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광검릉-1
수천회는 지금 완전히 벌집을 쑤신 듯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러니 가장 먼저 내부 정비부터 했어야 했지만, 마음이 조급했던 수천회주 막우전은 부하들로 하여금 무리하게 괴인들을 추격하도록 명령하고 말았다.
그래서 현재 수천회의 경계 태세는 완전히 구멍이 뻥 뚫려 버린 상태.
선우진은 바로 그 구멍 속으로 그림자가 되어 다시 침투했다.
그것은 역대 선우진이 했던 것 중에서도 가장 편안한 침투였다.
귀주성의 중소세력인 나가장을 침투할 때도 이렇게까지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당 소저를 함께 데려왔어도 상관없을 뻔했군.’
여유 있게 웃음 지은 선우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죄인들을 가둬 놓는 뇌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원래 목적이었던 영남검문의 도문승을 구해 낼 차례였다.
‘겸사겸사 정보도 좀 얻고 말이지.’
도문승을 구해 낸 후 막우전의 비밀에 관한 것도 캐볼 생각이었다.
아직 피해 정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으니 한두 명 더 사라져도 모르지 않겠는가.
잠시 후, 선우진은 뇌옥의 야외 감방 안에서 도문승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의외로 멀쩡한 모습으로 건초 더미 위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수심에 잠겨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지만, 생각 외로 몸에는 전혀 상한 곳이 없어 보였다.
선우진은 근처의 그림자에 은신한 채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 도 형. 소리 내지 말고 들으시오.
그러자 발을 까닥거리고 있던 도문승의 움직임이 깜짝 놀라 그대로 정지했다.
- 나는 아까 오전에 도 형이 잡혀갈 때 도우려 했던 사람이오. 도 형의 억울함을 알았기에 구해 주러 왔소.
전음을 들은 도문승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의 눈치를 스윽 살피더니만 바깥쪽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
‘응?’
그 모습을 본 선우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저 신호는 자신을 구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장 사형당할 사람이고 그래서 도주까지 했던 사람이 구해 주는 것을 거부하다니,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선우진은 아무래도 그와 대화를 좀 나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신한 채 은밀히 뇌옥의 주변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뇌옥을 지키던 간수는 물론 인근 뇌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수혈을 짚어 버릴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말이다.
도문승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주변인 모두의 수혈을 짚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선우진을 바라보며 멍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은… 혹시 암혈향이십니까?”
암혈향은 구유음마 지기음과 더불어 천하삼십육성으로 칭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수였다.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선우진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취미로 은신술을 익혔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왜 도망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사형당할 처지였던 거 아니었습니까?”
그러자 도문승이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먼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일단 고작 한번 봤을 뿐인 저를 이렇게 구하러 와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가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원래 자신도 사형을 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잡혀 와서 들은 얘기는 그와 좀 달랐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선우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얘기가 달랐다고요?”
“예, 그들은 제게 어느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꺼내 오기만 한다면 사형도 시키지 않고 집으로 바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거부한다면 영남검문의 식구들 모두를, 제 도주를 도운 공범으로 처형해 버리겠다고 하더군요.”
굴속에 들어가 원하는 물건을 꺼내 온다라….
그 얘기를 들은 선우진의 눈이 번뜩였다.
어쩐지 이게 바로 막우전의 비밀과 관련된 얘기일 것 같았다.
북쪽에 있다는 수많은 무인들을 죽게 한 비밀, 그리고 어쩌면 그를 몇 년 후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으로 만들어 준 비밀일 수도 있고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순간 머릿속으로 계획을 짰던 선우진은 그것을 말하기에 앞서 일단 도문승에게 다시 물었다.
“그들의 말을 믿는 겁니까? 원하는 것을 가져오면 살려서 다시 돌려보내 주겠다는 그 말을 말입니다.”
그러자 도문승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 말은 만약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사문의 식구들까지 처형해 버리겠다는 그들의 협박입니다.”
