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검성-1
나가장의 일은 모두 잘 해결되었다.
비사영과 함께 도착한 마맹운은 과연 괴의 어르신의 아들다운 의술을 보여 주었다.
그는 부상자들과 나 소저의 아버지를 치료해 주었고, 특히 나 소저의 아버지는 곧 건강을 되찾으실 거란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 주기도 했다.
철귀를 피해 자기들끼리만 도망쳤던 민 부인과 그 아들 나서황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돌아올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걸 모르는 나가장의 사람들은 그들도 염치가 있으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추측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침묵하기로 했다.
“그럼 며칠 후에 봬요. 다들 조심해 돌아가세요.”
이제 몸조리만 잘하시면 나가장주님의 건강은 완전히 회복되실 거라는 마맹운의 선언 후, 나 소저를 제외한 우리는 드디어 전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곳에 온 지 오 일 만이었다.
다만 나 소저는 이곳에 남아 좀 더 장주님을 간호해 드리기로 했다. 아직 그녀의 휴가는 삼 주 이상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시간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검성 어르신 덕분이었다.
“나 소저, 장주님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천천히 돌아오세요.”
“맞소, 나 소저. 이 기회에 효도 좀 하시구려.”
나와 비사영의 말에 나 소저가 빙긋이 웃었다.
“그래요. 고마워요.”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설풍 조장에게로 향했다.
우리를 볼 때와는 다른, 깊이 있는 눈빛이었다.
“조장도 조심해 돌아가세요. 와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러자 조장이 특유의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겠소. 소저도 조심해서 돌아오시구려.”
예전이라면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두 사람의 감정을 알게 된 지금의 나에겐 보고만 있어도 답답해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게 다 안타깝게도 지난번의 내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원래의 내 의도는 나 소저의 혼담 얘기를 듣고 마음이 급해진 조장이 나 소저의 아버지를 찾아가 그녀를 달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음, 설사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 소저에게 다른 사람과 혼인하지 말아 달라고 고백하게 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랬는데, 하필 조장이 나가장주의 방에서 나오고 있던 나 소저와 먼저 마주치는 바람에 내 계획이 다 어그러지고 말았다.
조장은 황급히 나 소저에게 혹시 혼인을 해야 하는 거냐며 사실 확인부터 했고, 그 질문에 나 소저가 활짝 웃으며 이젠 아니라고 대답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조장은 어영부영 잘 됐다는 말만 하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헛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더니, 역시 쉽지가 않군.”
조장에게 멋진 고백을 하게 만드는 일은 역시 최상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과제인 것 같았다.
느낌상 혈교를 무너뜨리는 것과도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다음번엔 좀 더 철저하게 작전을 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음 기회를 다짐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서 올라오고 있는 다행스럽다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이젠 깨끗이 정리해야 할 감정이니까 말이다.
아직은 잘되지 않지만,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
“거의 다 왔군. 이제 반 시진 정도만 더 달리면 십삼대로 돌아갈 수 있겠어.”
“그러게요. 올 땐 마음이 급해 잘 몰랐는데 무척 금방이었군요.”
“그러네, 되게 가깝네.”
설풍 조장, 나, 비사영이 차례대로 이렇게 말하자 조장에게 업혀 있던 마맹운이 진저리를 쳤다.
“어우, 세 분 신법이 너무 빠르셔서 그런 거예요. 전혀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고요!”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 비사영, 설풍 조장.
십삼대 최고의 신법을 지닌 세 명에게 흥의까지의 거리는 그저 몇 시진이면 족한 그저 산책길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무공이 약한 마맹운을 나와 조장이 번갈아 업고 왔음에도 그랬다.
그때, 문득 나가장으로 가기 전 청연 소저와 얘기를 하기로 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못하고 뛰쳐나왔었구나? 이런….’
물론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내가 아는 그녀라면 충분히 이해해 주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정중히 사과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대화해 봐야지.’
생각해 보면 늘 내 옆에 있어 주고 날 위해 많은 것을 해 줬던 청연 소저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었던 것 같았다.
