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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06화 (254/359)

106화 비룡십삼대 칠 조

회식이 열리는 곳은 숲 중간의 공터였다.

나와 검성 어르신께서 회식 자리에 참석했을 땐 이미 다른 조원들이 거의 회식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공터엔 거대한 나무를 토막 내 만든 둥그런 탁자들과 작은 나무를 토막 내 만든 둥근 의자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피워 놓은 커다란 모닥불에선 중간 크기의 멧돼지 한 마리와 여러 마리의 토끼, 꿩, 물고기들이 꼬치에 꽂힌 채 맛있는 향기를 풍기며 익어 가고 있었다.

그때 나무 탁자에 밥그릇과 수저를 놓던 비사영이 문득 내가 오는 것을 보고는 소리쳤다.

“야, 이 자식아! 빨리 안 와?! 나이도 나보다 어린 게 빠져가지곤! 아, 검성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나한텐 짜증을 내다 검성 어르신께 직각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비사영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스윽 상차림을 한번 둘러보고는 그에게 말했다.

“뭘 되게 많이 일한 것처럼 큰 소리냐? 딱 보니까 그릇, 수저나 좀 옮겼겠구먼. 저 큰 나무를 자른 탁자는 딱 보니 청연 소저 솜씬 것 같고, 의자를 만든 건….”

그러자 배종관과 함께 고기를 익히고 있던 천주은 소저가 귀엽게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저요! 제가 만들었어요!”

빙긋 웃으며 그녀를 칭찬해 줬다.

“잘 만들었구려, 천 소저. 의자가 너무 귀엽소.”

그러자 활짝 웃음 지은 천 소저가 검지로 자기 볼을 콕 찌르며 귀엽게 물었다.

“저처럼요?”

그녀의 기습적인 애교에 나는 잠시 버벅이다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그… 렇소. 소저처럼 귀엽구려. 흠, 흠.”

“그… 렇소라니요?! 말 중간에 공백이 너무 길잖아요!”

“천 소저, 나는 저 의자보다 천 소저가 백배 더 귀엽소!”

천 소저의 항의와 뒤이은 종관의 고백은 그냥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비사영을 향해 말했다.

“아무튼 술이야 맹운이 준비한다고 했고, 잡아 온 멧돼지도 딱 보니 네 솜씨가 아닌데? 토끼나 물고기도 네가 잡은 것 같지는 않고. 저건 누구 솜씨야?”

그러자 정곡을 찔렸는지 녀석이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 그게 보이냐? 귀신같은 놈. 멧돼지랑 토끼, 물고기는 야운향 소저가 잡았다. 그래도 저 꿩들은 내가 잡았거든?! 비도를 던져서!”

“어이구, 그랬냐? 고생했네. 우쭈쭈. 그랬어요?”

“이 자식이?! 지금 날 비꼬는 거냐?! 아무 도움도 안 된 자식이!”

벌컥 화를 내는 비사영을 향해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해 줬다.

“훗, 아무 도움도 안 됐다니? 난 무려 검성 어르신을 모시고 왔는데?”

“그…!”

뭐라고 소리치려던 비사영은 슬쩍 검성의 눈치를 보더니 이를 갈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랬냐? 주, 중요한 일 했네.”

나는 녀석의 비굴함을 한껏 비웃어 준 후 문득 다시 물었다.

“근데 야운향 소저가 사냥도 해? 어쩐지 그런 거 되게 귀찮아할 것 같은데?”

“아아, 종관을 데리고 나가서 사냥한 후 녀석에게 들고 오게 했다는데, 종관 얘기론 그녀의 강편술이 장난이 아니라던데? 강편이 꼭 검은 용처럼 움직여서 짐승들을 휘감아 오거나 창처럼 찔러서 잡아 오더래.”

“오, 진짜?”

그녀가 사파의 알아주는 여고수라더니 과연 굉장한 실력자인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후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근데 조장과 청연 소저가 아직 안 왔네?”

“아, 조장은 영약 섭취 후 운기 중이야. 한꺼번에 많은 양을 섭취했는지 좀 오래 걸리는 모양이더라고.”

“아, 그래?”

생각해보니 조장은 벽을 넘은 후에도 아직 영약 섭취를 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돌아오자마자 철귀 수색을 나갔다가 바로 나가장으로 갔으니, 그럴 시간이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그랬던 것을 아까 검성 어르신과 대련 후 명상을 하는 것 같더니 바로 영약을 섭취하러 간 모양이었다.

아마 전력을 다한 비무를 많이 해 보라는 검성 어르신의 조언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럼 청연 소저는?”

“해 소저는 아까 와서 탁자를 만들어 놓고 다시 사 조로 갔어. 갔다가 시간 맞춰서 다시 온다고 하던데?”

“흠.”

나는 돌아온 후 아직 청연 소저와 대화를 나눠 보지 못한 상태였다.

대화는커녕 그녀가 계속 사 조에 가 있기에 마주칠 기회조차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다른 조라도 그렇지, 같은 십삼대에서 이렇게까지 마주칠 일이 없을 수 있는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사 조에서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다행한 일이었지만, 솔직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번 생에 나와 함께 비룡대에 들어와 늘 붙어 다녔었던 지우였는데 말이다.

