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청홍쌍검-1
열락루주가 여유 있다는 듯 웃으며 내게 말했다.
“하하, 선우 대협. 저희 사천성의 하오문 지부는 결코….”
하지만 나는 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절정 무인의 기세를 담아 단호하게 말해 줬다.
“그 말 꼭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아마도 하오문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을 테니까요. 그걸 알고 계실 거라고 믿었습니다만, 역시 사람은 대가를 치르기 전까진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법인 모양입니다.”
그러곤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당 소저에게 말했다.
“그만 가시죠, 소저.”
이건 물론 협박이었지만, 완전한 거짓은 아니었다.
하오문은 분명 유용한 자들이었지만, 신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할 테니까 말이다.
이곳을 나가기 전까지 루주가 감춰 둔 것을 털어놓지 않는다면, 나는 바로 화 형님께 하오문을 처리하라고 연락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역시 반응이 왔다.
그가 다급하게 나를 불러 세웠던 것이다.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협!”
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돌아봤다.
그러자 어느새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그가 내게 사정하듯 말했다.
“겨, 결코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에게도 정확한 정보가 없기에 쉽게 말씀드리지 못한 것뿐입니다!”
역시.
낚시 성공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어 줬다.
그리고 차가운 말투로 대꾸했다.
“아, 그러시군요. 무척 설득력 있는 변명이셨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그땐 어디서 뵙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드디어 지친 얼굴로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귀주, 귀주성의 지부들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계속 말하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그가 해탈한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선우 대협께서 어디까지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도 귀주의 어떤 지부가 혈교에 협력하고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최근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으니까요. 다만….”
순간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귀주성의 하오문이 혈교에 협력하고 있다니.
충격적인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문득 일전에 증악도객 만종임을 죽게 만들었던 운씨세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내 본가인 선우세가도.
그의 말을 끊으며 차갑게 물었다.
“귀주성의 모든 지부일 확률은요?”
그러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협방을 와해시키며 지난 삶과는 달리 이번에는 혈교의 사전 침입을 원천 봉쇄했기를 기대했었는데, 아마도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던 모양이었다.
귀주성의 하오문 지부 전체라니, 만약 그게 진짜라면 최악의 경우 귀주성은 사천성보다 오히려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계신 선우세가마저도 이미….
그때 열락루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높습니다! 너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절박한 표정의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걱정하는 건 아마도 귀주성의 하오문도들이 전멸당하는 사태일 것이었다.
아마 그도 나 못지않게 이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겠지.
그렇다면….
차가운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면 저희는 귀주성의 하오문 전체를 몰살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사형 선고를 받은 듯 하얗게 질렸다.
“그, 그런?!”
금방이라도 절망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잠시 그를 지켜보다가 슬쩍 동아줄을 내려 줬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가 있다면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자 그가 퍼뜩 고개를 쳐들고는 급히 물었다.
“…그 말씀은?”
나는 이제 압박하기 위한 기세를 거두고는 진중한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하오문에서 정확한 정보를 가져오셔야만 한다는 얘깁니다. 루주께서 걱정하시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러자 잠시 굳어졌던 그는, 침을 꿀꺽 삼킨 후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반드시 귀주성의 상황을 알아내겠습니다.”
그의 눈은 굳은 각오를 한 듯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런 눈빛이라면 한 번쯤 믿어볼 만할 것 같았다.
빙긋이 웃고는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의 대화를 바로 화영빈 대협께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오문의 능력이라면 이틀 안에 전달할 수 있겠지요? 물론 정확한 내용이어야 할 겁니다.”
“…맡겨 주십시오. 있는 그대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내용을 조작할 확률도 없지는 않겠지만, 나와 화 형님이 언제라도 만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이상 그런 얄팍한 수작을 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젠 사천성의 하오문 지부도 완전히 안전해진 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됐을 테니 말이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열락루의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당 소저가 참았던 숨을 내뱉듯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아, 너무 긴장됐어요.”
그러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귀주성의 혈교 세력에 대한 정보를 얻기로 하오문과 합의를 봤던 거죠?”
피식 웃으며 대답해 줬다.
“합의라기보단 협박을 한 거였죠. 제대로 된 정보를 가져오지 않으면 다 쓸어버리겠다고.”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탄했다.