심지어 그렇게 눈에 보이도록 고민하고 있는데도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다니, 친구로서 실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내가 청연 소저에게 도움이 될 차례였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그녀를 위해 뭔가 해 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가 비룡십삼대로 돌아왔을 때였다.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 준 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람이었다.
“어서들 오게! 화골산도 없이 철귀를 세 마리나 잡았다면서?! 역시 내가 눈여겨 봐둔 최고의 인재들답군! 으하하하!”
환한 얼굴로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 주는 이는 바로 청연 소저의 아버지인 천의검성 해운백이었다.
그가 우리가 없는 사이 십삼대에 와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우리는 황급히 그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검성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러자 마맹운이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히익?! 검성님이시라고요?!”
그러자 다시 호탕하게 웃은 그가 우리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하하하하!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격식을 차리고 그러나? 그런 딱딱한 인사를 받고 있으려니 서운해지려고 한다네.”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확실히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법을 알았다.
그의 너스레에 우리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때 검성이 마맹운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친구가 괴의의 아들인 모양이구먼. 듣던 대로 무척 잘 생겼군. 아주 부러워. 나도 젊었을 때 자네만큼만 생겼었다면 첫사랑에 실패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일세, 하하하하!”
마맹운은 누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여인처럼 예쁘장한 외모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성 어르신의 말에는 그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가볍게 말을 던지면서도 그 안에 유쾌함을 담아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드는 그의 화법은, 내게 경이롭다는 감정까지 느끼게 해 주곤 했다.
뭐랄까.
무공뿐만이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닮고 싶어지는 존경스러운 어른의 향기랄까?
그에겐 그런 것이 있었다.
또한 그것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대화를 제대로 해 보지 못했던 내가 평생 처음 만나 보는 좋은 어른의 모습이기도 했다.
검성 어르신은 스윽 주변을 한번 살피시더니만 능청스런 표정으로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아, 방금 말한 첫사랑 얘기는 청연이에겐 비밀일세. 다들 부탁하네.”
그의 너스레에 씨익 웃고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청연 소저를 보러 오신 겁니까, 어르신?”
“그래, 자네들이 파견에서 복귀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왔지. 그런데….”
검성이 나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
“청연이가 사 조의 부조장으로 간 건 자네들도 알고 있던 사실인가?”
그의 질문에 우리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예? 청연 소저가 이미 사 조의 부조장으로 갔다고요? 벌써 말입니까?”
“흠, 반응을 보니 자네들은 몰랐던 모양이로군. 내가 어제 도착했을 땐 이미 사 조의 숙소를 쓰고 있었다네.”
그건 무척 당황스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나나 청연 소저나 어차피 다른 조로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우리나 나 소저가 아직 복귀하지도 않았을 때 옮겼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가 그렇게 고민하던 것이 이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그녀와 얘기를 나눠 보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검성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일에 대해 청연 소저의 얘기는 들어 보셨습니까?”
하지만 그 또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물어는 봤네만 그저 어차피 그래야 하는 일이었다고만 얘기하더군. 다른 얘기는 더 못 들었네.”
아마 아버님인 검성 어르신께도 고민을 다 털어놓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기회가 나는 대로 그녀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일단 십삼대 본부로 가서 대주에게 복귀 보고를 한 후 칠 조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자 칠 조의 숙소에는 세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비우기 전 배종관, 청연 소저, 천주은 소저 세 명이 남아 있었던 칠 조의 숙소에 청연 소저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세 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한 명이 새로 칠 조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은 뭔가 몽롱한 분위기를 풍기는 나른한 표정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가 조장을 보며 말했다.
“드디어 돌아왔군요, 설풍.”
그러자 배종관과 천주은 소저를 향해 반갑게 인사를 하려던 우리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낯선 감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그녀 주변의 공기가 뭔가 끈적하고 나른한 색깔로 물들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마저 몽롱하게 바꾸는 존재감, 언젠가 여령색마 손은상 선배에게서나 느껴봤던 그런 묘한 느낌이었다.
설풍 조장이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야운향 소저. 이미 숙소에 들어와 계셨군요?”
