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천살마검
길을 걸으며 한동안 깊이 생각에 잠겨 있던 당 소저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도문승이라는 사람을 구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심정적으로 그의 사정이 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직접 봤던 그의 모습이 그렇게 죽기에 아까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식으로 주변 문파의 제자들을 소집하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전통이었다면, 그것 또한 존중해 줘야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녀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수천회는 과거부터 그런 방식으로 이 지역을 지켜 왔던 모양이고,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모양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하더라도 도문승을 도와주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조심스럽게 대답해 줬다.
“이건 물론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저는 수천회가 이 지역을 지키는 것이 숭고한 희생이라기보단 어떤 암묵적인 약속이란 생각이 듭니다.”
“…약속이요?”
“예, 이 지역 문파들이 수천회에게 자금과 제자를 공급해주는 대신, 수천회는 그들에게 안전을 제공해 주는 거지요. 일종의 계약 같은 거랄까요?”
내 설명에 당 소저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확실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양쪽은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파들은 수천회의 전력이 약화되지 않을 수 있도록 신뢰를 지켜야 할 것이고, 수천회 역시 문파들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해 줘야 하겠죠.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이번 사태는 수천회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당 소저가 내 말을 되뇌었다.
“문파들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해 줘야만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남검문의 안위에 위협을 주면서까지 도문승을 무리하게 소집했다는 것이로군요?”
“예, 맞습니다. 문파들의 안위를 지켜 줘야 할 수천회가 오히려 영남검문의 안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죠. 그렇다면 영남검문 입장에서는 굳이 수천회의 지시를 들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으음.”
다시 생각에 잠기는 그녀에게 다른 예를 들어 줬다.
“우리가 속한 전선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혈교에 대항하기 위해 전선에 온 건 가족과 문파를 지키기 위함인데, 오히려 전선을 만든 무림맹에 의해 가족이나 사문이 위협받게 된다면 굳이 전선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무림맹이든 혈교든 우리 가족과 문파를 위협한다면 적인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말입니다.”
당 소저는 아직 암영대가 해 온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전역한 근무자들이 혈교도가 아닌 무림맹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에 대해서도 얘기해 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녀가 속한 사천당문의 입장이 마음에 걸려 아직 조심스러워하던 참이었다.
지난번 정협방 사건 때 본 바로, 사천당문은 확실히 무림맹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러자 당 소저가 조금 납득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선우 공자의 말이 분명 맞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규칙이나 전통 같은 것들을 어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긴 하네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과 부모님께 순종적인 그녀의 성향을 봤을 때, 정해진 규칙과 전통을 어기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할 것 같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말을 꺼냈다.
“규칙이나 전통 같은 것도 그것이 만들어진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이유가 아닌 규칙 자체에 얽매여버린다면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그러곤 예시가 될 만한 얘기를 해줬다.
“전에 책에서 본 얘긴데, 서역의 어떤 곳에서는 여인들이 밖에서 절대로 얼굴을 드러낼 수 없게 하는 규율이 있다더군요.”
그러자 당 소저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네? 여인의 얼굴을요? 왜죠?”
“그 규율이 생길 당시 워낙 도적들이 많고 치안이 좋지 않아서 여인들이 봉변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지금도 그걸 전통으로서 지키고 있다는 겁니다. 안전한 도시에서도 절대 여인들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한다더군요. 만약 얼굴을 드러낼 경우, 그녀를 죽여도 비난받지 않는다고 하고요.”
그 말에 당 소저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그게 뭐예요? 여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칙이었다면서 단지 얼굴을 보였다고 죽이다니, 그게 말이 되요?”
피식 웃으며 대답해 줬다.
“그렇죠. 말이 안 되는 얘기겠죠. 저는 그게 근본적인 이유나 원리가 아닌, 말이나 규칙에 집착하게 되면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주변에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죠. 우리 주변의 규칙과 전통 중에서도 그 이유도 모른 채 따르고 있는 것도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번 일이 수천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도문승이란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겁니다.”
그러자 당 소저는 이제 완전히 이해가 됐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선우 공자 덕분에 명쾌해졌어요. 역시 도문승을 돕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니었군요.”
그녀의 밝은 미소에 나 또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당 소저는 청연 소저처럼 지혜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해가 빠르고 수용적인 사람이었다.