역시 나가장에 가기 전 그녀와 대화를 나눠 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잠시 후, 요리가 거의 다 됐을 때쯤 조장과 청연 소저가 합류했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회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룡십삼대 칠 조원들의 무궁한 발전과 건승을 위하여!”

“위하여!”

검성 어르신의 축사와 함께 모두 잔을 부딪쳤다.

“이야! 멧돼지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걸?! 종관! 천 소저! 솜씨가 대단하시오!”

“에헴! 신경 좀 썼답니다!”

“크으, 술도 꿀맛이야! 죽이는걸?”

“아, 그건 진짜 꿀을 넣은 술이거든요. 그래서 꿀맛이 나는 걸 거예요.”

“아, 그, 그래?”

회식은 즐거웠다.

누군가 칠 조에서 떠나는 것을 기념한다기보단, 같은 식구들끼리 즐겁게 식사한다는 느낌으로 먹고 웃고 떠들었다.

마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모일 것처럼 말이다.

배를 어느 정도 채운 다음엔 서로의 장기를 보이며 흥을 돋웠다.

“술자리에 음악이 빠져서는 안 되죠.”

나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야운향 소저는 의외의 칠현금 실력을 발휘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러자 천 소저가 흥이 났는지 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럼 노래는 제가 할게요!”

그러고는 귀엽게 노래를 부르며 해동의 환두대도를 들고 도무를 추기 시작했다.

“처, 천 소저! 선녀 같소!”

배종관은 천 소저의 춤과 노래에 거의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그다음으로 나선 이는 나였다.

술기운이 오른 데다 가족 같은 사람들 앞이라서 그런지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변신술을 보여 주지!”

“응? 변신술?!”

“선우 공자, 술법도 쓸 줄 알아요?!”

변신술을 보여 준다며 자신 있게 나가 선보인 것은 축골공을 이용해 골격을 줄이는 모습이었다.

비사영과 배종관에겐 보여 준 적이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처음 보는 것이기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해했다.

“자, 난쟁이로 변신!”

그렇게 외치고는 먼저 키를 줄였다.

우드드득!

“우와아아아! 진짜 작아졌다! 선우 공자! 대단해요!”

“하하하하! 역시 내 사… 질은 재주도 많군!”

반응이 괜찮은 것 같자, 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자, 이번엔 어린아이로 변신!”

우드드득!

이번엔 체격까지 줄여 어린아이의 체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원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무슨 어린애가 그렇게 근육이 두껍냐?!”

“아악! 근육도 근육인데 작은 몸에 얼굴만 늙으니까 징그럽잖아요!”

“와하하하하! 이건 진짜 웃기는군!”

내 변신술 후 대미를 장식한 건 한껏 흥이 오르신 검성 어르신이셨다.

“자! 귀한 구경을 했으니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나 또한 숨겨 왔던 비장의 장기를 보여 주겠네!”

“오오오! 검성 어르신!”

우리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한쪽에선 청연 소저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지만, 검성 어르신 눈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엽!”

검성 어르신은 익살스런 기합과 함께 손가락을 하늘로 뻗었다.

그러자 우리는 모두 눈이 튀어나올 듯 깜짝 놀라고 말았다.

탁자에 놓여 있던 검성 어르신의 검이 갑자기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억!”

“서, 설마?!”

처음에 설마설마했던 우리들은, 하늘로 날아오른 검이 검성 어르신의 손가락을 따라 이리저리 새처럼 날아다니자 경악한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아!”

“이, 이기어검이라고?!”

“그게 진짜! 현실에서! 실제로! 가능한 거였어?!”

“세상에!”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환호성을 터트리자 검성 어르신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훌쩍 뛰어올라 날아다니는 검 위에 올라타셨던 것이다.

그러고는 검을 타고 이리저리 하늘을 날아다니셨다.

바로 전설에서만 들었던 어검비행술이었다.

우리는 뜨겁게 환호성을 터트렸다.

“우와아아아아! 검성 어르신!”

“최고예요! 어르신!”

“진짜 멋져요! 최고!”

검성 어르신은 우리 환호성이 끝날 때쯤 땅으로 내려오셨다.

“공력 소모가 너무 심해 오래 보여 주진 못한다네. 좀 괜찮던가?”

“엄청납니다, 어르신!”

“신선인 줄 알았습니다!”

그저 괜찮은 정도일 리가 없었다.

평생 본 것 중 가장 놀라운 구경이었다.

그 후엔 다들 술이 어느 정도 올라 둘, 셋씩 소규모로 나뉘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청연 소저와 대화를 좀 해 보고 싶어 그녀 쪽을 바라봤지만, 천주은 소저와 야운향 소저까지 여자 셋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 끼어들 수가 없었다.

“흐음.”

좀 씁쓸했다.

어쩌면 오늘도 얘기를 나누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의 거리가 벌어지는 것은 이렇게도 한순간인 모양이구나.’

이렇게 그녀와 대화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 됐다는 것이 씁쓸하고, 또 허무했다.