그러자 그녀가 흐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려고 이곳에 온 거니까요. 당신은 날 너무 기다리게 하는군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어색한 상황에 나와 비사영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바로 배종관과 천 소저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전음으로 물어봤다.
그러자 천 소저의 전음이 들려왔다.
- 운향 언니가 비룡대에 지원한 이유가 설풍 조장 때문이래요. 이미 십삼대 전체에 소문이 자자해요.
그 말에 깜짝 놀란 내가 다시 물었다.
-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조장 때문에 지원하다니?
그러자 천주은 소저가 해 준 대답은 그야말로 말문이 막히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 뭐 ‘조장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런 거 아닐까요? 원한 때문에 온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에요.
- …예?!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여자에게 말도 잘 못 거는 조장에게 반해 비룡대까지 지원한 여인이 있다니.
심지어 그 여인이 저렇게까지 미인이라니.
아니, 놀라운 건 외모만이 아니었다.
느낌상 무위마저도 절정 이상일 것 같지 않은가.
왠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무래도 나 소저와 조장이 평탄하게 이루어지는 미래는 쉽게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 후 인사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흑도의 유명한 여고수인 염작 혈편서시 야운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정체가 아닐 수 없었다.
천주은 소저는, 그녀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청연 소저만큼이나 특이한 사람인 것 같다며 막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칠 조엔 특이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
“하압!”
파사사삭!
천풍화엽을 사용한 내 신형이 흩날리는 꽃잎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상대의 시선을 교란하는 최상의 신법, 그러자 상대가 감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 순간, 바로 상대의 뒤로 이동했던 내가 검을 펼쳐냈다.
선우십삼검 십삼초.
환검경.
쏴아아아아아!
수십, 수백 개로 늘어난 내 검이 그의 주변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동시에 눈을 감고 떠올렸다.
묵랑이 펼쳐냈던 그 환상적인 검을.
매일 꿈에서조차 그리워했던 그 검초를 말이다.
번쩍 눈을 뜨며 기합을 내질렀다.
“하아압!”
그 순간, 수백 개의 환검이 실체로 화해 상대를 향해 쏟아졌다.
슈하아아아악!
선우십삼검 십오초.
공즉시색.
매일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던, 심지어 꿈에서조차도 붙잡고 있었던 검초였다.
그것이 철귀 두 마리를 상대할 때 얻은 깨달음을 밑거름으로 삼아 드디어 현실에서 개화했던 것이다.
‘성공이다!’
뜨거운 환희가 온몸과 정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자 수백 개의 검기에 폭격당하고 있는 검성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훌륭하군.”
그리고 드디어 검을 뽑았다.
샤아아악!
검성이 휘두른 것은 단 일검이었다.
그것도 강력한 기세를 담거나 초고속의 쾌검도 아닌 아주 단순한 일검.
하지만 그가 수평으로 휘두른 그 평범한 일검에, 나는 환희에 찼던 방금의 마음도 모두 잊고 그저 멍하니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검은 빠르지 않았다.
아니, 사실 빠른지 아닌지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저 검이 그어졌고.
세상이 갈라졌고.
그를 둘러쌌던 내 검기가 그대로 소멸되는 것이 보였을 뿐이었다.
이 세 가지 사건이 인과관계를 갖고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그저 독립적으로 동시에 일어난 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이 세상 너머의 뭔가를 보는 듯한 경이로움이었다.
그걸 눈에 담는 순간, 온몸에 차올랐던 환희가 한순간 전율로 뒤바뀌고 있었다.
멍하니 뇌리에 박혀 버린 그의 검을 되새기고 있을 때, 검성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놀랍군. 지난번에 봤을 땐 이기성강에도 이르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잠깐 사이에 벽을 두 단계나 넘어 버렸단 말이지? 게다가 이제 막 벽을 넘은 초입도 아닌 것 같지 않은가? 무슨 기연이라도 얻은 겐가?”
그의 질문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네. 신분을 밝히지 않으신 고인께서 잠시 지도해 주시는 기연을 얻었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허, 대체 어떤 고인이시기에 이렇게 지도해 주실 수 있단 말인가? 그 가르치는 능력이 부럽기 그지없구먼. 나도 한번 가르침을 받아 보고 싶을 정도네.”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어 줬다.
