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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11화 (100/359)

111화 당여은-2

그러자 우리의 갑작스런 등장에 깜짝 놀란 무사들이 바로 도를 우리 쪽으로 향하며 소리쳤다.

“누구냐?!”

“웬 놈이냐?!”

하지만 그들은 바로 우리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입을 떡 벌린 채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감…!”

“저…!”

대충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더 격한 반응에 문득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눈동자가 모두 당 소저의 얼굴에 그대로 못 박힌 상태였던 것이다.

지금의 상황조차 망각했는지 멍한 표정으로 입까지 헤 벌리고 있었다.

‘뭐, 잘됐지.’

한심한 모습들이긴 했지만, 이 상황 자체는 내가 원하던 그림이 맞았다.

판단을 내리기 전 먼저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당 소저를 본 저들의 반응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먼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그들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지나가던 객이온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와 봤습니다. 한데 많은 분들께서 한 분을 겁박하고 계신 것 같군요.”

그러자 내 말에 먼저 반응한 건 무사들 쪽의 덩치 큰 사내였다.

그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내게 소리쳤다.

“지나가던 중이면 계속 지나갈 것이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드는 것이냐?! 네놈이 감히 우리 수천회의 행사를 방해하겠다는 것이냐?!”

하지만 그렇게 소리치는 녀석의 눈은 여전히 당 소저를 힐끗거렸다.

그 눈 속에 보이는 숨길 수 없는 탐욕의 빛이 내게는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흠, 일단 너희는 감점.’

지금의 반응으로 대충 놈들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혈교 놈들처럼 대놓고 드러낸 탐욕은 아니었지만, 결코 선인이라 말할 만한 자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는 포위당한 도문승이라는 청년에게로 눈을 돌려봤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그는, 꽉 움켜쥐었던 검파를 서서히 놓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일단 저를 위해 와 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두 분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그저… 고향 친구들과 의견 차이로 잠시 다퉜을 뿐이지요. 그러니 걱정해 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빙긋이 웃음 지었다.

완곡하게 돌려서 말했지만 별일 아니니 그냥 지나가 달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말이 자신과 상관없는 우리의 안위를 걱정해서 한 말이라는 건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제 더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힘을 실어 줄 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정해졌으니까 말이다.

그때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내게 소리쳤다.

“왜 대답이 없어?! 우리 수천회의 행사를 방해하겠다는 뜻이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다시 놈을 바라보니, 무슨 이유에선지 녀석들의 적의는 이제 도문승이라는 청년보다는 오히려 내 쪽으로 더 집중되어 있는 상태였다.

놈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냐?! 앙?!”

하지만 그러면서도 놈은 계속 당 소저 쪽을 흘깃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나는 저들이 왜 저러는 것인지를 바로 이해했다.

‘아마도 나를 처리하고 싶은 모양이군.’

그 이유는 아마도 당 소저 때문일 것이고 말이다.

씨익 웃음 지었다.

안 그래도 누구 쪽의 손을 들어 줄지 결정했던 참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 주다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사납게 웃으며 놈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이것 참, 고맙…!”

하지만 그때 당 소저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왔다.

- 공자, 안돼요!

순간 멈칫했다.

안 된다고? 왜지?

의아한 생각에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 저들이 수천회가 맞다면 저들은 당가의 맹우예요. 그것도 가주께서 무척 중요시하시는….

그녀의 말에 나는 결국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천당문의 맹우라고?

저런 놈들이?

입맛이 썼다.

그 말대로라면 저놈들을 처리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만약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했다간 당 소저의 입장이 곤란해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두기엔 영 찝찝한데….

내가 입술을 깨물고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자, 덩치 큰 놈이 내게로 바짝 다가오며 소리쳤다.

“너 이 새끼야! 왜 대답을 안 하냐고 묻고 있잖아?! 앙?!”

그러자 뒤에 있던 다른 남자 하나가 비웃듯 말했다.

“대답도 못 할 만큼 겁먹어서 그러는 거 아닐까? 얼굴도 기생오라비처럼 생겼잖아? 완전히 쪼그라들었나 본데?”

