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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20화 (107/359)

120화 선택-1

광검이 사라지자 당여은이 먼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 빨리 움직여야겠어요. 막우전이 먼저 이관을 통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통과해야 해요.”

선우진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죠. 일단 움직이죠.”

두 사람은 즉시 불타고 있는 마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람들을 구하든, 광검의 원수라는 자를 추격하든 어쨌든 마을까지는 가야만 했다.

그때 당여은이 바람처럼 달리며 물었다.

“그자를 최대한 빨리 잡는 게 이관을 통과하는 방법이겠죠? 아까 광검도 과거에 마을 사람들을 구하느라 그자를 놓쳤던 자신을 바보 같다고 했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선우진은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지금까지 봐온 광검의 성향, 그리고 아까 했던 말을 종합해 봤을 때 당여은의 말이 분명 맞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선우진은 차마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저 침중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글쎄요.”

그러자 당여은이 달리던 속도마저 줄이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마을 사람들을 먼저 구할 생각이신가요?”

그 말에 선우진은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찌 해야 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당여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선우 공자, 공자의 협심은 알지만 이번엔 저희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요. 게다가 저희가 실패한다면, 저희만 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막우전 같은 악인에게 광검의 비급을 넘기게 될지도 모르구요. 그러니 이번만큼은 급박한 일을 우선시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게다가… 저 마을의 사람들은 진짜 사람들도 아닌 거잖아요.”

그랬다.

그녀의 말은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맞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정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가슴이 개운해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이게 자신의 예감이 발하는 경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저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선우진이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을 때, 두 사람은 드디어 불타고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그러자 사방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이야!”

“살려 주세요!”

“어머니! 도와주세요! 어머니가 집 안에서!”

“아가야! 아가야!”

마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누구 하나 위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때 당여은이 문득 마을 반대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길 봐요! 저자인 것 같아요!”

당여은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삼십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두 사람을 목격하고는 바로 도주해 버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들을 보고 바로 도주하는 무인.

아마도 광검이 말했던 그자가 분명한 것 같았다.

게다가 그의 경지는 결코 낮지 않아 보였다.

꽤 빠른 속도, 신법을 봤을 때 최소한 절정의 경지에는 이른 무인으로 보였다.

지금 바로 쫓지 않으면 놓칠 것이 분명했다.

당여은이 다급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며 외쳤다.

“공자!”

그러자 선우진은 그자와 마을의 풍경을 빠르게 눈에 담고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당여은에게 말했다.

“당 소저, 이 관문이 이인관인건 분명 두 사람이어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그게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구요. 그러니 당 소저가 먼저 놈을 좀 추격해 주세요. 저는 사람들을 구한 후 최대한 빨리 따라가겠습니다.”

말하고 있는 선우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시간이 촉박하고, 마을 사람들이 진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차마 그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내키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음이 육감이 내린 경고일 수도 있고, 인의가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검성의 이상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유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으니까.

“공자….”

당여은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잠시 선우진을 바라봤다.

선우진은 그녀의 눈빛에서 묻어나는 실망의 감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빨리 오셔야 해요.”

“그래요, 소저. 상대하기 힘들다면 발걸음만 늦춰 주셔도 됩니다. 최대한 빨리 갈 테니.”

당여은은 급히 몸을 돌려 놈을 쫓아갔다.

하지만 바로 사람들을 구하러 갈 생각이었던 선우진은 문득 제자리에 굳은 채 바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설마?’

그것은 방금 그녀의 눈에서 봤던 것 때문이었다.

선우진은 경악한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선우진이 방금 목격한 것은 붉은 기운이었다.

당여은의 눈에 살짝 맺혀 있던 붉은 기운.

아까 막우전이나 가유악의 눈에 맺혀 있던 것과도 비슷한 붉은 기운이 당여은의 눈에도 맺혀 있었던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때 다시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줘요! 제발 도와주세요!”

“아!”

퍼뜩 정신을 차린 선우진은 이를 악물고는 일단 도움을 청하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몸을 날리는 와중에도 선우진의 마음은 성난 파도처럼 혼란스럽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착각이겠지. 착각일 거야.’

문득 당여은의 마음이 무척 여리다는 것, 그리고 예전 마유겸의 암시법에도 쉽게 넘어갔었다는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애써 무시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를 믿고 싶었다.