그러자 그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내게 말했다.
“자네는 절정의 경지를 넘은 후 순식간에 다음 단계의 벽도 넘어 버렸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벽을 향해 다가가고 있지. 정말 놀라운 발전이기는 하나 ‘그것이 모두 바람직한가?’라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네. 왜인지 알겠는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지나치게 빨랐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래, 맞네. 정확히는 과정이 부실하기 때문이지. 사람에겐 발전하는 순간만큼이나 그 발전을 다지는 순간도 중요하다네. 그것이 없이 계속 발전만을 추구하다 보면 갑자기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수도 있거든. 해서 자네는 이제부터 검초, 검식이 아닌 검격 그 자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일세.”
그가 한 말을 되뇌어 봤다.
“검초, 검식이 아닌 검격.”
문득 방금 전 검성께서 보여 주셨던 그 전율과도 같은 일검이 떠올랐다.
어쩐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건지 확실히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다른 방법이 아닌 그것으로 내 검을 파훼하셨던 걸까?
내 표정을 본 검성께서 만족스럽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무슨 얘긴지 이해한 것 같군. 자네와 같은 인재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네. 영광이란 생각마저 드는군.”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너무 영광이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르신.”
검성은 청연 소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때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우리를 지도하시는 데 쓰고 계셨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도 다른 조장들을 지도해 주셨다고 했고, 방금까지도 먼저 설풍 조장과 한동안 대련하며 그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주신 참이었다.
나는 그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설풍 조장에게 해 준 조언이었지만, 내게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성 어르신의 얘기에 따르면 설풍 조장은 이제 초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토록 젊은 나이에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검성 어르신은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셨다.
그러곤 조장에게 이제부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상대와 최대한 많이 싸워 보라며 이렇게 조언해 주셨다.
‘초절정의 벽은 그 이전까지의 벽과는 좀 다르다네. 이제껏 초절정의 벽에 도달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완전함을 추구해야 했었겠지만, 그 벽을 넘기 위해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네. 그렇기에 개인마다 각각 다른 입구를 갖고 있지. 그러니 누구의 조언이나 가르침이 큰 의미를 지니지는 못하지만….’
초절정의 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완전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 말은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풍 조장은 자신이 벽을 넘은 것이 정중동의 묘리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물론 그것도 검성 어르신의 조언이었고 말이다.
그러니 완전함을 추구한다는 건 아마도 자신의 장점이 아닌 단점을 채우는 것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은 아직 내게 와닿지 않았다.
아마 그 수준이 되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 조언일 것 같았다.
검성 어르신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내가 자네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군. 자네는 투사의 혼을 갖고 있네. 얼핏 겉으론 부드러운 성품인 듯하지만 노도와 같이 끓고 있는 투쟁심이 내게는 보이는군. 그러니 자네는 끝없이 투쟁하게. 아마 그것이 자네의 벽을 넘게 해 줄 걸세.’
그 후로도 검성 어르신은 조장과 몇 번이고 대결을 해 주셨다.
그리고 대결이 끝난 후 조장은 조용한 곳으로 가 명상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그 바로 다음이 내 차례였다.
그리고 벌어진 대결에서 나는 지금처럼 공즉시색을 처음으로 성공했음에도 단 일검에 넋을 잃게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검성께서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내가 보여 주는 검격을 잘 보게. 그것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걸세. 만약 자네의 검이 내 검의 궤적을 쫓을 수 있다면, 자네도 설풍 조장처럼 초절정의 벽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 말일세. 그리고 마침내 내 검과 다른 자네의 검을 만들게 된다면, 그때 자네는 그 벽마저도 넘을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내게 검을 시범 보여 주셨다.
아까 내 공즉시색을 한순간에 소멸시켰던 그 베기와, 또 그것만큼이나 놀라운 찌르기를 말이다.
그리고 그걸 본 나는 아무 말 없이 바로 명상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위대한 검격을 내 뇌가 아닌 영혼에 새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