“대단하세요. 너무 멋있었어요.”
쿨럭.
멋있을 것까지야.
그녀의 말에 가슴이 콕콕 찔렸다.
어차피 하오문을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닌 화 형님의 능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저 호가호위를 한 것뿐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멋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무척 민망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당 소저는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추앙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조금 흐뭇하기도 했다.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돌렸다.
“흠, 흠. 그나저나 당 소저, 움직일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러자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움직이다니요? 어디를요?”
씨익 웃고는 인피면구를 그녀에게 내밀며 대답했다.
“수천회로 가 봐야 할 것이 아닙니까? 선우진과 당여은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 말이죠.”
그러자 내가 내민 인피면구를 받으며 그녀가 환하게 웃음 지었다.
“네, 좋아요!”
이제 드디어 도문승을 구하고 등천검객 막우전의 비밀을 파헤쳐 볼 시간이었다.
***
사천성 최남단인 영남보다 약간 더 서북쪽으로 올라간 덕창.
그곳에 사천성 남부 문파들의 중심인 수천회의 본전이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저녁, 수천회의 수문 무사들은 아무런 특이 사항 없이 하루가 끝났음에 편안한 표정으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오늘 근무 끝나면 술이나 한잔할까?”
“좋지. 어디로 갈까?”
“구호가 쪽에 거기?”
그때였다.
뉘엿뉘엿 지고 있는 해를 등 뒤로, 두 명의 남녀가 수천회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온통 푸른 옷을 입은 남자와 온통 붉은 옷을 입은 여자. 심지어 그들이 등에 멘 검에 달린 수실 또한 옷과 같은 색들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의 접근을 깨달은 수문 조장은 재빨리 부하들을 단속했다.
“그만! 모두 긴장을 풀지 마라!”
조장의 목소리에 다른 수문 무사들도 곧 다가오는 남녀를 발견했고, 그들은 곧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뚜벅뚜벅!
그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수천회 정문을 향해 주욱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수문 무사들은 가까이 다가온 그들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다는 것을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빨갛고 파란색으로 온통 치장한 데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들이라니.
저들이야말로 말로만 듣던 무림의 괴인들임에 틀림없었다.
조장 무사는 서둘러 한 명을 안으로 보내 보고하도록 하고는 그들을 향해 긴장된 어조로 소리쳤다.
“멈춰라! 이곳은 수천회다! 무슨 용무로 이곳에 왔는가?!”
그러자 잠시 서로 시선을 마주친 남녀가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키하하하하하!”
“오호호호호호!”
그것은 마치 귀신의 웃음소리처럼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온 공간을 가득 채우자, 수문 무사들은 그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귀를 막으며 비틀거려야만 했다.
“크으윽!”
“끄으으윽! 이, 이런!”
그것은 그 웃음소리가 단지 듣기 싫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엔 엄청난 내공이 실려 있었다.
수문 무사인 그들로서는 감당은커녕 측량도 할 수 없는 그런 내공이 말이다.
그러던 한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뚝 웃음을 그쳤다.
그리고 푸른 옷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청홍쌍검이시다! 이곳에 사천 제일의 악인인 막우전이란 놈이 있느냐?!”
카랑카랑한 목소리,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괴이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수문 조장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감히 우리 회주님께 사천 제일의 악인이란 모함을 하다니! 회주님께서는 사천 제일의 협객이시다!”
그러자 코웃음을 친 남자가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를 향해 말했다.
“불쌍한 것, 눈이 있어도 사람을 볼 줄 모르는구나! 너희같이 불쌍한 것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 잔말 말고 비키도록 하여라!”
하지만 수문 조장은 기개 있는 무사였다.
고작 말 한마디에 비킬 것이었다면 검을 잡지도 않았을 터, 이를 악물고는 수문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검을 뽑아라! 우리는 죽음으로서 문을 지킨다!”
그의 기개 있는 외침에 수문 무사들 또한 검을 뽑으며 화답했다.
“예! 조장!”
챠챵! 챵!
그들이 검을 뽑고 두 남녀를 향해 달려들려 할 때였다.
스스슥!
눈 깜빡할 사이, 두 남녀의 신형은 어느새 무사들의 눈앞까지 육박해 있었다.
“!”
