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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07화 (255/359)

107화 비룡십삼대 삼 조의 신임 부조장-1

다음 날, 조원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던졌다.

“나 간다!”

그러자 역시 가벼운 대답들이 돌아왔다.

“어, 그래. 이따 수련 때 보자.”

“진, 외공 수련 때 늦으면 안 돼.”

“선우 공자, 지금 가는 거예요? 돌아올 땐 선물 사와야 해요!”

“…그건 좀.”

나는 이제부터 삼 조의 숙소로 이동하려는 참이었다.

이사라고 해 봐야 짐이라곤 검 한 자루와 옷가지 몇 벌이 들어간 등짐 하나뿐이라, 그저 가뿐하게 산책 나가는 것 같은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기분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지난 두 번의 삶 동안 전선에서의 내 숙소는 언제나 칠 조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나는 두 번의 삶 중 처음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됐던 것이다.

무척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조원들이 별일 아닌 듯 가볍게 말해 주니 고맙긴 했다.

덕분에 기분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으니까.

꼭 잠시 여행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 같은 기분?

그런 생각으로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문득 의외의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 소저?”

삼조 조장인 당여은 소저, 그녀가 칠 조 숙소의 밖에 서 있었다.

아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밖에 누가 있다는 것이야 기척으로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게 당 소저일 줄이야.

내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혹시 도와줄 게 있을까 해서 와 봤어요. 근데….”

그녀는 내 짐을 보고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작은 등짐 하나에 검 한 자루.

도와줄 게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녀의 민망한 표정에 급히 말했다.

“그래도 와 줘서 고마워요, 당 소저.”

“아, 아니에요. 당연히….”

거기까지 말한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며 서 있었다.

그러다 내가 간신히 말을 꺼냈다.

“그, 그럼 갈까요?”

“아, 그, 그럴까요?”

그리고 다시 말없이 걸었다.

뭔가 굉장히 어색했다.

뭐라고 말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머릿속이 하얗게 된 듯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이상하네. 이젠 나 소저 앞에서도 말이 잘 나오던데 왜 또 이러지?’

그때 당 소저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미안해요.”

“예? 뭐가요?”

그녀가 내게 미안할 일이 있었나?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내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선우 공자의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삼 조의 부조장으로 요청해서….”

“아아.”

그 말을 듣고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하긴 그건 확실히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기는 했었다.

내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황급히 말을 이어 갔다.

“그때 제원영 조장이 갑자기 선우 공자와 해청연 소저가 절정이란 말을 해 버려서 저도 갑자기 요청할 수밖에 없었어요. 절정의 고수면 다른 비룡대에 조장으로 보내도 되지 않냐는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그 후 바로 선우 공자에게 얘기를 하려고 했었는데 곧장 수색을 가게 됐고, 갔다 와 보니 선우 공자가 없었어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두서없이 말을 이어 간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나니, 이제 그때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문득 잔뜩 움츠린 채 내게 미안해하는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그녀를 모두가 차갑고 도도한 여인으로만 알고 있다니.

그녀의 이런 면모를 오직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빙긋이 웃으며 대답해 줬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내게 양해를 구할 여유가 없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는데요, 뭐.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내가 다른 비룡대로 가게 될지도 모르는 걸 당 소저가 막아 준 거잖아요?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겠는데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그녀는 조금 편안해진 표정으로 내게 배시시 웃어 줬다.

아마 그걸 그동안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참 귀엽고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마음이 좀 풀리자 그녀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참, 이번에 나가장에서 철귀를 해치우셨다면서요?”

“아, 그거요? 예, 저는 두 마리를 만났었어요.”

“네?! 두 마리를 한꺼번에요?! 그걸 어떻게?”

“그때 제가….”

그 후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며 삼 조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삼 조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삼 조원들이 모두 숙소 앞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곱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인, 모두 합쳐서 아홉 명이었는데, 아마 나름의 환영식을 해 주려는 모양이었다.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당 소저와 함께 그들의 앞에 나섰다.

