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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22화 (109/359)

122화 월하환검무

잠시 후, 당 여은의 마음이 진정되자 그들은 광검으로부터 드디어 모든 일의 자세한 전말을 들을 수가 있었다.

선우진이 얼빠진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예?! 그럼 그 막우전과 가유악의 모습도 가짜였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광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가짜였다네. 진짜 그들은 여전히 광혼관 안에서 헤매고 있지. 애초에 광혼관에서 이성을 잃은 자들이 어떻게 이관의 시험을 볼 수 있겠나? 그들은 그저 자네들을 조급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네.”

“하….”

“세상에.”

허탈했다.

이제는 선우진마저도 대체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혹시 지금의 이 상황도 가짜인 건 아닌지 문득 의심스러워졌다.

그러자 광검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하! 미안하네. 하지만 자네들이 관문을 모두 통과했다는 것과 지금의 이 상황은 확실히 진짜라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네.”

그의 확언에 조금 안심한 선우진은 문득 광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신 겁니까? 제 생각엔 이런 식의 관문이라면 선배님의 유진을 전하기는커녕 죄 없는 사람들만 수없이 죽게 만들 것 같습니다만.”

그러자 광검이 깊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하네. 자네들이 보기엔 후인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단 그저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겠지.”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읽은 듯한 광검의 말에 선우진은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광검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네. 내가 전수하려는 월하환검무가 너무도 위험한 무공이거든.”

“위험… 하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위험하지.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무공이라네.”

이어진 광검의 설명은 그랬다.

광검의 월하환검무는 사람을 환각 상태로 이끌어 무의식을 이끌어 내는 무공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월하환검무를 익히게 되면 잠재되어 있던 능력을 최고 십 할까지도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원래 우리는 갖고 있는 잠재 능력의 일 할도 채 사용해 보지 못하고 죽게 된다네. 사람이 위기가 닥치거나 절박해질 때 평소보다 훨씬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그 잠재되어 있는 능력 덕분이지.”

광검의 말에 따르면 월하환검무의 경지가 높아지면 신체가 낼 수 있는 최상의 힘과 두뇌가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이해력, 그리고 사람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집중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껏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심상 속에서 무공을 수련해 온 선우진으로선,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얘기인지를 듣자마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건… 엄청난 일이로군요. 당장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나지만, 저는 그보다 발전 속도가 더 무서울 것 같은데요?”

그 말에 광검이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혜안이 있군. 맞네. 모든 잠재력을 다 쏟아내는 경험을 항상 할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지.”

사람은 누구나 몸 상태가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집중이 잘 될 때와 잘 되지 않을 때가 존재했다.

그러다 가끔 그 두 가지 최고조가 겹치는 순간이 바로 자신의 낼 수 있는 능력의 최고치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통 무인들의 수련이란 그 최고치의 능력을 평상시에 내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능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을 때 그것을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 어느 때든 늘 그 최고치의 능력을 낼 수 있게 된다면?

선우진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대체 어떤 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때 광검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빛에는 그림자가 따라오게 마련이지. 월하환검무의 그림자가 뭔지 자네는 알 수 있겠는가?”

그 말에 선우진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신체가 버텨 내지 못할 수도 있겠군요. 안전선을 넘어설 테니까요.”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자기 방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한 상태를 지속하면 신체가 버텨 내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백 장까지 화살을 날릴 수 있는 활이 있다고 해서, 그 활을 항상 당기고 있으면 줄이 끊어지거나 활이 부서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낼 수 있는 최고의 출력과 안전한 출력 사이에는 분명히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장시간 머리를 쓰면 머리가 아프다는 느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최고조의 집중력과 두뇌 회전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면?

세 살배기 아이가 커다란 바윗돌을 들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다 치자.

그래서 실제 그 바위를 들어 올린다면?

인간의 육체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선우진의 말에 광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이내 다시 저었다.

“자네의 말도 맞네. 하지만 그건 월하환검무의 진정한 그림자가 아니지.”

“진정한 그림자….”

선우진은 그 말에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잠재능력을 다 발휘하는 것에 그 이외의 부작용이 또 있단 말인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문득 광검의 시험 중 제 일관이 광혼관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광혼관. 그는 월화환검무의 위험성 때문에 그런 식의 시험을 한 것이 어쩔 수 없다고 말했었지. 그렇다면!’