“크흐흐흐흐흐!”

놈들의 비웃음까지 듣자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당 소저의 입장이 곤란해져도 이런 것들을 그냥 놔둬야 하나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도문승이라는 청년이 그들에게 외쳤다.

“원왕! 우포! 내가 따라가겠네!”

갑작스러운 그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그는 어느새 검을 완전히 놓고는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중이었다.

그가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자네들을 따라가겠네. 그러니 그만들 하게. 자네들은 사천성을 대표하는 정파 수천회의 무인들이 아닌가? 그런 자네들이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겁박해서야 되겠는가?”

그러자 덩치 큰 남자는 불만족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수천회의 이름까지 나오자 더 시비를 걸 명분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아쉬운 듯 혀를 한번 차고는 도문승이란 청년의 팔을 구속한 채 거칠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

“쯧, 가자!”

하지만 그들은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아쉬운 표정으로 당 소저의 얼굴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쳇!’

아쉬운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뭔가 행동을 취해 줬다면 나도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생겼을 텐데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 버리는 놈들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당 소저를 바라봤다.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들을 그대로 보낸 후 우리는 속도를 높여 인근의 사천성 영남으로 진입했다.

아까 도문승이라는 청년이 영남검문의 제자라고 했으니 아마 이곳 출신일 것 같았다.

당 소저가 문득 내게 물었다.

그녀는 아까 그일 이후로 계속 표정이 어두운 상태였다.

“바로 영남검문으로 가실 건가요?”

“아뇨. 먼저 객잔으로 가죠.”

하오문 지부로 바로 찾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이곳의 하오문 위치를 모르기에 일단 객잔으로 가 정보를 얻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인근의 가장 큰 객잔으로 간 우리는 점소이들에게 약간의 철전을 찔러 주는 것으로 여러 가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천회 말입니까? 어이구, 그곳이야말로 저희 사천 남부인들의 자랑입죠! 청성, 아미, 당문의 세력도 미치지 못하는 이 사천성 남쪽 구석에서 저희가 살아갈 수 있는 건 다 수천회 덕분입니다요!”

“맞습니다! 만약 그곳이 없었다면 저희는 벌써 운남성의 혈교 놈들이나 귀주성의 육귀당 놈들에게 살해당했을 겁니다!”

수천회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심은 의외로 대단히 좋았다.

아마 수천회 자체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사천 남부를 보호하기 위해 자생적으로 발생한 집단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천성 남부의 문파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자들과 자금을 모아 자경세력을 만들었던 것이 지금의 수천회가 되었다는 게 점소이들의 설명이었다.

반면 영남검문, 특히 도문승에 대한 의견은 점소이들끼리도 서로 엇갈렸다.

“영남검문의 도문승 공자는 굉장히 훌륭한 사람입죠. 온화하고 공정하기로 소문이 자자해서 적어도 이 영남에서는 협객의 표본과도 같은 사람입니다요.”

“흥! 협객의 표본은 무슨! 도 공자야말로 수천회의 소집령을 어기고 심지어 도주까지 한 위선자가 아니냐?!”

“아, 이놈아! 지금 영남검문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이 도 공자 한 명뿐인데 그가 어떻게 수천회로 간단 말이냐?! 그마저 가 버리면 영남검문이 그대로 몰락해 버릴 것이 눈에 선한데 말이다!”

“그거야 개인 사정이 아니냐?! 그런 사정들에도 불구하고 다 함께 힘을 모았으니 지금의 수천회가 된 것이 아니냔 말이다! 자기 사정만 내세우고 대의를 어긴다면 그게 어떻게 정파의 협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지금의 수천회는 병사를 징집하듯 인근 문파들의 제자를 징집해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것을 영남검문의 도문승이 사문의 어려운 사정을 이유로 거부했고, 그러자 수천회에서 바로 그를 본보기로 사형시키겠다고 선언한 것이 지금의 사태에 이르게 된 원인인 모양이었다.

그들에게 몇 가지를 더 질문해 보았다.

“혹 예전에도 개인 사정에 따라 소집에 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그때도 바로 사형시키겠다고 선언했었습니까?”

