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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21화 (108/359)

121화 선택-2

잠시 입술을 깨물었던 선우진은 일단 그녀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당 소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함께 생각해 보죠. 우리 둘이 서로를 죽이는 건 그자의 뜻대로 놀아나는 거잖습니까?”

하지만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당여은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잖아요! 모르겠어요?! 우리가 여기서 둘 다 죽으면 광검의 비급을 막우전이 익히게 된다고요! 그게 세상에 얼마나 큰 해악이 될지 상상이 안 가나요?!”

물론 그녀의 얘기가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녀가 그 이유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뿜어지는 붉은 안광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설득하려 해 봤다.

“소저, 냉정을 되찾아야 합니다. 소저는 지금 광기에 휩쓸려 제대로 된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겁니다. 그러니 어서 대연정심결을 다시…!”

하지만 당여은은 더 이상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점점 붉어지는 눈빛으로 발악하듯 외쳤다.

“어서 검을 뽑아요! 뽑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겠어요!”

악귀 같은 표정으로 미친 듯 악을 쓰는 모습.

그 모습은 선우진이 알고 있던 당여은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선우진은 이제 그녀와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선우진은 결국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챙!

그가 마침내 검을 뽑아 들었다.

먼저 그녀를 제압해 놓고 다른 방도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러자 당여은이 먼저 날카롭게 눈을 치뜨며 달려들었다.

“하아압!”

슈학!

섬전 같은 일격, 일검에 선우진을 꿰뚫어 버릴 듯 진심으로 찔러오는 찌르기였다.

그녀의 검에서 선명한 녹색의 검강이 빛을 발했다.

심지어 그것은 선우진이 원래 알고 있던 그녀의 검보다 좀 더 빨라진 상태였다.

아마 광증의 영향인 듯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것을 보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선 채 당여은의 검이 날아오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선우진의 눈이 반개하고, 그의 시야가 상황 전체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점점 더 고요해졌다.

그녀의 검이 이전보다 빨라진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의 눈에는 보이고 있었다.

빨라졌지만 그만큼 더 단순해진 검의 경로가.

‘빠르지만 직선이다. 변화가 없어.’

그러니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둘 다 살아남기 위해서.

당여은의 섬전 같은 녹색 검강이 자신의 간격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선우진은 빛살처럼 검을 찔러 넣었다.

사일검법 제 일초.

일시사일.

“하압!”

그것은 공격해 오는 적의 손목을 찔러 공세 자체를 와해시키는, 예전 묵랑이 자신의 몸으로 썼던 바로 그 수법이었다.

당여은과 검을 오래 부딪치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선우진이, 단 일격으로 승부를 끝내는 모험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쉬이익!

빛살이 된 선우진의 검이, 당여은이 휘두르는 검의 축으로 정확히 찔러 들어갔다.

다만 이번엔 손목이 아닌 호수구였다.

태앵!

“아윽!”

맑은 쇳소리와 함께 당여은의 검이 하늘 높이 튕겨 나갔다.

선우진의 모험이 성공했던 것이었다.

“이럴… 수가.”

당여은은 단 일격에 검을 놓쳐버린 자신의 손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후우.”

당여은의 검을 저 멀리로 튕겨 버린 선우진은,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검을 거둔 채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찢어진 손아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을 줘 봐요.”

선우진은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찢어진 손아귀를 조심스럽게 감싸 줬다.

아직 그녀의 눈이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기에 혹시나 있을 돌발 행동을 경계했지만, 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선우진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목에 있는 완맥을 잡아갔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여은의 완맥을 제압한 선우진은 이제야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완맥을 제압당한 이상 그녀는 더 이상 내공을 끌어올려 자신을 공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후우.”

이제 좀 마음을 놓은 선우진은 그녀의 완맥을 잡은 채로 다시 주변의 용암호수를 둘러봤다.

이제 그녀에 대해선 한시름 놨으니 이 상황에 대해 고민해 볼 차례였다.

그녀의 광증을 해결하는 것도 급하지만 그것도 일단 살아남아야 가능할 얘기일 테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풀이 죽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당여은이 속삭였다.

“미안해요, 선우 공자.”

그 갑작스러운 사과에 선우진이 웃으며 대답해 줬다.

“아니에요. 지금 당 소저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때 당여은이 고개를 들어 선우진을 바라봤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붉어진 눈빛과 그녀의 얼굴에 흐르고 있는 요요한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알 수 없는 섬뜩한 느낌에 선우진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요사스럽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제가 미안하다고 말한 건 바로 무형독 때문이에요.”

무형독?

독이라고?

선우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여은은 계속해서 웃으며 속삭였다.

“당가의 직계들은 모두 최후의 최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약간의 무형독을 지니고 다니거든요.”

그 순간이었다.

선우진의 배에 격통이 찾아왔다.

“큭!”

순간 뜨끔한 느낌으로 시작했던 통증은 곧 내장이 끊어져 버릴 듯 고통스러워지고 있었다.

선우진이 당혹한 표정으로 당여은을 바라봤다.

“으윽! 다, 당 소저?!”

그러자 요사스러운 웃음을 지은 당여은이 말했다.

“무형독은 무색무취무미의 절독이죠. 해독약은 제가 이미 먹은 것밖에 없고요. 안됐지만 이제 선우 공자는 살아날 수 없을 거예요.”

선우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또한 이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걸.

그것도 치명적인 극독에 중독되었다는 걸 말이다.