동시에 수많은 수영이 그들을 강타했다.
뻐버버버벅!
“크아아악!”
“으아아악!”
“크허어억!”
반응을 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두 남녀의 일장에 강타당한 팔 인의 수문 무사들은 거의 동시에 사방으로 튕겨 나가야만 했다.
쾅! 콰쾅! 쾅!
튕겨진 돌멩이처럼 날아가 정문과 벽에 부딪혔던 무사들이 땅으로 떨어져 벌레처럼 신음하며 꿈틀거렸다.
“끄으윽!”
“으으으.”
놀랍게도 아무도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또한 없었다.
두 남녀는 땅에서 꿈틀거리는 수문 무사들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저 유령처럼 스르륵 이동해 정문으로 다가간 뒤 동시에 손바닥을 갖다 댔을 뿐이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수천회의 정문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앙!
***
안으로 보고하러 들어간 수문 무사가 처음 만나게 된 고수는 정문 바로 뒤 연무장에서 수련 중이던 맹웅검객 차호중이었다.
아직 삼십대의 젊은 나이로 절정 초입의 경지에 도달한 기재인 그는, 수천회에 단 여덟 명뿐인 절정 고수 중 한 명이자 수천회 제일의 무력대인 맹웅대의 대주이기도 했다.
때마침 맹웅대와 함께 연무장에서 훈련 중인 그를 만나게 된 수문 무사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졌다.
수천회 회주 막우전의 아들 막세렬과 더불어 수천회의 미래라고 불리고 있는 그라면, 더군다나 오십 명의 맹웅대와 함께 하는 그라면, 이상한 두 괴인 정도는 전혀 문제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문 무사는 황급히 차호중에게 소리쳤다.
“대주님! 괴상한 자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차호중이 오만한 눈빛으로 수문 무사를 바라봤다.
계속 말하라는 뜻이었다.
“이상하게 생긴 남녀였습니다! 그들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정문 쪽에서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키하하하하하!”
“오호호호호호!”
그러자 고작 두 명이란 말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차호중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범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지는 웃음소리였던 것이다.
차호중은 휘하의 맹웅대원들에게 바로 명령했다.
“동작 그만! 맹웅대는 모두 전투를 준비하라!”
그러자 땀을 뻘뻘 흘리며 무공수련 중이던 맹웅대원들이 바로 행동을 멈추고 한목소리처럼 대답했다.
“예! 대주!”
“예! 대주!”
“예! 대주!”
그러곤 다른 명령도 없이 바로 움직여 차호중을 중심으로 쐐기대형으로 정렬했다.
갑작스러운 명령에도 한 명처럼 목소리를 내는 일치된 반응과 그 후 보여 주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동작들.
무림 어디에서도 돋보일 만한 최정예 무사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정문이 터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앙!
느닷없는 일이었지만 차호중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바로 자신의 대검을 발검하며 외쳤을 뿐이었다.
“발검!”
그러자 맹웅대 오십 명이 한 명처럼 검을 뽑으며 기합을 내질렀다.
“하압!”
챵!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 부서진 정문 뒤로 두 명의 남녀 괴인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각각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온몸을 감싼 창백한 얼굴의 괴인들이었다.
그들은 차호중과 맹웅대원들을 보고는 그 자리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푸른 옷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청홍쌍검께서 오셨다! 사천제일악인 막우전은 어디에 있느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카랑카랑한 목소리, 잠시 인상을 찡그린 차호중이 웅혼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청홍쌍검?! 사천제일악인이라고?! 어딜 감히 듣도 보도 못한 사파의 쓰레기 따위가 감히 회주님의 존함을 입에 담느냐?!”
그러자 두 남녀는 이번에도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키하하하하하!”
“오호호호호호!”
귀신의 귀곡성 같은 소름 끼치는 진동.
그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자. 맹웅대원들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
“으윽?!”
“저런?!”
절정 고수인 차호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마저도 신음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소리 안에 깃든 내공도 내공이지만 두 웃음소리가 공명하며 심혼마저 흔드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음공을 이용한 사공인가?!’
그렇게 생각한 차호중은 더 시간을 끌지 않았다.
바로 맹웅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맹웅대! 모두 공격하라!”