그녀에겐 대화하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이번 일에 대해 꼭 개입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천회의 회주라는 등천검객 막우전, 그 때문이었다.
아까 당 소저에게 그의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전생에서도 그의 이름을 들어봤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아는 그때 그의 별호는 등천검객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때는 천살마검 막우전이라고 불렸었지. 사천성 남부를 초토화시키고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공포의 검귀.’
지난 삶, 내가 전선이 와해된 후 선우세가로 돌아갔을 때, 그는 이미 혈마의 수족이 되어 수없이 많은 살육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때 그가 예전에 정파인이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마도 수천회였던 모양이었다.
당 소저는 그의 무위가 대략 초절정을 바라보는 정도라고 했었다.
그러니 현재 그의 실력은 적하신검 화영빈 형님이나 설풍 조장과 비슷하다는 뜻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생에서 내가 아는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 그의 무위는 결코 철신광마 척강의 아래가 아니었지. 무려 혈마의 마검이라고 불렸었으니까.’
철신광마 척강.
지난 생에서의 막우전은, 얼마 전 단신으로 청성파와 당문의 정예들 앞에서도 오히려 압도하는 기세를 보여 줬던 척강과도 비슷한 정도의 실력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현재 초절정에도 이르지 못하는 막우전은, 앞으로 몇 년 사이에 몇 단계의 벽을 뛰어넘어 무림의 절대자들을 넘보는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는 얘긴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 중간에는 뭔가 엄청난 기연이나 사건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쩐지 느낌이 오고 있었다.
그 막우전의 비밀과 이번 일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말이다.
물론 상식적으로야 고작 도문승을 탈출시켜 주는 일이 막우전의 비밀과 어떤 연관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알 수 없는 느낌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막우전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내 느낌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삶에서도 모자란 무위로 전선이 무너질 때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육감과도 같은 느낌의 역할이 지대했지 않은가.
그때 당 소저가 눈앞의 기루를 보며 내게 물었다.
“저기, 선우 공자? 근데 저희가 지금 왜 이 기루 앞에 서 있는 걸까요?”
퍼뜩 생각에서 깨어나 바라보니 어느새 우리는 화려한 기루의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열락루’라는 현판이 달린 기루였다.
나는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당 소저에게 황급히 웃어 주며 대답했다.
“아, 여기가 바로 사천성 영남의 하오문 지부거든요. 아까 점소이에게 이곳의 위치를 알아 놨었죠. 그러니까 우리는 기루에 온 게 아니라 하오문 지부에 온 것입니다. 하하….”
그러자 그녀가 깜짝 놀란 듯 되물었다.
“하오문 지부요?”
“네, 아마도 꽤나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저희가 하오문에서 대접을 받는다고요? 왜죠?”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는 그녀에게, 나는 자신 있는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커다란 방에서 화려한 식사를 대접받고 있었다.
우리는 대략 열 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식탁에 앉아 있었고, 그 위에는 고급스러운 음식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이런 모습은 과거 선우세가의 돼지로 살던 이후 처음 보는 진수성찬이기도 했다.
당 소저는 이 모든 일이 너무나 당황스러운 듯 멍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유 있게 웃으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대접해 주실 필요는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자 열락루의 루주이자 하오문의 사천성 영남 지부장인 중년인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 사천성 하오문 지부의 모두가 선우 공자께 큰 은혜를 입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대접밖에 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은혜를 입었다라….
물론 은혜를 입혔다기보단 목줄을 틀어잡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었다.
그들이 혈교에게 협력했던 것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협조를 받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대접을 받는 것이 기분 나쁠 리는 없었다.
일단 음식을 먹으며 그에게 물었다.
“화 형님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가 다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적하신검 화영빈 대협께선 요즘도 사천성에 암약하고 있던 혈교의 무리들을 청소하는 데 여념이 없으십니다. 화 대협의 헌신 덕분에 이제 사천성에 있던 혈교의 잔당들은 거의 박멸되었지요. 아마 거의 구 할 구 푼 정도는 쓸려 나갔다는 게 저희 하오문의 판단입니다.”
“오, 벌써, 대단하군요.”
구 할 구 푼이면 거의 모든 혈교도가 박멸당했다고 자신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일 푼을 남긴 것도 아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함일 테니까, 저렇게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오문의 공이 크군요.”