눈앞이 점점 흐려져 오고 있었다.

선우진은 이렇게 갑자기 죽음이 엄습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곳에서, 그것도 당여은에 의해 죽게 되다니.

망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당여은이 속삭였다.

“미안해요, 선우 공자. 미안해요 정말.”

그녀의 표정은 굉장히 묘했다.

그녀의 얼굴 한편엔 요요한 미소가, 또 한편엔 안타까운 표정이. 마치 기쁨과 슬픔이라는 두 가지 모순적인 감정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광증에 사로잡힌 가운데 한 가닥 원래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선우진은 문득 아직 그녀의 완맥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완맥이 제압당한 이상 그녀의 생명은 아직 자신의 손아귀 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바로 그녀를 죽일 수 있었다,

오히려 중독된 자신보다 그녀가 먼저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 또한 그 사실을 알 텐데도 자신을 중독시켰다는 건 이성적인 판단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았다.

“당 소저….”

자신의 손을 잠시 바라보던 선우진은 결국 당여은의 완맥을 그냥 놓아 버렸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그가, 그를 죽게 만든 자신에게 아무런 복수도 하지 않은 채 그냥 풀어 주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이해 안 되는 행동에 당여은은 당황한 표정으로 선우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선우진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애써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당 소저, 지금 이 행동은 당 소저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나쁜 기운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뿐이에요. 나쁜 꿈을 꾸는 것처럼요.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탓하지… 말아요. 부디….”

말을 하던 선우진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목구멍에서도 피가 울컥 솟아올라 말을 더 이어 갈 수도 없었다.

털썩!

선우진은 결국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몸과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선우진은 기원했다.

지금의 행동 때문에 그녀가 스스로를 너무 증오하게 되지 않기를.

부디 광증을 극복해서 굳세게 살아 주기를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두 번째로 겪게 된 죽음의 순간이었다.

두려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쉴 수 있다는 것에 약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선우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은 분명 죽어 가고 있었는데.

아니,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다음 순간 갑자기 멀쩡한 몸으로 제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죽어서 귀신이 된 상태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살아 있는 멀쩡한 자신의 몸이었다.

내부로 흐르는 공력의 흐름 하나하나까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방금 전까지의 그건…?”

그때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문이었지. 내 두 번째 관문과 세 번째 관문 말일세.”

“!”

고개를 휙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에 그가 서 있었다.

바로 광협검괴 정명강이.

“서, 선배님?”

선우진은 경악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광검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마치 처음 보는 것만 같은 느낌, 선우진은 그의 낯선 모습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서, 선배님, 이게 대체….?”

광검 정명강은 분명히 아까와 똑같은 얼굴,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까까지의 그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폭풍같이 뿜어내던 살기를 싹 걷어 낸 채, 인자한 얼굴로 선우진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네. 자네들을 시험하느라 일부러 과격한 모습을 보였다네.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게나.”

“예, 예? 아, 예. 그, 그야 당연히….”

정말이지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그게 다 연기고 시험이었다고?’

무례를 사과하는 광검의 모습이라니, 선우진은 너무 적응이 안 돼서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은 선우진은 급히 광검에게 물었다.

“그, 그럼 저와 함께 온 당 소저는…?”

다시 살아난 이후 당여은의 모습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광검의 말대로 지금 겪었던 모든 것이 그의 시험이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그러자 광검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의 그녀는 그저 자네의 무의식을 이용해 만들어 낸 허상이었다네. 진짜 그녀는 무사하네. 그리고… 관문을 모두 통과했지. 자네처럼 말일세.”

그 말을 들은 선우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 그랬었군요!”

선우진은 깊이 안도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녀가 광증에 빠진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무사하다는 사실이 자신이 관문을 모두 통과했다는 그 말보다도 더 기쁘게 느껴지고 있었다.

광검은 그런 선우진을 흐뭇한 웃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가 문득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 옆으로 비켜서더니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자, 말보단 직접 보는 게 좋겠지.”

딱!

그러자 그의 맞은편에 갑자기 그녀가 나타났다.

당여은이었다.

그녀는 거의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

그녀가 갑작스러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당황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마침내 선우진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흡!”

선우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경계심과 반가움, 기쁨과 원망이 뒤섞인 복잡한 눈빛이었다.

그 귀여운 반응을 보고 선우진은 확신했다.

저 사람이야말로 진짜 당여은이라는 걸.

“당 소저!”

선우진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그러자 당여은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경계하듯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선우 공자가 맞나요?”

그녀의 질문에 선우진은 자신의 얼굴에서 인피면구를 뜯어내며 환하게 웃었다.

“예, 맞아요. 진짜 나예요, 선우진! 당 소저,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러자 당여은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더니 결국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곤 선우진의 가슴을 주먹으로 힘없이 두드리며 흐느꼈다.

“너무해. 정말 너무해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선우진은 따뜻한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의 반응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선우진은 그녀가 겪었을 일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과 같은 관문을 통과했다면 아마 그녀 또한 자기를 죽이려는 선우진을 만났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마 그녀도 자신을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는 그냥 죽음을 받아들였겠지.

문득 그런 선택을 해 줬을 그녀가 너무도 대견하고 또 고맙게 느껴졌다.

선우진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울고 있는 그녀를 꼭 안아 주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멈칫했던 그는, 팔을 더 올려 그냥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당 소저.”

아직은, 그리고 지금은 이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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