선우진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불길에 갇힌 노인들과 아이들을 구해 냈고, 검기를 날려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뚫었다.

하지만 마을은 생각보다 넓었고 도움이 필요한 곳은 사방에 퍼져 있었다.

그래서 선우진의 뛰어난 신법을 이용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그럼에도 모두를 다 구해 낼 수는 없었다.

아까 선우진이 당여은을 보내고 남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이 적을 추격하고 당여은에게 구조를 부탁할까도 잠시 고민했었지만, 그녀의 신법으론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선우진으로서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구한 후엔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살았다!”

“고맙습니다, 대협! 정말 고맙습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선우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그는 그 인사를 받고 있을 정신이 없었다.

바로 당여은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한 상태였다.

그나마 내상의 여파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당 소저, 제발!’

선우진은 그녀가 무사하기만을 마음속으로 빌며 바람처럼 내달렸다.

그러길 얼마 후, 선우진은 드디어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 소저!’

하지만 그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그녀는 악전고투를 벌인 듯 엉망이 된 행색으로 구석까지 몰려 있는 상태였다.

놈과 싸우다 패배했던 것인지 검마저 멀리 떨어뜨린 상태.

그런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눈 채 족제비같이 생긴 놈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으흐흐흐! 이렇게 예쁜 년은 처음 보는구나.”

그러곤 검을 밑으로 살짝 그어 당여은의 가슴 앞섶을 베었다.

샤악!

그러자 그녀의 옷깃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가슴을 가린 옷깃이 흘러내렸다.

“꺄악!”

당여은은 비명을 지르며 양팔로 옷이 흘러내리는 것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놈이 탐욕스럽게 웃으며 침을 삼켰다.

“으흐흐흐흐! 비명 소리도 짜릿하구나.”

남자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당여은의 온몸을 훑어봤고, 그녀의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어려 있었다.

그러자 그걸 본 선우진의 눈빛이 폭발했다.

“이놈!”

파앙!

원래도 빨랐던 속도가 한 층 더 가속됐다.

이제까지 그가 냈던 속도 중 가장 빠른 속도, 실로 섬전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러자 고개를 돌려 선우진을 발견한 남자가 깜짝 놀라 황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가 방어 자세를 취한 것과 선우진이 그를 덮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개자식!”

콰앙!

벼락같이 휘두른 강격.

놈이 뒤로 튕겨 났다.

“크윽!”

평상시의 선우진과 전혀 다른, 오직 속도와 힘만을 앞세운 일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이어졌다.

그림자처럼 놈을 쫓아가서는 다시 벼락처럼 검을 내리찍었다.

“하아압!”

콰아앙!

“으윽, 이놈이!”

그리고 한 번 더.

슈하악!

같은 방식의 강격이 세 번까지 이어지자. 놈은 이제 눈을 번뜩이며 신속하게 검을 뿌렸다.

단순한 선우진의 검을 쳐 흘려 내고 반격을 가하려는 수법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선우진의 검이 환상처럼 분열했다.

선우십삼검 제 십삼 초.

환검경.

쏴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수백 개의 검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쌌다.

그로선 듣도 보도 못한 환검이었다.

그러자 잠시 당황했던 놈은 이를 악물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어차피 환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잔재주를!”

하지만 그 순간 주변을 가득 채웠던 환검들이 실체화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놈을 향해 쏟아졌다.

선우십삼검 제 십오초.

공즉시색.

슈하아아악!

푸푸푸푸푸푹!

“크허억!”

수백 개의 검기가 그를 관통했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이 꿰뚫린 모습.

그 상태로 살아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한번 바라보고는, 온몸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며 천천히 무너져 버렸다.

푸화악!

털썩!

그의 경지는 대략 내공 팔십 년 정도였던 것 같았다.

현재의 선우진과 비슷한 경지인 무인.

그런 무인을 이렇게 순식간에 참살한 것은 무척 고무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를 보지 않았다.

바로 당여은에게로 달려갔다.

“당 소저! 괜찮습니까?!”

다행히 당여은은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갈라진 앞섶을 양팔로 감싸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워 보였다.

당여은은 선우진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조용히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조금… 늦으셨네요.”

그녀는 무척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선우진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그녀를 혼자 보낸 것도 자신의 선택이었고, 늦어져 그녀에게 이런 수치를 당하게 한 것도 결국 자신의 선택 때문이었으니까.

