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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08화 (256/359)

108화 비룡십삼대 삼 조의 신임 부조장-2

처음으로 내게 도를 뽑은 자는 역시 맨 처음 빈정거렸던 그자였다.

“귀주 흑오방의 강소철이다! 선우진, 네가 선우세가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 놈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오늘 네 밑바닥을 드러나게 해 주지! 검을 뽑아라!”

“흠, 흑오방이라.”

귀주 흑오방이라면 귀주 팔세의 하나였다.

사파일 텐데 특이하게도 전선에 무사를 파견했던 모양이었다.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거려 줬다.

“그냥 와라. 내 검을 보게 되면 넌 죽는다.”

그러자 발끈한 놈이 바로 달려들었다.

“이놈!”

부아앙!

놈이 전력을 다해 도를 사선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내가 맞아 주기엔 너무 느렸다.

놈이 도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뒤늦게 빛살처럼 찔러 낸 주먹이 놈의 얼굴을 강타했다.

빠아악!

“크헉!”

놈은 도를 다 휘두르지도 못하고 꼴사납게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으윽! 이놈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때리지는 않았기에 놈은 비틀거리면서도 바로 일어났다.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상대방의 실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크게 도를 휘두르다니, 그러고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용할 정도로군.”

그러자 놈이 이를 갈며 다시 달려들었다.

“닥쳐라!”

하지만 결과는 아까와 똑같을 뿐이었다.

뻐억!

“커헉!”

다시 땅을 구르는 놈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해줬다.

“약한 데다 멍청하기까지 하군. 흑오방에서 널 보낸 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였나?”

그러자 놈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 개자식!”

뻐억!

“크헉!”

세게 때린 것은 아니지만 정통으로 세 대를 맞고도 놈은 이를 갈며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투지 하나는 좀 쓸 만하군. 문제는 쓸 만한 게 그거 하나뿐이라는 거지만.”

“이, 이놈…!”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달려들어 놈을 강타했다.

뻐어억!

그러자 놈은 드디어 대자로 뻗어 버리고 말았다.

이번엔 좀 더 세게 때렸으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조원들을 둘러보자 그들은 아까완 달리 긴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중 방금 쓰러진 강소철이란 자의 말에 맞장구쳤던 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그러자 놈이 이를 갈며 검을 뽑았다.

“나는 광서 목가장의…!”

지루하다는 듯 귀를 파며 놈의 말을 끊었다.

“안 궁금한데? 빨리 오기나 해라.”

내 도발에 발끈한 놈이 바로 검을 찔러 왔다.

“이놈!”

슈학!

하지만 다음 순간, 놈은 눈이 튀어나올 듯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집게손가락으로 놈의 검을 가볍게 잡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공중에서 붙잡힌 놈의 검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 이런….”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다른 조원들도 경악해 소리쳤다.

“소, 손가락으로 검을 잡아냈다고?!”

“저, 저럴 수가!”

피식 웃으며 검을 놓아줬다.

“넌 이미 한번 죽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지. 이번엔 제대로 와야 할 거다.”

그러자 놈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이번엔 신중한 자세로 내 빈틈을 살폈다.

하지만 애초에 아무런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고 있었으니 별 의미가 있을 리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놈은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하아압!”

놈이 이번에 선택한 건 변초였다.

빠르게 찌르는 척하다가, 두 번의 허초를 더해 혼란시킨 후 목을 베어 오는 연환초.

빙긋이 웃으며 말해 줬다.

“좀 낫군.”

하지만 다음 순간, 놈의 검은 다시 내 손바닥에 그대로 잡히고 말았다.

턱!

검날을 손바닥으로 막고 심지어 움켜잡아 버리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손에서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며, 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게?!”

“외공을 익혔지. 알고 있을 텐데?”

그러고는 놈을 후려 차 버렸다.

뻐억!

“커허억!”

그리고 이제 다른 조원들을 차갑게 훑어보며 말했다.

“약하고, 느리고, 멍청하기까지 하군. 너무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고작 이 정도가 삼 조의 수준인가?”

그러자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경악해 투지를 잃어 가던 삼 조원들의 눈이 다시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모욕하지 마라!”

피식 웃으며 대꾸해 줬다.