그러자 두 명의 여인 중 전부터 나를 쫓아다녔던 송영영 소저가 귀엽게 손을 흔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흠, 적어도 한 명은 환영해 주는군.’

그러곤 다른 사람들을 훑어보며 생각했다.

‘나머지는 전혀 아닌 것 같지만.’

모두 환영식을 위해 나왔다고는 하지만, 진짜 환영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송영영 소저 한 명뿐이었다.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특히 남자들의 분위기는 매우 험악해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모두가 잡아먹을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당 소저가 아까 나와 대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냉기가 풀풀 풍기는 표정으로 나를 소개했다.

“이미 들어 알고 있겠지만, 오늘부터 칠 조 조원이었던 선우진 공자가 우리 조의 부조장으로 오시게 됐어요. 모두 환영해 주시길 바래요.”

그러자 삼 조원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도 일단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무척이나 형식적인 박수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눈빛과 박수보다는 내 옆에 선 당 소저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그야말로 얼음으로 된 미녀상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까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표정 변화, 이거야말로 변신이라고 할 만했다.

너무 신기했다.

그때 당 소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선우진 부조장, 조원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일단 가볍게 말했다.

“이제부터 삼 조의 부조장이 된 선우진입니다.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니 조원 여러분들의….”

그때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족한 건 아니 다행이로군.”

왼쪽 끝에 서 있던 남자였다.

대놓고 들으라는 듯한 큰 목소리에 내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자, 또 다른 남자 한 명이 말을 이었다.

“다행은 무슨, 가식이지. 진짜 부족한 줄 알았으면 감히 여기로 왔을까?”

나는 이제 어이없는 얼굴이 되어 그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건 그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말을 한 사람은 둘이지만, 나머지 남자들도 그들의 말에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환영받을 거라고까지 생각지는 않았지만, 이건 좀 상상 이상의 텃세가 아닌가.

그래서 내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갑자기 당 소저가 폭발적으로 기세를 뿜어냈다.

화아악!

그녀가 주변이 몽땅 얼어붙어 버릴 듯한 차가운 표정과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물었다.

“강 공자, 목 공자. 지금 뭐 하는 짓이죠?”

그러자 그녀의 강력한 기세에 삼 조원들은 바로 웃음을 거두고 부동자세로 돌아갔다.

처음 내게 빈정거렸던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 소저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강소철! 목경진! 내 말이 안 들리나?!”

그러자 그녀의 날카로운 외침에 두 사람은 뻣뻣하게 굳어 급히 대답했다.

“네, 넷!”

“네! 저, 저희는 그저…!”

하지만 당 소저는 그들의 변명을 들어주지 않고 계속 다가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우 공자는 원래 다른 비룡대의 조장으로 갈지도 모르는 인재였다! 그러던 것을 내가 부탁해 간신히 우리 조의 부조장으로 와 준 것인데! 감히 초면부터 이런 무례한 모습을 보여! 너희가 신임 부조장 앞에서 나를 망신 줄 셈이냐?!”

그녀의 차가운 기세와 말에 두 사람의 안색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그들이 황급히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러려던 것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절대 그런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잠시 그들을 노려보다 다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생각은 아니었다. 그럼 무슨 생각이었나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창피하기 그지없는 멍청한 행동을 한 것이죠?”

낮아진 목소리와 다시 사용하는 높임말.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차가운 기세와 어우러져 겨울바람만큼이나 시리게 느껴지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그렇게 느꼈을 정도이니 직접 기세를 받고 있는 두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조장!”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조장!”

하지만 당 소저는 고개를 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사과는 나한테 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에게 해야겠죠. 그렇지 않은가요?”

그러자 두 사람은 이를 한번 꽉 깨물고는 바로 내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부조장!”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나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휘이이! 대단하군.’

대단한 기세와 장악력이 아닐 수 없었다.

아까 내게 배시시 웃어 주던 여인은 이제 전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문득 생각했다.

‘저래서야 내가 어디 가서 그녀가 사실 무척 상처 많고 수줍음 많은 여인이라고 떠들어 봐야 아무도 믿어 주지 않겠군.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

그때였다.

