 모두 몰살시켰다며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곽가장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완전히 다 믿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아직 새벽이니 몸을 추스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여유 있게 논의해 볼 생각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곽가장에도 그들이 찾아왔었다는 것이었다.

이남일녀로 구성된 그 괴물 같은 자들이….

곽가장에서 왔다는 무사는 다시 그 광경을 떠올렸는지 덜덜 떨며 흐느끼듯 말했다.

“그 악귀 같은 놈들은 마치 짐승처럼 사람들을 찢어 죽이고 피를 빨아 먹었습니다. 여자고, 아이고 모두 가리지 않고 그놈들이 모두…. 으으으으….”

끝내 말을 마치지 못하고 흐느끼는 곽가장 무사의 모습에, 민 부인은 잠시 인상을 찡그린 채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대체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군. 고작 세 명이서 어떻게 조가장과 곽가장을 몰살시킬 수가 있으며, 짐승도 아닌 자들이 무슨 사람을 찢고 피를 빤단 말인가? 아무래도 뭔가 정신이 좀….”

그때였다.

갑자기 나가장의 정문 쪽에서 비명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누, 누구냐?! 끄아아아악!”

“이, 이놈, 으아아악!”

그러자 흐느끼고 있던 곽가장의 무사가 퍼뜩 고개를 쳐들고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노, 놈들이야! 놈들이 나를 따라왔어!”

그러고는 마구 뛰어가 미친 사람처럼 나가장의 담장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담장을 넘어 도망가려는 모양이었다.

“도, 도망가야 돼! 어서 도망가야!”

민 부인은 그 갑작스러운 사태에 그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하지만 그사이에도 비명 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너무나도 처절한 비명 소리들이었다.

민 부인이 급히 나가장의 무사에게 소리쳤다.

“뭐 하고 있는 게냐?!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내게 보고하란 말이다!”

“네, 네! 알겠습니다, 부인!”

그때 문득 민 부인의 머릿속에 아까 곽가장의 무사가 얘기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단 세 명이서 조가장과 곽가장의 사람들을 몰살시켰다고? 사람을 찢어 죽이고 피를 빨았어?’

자기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만약 그 얘기가 사실이라면 자신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조가장과 곽가장을 몰살시킨 자들이 나가장을 몰살시키지 못할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어서 빨리, 빨리 도망쳐야 해.’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자리에 누워 있는 아들이 떠올랐다.

“내 아들, 내 아들 서황이를….”

민 부인은 황급히 아들의 방을 향해 뛰어갔다.

방에 있는 나가장주나 양 의원이 어떻게 될지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한편 방에 은신해 있던 선우진과 지붕 위에 은신해 있던 나서유도 은신을 풀고 뛰쳐나왔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선우진의 모습에 양 의원이 깜짝 놀라 기겁한 소리를 질러 댔다.

“으아아아악!”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나서유가 선우진에게 황급히 소리쳐 물었다.

“선우 공자, 설마?!”

선우진 또한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것 같군요. 하필 지금….”

안타까운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선우진은 처음 나가장에 온 날, 아직 철귀가 오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바로 인근의 하오문으로 가서 화골산을 구할 수 있는지를 알아봤었다.

그때 하오문에선, 당장은 없지만 돈만 충분하다면 구할 수 있기는 하다고 말했었고, 그래서 선우진은 값을 치르고 그것을 주문했었다.

하오문에선 그걸 오늘까지면 구할 수 있다며 오후에 찾으러 오라고 말했었는데….

하필 그것을 찾으러 가기 전 놈들이 먼저 나타났던 것이다.

정말이지 너무도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곧 화골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현재 없는 것을 아쉬워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곤 바로 상황 판단을 내리고는 나서유를 향해 말했다.

“나 소저는 일단 아버님을 모시고 다른 곳으로 피하십시오. 놈들은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그 말에 나서유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네?! 하, 하지만 그놈들은!”

놈들이 검강조차 통하지 않는 괴물들이라는 건 나서유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선우진이 혼자서 가 봐야 개죽음당할 뿐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우진은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염려 마세요, 나 소저. 지금 비명 소리를 들어 보건대 놈들은 아직 다 오지 않았습니다. 한 놈만 먼저 온 모양이에요.”

현재 비명 소리는 동시다발적이 아닌 한 번에 한 명씩만 들리고 있었다.

그걸 듣고 선우진은 현재 한 놈만 왔다고 확신하는 중이었다.

“한 놈이라면 절대 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놈을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놈도 저를 죽이지 못하는 거죠. 그러다 혹시 정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도망치면 되고요. 설마 제 속도를 의심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러니 제 걱정은 말고 어서 장주님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세요.”

선우진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나서유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생각으로도 확실히 그게 최선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알겠어요. 그럼 부탁해요, 선우 공자. 그리고… 부디 몸조심하세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선우진은 바로 정문을 향해 몸을 솟구쳤고, 나서유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가장주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아버지, 아무래도 혈교의 마인들이 습격한 모양이에요. 일단 여기서 몸을 피하셔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나가장주는 허허롭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장주인 내가 어찌 이곳을 버리고 도망갈 수 있겠느냐? 서유, 너나 어서 피하거라.”

나서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친의 성품이라면 분명히 이렇게 얘기할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따를 수는 없었다.

나서유는 고개를 숙이고는 나가장주에게 사죄했다.

“아버지, 용서하세요.”

“응? 뭘 말이냐?”

타닥!

“헉!”

나서유는 바로 그에게 다가가 망설임 없이 수혈을 짚어 그를 잠들게 했다.

그러곤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양 의원을 향해 물었다.

“저는 지금부터 아버지를 밖으로 옮길 생각이에요. 의원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양 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그건 안 됩니다. 장주님은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하는 상태입니다. 함부로 움직이시게 하다간 상세가 더 악화될 수도….”

그때 그의 말을 끊으며 나서유가 물었다.

“의원님께서 주신 독약 때문에 말인가요?”

“네, 네?!”

양 의원은 심장이 떨어져 나갈 듯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하지만 깜짝 놀라 나서유의 눈을 바라봤을 때 그는 더 놀라야만 했다.

그녀의 눈빛이 시퍼런 살광을 뿜어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서유가 줄기줄기 살기를 뿜어내며 양 의원에게 말했다.

“만약 아버지께서 조금이라도 잘못되신다면, 당신은 자결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예요. 반드시 살아서 지옥을 보게 해 줄 테니까.”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진한 살기와 나서유의 무서운 눈빛에 양 의원의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려 왔다.

애초에 간이 작은 그가 일류 최상급 무인의 살기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양 의원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시퍼렇게 질려 거의 기절하기 직전, 나서유는 살기를 걷어 내며 다시 말했다.

“자, 지금부터 아버지를 밖으로 옮길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러자 양 의원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들것! 들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옮기면 됩니다!”

그를 향해 나서유는 차갑게 지시했다.

“그럼 만드세요.”

“예, 예! 소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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