선우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결국 사문 식구들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역시 도문승은 처음 본 바와 같이 너무나도 심성이 바른 사람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결정은 지금의 선우진 입장에서 고마운 것이기도 했다.
선우진은 이제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문승에게 말했다.
“그렇게 결정하셨다면 제가 제안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도문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안이라고요?”
“예, 아마도 도 형을 살릴 수 있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죽지 않게 만들 수 있을 제안일 겁니다.”
그 말에 이어서 들려 준 선우진의 얘기에 도문승의 눈빛은 점점 더 진중해지고 있었다.
***
수천회주 등천검객 막우전은 늦은 밤까지 청홍쌍검이란 자들을 추적하기 위해 부하들을 닦달했다.
하지만 사냥개까지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의 흔적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완전히 놓쳐 버린 모양이었다.
“으드득!”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이를 갈던 막우전은, 문득 푸른 옷의 괴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많은 목숨을 네 사욕을 위해 희생시켜 놓고도 사천제일악인임을 부정할 셈이냐? 역시 뻔뻔하기 그지없구나.’
그 기억이 떠오르자 막우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고민하던 막우전의 뇌리에 문득 무언가 스쳐 갔다.
그것은 바로 뇌옥에 갇혀 있을 도문승에 대한 생각이었다.
‘설마?!’
막우전은 퍼뜩 몸을 돌려 수천회의 뇌옥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농락한 자들이라면 그에 관한 것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설마, 설마.’
막우전의 심장이 미친 듯 쿵쾅거렸다.
도문승 그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는 막우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만약 놈들이 그에 대한 것까지 알고 있다면, 그래서 자신을 끌어내고 그사이 도문승을 빼돌리기라도 했다면 그보다 더 큰 낭패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황급히 달려간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곤하게 잠들어 있는 간수들과 죄수들, 그리고 역시 자신의 감방 안에서 잠들어 있는 도문승의 모습이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던 막우전은 잠시 그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물론 주변도 경계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는 간수들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긴 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화를 풀었다간 손을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부하들을 죽이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뇌옥을 나선 막우전은 아직도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대체 언제 이렇게까지….’
그는 도무지 끓어오르는 자신의 심화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가슴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이 한순간 자신의 이성을 모두 삼켜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를 악물고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강하게 때렸다.
짜악!
‘안 돼. 정신 차려라, 막우전!’
막우전은 애써 심화에 휩쓸리려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가능했다.
“휴우우.”
깊게 심호흡을 한 막우전은 이를 갈며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다 광검릉 때문이었다.
막우전 그가 심마에 시달리게 된 것도.
수천회의 미래라고 불리던 그의 아들 막세렬이 죽은 것도, 모두 다 말이다.
그러니 이 저주받을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막우전은 반드시 광검릉의 봉인을 깨야만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우전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 도문승이 잠들어 있을 뇌옥 쪽을 바라보았다.
이젠 도문승, 그자만이 막우전에게 남은 희망의 전부였다.
이 근방에서 가장 정인군자라고 소문난 그마저 광검릉의 봉인을 깨지 못한다면, 남은 방법은 이제 통째로 산을 무너뜨리는 것밖엔 없을 테니까.
***
다음날 도문승은 아침 일찍부터 무사들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일어나라, 도문승. 이동할 시간이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어슴푸레, 밝아 오는 동녘 하늘을 힐끗 본 도문승은 졸린 눈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벌써 말이오?”
그러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무사 한 명이 벌컥 화를 냈다.
“나오라면 나올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무사가 그를 만류했다.
“어이, 참아. 정중하게 데려오라고 하셨잖아.”
“흥! 정중하게는 무슨!”
도문승은 그들의 안색을 예리하게 살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도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는 것 같았다.
뇌옥 밖에는 이미 여러 필의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엔 수천회주 막우전이 타고 있었다.
피곤한 눈빛의 그가 도문승을 향해 말했다.
“어서 오게, 도 소협. 피곤할 텐데 일찍부터 불러내 미안하네. 우리에게 그리 여유가 없군.”