“모욕? 어떤 점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진짜 모욕당한 건 너희 따위의 부조장을 하려고 여기에 온 나겠지. 그리고 너희 같은 것들도 조원이라고 관리하고 있는 당여은 소저일 테고.”

“뭐라고?!”

“이 개자식이!”

일부러 한 것이긴 하지만, 역시 당 소저의 추종자인 이들에게 그녀의 얘기를 한 것은 효과가 확실했다.

이제 살기마저 뿜어내고 있는 그들에게 사납게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여 줬다.

“자, 한꺼번에 덤벼라. 쓰레기들.”

그 후로 삼 조 숙소의 앞은 한동안 요란한 타격음과 비명들로 가득 찼다.

뻑! 빡! 퍽! 푹! 빠각!

“커헉!”

“큭!”

“끄악!”

“으아악!”

***

잠시 후 삼 조의 남자 조원들은 모두 땅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독기가 완전히 빠져나갈 만큼 두들겨 패줬으니 흐물흐물해진 것도 당연했다.

옆쪽을 바라보니 송영영 소저와 또 한 명의 여인 또한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송 소저가 아닌 다른 여인의 눈에는 살짝 두려움마저 깃들어 있었다.

꼭 악당이 된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이제 분위기는 대충 조성된 것 같군.’

그저 두들겨 패기만 한다면야 기분은 잠시 개운해지겠지만 부조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두들겨 준 후 교감을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원래 채찍 이후의 당근이 더 달콤한 법이지 않던가.

그들을 잠시 둘러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명사현, 전 삼 조 부조장을 존경했었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 사람으로서 그가 보여 준 모습에 순수하게 감탄했었지. 그는 유쾌하면서도 진솔했고, 대범하면서도 세심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혈교의 섭혼술에 당하고서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을 수 있는 정신력이라니, 나는 이전까지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조차 들어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기대했었지. 그가 맡고 있었던 삼 조에 대해서, 그리고 그와 함께했었던 조원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말한 나는 말없이 그들을 주욱 훑어봤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면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명사현에 대한 그리움과 부끄러움으로 일그러져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명사현이 이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는 건 십삼대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이 내게 적개심을 보인 건 물론 당 소저 때문도 있겠지만, 아마 명사현의 자리에 그가 아닌 다른 인물이 왔기 때문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명사현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나는 그를 존경하고 그리워해서 이 자리에 왔으니 너희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그를 존경하고 있었으니까.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희는 외부에서 부조장으로 온 나를 비난하기 전에 너희 스스로를 먼저 비난했어야 했다. 너희가 직접 부조장이 될 능력이 없어 외부의 나를 끌어들이게 된 너희의 무능을! 또한 내가 한 모욕에 분노하기 전에 너희 스스로에게 분노했어야 했다. 모욕을 갚아 줄 힘조차 없는 너희의 무력함을 말이다!”

적당히 기세를 뿜어내며 내뱉은 질타에 그들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또한 무인들이니까.

비뚤어진 마음으로 내게 시비를 걸었을망정 악인들은 아니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자, 한 자 끊어서 또박또박 말해 줬다.

“분노하기 전에 분투해라. 적어도 너희가 무인이라면 말이다.”

그러자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조원들이 하나둘 이를 악물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 투지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 대한 투지가 아닌 발전에 대한 열망일 것이었다.

명사현의 얘기를 이용해 적개심을 향상심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슬쩍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난 삶에서 선우세가의 가주를 맡았을 때도 느꼈지만, 나는 은근히 수장 역할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마무리를 지을 시점인 것 같았다.

겸사겸사 기름도 좀 부어 주고 말이다.

기세를 낮춘 후 진중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한 가지 약속하지. 너희 중 한 명이 부조장 역할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실력을 갖추게 된다면, 나는 미련 없이 다시 칠 조로 돌아가겠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내가 너희의 부조장이다. 다시는 잊지 않기 바란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수긍했다는 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절도 있게 소리쳤다.

“삼 조, 집합!”

그러자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삼 조원들이 이제 벌떡 일어나 일렬종대로 서기 시작했다.