그러자 잠시 기억을 떠올려 보던 점소이가 대답했다.

“아,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도 사문의 사정 때문에 거부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땐 아마 소집 시기를 늦춰 줬던 걸로 기억납니다요!”

“응? 그랬었나?”

“아, 왜? 백도문의 상 공자가 그랬었잖아?!”

“아, 상 공자! 맞아, 그랬었지!”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처럼 소집을 거부했다고 바로 사형을 선언한 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모양이군요?”

그러자 두 사람 모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적어도 저는 처음 듣습니다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했던 점소이 중 한 명이 다시 급히 말했다.

“하지만 그건 요즘 수천회의 상황도 급박하기 때문일 겁니다! 최근 혈교와 육귀당의 침입을 막느라 희생자가 많아졌다고 들었거든요!”

“음, 맞아. 그 소문은 나도 들었었지.”

나는 그들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봤다.

‘혈교와 육귀당의 침입 때문에 희생자가 많아졌단 말이지?’

그러곤 다시 물었다.

“혹시 최근에 혈교나 육귀당으로부터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밝게 대답했다.

“아니오. 없습니다! 수천회가 지켜주는데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맞습니다요! 저희가 이렇게 평화롭게 살아가는 건 다 수천회 덕분입죠!”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철전을 좀 더 쥐여 주고는 돌려보냈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당 소저에게 물었다.

“소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그녀가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좀 이상하긴 하네요. 현 수천회주인 등천검객 막우전은 초절정을 바라보는 고수에요. 그래서 아버지… 가주께서도 무척 신경을 쓰고 계시죠. 그런데 혈교와 육귀당으로부터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니. 혈교의 세력이 전선을 넘어 북상했다면 저희가 모를 리 없을 테고, 육귀당에서 사천성을 침입하기엔 세력이 부족할 텐데 말이에요.”

정확한 분석이었다.

나 역시 그 부분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선이 멀쩡한 상태인데 수천회가 혈교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당가와 선이 닿아 있다는 그곳을 귀주팔세의 하나인 육귀당이 침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전에 정협방 때도 그랬지만 귀주팔세와 사천성의 세력들 간에는 상당히 심한 세력 격차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육귀당의 침입 때문에 수천회가 어렵다는 건 마치 고양이들의 침입으로 늑대 무리가 어려워졌다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을 한, 당 소저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자조적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저 따위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죄송해요, 선우 공자. 괜히 저 때문에….”

땅이라도 파고 들어갈 듯 침울해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겐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저 바닥을 치는 자존감은 지금이 아니어도 어떤 식으로든 당 소저의 삶에 문제를 일으키고 말 것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그녀의 그런 부분을 느꼈고 얘기해 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이제까진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조심스러워하지 못했던 것을….

어쩐지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녀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 소저. 저는 제 앞에서만 보여 주시는 당 소저의 모습을 무척 좋아합니다. 너무 귀엽고 또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거든요.”

그러자 내 느닷없는 고백에 깜짝 놀란 그녀가 퍼뜩 고개를 쳐들고는 나를 바라봤다.

“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사과처럼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에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조원들 앞에서 보여 주시는 조장으로서의 모습도 좋아합니다. 믿음이 가고, 함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느껴지니까요.”

“아….”

그러자 이제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고 말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진중하게 물었다.

“저는 그 두 모습의 당 소저가 모두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왜 소저는 스스로의 모습을 싫어하고 또 부정하십니까?”

“…네?”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그녀에게, 나는 잠시 다른 얘기를 꺼내기로 했다.

“저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가끔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잃었고, 또 형제들과 가족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왔기에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늘 어렵고 어색했죠. 또 그들이 멀어질까 두렵기도 했고 말입니다.”

“…….”

내 뜬금없는 고백에 그녀의 눈빛이 살짝 촉촉해졌다.

아마 그녀도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어 왔기 때문일 것 같았다.

“반면 적을 대할 땐 누구보다 냉혹해지기도 합니다. 죽이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모략을 사용하는 것도 전혀 망설이지 않죠. 비사영 녀석은 제가 혈교도들을 대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 피도 눈물도 없는 놈 같다고 욕하곤 하더군요.”