게다가, 선우진은 지금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 속에서 확실하게 보이고 있는 미약한 붉은 기운을.

아까 본 것이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 소저….”

선우진은 눈앞이 막막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저 붉은 기운을 처리해야만 하는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 소저, 대연정심결을….”

하지만 그때였다.

갑자기 환경이 다시 뒤바뀌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다시 아까의 숲이었다.

처음 광검을 만났던 곳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서 다시 광검이 압도적인 살기를 뿜어내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우진과 당여은은 긴장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광검의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은 과연 이관을 통과한 것일까?

막우전보다 먼저?

두 사람이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불안한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이관을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후아.”

“휴우, 살았네요.”

선우진이 내렸던 판단이 아마도 그가 내린 관문의 해답과 일치했던 모양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당여은은 이제 안도한 목소리로 광검에게 물었다.

“그럼 다른 두 사람보다 저희가 먼저 관문을 통과한 건가요?”

그러자 광검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대답에 선우진과 당여은은 다시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들이 훨씬 먼저 관문을 통과했다.”

“…예?”

두 사람은 경악한 눈빛으로 광검을 바라봤다.

그들이 먼저 관문을 통과했다고?

광검은 아까 분명히 말했었다.

제 이관이 통과하고 남을 자는 단 둘뿐이라고.

그런데 그들이 먼저 관문을 통과했다면….

선우진과 당여은이 절망적인 생각들을 떠올릴 때 광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둘이 싸워 막우전이란 자만 남았지. 그러니 이제 너희도 둘 중 하나만이 남아야 한다.”

“…네?”

선우진과 당여은은 일순 그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둘이 싸워 막우전 하나만 남았다고?

그리고 우리도 하나만 남아야 한다고?

그게 무슨…!

하지만 선우진의 명석한 머리는 금세 그 말뜻을 해석해내고 말았다.

그가 신음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둘이… 남는다는 것이, 그들과 우리 중 한쪽만 남는다는 것이 아니었군요. 양측에서 한 명씩만 남겨야 한다는….”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선우진의 기억력이 처음에 광검이 했던 말을 그대로 기억해 냈다.

‘이관을 통과하는 자들은 단 두 명뿐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너희 중 단 두 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랬다.

그는 네 명 중 단 두 명만이 살아남는다고만 말했었지, 단 한 번도 먼저 관문을 통과한 쪽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건 그저 자신들의 착각이었다.

선우진이 멍한 얼굴로 당여은을 바라봤다.

그녀 또한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검은 선우진에게 직접 당여은과 싸워 죽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필요했던 이인관이라는 건 처음부터 둘 중 하나만 남기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악독한 관문이었다.

선우진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안 돼요. 안 됩니다. 저희는 절대로 서로를 죽이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손으로 당여은을 죽이다니,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광검이 비릿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 과연 그럴까?”

선우진은 그의 웃음에 경악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보여 주는 사악한 웃음이었다.

어쩌면 저것이 원래 그의 표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검은 이제 정말 마왕과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다시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주변 환경이 다시 변했다.

그리고 그걸 본 두 사람의 눈은 절망의 빛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이런….”

두 사람의 주변은 온통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용암호수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살이 익어 버릴 듯한 열기와 콧속으로 들어오는 매캐한 냄새.

그 거대한 용암호수의 중간, 작은 섬과도 같은 돌바닥에 선우진과 당여은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섬은 금방이라도 용암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듯 불안해 보이는 상태였다.

그때 허공에 둥둥 떠 그들을 지켜보던 광검이 입을 열었다.

“일다경이 지날 때마다 바닥이 점점 좁아질 것이다. 아마 반각이 지나기 전, 서 있을 곳이 모두 사라지겠지. 그때까지 둘 중 하나만이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둘 다 죽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제 단둘만 남은 선우진과 당여은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중 먼저 마음을 결정한 것은 당여은이었다.

챵!

그녀가 검을 뽑아 들고는 선우진에게 외쳤다.

청홍쌍검을 연기하기 위해 가져왔던, 선우진의 검과 한 쌍인 붉은 수실의 검이었다.

“공자, 어서 검을 뽑아요! 둘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야만 해요!”

선우진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선 아까보다 훨씬 선명해진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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