그들 중 얻어맞은 통증에 인상을 찡그리는 자들은 있었지만 적어도 굼뜨게 행동하는 자는 없었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순식간에 내 앞에 일렬로 늘어선 그들을 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선우진이다. 근데 아직 너희 이름을 못 들었군.”

그러자 맨 왼쪽에 있던 자부터 씩씩하게 소리쳤다.

“귀주 흑오방에서 온 강소철입니다!”

그는 가장 처음 내게 빈정거렸고, 가장 처음에 얻어맞았던 자였다.

하지만 이제 그의 표정과 말투에선 전혀 그런 기색을 찾을 수가 없었다.

“광서 목가장에서 온 목경진입니다!”

“사천 진도문에서 온…!”

모든 조원들의 소개를 받은 후 나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그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가 짐을 대충 풀고 다시 나왔다.

아까부터 숲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혼자 조용히 나와 수풀 사이로 들어가자 그곳에 있던 사람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서, 선우 공자?”

“다 끝났는데도 안 나오고 뭐하고 있어요?”

그녀는 바로 당여은 소저였다.

당 소저는 내가 한참 조원들을 두들겨 패고 있을 때 이미 돌아와 숲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기척이야 이미 그때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일이 다 끝난 후에도 여전히 그녀가 나오지 않기에 한번 와 본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하느라고요.”

역시 둘이 있을 때만 볼 수 있는 그녀의 표정은 이토록 귀여웠다.

확실히 차가운 냉미녀의 모습도 멋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쪽이 훨씬 보기 좋은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요?”

그러자 그녀는 조금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음, 선우 공자는 처음인데도 참 조장 역할을 잘하는구나. 나는 아직도 이렇게 어려운데. 뭐 그런 생각?”

약간 자조적인 그녀의 말투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아까 당 소저가 소리치는 모습을 보고 저도 깜짝 놀랐는걸요? ‘역시 조장은 다르구나. 당 소저가 정말 잘하고 있구나.’라고요.”

그러자 당 소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 그녀에게 큰 위안을 준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전에 몇 번의 일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그녀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해 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그녀의 얼굴이 완전히 밝아지지는 않고 있었다.

좀 이상한 생각에 그녀에게 물었다.

“당문에서 온 서신은 어땠어요? 무슨 중요한 내용이 있었나요?”

그러자 그녀가 한층 더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서신 자체에는 내용이 없었어요. 단지… 최대한 빨리 본가로 오라는 말만 적혀 있었어요.”

“본가, 사천당문으로요?”

“네, 지난 사 년간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는데….”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당문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그녀가 무의식중에 말했던 어머니에 관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마유겸의 암시법에 당했을 때 무의식중에도 울면서 계속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던….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그냥 안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전선의 근무자가 그렇게 맘대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휴가 순서를 오 조와 바꿀 수 있대요. 오 조는 어차피 신입들이 많아 바로 휴가를 갈 수 없는 처지라. 그리고… 사천당문의 일원들은 절대 가주님의 명령을 어길 수 없어요.”

“흐음.”

독수광의 오 조가 또 휴가를 못 가는 모양이었다.

하긴 지난번 철귀 사태 때 많은 인원이 죽어 빈자리를 신입들로 채웠으니, 이런 상황에서 휴가를 가는 것도 무리일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게 또 이렇게 이어지다니….

그때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응? 근데 그렇게 되면 나도 이번에 또 휴가를 가게 되는 건가?’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았다.

내 소속도 이제 삼 조가 됐으니 말이다.

‘뭐야? 어째 최근엔 근무를 하는 시간보다 외부에 나가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은데? 그럼 이번 휴가 땐 또 뭘 해야 하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어두운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는 당 소저를 슬쩍 바라봤다.

그러자 본가의 문제로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이 문득 얼마 전의 나 소저와 겹쳐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힘을 다해 다가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될 그녀와 말이다.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았다.

내가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던 건.

“내가 같이 가 줄까요?”

내 갑작스러운 말에 그녀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어디… 를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 주며 대답했다.

“소저의 본가인 사천당문에요. 나라도 같이 가면 뭔가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아, 물론 소저가 곤란하다면….”

곤란하다면 당연히 안 가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건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큰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그녀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내게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선우 공자.”

“아, 뭘요.”

아무래도 이번 휴가 때는 정말 사천당문으로 가게 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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