그러자 신음을 흘리던 맹웅대원들은 반사적으로 기합을 지르며 앞으로 돌진했다.
“하아아아압!”
그들의 돌진에는 아주 작은 망설임조차 섞여 있지 않았다.
엄청난 훈련량이 많든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오십 명의 맹웅대원들이 단 두 명을 향해 뛰어드는 모습은 마치 토끼를 잡으러 달려드는 늑대 떼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노도와 같은 기세.
그걸 보며 차호중은 비릿하게 웃음 지었다.
설사 저들이 자신보다 고수라 해도 오십 명의 합공을 당해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호중의 눈은 곧 튀어나올 듯 크게 확대되고 말았다.
“저, 저럴 수가!”
먼저 움직인 것은 붉은 옷의 여인이었다.
유령처럼 움직인 그녀가 선두에서 달려들던 맹웅대원의 검을 피하며 가슴에 일장을 꽂아 넣었다.
퍼엉!
“크헉!”
하지만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여인은 분명히 고수로 보였고, 그녀가 날려 버린 무사는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놀라운 건 그다음부터였다.
앞으로 튀어나왔던 여인은 곧바로 원을 그리며 다시 뒤로 돌아갔다.
그녀의 한 손과 남자의 한 손이 연결된 듯 꼭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녀와 자리를 바꾸듯 이번엔 남자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미 세 개의 검이 쏟아지고 있는 공간으로였다.
슈하악!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들이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그는 그저 날아오는 검들을 향해 회오리처럼 발을 휘돌렸을 뿐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채채챙! 뻐버벅!
회오리처럼 휘돌린 남자의 다리가 검과 맹웅대원들을 동시에 튕겨 냈던 것이었다.
마치 강철로 만든 철퇴와 부딪친 듯 맹웅대원들의 검이 모두 깨져 나가고 있었다.
“크어어억!”
“크아아악!”
“커허어억!”
세 명의 맹웅대원들이 포탄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그러자 그 뒤로 달려오던 맹웅대원들에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차마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동료를 벨 수 없었던 맹웅대원들의 진형에 균열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잠시 멈칫했던 그 뒤의 맹웅대원들을 향해, 어느새 또다시 자리를 바꾼 붉은 옷의 여인이 회오리처럼 날아오며 그들을 향해 발을 구르고 있었다.
빠바바바바박!
“크어어억!”
“크아아악!”
“커허어억!”
여인의 발에 격중당한 맹웅대원들이 또다시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푸른 옷의 남자가 다시 회오리처럼 앞으로 튀어나왔다.
뻐버버버버벅!
그것은 마치 태극을 보는 것만 같았다.
푸른 남자와 붉은 여자가 서로의 한 손을 잡은 채 회전하는 모습이란.
그 듣도 보도 못한 회오리 같은 합공에 맹웅대 오십 명의 진형이 휘말려 완전히 박살 나고 있었다.
차호중은 마음이 급해졌다.
저대로 둘 수는 없었다.
저 상태라면 전멸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맹웅검객 차호중은 황급히 자신의 검에 노란 검강을 덧씌웠다.
그리고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하아아압!”
그에게 맹웅검객이란 별호를 선사해 준 광폭한 대검이 적들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슈하아악!
목표는 두 남녀가 맞잡은 손.
그 연결 부위만 깰 수 있다면 저 합공도 부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이 닿기도 전에 그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바로 손을 놓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음?!”
너무 쉽게 손을 놔 당황했던 차호중에게 푸른 옷의 남자가 날아오고 있었다.
방금의 엄청났던 회전에 가속된 빛살 같은 속도를 유지한 채였다.
갑작스러운 사태였지만 절정의 무인인 차호중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검첨의 방향을 틀어 날아오는 남자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을 뿐이었다.
푸욱!
그의 대검이 남자의 가슴을 꿰뚫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남자의 몸이 한순간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가볍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말이다.
자신의 검을 부드럽게 흘리며 접근한 남자의 신형에, 경악한 차호중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뭣?!”
다음 순간, 차호중은 턱에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덜컥!
그리고 그의 의식은 바로 사라져 버렸다.
장저로 턱을 올려친 남자의 일격 때문이었다.
사천성 남부의 패자 수천회의 제 일 타격대인 맹웅대가 단 두 명에 의해 와해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