자신을 잡아 오고 영남검문 식구들의 목숨으로 협박을 하고 있는 그에게 예의를 차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도문승은 그저 말없이 고개만 꾸벅했다.
그 태도에 막우전은 눈을 꿈틀했지만, 달리 더 얘기를 늘리지는 않았다.
도문승과 무사들은 곧 수천회를 출발했다.
사주를 경계하며 주변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밀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보안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구속당한 채 저들이 끄는 말 위에서 몸을 맡기고 있던 도문승은, 후방을 한번 힐끗 바라본 후 그냥 천천히 눈을 감아 버렸다.
마치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코로는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지만, 그의 몸에는 어제 선우진이 묻히고 간 추종향이 묻어 있는 상태였다.
사천당문의 추종향이기에 무색무취이며 자신들 이외엔 누구도 알아챌 수 없을 거라고 장담했었던.
그러니 자신의 뒤로는 아마도 그가 쫓아오고 있을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인연만으로 수천회의 뇌옥까지 자신을 구하러 와 줬던 그 협사가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이, 새삼 도문승의 마음을 안정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득 수천회주 막우전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째 자네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군.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하지도 않은가?”
그러자 천천히 눈을 뜬 도문승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대답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 회주께서 영남검문의 식구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실 것인지에 대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막우전은 잠시 도문승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결국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과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군. 자네라면 정말 성공할지도 모르겠어.”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문승에게 말했다.
“내 명예를, 아니 목숨을 걸고 분명히 약속하지. 자네가 우리에게 협조해 준다면 영남검문에게는 털끝만큼의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걸세. 믿어도 좋네.”
그러자 눈빛이 약간 풀어진 도문승이 다시 물었다.
“그럼 소생은 어떻습니까? 소생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막우전은 말문이 막힌 듯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난처한 눈빛으로 도문승을 바라봤을 뿐이었다.
도문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절대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절망적인 답이었지만, 의외로 도문승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그랬군요. 소생이 살아날 길은 원래 없었나 봅니다.”
막우전은 남의 얘기를 하는 듯 담담한 그의 모습에 결국 감탄하고 말았다.
과연 도문승, 그는 사천 남부 최고의 의인이라는 얘기를 들을 만한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정말 이자가 그 저주받을 광검릉의 봉인을 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막우전이 잠깐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도문승이 다시 막우전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제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설명해 주실 수는 있겠습니까? 죽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왜 죽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싶군요.”
그러자 잠시 침묵했던 막우전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가 이미 상황을 받아들였다면 굳이 숨길 이유가 없겠지.”
그리고 그가 꺼낸 얘기는 도문승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었다.
“자네 혹시 오십 년 전쯤 무림의 절대자 중 한 명이었던 광협검괴 정명강에 대해 알고 있나?”
“…광협검괴 정명강이라고요?”
무림은 대략 이삼십 년 주기로 절대자들이 바뀌어 왔다. 그러니 전대의 절대자라고 해도 백 년 전의 뇌신, 검신처럼 전설적인 이름이 아니라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도문승은 한참 기억 속을 뒤진 후에야 그의 이름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아, 들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자신의 그날 기분에 따라 살인도 하고 협행도 했다는 제멋대로의 괴인을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도문승의 말에 막우전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맞네. 그렇게 알려져 있지. 그 제멋대로의 성품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원한을 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 뛰어난 무위 덕분에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는 대단한 검객이라네. 그래서 보통 광협검괴라는 별호보단 광검이라고 불리곤 했다지.”
“그렇군요. 그런데 그의 얘기는 갑자기 왜…?”
그러자 막우전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가 갑자기 장난감을 자랑하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되어 도문승에게 대답했다.
“그 광협검괴의 무덤을 우리가 발견했다네. 아마도 그의 유진이 들어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무덤을 말일세.”
“…예?!”
막우전의 급격한 감정 변화가 심상치 않기는 했지만, 그가 말한 내용에 이번만큼은 도문승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전대 절대자의 유진이 있는 무덤을 발견하다니, 그것은 무림인들에게 있어 목숨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은 기연이었던 것이다.
