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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19화 (106/359)

119화 광협검괴

석벽 문틈으로 들어간 선우진은 일순간 세상이 뒤바뀌는 듯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뭔가 다른 세상에 진입한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바로 주변을 둘러본 선우진은 그것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그의 손을 잡고 들어온 당여은 또한 마찬가지였다.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넋 나간 듯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그들의 주변에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끝도 없이 펼쳐진 커다란 숲이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도 어떻게든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동굴 안쪽에 넓은 공터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석벽의 안쪽을 통과해 들어왔건만, 두 사람은 지금 회색빛 하늘이 펼쳐진 숲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것이다.

선우진이 중얼거렸다.

“이건 불가능해.”

만약 그들이 들어간 석문의 방향이 원형 통로의 바깥쪽이었다면, 이곳이 동굴의 반대편 숲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석문이 나 있던 방향은 원형 통로의 안쪽, 그러니까 산의 더 중심부 쪽이었다.

그러니 그 안으로 들어왔을 때 하늘이 보이는 숲이 펼쳐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그들의 뒤에서 또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그것도 두 명이었다.

“이노옴!”

첫 번째는 바로 막우전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선우진은 황급히 당여은을 끌어당기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들어오자마자 그들을 발견한 막우전이 사나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청홍쌍검! 드디어 네놈들을 잡았구나!”

그리고 그의 뒤로 바로 가유악이 뒤쫓아 들어왔다.

그러곤 막우전을 향해 소리쳤다.

“회주!”

그러자 막우전 또한 그를 보며 반갑게 소리쳤다.

“오, 부회주! 마침 잘 왔네! 저놈들을 죽여야 하네!”

그 모습을 본 선우진의 눈빛이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들은 방금 전까지 광증에 빠져 짐승과도 같이 행동했던 자들이었는데….

그랬던 두 사람이 갑자기 다시 제정신을 차리게 됐던 것이다.

‘혹시 이 안으로 들어오면 광증이 풀리는 거였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이상했다.

선우진은 지금도 자신의 내부에서 대연정심결의 벽에 막혀 침투하지 못하고 있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 느낌은 아까와 비슷한 정도, 아니, 정확히는 아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그러니 이곳에 왔다고 광증이 나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 보이는 막우전과 가유악의 눈도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붉은 기운을 띄고 있지 않은가.

광증에서 아직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막우전과 가유악이 살기를 뿜어내며 금방이라도 덮치려 하고 있었으니까.

‘칫!’

한번 몸에 기운을 돌려 상태를 확인해 본 선우진은 당여은에게 전음을 보냈다.

- 소저, 일단 싸워야 합니다. 싸우다 기회를 봐서 도주해야 해요.

- 네, 알겠어요!

확인해본 결과 내상은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았다.

게다가 저들의 광증이 나았다면 무위 또한 원래대로 돌아왔을 터, 그렇다면 아예 승산이 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막우전과 가유악이 먼저 달려들었다.

“어디 한번 또 도망쳐 보려무나! 하아아압!”

“죽어랏!”

화아악!

덮쳐오는 막우전과 가유악을 날카롭게 훑어보며 선우진은 바로 대응 방법을 정했다.

‘일단 천풍화엽으로 혼란시킨 후 환검경에 이은 공즉시색으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큰 충돌음과 함께 선우진을 향해 덮쳐 오던 두 사람이 뒤로 튕겨 나갔다.

갑자기 나타난 무언가에 가격당했기 때문이었다.

“크윽!”

“뭐, 뭐냐?!”

그들이 튕겨 나가 비틀거리는 사이 선우진과 당여은은, 방금 나타나 그들을 튕겨 낸 존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공포감이 서린 눈빛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뒤로 날아갔던 막우전과 가유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간신히 균형을 잡고 땅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분노한 눈빛으로 그 존재를 바라보는 순간, 그들 역시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누가 감히 본좌의 터에서 행패를 부리는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마치 심혼을 울리는 듯한 힘이 당긴 목소리였다.

막우전과 가유악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의 중년인이었다.

그저 평범한 체격에 흔한 회색 무복을 입은 중년인.

하지만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그가 평범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꿀꺽!

선우진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눈앞에 구름 위로 뻗어 올라간 산악이 서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듯 끝이 가늠되지 않는 압도적인 기세의 산악이.

그 기세는 이전에 구름 위에 있다고 느껴졌던 여령색마 손은상이나 사혜혈마 전무광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라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칼날처럼 스산하게 뻗어 나오고 있는 살기는 그들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는 마치, 인세로 나온 마왕과도 같았다.