한때는 어쩌면 나 소저가 아닌 그녀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사람인데도 말이다.

예전에, 나도 사람이다 보니 늘 내 옆에 있어 주는데다 누구보다 대화가 잘 통하는 청연 소저에게 친구 이상의 호감을 품었던 적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녀가 검성의 딸인 데다 천하제일이라 할 만한 미모를 지닌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그 후론 저렇게 완벽한 여인과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어찌나 한심하던지.’

물론 제일 큰 이유는 나 소저였지만, 아무튼 그 후엔 모든 사심을 버리고 그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다가가기도 쉽지 않은 사이가 된 것을 보면, 아마 내 노력이 모자랐던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문득 설풍 조장이 내게 다가와 잔을 들었다.

“진, 부족한 조장 밑에서 고생 많았네. 자네 덕분에 이제껏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내일부터 다른 조의 사람이라는 게 잘 믿기지가 않는군.”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다른 조의 사람이라니요? 전 영원한 칠 조원입니다. 새벽 훈련과 저녁 대련 때 계속 찾아갈 거니까 절 보낼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전 설풍 조장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사람이 아닌 돼지로 있었을 겁니다. 제가 뭔가 잘했던 부분이 있다면 그건 다 조장 덕분이에요.”

한 치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진심이었다.

나를 세상에 낳은 분들이야 부모님이시겠지만, 무인으로서의 나를 만든 건 십 할 조장 덕분이니 말이다.

그것은 정말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조장, 혹시 검성 어르신 앞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걸 고민하고 계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조장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네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 맞네. 검성 어르신은 분명 믿을 수 있는 분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쓰는 걸 보여 드려도 될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네.”

‘그것’이란 설풍 조장이 쓰는 적안의 무공을 말하는 것이었다. 일 각 정도 한두 단계 위의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그 무공 말이다.

조장이 검성 어르신 말씀대로 전력을 다한 대결을 하려면 반드시 그것을 써야만 했다.

그것을 쓰지 않는 대결은 조장에게 있어서 실력을 숨긴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쓰게 되면 조장의 신분이 드러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검성 어르신이라면 반드시 눈치채실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아까 조장의 옆에서 검성 어르신의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조장이 아마 거기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리고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조장, 이건 그저 제 생각입니다만, 만약 검성 어르신의 말씀대로 조장이 최선을 다한 대결을 해야만 벽을 깰 수 있다면, 아마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이 말인가?”

“예, 조장이 그걸 사용해야 할 만큼 강한 상대를 만나는 것도, 그 상대 중 그래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모두 굉장히 힘든 일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고요.”

“음….”

“그래서 내키지는 않으시겠지만, 이번만큼은 모험을 좀 해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말을 들은 조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나는 이미 알 것 같았다.

***

해청연은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동자만 살짝 돌려 설풍 조장과 뭔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을 내리는 것이 이럴 땐 도움이 되네.’

오랜만에 보는 선우진의 모습은, 허탈하게도 너무 좋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좀 잠잠해질까 했는데, 전혀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며칠간 해청연은 깊은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있었다.

선우진이 나서유를 구하러 간 것에 화가나 충동적으로 사 조로 옮겼던 것이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저 감정에 좌우되어 내린 충동적인 결정이라니, 이게 정말 자기 자신이 맞나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힌 해청연은 이내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선우진과 좀 떨어져 있는 것이 자존감과 이성적인 판단을 복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요 며칠 원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듯했던 느낌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다시 본 그는 여전히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축골공을 선보이는 모습은 귀여웠고, 지금처럼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은 멋있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어느새 자신의 시선은 또다시 그에게로 향해 있었다.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마음과 몸일 텐데, 마치 혈교도에게 섭혼이라도 당한 듯 제어가 되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해 봤다.

‘정신 차려, 해청연. 냉정함을 되찾아.’

애써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 해 봤다.

선우진이 지금 설풍 조장과 저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얘기는 분명 나서유에게 아직 고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었다.

만약 고백을 했다면 둘의 관계가 저렇게 자연스러울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선우진은 아직도 설풍에 대한 나서유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고, 그런 그의 옆에 있어 봐야 그저 자존심 상하는 일들만 반복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지금은 그의 옆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 보다 현명한 판단일 것 같았다.

나중에 다시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본래의 그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결론을 낸 해청연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술을 마셨더니 많이 피곤하네요. 먼저 일어나 볼게요.”

그러자 조원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 해 소저, 벌써 가시려오?”

“언니, 많이 피곤해요? 더 얘기하고 싶은데….”

“미안, 좀 무리한 것 같네.”

조원들은 모두 아쉬운 눈빛이었지만, 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더 이상 잡지는 못했다.

그러자 한참 비사영, 배종관과 즐겁게 얘기하고 있던 검성 해운백이, 아쉬움을 간신히 무릅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이 피곤한가 보구나. 이 아비가 데려다주마.”

해청연은 회식 자리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조원들 사이에 앉아 있는 선우진을 눈에 담았다.

다른 조원들과 똑같이 아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말이다.

그 아쉬움이 그저 동료가 먼저 자리를 일어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이 다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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