숲 쪽에서 누군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먼저 기척을 느낀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 잠시 후 나뭇가지 위로 달려오고 있는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내가 중얼거렸다.

“제원영 조장?”

그는 신임 사 조장인 점창검호 제원영이었다.

그가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우리 옆에 착지했다.

“하하하! 뭐야? 선우진 아우의 부조장 신고식인가?”

나와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눈 그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의 당 소저에게 말을 전했다.

“어째 평소보다 더 차가워 보이는구려. 분위기를 흐리면 안 될 것 같으니 빨리 전달하겠소. 부대주가 당 소저에게 본부로 좀 와 달라고 전하더구려. 본가에서 급한 서신이 왔다는 것 같았소.”

그러자 당 소저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본가에서요? 무슨 일로요?”

당 소저의 본가라면 사천당문이었다.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소. 나야 그저 전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뿐이니까. 아무튼 나는 분명히 전했소이다.”

그 말과 함께 제원영은 내게 씨익 웃어 주고는 다시 몸을 날려 사라져 갔다.

언제 봐도 참 유쾌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문득 저 사람이 나이가 들면 검성 어르신처럼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당 소저를 힐끗 보니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당가에서 연락이 온 것이 아마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해 줬다.

“당 소저, 다녀오시지요. 소개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급한 일인 것 같은데 어서 다녀오세요.”

내가 재차 권하자 당 소저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조원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부조장을 모욕하는 사람은 저를 모욕한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래요.”

“네! 알겠습니다, 조장!”

그 말을 끝으로 당 소저는 몸을 날려 십삼대 본부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녀가 충분히 멀어진 후 나는 씨익 웃으며 조원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진짜 남자들만의 시간을 좀 가져 볼까?”

그러자 해산하려던 남자 조원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라고?”

그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말해 줬다.

“우리는 무인이잖아? 근데 시시하게 말로만 인사를 나누면 되겠어? 난 너무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것 같은데 말이야. 너희는 안 그런가? 아니면… 겁이 나서 그런 건 또 못 하는 건가?”

내 도발에 조원들의 눈이 조금씩 사납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내게 빈정거렸던 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후회할 소리를 하는군.”

피식 웃으며 되받아줬다.

“아, 후회하려나? 하긴, 첫날부터 조원들을 너무 밟아 놓는 건 좀 그렇겠지? 그것도 무인 주제에 싸우는 게 무서워서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는 겁쟁이들한테 말야.”

그러자 남자 조원들은 이제 완전히 발끈한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자식!”

“지금 그 말, 후회하게 해 주마!”

“네놈이 왜 칠 조였고 우리가 왜 삼 조인지 깨닫게 해 주지!”

내가 바랬던, 아주 바람직한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려 줬다.

“그거 기대되는군.”

지난번 삶에서 설풍 조장은 칠 조의 모든 조원들을 다 포용해 보려고 최대한 노력했었다.

그래서 참 많이 인내하곤 했었지.

하지만 그때 조장은 실패했었다.

바로 주태경이라는 인간 같지 않은 놈이 우리 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겐 인간의 대우를 해 줘야 하지만, 인간 같지 않은 놈에겐 그래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그때 조장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나 소저가 죽게 되자 조장은 더 참지 않고 힘으로 주태경을 짓밟았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조장에게 처절하게 구타당한 놈이 한순간 매우 순한 양이 되어 버리더니, 그 후로 조장에게 전폭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 줬었던 것이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조장을 방해하던 자가 힘으로 한번 짓밟혔다고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이란….

그때 그 일은 조장뿐만이 아니라 내게도 너무나 허탈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놈이 진작 그랬었더라면 나 소저는….’

아무튼 그때 내가 얻은 결론은 그랬다.

폭력은 물론 지양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때에 따라선 대화보다 오히려 확실한 서열 정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고 말이다.

특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들에게는 말이지.

사납게 웃으며 삼 조원들을 향해 말했다.

“와봐라. 단, 아플 각오는 해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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