몸을 짓누르는 살기를 간신히 견뎌 내며 선우진이 힘겹게 물었다.

“고인께서는… 누구십니까?”

그러자 마왕이 눈을 돌려 선우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본좌가 바로 이곳을 만든 정명강이다.”

“!”

정명강?

뭐라고?!

그 이름이 누구를 뜻하는지 깨달은 순간, 네 사람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정명강은 최소한 삼, 사십 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광협괴검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있었다니….

물론 저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뿜어내고 있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사실이라고.

막우전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서, 선배님께서 이렇게 건재하셨군요. 그, 그것도 모르고 후배들이 그만….”

그러자 정명강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한번 젓고는 말했다.

“아니, 본좌는 이미 죽었다.”

“…예?”

그것은 너무나도 이상한 대답이었다.

그들의 앞에 멀쩡히 살아 있는 그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자신은 죽었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모두는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선우진이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선배님, 지금 뭐라고…?”

그러자 그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로 다시 대답했다.

“본좌는 이미 죽었다. 이곳은 내가 죽기 전에 만들어 놓은 꿈과 현실의 중간 쯤 되는 공간이지. 그래서 내가 이곳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아아!”

그제야 선우진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왔는데 하늘이 뚫려 있는 숲이 나왔다던가, 몇십 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졌던 광검이 다시 등장했다던가 하는 상황도 말이다.

막우전 또한 그제야 약간 안심한 듯한 표정이 되어 정명강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선배님께서는 꿈속의 존재시라는 얘기군요. 현실이 아닌.”

그는 마왕과도 같은 살기와 존재감을 뿜어내는 정명강이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척 안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선우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정명강의 앞에 있는 느낌은. 마치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밀쳐지기 일보 직전인 듯 아슬아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도 자신의 목숨 따위는 개미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가 현실이 아니라는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꿈속의 존재냐는 막우전의 질문에 정명강은 또다시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아니, 꿈속은 아니다. 정확히는 꿈과 현실의 중간쯤이지. 그렇기에 내가 이곳에서 너희를 죽이면 현실에서도 죽게 되는 것이다.”

“…예?”

그의 말에 네 사람은 순간 얼어붙었다.

이곳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게 된다는 그의 말이, 마치 여기서 죽이겠다는 선언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원래도 엄청났던 광검의 살기가 폭풍처럼 광폭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아악!

그 갑작스러운 기파에 네 사람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큭!”

“아윽!”

“끄어억!”

“커헉!”

그들은 방금 전까지 느꼈던 살기가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기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광검이 진심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순간, 무형의 살기가 유형으로 변해 네 사람을 공중에 띄운 채 목을 조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끄으으윽!”

정명광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인데 네 사람은 공중에서 벌레처럼 버둥거리며 죽어 가고 있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압박감.

그것은 처음 느껴보는 처절한 무력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숨을 쉬지 못한 그들의 눈앞이 노랗게 됐을 때쯤, 정명광의 살기는 다시 무형의 것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네 사람은 그대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털썩!

“컥! 컥!”

“콜록! 콜록!”

“허억, 허억!”

거의 저승의 문 앞까지 갔다 온 기분이었다.

네 사람은 한참을 콜록거리며 호흡을 골라야 했다.

그때 정명광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아직도 여기가 꿈속 같은가?”

그러자 화들짝 놀란 막우전이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광검 정명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제대로 얘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지. 너희는 내 월하환검무를 전수받기 위한 일 단계 광혼관을 통과한 자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인 이인관으로 들어왔지. 혹시 이중 내 무공에는 관심이 없는데 실수로 잘못 들어온 자가 있는가?”

그의 질문에 네 사람은 슬쩍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막우전이야 당연히 광검의 유진을 얻고 싶었고, 선우진은 그가 그것을 얻도록 놔둘 수 없었다.

그러니 누구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물론 막우전은 선우진 쪽이 중간에 무단으로 끼어든 침입자임을 강조하고 싶었고, 선우진은 막우전과 가유악이 광혼관이란 곳을 제대로 통과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

둘 다 이성을 잃고 미쳤던 자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양쪽의 누구도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광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언제 돌변해 자신들을 죽이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양쪽이 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정명광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좋다. 일관을 통과한 너희 양쪽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겠다. 하지만 이관을 통과할 수 있는 자들은 단 두 명뿐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너희 중 단 두 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선우진과 당여은, 막우전과 가유악은 긴장된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네 명 중 살아남는 사람은 단 두 명, 그들 중 한쪽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관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대방보다 먼저 그것을 통과해야만 했다.