그러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야 저도….”

하지만 아직 내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무척 장난기가 많은 편입니다. 특히 비사영이나 배종관 같은 녀석들과 함께 있을 때면 열 살배기 아이처럼 유치한 장난을 칠 때도 많죠.”

그러고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진짜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상황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이 모든 게 저의 모습입니다. 그 모두가 저라는 사람이죠. 또한 이 모든 모습이 모두 모여야 진정한 제가 되는 거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이 될 수도 있겠죠.”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사람은 한 가지 모습으로 멈춰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멈춰 있는 것은 썩어 간다는 얘기가 아니던가.

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당 소저는 스스로를 상처받은 어린 여아의 모습으로 단정 짓고 계십니까? 그리고 왜 그렇게 그 아이를 싫어하십니까?”

“…네?”

그녀의 당황한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당 소저는 어린 시절 미움받던 어린아이의 모습만을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모습들은 다 거짓말일 뿐이라며 그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 소저는 어머니의 증오를 받던 그 어린아이를, 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있었다.

자신은 어머니의 증오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단정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너무도 착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아무리 증오를 받아도 차마 어머니를 미워할 수 없는 착하고 여린 사람이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증오받아 마땅한 어린아이 속에 가둬놓고 있는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건 지난 삶에서 누구보다 내 자신을 증오했던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제가 보는 당 소저는 사랑스러운 여인인 동시에 지도력 넘치는 조장이고, 또한 우직하게 자신을 단련하는 무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당 소저만 스스로를 그 아이 속에 가둬 놓고 있습니까?”

그러자 그녀의 눈은 이제 초점을 잃은 채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혼란이 내 과거의 기억과 닮아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잠시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당 소저를 무척 멋진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받은 어린 여아의 모습이나 차갑고 지도력 넘치는 조장의 모습, 그 어느 하나가 아닌 모든 모습들이 모여서 만든 지금의 당 소저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건 삼 조원들도, 떠난 명 형도 모두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문득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 속에 눈물이 맺혔다.

그 속엔 어린아이가 있었다.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던 상처받은 아이.

차마 어머니를 미워할 수 없어 자신을 미워하는 쪽을 선택했던 착한 아이가 말이다.

그 아이를 바라보며 내 할 수 있는 모든 마음을 담아 따뜻하게 말해 주었다.

“그러니 이제 소저도 그만 그 아이를 놓아주시지요. 그 어린아이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건 이제 당 소저가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순간 그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그녀가 흘러내린 눈물에 놀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눈물이었던 모양이었다.

“아, 죄, 죄송해요. 이게 왜….”

하지만 한번 흘러내린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간의 설움을 모두 쏟아내듯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그 안에 섞여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어쩐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녀를 혼자 두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혼자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후우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 소저에게 했던 말은 단지 그녀에게 한 말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의 내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던 말이기도 했다.

가족들과 서로 증오하고 피 흘리게 되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스스로를 망쳐 버렸던 그 선우진에게 말이다.

지난 삶의 그 녀석에게 언젠가 한 번쯤은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너는 어렸고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너를 이해한다고 말이다.

어쩐지 하늘이 뿌옇게 흐려져 오고 있었다.

***

시간이 지나고, 당 소저가 밖으로 나온 건 그 후로 반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그사이 많이 울었는지 얼굴엔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얼룩져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본 내 얼굴에선 절로 흐뭇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후련하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 소저가 햇살처럼 웃으며 내게 말했다.

“고마워요, 선우 공자.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저 그 도문승이라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요.”

그 느닷없는 말에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를 잡아간 수천회가 사천당문의 맹우인데도 말입니까?”

그러자 그녀가 살풋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도 도와주고 싶은 기분이 드네요. 혹시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얼굴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약간의 장난기와 살짝 자신감이 깃든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 모습 또한 너무도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눈이 부셨다.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없을 리가요. 세상에 방법이 없는 일 따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디, 제가 한번 방법을 찾아볼까요?”

그러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할게요!”

한 꺼풀 껍질을 벗어 낸 듯한 그 미소가 햇살 속에서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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