무언가를 떠올린 선우진이 신음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환각 상태로군요. 그래서 광혼관과 이인관이 필요한 거였어요.”

그 말에 광검이 한숨을 내쉬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맞네. 월하환검무의 가장 큰 위험성은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환각상태로 들어간다는 점이라네.”

그러자 당여은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환각… 상태요? 그게 왜 위험한가요?”

광검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천천히 풀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월하환검무가 왜 위험한지, 그리고 왜 자신이 이런 방식으로 후인을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월하환검무를 펼치면 환각상태에 빠지게 된다네. 마치 미약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가 되지.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그 상태에서는 모든 일을 자신의 감정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는 말일세. 지나가는 사람의 옷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를 죽일 수도 있고, 하늘이 우중충하다는 이유로 마을 하나를 전멸시킬 수도 있지. 좀 극단적인 얘기라고 생각하나? 놀랍게도 둘 다 내가 직접 해 봤던 일이라네.”

그렇게 말하는 광검의 표정은 매우 참담해 보였다.

선우진과 당여은은 그런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광검은 자조적인 어조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 별호에 왜 ‘광협’이란 글자가 붙었는지 아는가? 환각상태에 빠질 때마다 미친 짓을 하고는 제정신이 들 때마다 그것을 후회하며 만회해 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네. 그러니 그건 ‘협’이 아니었지, 그저 내 죄를 씻고 싶었던 발악이었을 뿐이었던 거네.”

거기까지 말한 광검은 잠시 침묵했다.

아마도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그에게 깊은 애잔함을 느꼈다.

비록 무림의 절대자 중 한 명이었다곤 하지만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후회 가득한 것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까 보여 준 그의 과거가 사실이라면 그는 월하환검무를 저주하면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아내와 자식, 지인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어떻게든 그것을 붙잡고 있어야만 했을 테니까 말이다.

‘복수를 하기 위해선 월하환검무를 익혀야 하지만, 그것을 익히면 자기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을 삶이라니, 그 삶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런 선우진의 마음조차 읽었던 것일까.

광검은 빙그레 웃음 짓고는 선우진에게 말했다.

“고맙네.”

짧은 말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광검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튼 그래서 후인에게도 이런 검증이 필요했던 걸세. 설사 월하환검무를 익혀 환각상태에 빠지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정도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검증이 말일세.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차라리 전수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의 말에 당여은도 이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이젠 왜 이런 관문이 필요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선우진이 잠시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고는 광검에게 말했다.

“저, 선배님. 죄송하지만 저희는 선배님이 찾으시던 그런 후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광혼관을 통과한 건 사실 심마를 막아 주는 비법을 익혔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연정심결이라고. 그러니 저희는 선배님 말씀처럼 그렇게 의지가 굳은 사람은….”

그러자 광검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나는 오히려 자네가 이렇게 고백하는 걸 보니 딱 내가 원하던 후인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러곤 선우진을 향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대연정심결을 익혔었다네. 그러니 그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네. 오히려 미리 대연정심결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장점이 될 수 있지. 게다가 자네들은 이관, 삼관을 통해 그저 자신들이 광기에 빠지지 않을 뿐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지 않았나?”

그 말에 선우진과 당여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네?! 선배님도 대연정심결을 익히셨다고요?!”

선우진은 조금 당황했다.

저 말대로라면 그가 대연정심결을 익혔음에도 월하환검무의 부작용을 막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광검이 부연 설명했다.

“그래, 나 또한 대연정심결을 익혔다네. 내가 그나마 삶의 절반이나마 제정신으로 있었던 건 모두 대연정심결 덕분이었지. 다만 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 익혔었다네. 이미 월하환검무의 성취가 너무 깊어진 후라 대연정심결의 성취가 그것을 따라가기 힘들었지. 그래서 노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네.”

“아아아!”

선우진은 이제야 안도했다.

다행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대연정심결의 성취가 월하환검무보다 낮아 문제가 됐다면, 둘의 성취만 조절할 수 있다면 훨씬 안전하게 익힐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말이다.

미리 대연정심결을 익히고 있던 게 장점이 된다는 말은 그런 얘기였던 모양이었다.