“아닙니다. 저희가 한 일이 있다면 그건 모두 화 대협과 선우 대협의 덕분이겠지요.”
그렇게 잠시 덕담을 나누던 우리는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수천회와 등천검객 막우전에 관한 정보를 좀 얻고 싶습니다. 그리고 구하고 싶은 물품들도 몇 가지 있군요.”
“예! 얼마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에게서 바로 듣게 된 수천회의 상태는 역시 꽤나 의심스러웠다.
확실히 최근 들어 인근 문파로부터 강압적으로 무사를 소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하는 이유가 최근 사망자가 많이 생겼기 때문인 것은 맞는데, 사망자가 발생한 위치가 또한 이상했다.
“북쪽이라고요?”
하오문의 정보에 따르면 전선이 위치한 남쪽이나 귀주성 육귀당이 있는 동쪽과는 전혀 상관없는 북쪽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전혀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예, 사람들의 눈을 가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긴 했지만, 저희가 확인했을 때 시신들이 돌아온 곳은 분명 북쪽이었습니다. 이상한 점은 그동안 북쪽에서 특기할만한 문파들의 충돌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지요. 적어도 정협방과 산검문의 충돌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확실히 수상했다.
수천회가 정협방 사건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건 누구보다 당사자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그럴만한 사건도 없이 수많은 사망자만 생겼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혈교에게 벌써 먹힌 것은 아닐까?’
지난번 삶에서 알려진 바로는 막우전이 혈마의 밑으로 들어간 건 전선이 무너졌을 때쯤이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이미 그런 상황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예리한 눈빛으로 열락루주에게 물었다.
“혹시 혈교와의 연결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잠시 무거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루주가 대답했다.
“십 할을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구 할 이상의 확률로 혈교와는 관련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흠.”
구 할 이상이라….
십 할을 말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아마 절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했다.
나도 그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일단 아니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럼 하오문 쪽에서도 아무런 다른 정보가 없는 겁니까?”
“…예, 면목이 없습니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이야 물론 아쉽지만,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하오문도 정보를 얻지 못할 정도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상하다는 것은 확인한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조사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그럼 정보는 충분히 얻은 것 같군요. 이제 물품을 좀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뭐가 필요하십니까?”
그의 질문에 문득 옆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당 소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가 왜 자기를 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으며 루주에게 말했다.
“일단 인피면구 두 개, 그리고 괜찮은 쌍검을 바로 구할 수 있다면 좀 부탁드리고 싶군요. 그리고 또….”
그 말에 당 소저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인피면구라고요?”
빙긋이 웃으며 대답해 줬다.
“설사 상대가 수천회가 아닌 당가라도, 우리가 누군지만 안 들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열락루주는 바로 주문한 물품을 가져와 줬다.
역시 흑도들과 접점이 많은 하오문이다 보니 인피면구나 무기 같은 것들은 물론 다른 주문한 것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들의 값을 지불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했습니다, 루주.”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열락루주는 무척 신뢰가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하오문의 지부장, 눈에 보이는 모습만을 믿다간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경고했다.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희에 관한 정보가 또 다른 곳에 팔려 나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특히 혈교에게는 말이지요.”
그러자 살짝 흠칫했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 사천성의 지부들이 다시 혈교에게 협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선우 대협에 관한 정보 또한 절대 거래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저 미세하게 흔들리는 표정.
벌써 두 번째였다.
이곳에 들어와 나는 계속해서 그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아주 짧은 순간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어색해진다는 것을 포착해 낼 수 있었다.
바로 사천성 하오문 지부라는 말을 강조할 때였다.
내 기억력으로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미세한 표정 변화였다.
사천성 하오문 지부라….
하오문 지부라는 말은 너무 포괄적인 부분일 테니 그가 강조하려는 것은 아마도 훨씬 범위가 좁은 사천성이란 부분일 것 같았다.
서서히 외부로 기세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그러곤 지그시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리고… 혹시 아십니까? 범죄를 저지르는 자는 주범이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를 공범이라고 부른다는 걸 말입니다. 저는 하오문이 과오를 씻기 위해서라도 결코 공범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반문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도무지….”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의 눈빛이 한 차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확실한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