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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09화 (98/359)

109화 무림맹

무림맹 군사전.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제갈지강은 갑자기 탁자를 퍽! 내리치며 소리쳤다.

“사마가가 아니었어! 청연이! 바로 그 아이였구나!”

제갈지강은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이었다.

지난 정협방과 산검문의 사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딘가 이상했다.

자꾸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검성은 물론 느닷없이 거력마와 정협방에 대해 보고하고는 전멸당해 버렸다는 음영대 팔조의 이야기도, 그리고 절강성에서 갑자기 찾아와 말도 안 되는 활약을 보이고 사라졌다는 독수 오 남매의 얘기도 말이다.

그래서 제갈지강은 그가 몰락시켰던 사마세가의 인물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감시 중인 사마세가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 하나의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독수 오 남매라는 자들의 이름들 들었을 때였다.

‘철신유성 배종관, 쾌도묘랑 천주은?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는데….’

하지만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다는 것만 기억나지, 그게 어디서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아주 잠시 스쳐 가는 이름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그들의 이름을 어디서 봤는지를 마침내 기억해 낸 것은 검성이 전역자들의 명부를 작성해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그래서 이제 사파나 낭인 출신의 전역자들을 암살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쯤, 문득 십삼대 칠 조의 조장인 설풍이 떠올랐던 것이다.

‘설풍이라고 했었지? 그런 실력 있는 자를 포섭해 볼 시도도 해 보지 못했는데, 이젠 심지어 처리하지도 못하게 되었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제갈지강의 뇌리에 그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배종관! 천주은?! 그랬구나! 바로 그들이었어!’

이제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십삼대 칠 조의 조원이었다.

암영대 오조의 조장 삭무흔이 그들에 대해 보고했을 때 스쳐 가듯 조원들의 이름을 봤던 일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아직 이류에 불과한 자들이라 하여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었지만, 제갈지강의 뛰어난 기억력은 그들의 이름마저도 기억나게 해 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제갈지강은 나머지 것들도 바로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독수 오 남매의 두 사람이 배종관, 천주은이라면, 재림자룡이라는 창혁이 바로 설풍이겠군. 그리고 유검선자라는 여인이 부조장 나서유라면 천상미희라는 아이는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다는 그녀가 해청연 이외의 다른 여인일 리가 없었다.

자신의 딸 제갈서율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여아가 바로 검성 해운백의 셋째 딸인 그녀였으니까.

물론 해청연의 한쪽 눈동자가 푸른색인데 반해 천상미희 연해에게는 그런 소문이 없었지만, 눈동자 색을 가리는 것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 있다고 가정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그때 그녀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후부터 검성의 행동이 예상과 완전히 어긋나기 시작했지 않았던가.

“정확히는 아마 그 편지부터였겠지.”

정혈회담에서 자신에게 전해 달라던 검성에게로의 편지. 그것은 아마도 자신을 떠보기 위함이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폐관 중이라던 검성이 실제 있었던 곳은 아마도….

제갈지강이 마침내 어이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완전히 농락당했던 것이었구나. 그 어린아이에게.”

허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미모보다 재능이 더 뛰어난 아이라는 얘기야 검성에게 수없이 들었었지만 그저 팔불출의 딸자랑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농락하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까지의 얘기였을 뿐이었다.

이제 원인을 파악했으니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제갈지강이 비릿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모든 게 그 아이 때문이었다면, 그 아이를 제거하는 것이 선결 과제겠군.”

물론 현재 전선의 주도권은 완전히 검성에게 들어간 상태이니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암영대를 움직일 수도 없고, 심지어 믿을 수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방법이야 찾으면 될 것이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전선, 혈교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곳이니까 말이다.

‘혈마를 끌어들여야겠군. 그리고 제일 먼저 검성부터 처리해야겠지.’

제갈지강은 이제 검성을 더 이상 놔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는 ‘기회가 나는 대로 제거해야겠다.’라는 생각이었다면,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제거해야겠다.’로 바뀐 상태였다.

제갈지강의 추측이 맞다면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제갈지강은 바로 군사전에서 나왔다.

그러자 호위무사들이 바로 따라붙었다.

“군사님, 어디로 가십니까?”

“맹주전으로 가자.”