막우전은 깜짝 놀라는 도문승의 모습이 뿌듯한 듯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바로 그의 무덤이 자네가 들어가야 할 곳이라네.”
“…제가 말입니까?”
이어진 막우전의 설명은 그랬다.
그 무덤의 입구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하 동굴이었는데,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마다 제정신을 잃고는 미쳐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동굴 입구에 써 있기는 했다네. 정심을 지닌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일세.”
그리고 그것이 인근에서 가장 의인이라는 도문승을 억지로 데려와야만 하는 이유였다.
그러자 도문승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잘 이해가 안 가는군요. 무슨 이유에서든 마음의 평정을 잃고 미쳐 버리는 것이 문제라면 고수들이 들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회주님과 같은 고수들이 말입니다.”
하지만 막우전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뿌듯한 웃음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역시 너무 급격한 감정 변화였다.
“우리라고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겠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었다네. 그래서… 처음엔 내 아들인 세렬이가 들어갔었지. 절정의 무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일세.”
그렇게 말하는 막우전의 얼굴엔 짙은 회한이 서려 있었다.
도문승은 그의 표정을 보고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말을 걸지 않고 그를 지켜봤다.
그러자 잠시 침묵에 잠겨 있던 막우전이 다시 무거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만했던 게지. 전대라곤 하나 절대자가 설치해 놓은 안배를 초절정의 경지도 밟지 못한 우리가 무시해 버리다니 말일세.”
수천회의 희망이라고까지 불렸던 삼십 대의 젊은 절정고수 막세렬은, 그렇게 자신 있게 동굴로 들어갔다가 광인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사태가 끝난 것도 아니었다.
“냉정했어야 했는데, 세렬이가 광인이 된 것을 눈으로 보고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네. 그래서 내가 들어가려고 했네. 하지만 그때 부회주인 가유악이 나를 만류하고는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갔지. 그리고… 그마저 미쳐 버리고 말았다네.”
그 모든 일이 전대 절대자의 유진을 발견했다고 기뻐하고 있던 막우전에게 있어 정말 악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악몽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광인이 된 가유악이 막우전의 아들인 막세렬을 처참하게 참살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도 동굴 입구 근처였기에 막우전이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네. 당시의 나는 도저히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 역시 바로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지.”
하지만, 동굴에 한 발짝을 들어갔던 순간 막우전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충동이 자신의 심혼을 적셔 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막우전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다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자신마저 같은 꼴이 될 것이라는 게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말을 마친 막우전의 눈은 다시 그때의 광경을 바라보듯 초점 없이 허공에 못 박혀 있었다.
그러자 말없이 막우전의 얘기를 듣고 있던 도문승이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광검이라고 하더니만, 너무나도 악의로 가득 찬 함정이로군요. 그곳에 그의 유진이 확실히 있기는 한 겁니까?”
그러자 막우전이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지. 다만…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나?”
도문승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당신이 포기할 수 없는데 왜 자신을 끌어들였냐는 말도, 그 일에 왜 자신이 목숨을 걸어야 하냐는 말도 말이다.
아들까지 잃어버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는 막우전의 눈 속에서, 숨길 수 없는 탐욕의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문승은 그것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
도문승 일행들이 한참을 말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도문승은 드디어 문제의 광검릉이란 곳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은 깊은 숲속 한가운데에 위치한 산 아래의 외딴 동굴이었다.
막우전은 수많은 무사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도문승에게 말했다.
“저곳이 바로 내가 말한 그곳이라네. 자네가 들어가야 할 곳이지. 하지만 이제 곧 어두워질 테니 오늘은 쉬고 내일 들어가도록 하게.”
마치 선심을 베풀어 주는 듯 그렇게 말하는 막우전을 힐끗 보고는, 도문승은 다시 동굴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지옥의 입구처럼 까맣게 보이는 동굴 안쪽으로 누군가의 붉은 안광 두 개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