광검이 다시 말했다.

“그럼 이제 각자의 이관으로 이동시키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가 손가락을 딱! 튕겼을 때, 선우진과 당여은은 한순간 다시 공간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곳은 방금 전까지의 숲속이 아닌 시골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였다.

붉은 노을이 지고 있는 아늑한 산골 마을.

그곳이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운 언덕 위에 선우진과 당여은, 그리고 광검 정명광이 서 있었다.

당여은이 작게 속삭였다.

“막우전과 가유악의 모습이 없어졌어요.”

선우진도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 서로 떨어진 상태로 각각 이관을 치르게 되는 모양이군요.”

그때 정명광이 마을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내가 살았던 마을이다. 또한 내 가장 큰 후회가 남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몸에서는 폭풍 같은 살기가 점점 더 거세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일부러 해를 끼치려 하는 건 아닌 것 같았음에도 제대로 서 있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크윽!”

“흡!”

선우진과 막여은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상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광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저곳에 살았을 때 내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무공을 익혀왔던 친구가 둘 있었다. 그들은 내 형제와도 같은 존재였고, 그래서 내 모든 걸 나눠 주곤 했었지.”

선우진은 문득 묘한 감상이 들었다.

지옥의 마왕처럼 보이는 그에게도 그런 시절과 친구가 있었다는 게 뭔가 새삼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살기는 점점 더 진득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연히 월하환검무를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녀석들과 그것을 공유하고자 했다.”

비급을 친우들과 공유하려 했다.

선우진은 어쩐지 그다음에 나올 얘기가 무엇인지를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하는 정명광이 왜 저렇게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의 얘기가 계속됐다.

“하지만 녀석 중 한 명은 그것을 독차지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를 기습해 죽이려고 했지.”

역시 예상한 대로의 얘기였다.

선우진과 당여은은 깊은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놈은 실패했다. 이미 월야환검무의 일식을 익혔던 내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이었지. 나는 그때 놈을 죽였어야 했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마음이 약해 망설이고 말았지. 그러자 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른 친구에게 살수를 쓰고는 도주하고 말았다. 나는 다친 친구를 살리고자 놈을 쫓지 못했지.”

이제 그의 살기는 완전한 유형의 것으로 변해 몸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온몸이 찌그러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끄윽!”

“아으윽!”

하지만 신음 소리를 내는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정명광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친구를 간신히 치료하고 마을로 돌아왔을 땐 놈이 이미 마을을 저렇게 만든 상태였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평화로웠던 마을이 한순간 불길로 뒤덮였다.

화르르륵!

방금 전까지 그림에서나 나올 것 같던 아름다운 마을이, 이제 온통 화마에 뒤덮인 채 무너져 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불길에 갇힌 채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며 아우성쳤다.

두 사람이 그 광경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때, 광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 추격을 막기 위해서였다. 놈은 단지 내 추격이 두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살아왔던 마을을 저렇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놈은 내 추격을 막는 데 성공했다. 나는 멍청하게도 마을 사람들을 구하느라 놈을 놓치고 말았으니까.”

지금까지의 그는 마왕 같은 살기를 뿜어내기는 했지만, 적어도 말투나 표정만큼은 항상 동상을 보듯 무표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악귀 같이 일그러진 표정과 격앙된 목소리에서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분노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 분노와 살기가 유형화해 선우진과 당여은을 조여왔다. 그러자 그들은 온몸이 부스러져 버릴 것 같은 고통에 울부짖어야 했다.

“끄으으윽!”

“아아아악!”

하지만 정명광은 계속해서 격앙된 어조로 말을 토해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 놈이 낸 소문이 수없이 많은 무림인들을 끌어들였다! 그래서 결국 내가 살렸던 마을 사람들도 모두 살해당하고 말았지! 내 부모, 내 아내와 내 자식까지도! 그 핏값을 모두 되갚기까지 무려 십 년이란 시간을 인내와 증오 속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폭풍이 지나간 듯 그의 살기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선우진과 당여은은 이제야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후우우.”

“하아, 하아.”

그러자 이제 아까와 같이 무표정해진 얼굴의 광검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이것이 이관이다. 너희는 어떻게 할 것이냐? 마을을 구할 것이냐, 아니면 놈을 잡을 것이냐? 내 평생의 후회를 풀어내 보도록 해라.”

말을 마친 광검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선우진과 당여은, 두 사람과 언덕 밑에서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마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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