“예! 알겠습니다!”

현 무림맹주인 협왕 모용검은 제갈지강과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갈지강은 그를 보러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맹주전으로 다가가는 동안 점점 들려오기 시작하는 목소리들 때문이었다.

“아이 참, 맹주님 지금은 대낮인데….”

“어허허허! 지금이 대낮이면 뭐가 어떻단 말이냐? 감히 나 협왕 모용검이 하는 일을 누가 뭐라고 하기라도 한다더냐?”

“어머, 맹주님, 하악!”

맹주전 안에서 들려오는 간드러진 여인과 맹주의 목소리, 그리고 신음 소리들.

제갈지강은 마침내 맹주전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호위 무사들에게 큰 소리로 소리쳤다.

“맹주님께 군사 제갈지강이 긴히 상의드릴 것이 있어 왔다고 전하여라!”

그러자 순간 맹주전 안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맹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오, 군사!”

바로 맹주전 안으로 들어가자, 맨 처음 제갈지강의 눈에 보인 것은 잔뜩 옷차림이 흐트러져 있는 맹주 모용검의 모습이었다.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수가 없는 모습, 그걸 본 제갈지강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안타까워해야 할지, 아니면 그나마 여인을 뒷문으로 내보낸 것을 다행스러워해야 할지 헷갈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협왕 모용검이 환한 웃음으로 제갈지강을 맞이하며 말했다.

“어서 오시오, 제갈 군사! 요즘도 많이 바쁘셨던 모양이오?”

아마 워낙 오랜만에 찾아왔으니 하는 말일 것이었다.

사실 늘 바빴던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근처에 있어도 거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제갈지강은 굳이 그의 착각을 바로잡아 주지 않기로 했다.

“예, 늘 그렇듯 잡다한 일이 많더군요.”

그러자 모용검은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 그렇게 바쁜 군사를 오래 잡아 둬서야 안 되지. 그래, 무슨 일이오?”

빨리 용건이나 말하고 나가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제갈 지강은 다시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목소리를 낮춰 은밀하게 말했다.

“긴히 맹주님의 허가를 받아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용검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무슨 일이오?”

“후우우, 그것은….”

제갈지강은 일단 깊게 한숨을 내쉬며 먼저 분위기를 잡았다.

무려 정파의 기둥인 검성을 쳐내는 일이었다.

그 당위성을 맹주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무척 오랜 시간을 공들여 얘기해야만 할 것 같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제갈지강은 마침내 무거운 표정으로 모용검에게 말했다.

“맹주님, 아무래도 검성을 죽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모용검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검성을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제갈지강은 바로 설명을 이어 가려 했다.

“지금 검성은….”

하지만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모용검이 그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제갈지강 또한 일순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모용검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시구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제갈지강이었다.

“…예?”

모용검은 매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검성을 죽이시오. 내가 십 할 신뢰하고 있는 제갈 군사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소? 내 이름이 필요한 모든 것을 허가할 터이니 마음대로 하시구려.”

“…….”

“자, 얘기가 끝났으면 그만 가 보셔도 좋소. 바쁜 제갈 군사를 더 잡아 둬선 안될 것이 아니오. 그럼 또 수고해 주시오.”

제갈지강은 잠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모용검을 바라봤다.

돌려 말하긴 했지만 이제 그만 나가 달라는 축객령이었던 것이다.

이제 모용검에겐 검성의 생사조차 여인들과 노닥거리는 시간보다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제갈지강은 이내 깊이 고개를 숙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됐건만, 제갈지강은 이것을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때는 긍지 높은 무인이자 전대의 검성이었던 모용검이 저렇게까지 몰락해 버렸다니.

허탈하고 씁쓸할 뿐이었다.

하지만 제갈지강은 곧 감상을 털어 내기로 했다.

맹주가 저런 상태라면 결국 무림맹의 실질적인 주인은 자신이 되어 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사양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맹주전의 밖으로 나간 제갈지강은 바로 외당으로 가서 명령을 내렸다.

“맹주님의 명령이다! 괴검 서일의 행방을 알아내 접촉하라!”

천하오괴의 일인인 승부사 독안괴검 서일.

그가 바로 제갈지강이 선택한 칼이었다.