그때 광검이 빙긋이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대연정심결을 이곳저곳에 퍼트린 것도 나였다네. 나에겐 그것이 최고의 비급이었는데, 이게 별다른 눈에 보이는 효과가 없다 보니 사람들이 굳이 익히려고 하지 않더군. 그래서 몇 가지 다른 무공들과 묶어서 퍼트렸었네.”

그 말에 깜짝 놀란 선우진이 소리쳤다.

“예, 예?! 그, 그럼 나한권, 철나한 심법과 같이 있었던 게…?!”

“오, 그걸 익혔나? 맞네. 내가 퍼트린 걸세. 대연정심결이 소림에서 만들어진 비급이기에 소림 무공이랑 함께 묶어 봤었지.”

“허!”

선우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허탈하고도 신기한 느낌이었다.

선우세가의 무고에 있던 대연정심결이 사실은 광검이 퍼트린 것이었고, 그걸 익힌 자신이 그의 관문을 통과해 여기까지 오게 되다니.

어쩐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문득 광검을 바라보자 그 또한 따뜻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우진은 문득 광검이 그저 정인군자를 기다렸다기보다는, 인연이 닿는 자를 기다렸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광검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말했다.

“자, 어쨌든 해야 할 얘기는 다 한 것 같군. 그럼 이제 자네들의 의사를 물어보도록 하겠네.”

그러고는 진중한 눈빛으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지금 얘기한 대로 월하환검무는 대단한 장점을 지녔지만 동시에 무서운 단점을 가지고 있는 무공이라네. 어쩌면 자네들의 삶을 완전히 망쳐 버릴지도 모르지. 어떤가? 이런 불안전한 무공이라도 혹시 익혀 볼 생각이 있는가?”

그의 질문에 선우진과 당여은은 문득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서로에게 한번 빙긋이 웃어 주고는 선우진이 대표로 대답했다.

“저희에게 전수해 주신 것에 실망하시지 않도록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광검은 드디어 환하게 웃음 지었다.

“고맙네. 사십여 년의 세월을 건너 드디어 후인들을 찾아내고 말았군.”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세월과 회한, 그리고 후련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당여은은 그런 광검을 바라보다 문득 선우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문득 맑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아까 그녀가 보았던 선우진의 환상과 대비됐다.

아까는 정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저 자신보단 그가 살아남는 것이 맞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렇게 둘 다 살아남아 웃으며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마치 꿈만 같았다.

정말 행복한 꿈 말이다.

***

“당 소저, 검을 뽑으시오! 무방비 상태의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소!”

당여은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녀의 눈앞에서 선우진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를 알게 된 이후로 항상 그녀의 마음을 기둥처럼 지탱해 주고 이끌어 주었던 그가 말이다.

당여은은 이런 상황을 절대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저으며 사정했다.

“안 돼요, 선우 공자! 제발 정신을 차려요! 지금 공자는 광증에 빠져 있어요!”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선우진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질 뿐이었다.

“헛소리 마시오! 이건 광증 같은 것 때문이 아니오! 모르시겠소?! 우리 둘 중 한 명이 죽어야만 놈들을 막을 수 있단 말이오! 놈들이 광검의 유진을 갖게 된다면 세상에 혈마 못지않은 괴물이 또 나타난단 말이오!”

당여은은 절망했다.

그 이유 때문에 선우진이 저러는 것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말이 맞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여은은 슬픈 눈빛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공자의 말이 맞아요.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겠죠.”

그러곤 선우진을 향해 웃어 보였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맑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광증에 빠진 선우진마저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당연히 제가 죽는 게 맞을 거예요. 선우 공자가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기도 하고 또… 저는 절대 공자를 죽일 수 없으니까요.”

당여은은 할 수 있는 가장 환한 웃음을 지으려 노력했다.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그가 웃는 모습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저는 공자가 결국 광증을 이겨 낼 거라고 믿어요. 공자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그때가 되면 부디 저를 기억해 주세요.”

말을 마친 당여은은 바로 뒤돌아 몸을 날렸다.

붉은빛으로 이글거리는 용암 호수를 향해서였다.

몸을 훅 달구는 열기와 자신의 발끝에 닿아가는 이글거리는 용암 호수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마지막은 나쁘지 않았다고.

이제야 막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을 때 끝나버린 삶이라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없었다면 행복해질 수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자신은 어쩌면 가장 행복할 때 죽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당여은은 눈을 감으며 웃음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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