그저 승부에만 미쳐있는 짐승 같은 그자라면 상처 입은 검성을 물어뜯는 것을 사양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제갈지강은 검성이 있을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 지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마치 그의 친우를 보는 것 같았다.

한편 빨리 제갈지강을 내보내고 다시 여인들을 불러들이고 싶어 하는 듯 보였던 맹주 모용검은, 제갈지강이 나가고 나서도 잠시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문득 입을 열었다.

“그래도 친우라고 할 수 있는 검성마저 저렇게 쉽게 죽이겠다고 하다니, 역시 모사들의 마음엔 정이라는 것이 없는 모양이군. 그렇지 않은가, 여량?”

그러자 어디선가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진정한 모사는 욕심이 없고, 욕심이 없으면 의리를 저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가 쉽게 사람을 버리는 것은 탐욕에 빠져 있기 때문이지 모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자 모용검이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자네가 내게 온 것도 결국 욕심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그의 탐욕은 그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함이고, 저의 욕심은 세상에 뜻을 펼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니 전혀 다른 것이지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그의 반박에 모용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그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 지혜로운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한번 기대해 보겠네. 사마가의 모사는 제갈가와 무엇이 다른지 말일세.”

그러자 목소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절대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모용검은 흡족하게 웃음 지었다.

제갈지강은 뛰어난 도구였지만, 도구가 주인 몰래 비밀을 만드는 순간 도구로서의 가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용검이 제갈지강을 치우기로 결심한 것은 벌써 한참 전부터의 일이었다.

***

운남성 점창산.

점창파 장문인의 집무실에 앉은 혈마 전무광은 제갈지강에게서 온 서신을 다 읽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갈지강이 무척 급한 모양이군. 검성도 모자라 그의 딸까지 부탁하다니.”

그러자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자들의 첩보에 따르면 전선의 지배력이 검성에게로 완전히 넘어간 것 같습니다. 전선 부근에서 활동하던 음영대원들도 대부분 참살당하거나 검성의 밑으로 들어갔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가 급해지는 것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혈마는 문득 생각난 듯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운씨세가로 들어간 유상의 활동은 어떤가? 씨를 잘 뿌리고 있다고 하던가? 검성의 세력이 더 강해지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그러자 목소리가 다시 대답했다.

“예, 운씨세가는 완전히 장악했다는 보고였습니다. 또한 최근 시끄러웠던 산검문은 아직 건드리지 못했지만, 다른 귀주팔세인 선우세가와 육귀당 쪽에도 이미 씨를 뿌리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운씨세가라면 얼마 전 정협방 사건 때 십일대주인 증악도객 만종임과 십일대원들을 전멸시킨 그곳이었다.

만종임이 백옥지룡이라는 구유상의 계략에 빠져, 혈교의 전진기지라고 생각해 침투했다가 대원들과 함께 몰살당했던 바로 그곳 말이다.

증악도객 만종임과 싸우며 전력을 소모했던 운씨세가는, 그 사이 뒤에서 습격했던 구유상에 의해 그만 혈교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 모든 것이 다 구유상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만족스러운 소식에 혈마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유상이 놈답구나. 아주 훌륭해. 정파에서도 백옥지룡이라고 불렸었다지?”

“예, 뛰어난 외모로 사천제일공자라고까지 불렸던 모양입니다. 지존의 가르침을 받았던 아이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흠.”

잠시 흐뭇하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혈마는 문득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검성의 딸도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던데. 혹시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검성을 조사하며 얻은 정보에 따르면 셋째 딸인 해청연이란 아이가 대단한 재녀인 듯했습니다. 미모는 물론이고 영민한 머리와 무공에 대한 재능도 어마어마하다는 소문이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한쪽 눈동자가 푸른색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혈마가 잠시 멈칫하고는 그의 말을 되뇌었다.

“미모와 지혜, 무재까지 갖췄는데, 거기에 한쪽 눈동자색이 푸른색이라고?”

“예,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자 혈마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그렇단 말이지.”

그러고는 먹이를 발견한 맹수와 같은 표정으로 지시했다.

“그 아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게. 현재의 위치와 무공 수준도.”

“존명!”

혈마의 명령에 구유음마 지기음의 기척이 바로 사라지자, 혈마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다시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릇을 찾은 건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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