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사천당문-1
당소저와 내가 다시 이인관의 밖으로 나온 건 광검의 시험을 통과한 지 일주일쯤 지난 후였다.
석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을 때, 동굴의 통로는 여전히 은은한 녹광에 휩싸인 채 광증에 빠진 막우전과 가유악이 유령처럼 그 안을 헤매고 있었다.
당 소저가 전음으로 내게 물었다.
-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저들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네요.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텐데 말이에요. 저것도 광증에 빠져서 그런 걸까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 줬다.
- 그건 아닐 겁니다. 스승님 말씀대로라면 이인관 안의 시간은 이곳과 다를 테니까요. 그곳의 시간이 다섯 배쯤 빨라진다고 하셨으니 저희가 보낸 건 한 달이지만 저들은 아마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일 거예요.
- 아, 그렇겠군요.
우리는 지난 한 달간 광협검괴 정명광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에게 월하환검무를 사사했었다.
한 달이면 이미 전선에서 받은 휴가가 다 끝났을 시간이니 빨리 전선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탈영 처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인관 안의 시간이 현실보다 다섯 배가 빠르기에 현실의 시간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크르르르!”
그때 막우전의 붉은 안광이 우리에게로 향했다.
놈이 드디어 우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크아아앙!”
놈이 우리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초절정을 눈앞에 둔 상태로 광증에까지 빠져 거의 초절정과 흡사한 힘을 낼 수 있게 된 괴물, 그 막우전이 우리를 덮쳐 오고 있는 것이었다.
당 소저가 내게 급히 물었다.
“어쩌죠?”
여유 있게 웃으며 대답해 줬다.
“어쩌긴요.”
씨익 웃으며 검을 잡았다.
“그간의 성취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잖아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검을 뽑으며 월하환검무를 발동시켰다.
월하환검무 일 식.
비월.
그러자 곧 내 정신이 환각상태로 진입했다.
화아악!
나를 둘러싼 세상이 마치 꿈결 같은 몽환적인 장막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월하환검무는 기본적으로 검무를 통해 정신을 환각 상태로 끌어들이는 비기였다.
그러니 원래는 환각상태로 진입하기 위해서 먼저 검무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의 수련으로 나는 그 순서를 거꾸로 할 수 있을 만큼 월하환검무를 체화시킨 상태였다.
다시 말해 먼저 환각상태에 빠진 후 동작을 전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굳이 월하환검무가 아닌 다른 검법도 말이다.
그래서 검을 뽑자마자 환각상태에 진입한 나는 달려드는 막우전을 보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세상 모든 게 꿈결처럼 느껴지는 몽롱한 상태, 그 속에서 나는 마치 신이 된 듯한 전능함을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아아앙!”
막우전의 검이 광폭한 기세로 나를 후려쳐 왔다.
“흥!”
하지만 내가 코웃음을 치며 그를 한번 바라보자, 그의 검이 한순간 기어 오듯 느려지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내 의지로 세상의 속도를 늦춘 것이었다.
물론 사실은 내 정신을 가속해 주변 시간을 느리게 느껴지도록 만든 것뿐이었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마치 세상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듯한 우월감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있었다.
날아오는 막우전의 검을 보며 씨익 웃음 지었다.
‘느리군.’
물론 내 동작 역시 느려진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느리게 인식되는 검이 내게 위협이 될 리 만무했다.
나를 베어오는 검면을 아래로 살짝 눌러 비껴 내고는 몸을 띄워 아슬아슬하게 놈의 검을 피했다.
그러곤 공중을 날고 있는 듯한 몸을 자유롭게 휘돌리며 천천히 검을 그었다.
내 검이 놈의 옆구리를 서서히 그으며 지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곳에서 붉은 피가 방울처럼 몽글몽글 공기 속으로 올라가는 것도.
“크 아 아 아 아 아!”
놈이 일그러진 얼굴로 천천히 포효할 때, 땅에 발을 디딘 나는 반대 방향으로 그것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내 몸이 거센 압력을 이기고 천천히 반대 방향, 다시 놈이 있는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을 천천히 찔러 넣었다.
고통스러운 괴성을 지르고 있는 놈의 뒷목을 향해서였다.
쑤우욱!
미세한 압력과 함께 내 검이 놈의 목 안으로 쑤욱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물컹한 두부를 칼로 찌르듯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내 머릿속이 희열로 가득 찼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가능할 것 같은 고양된 정신과 머리카락 끝으로도 대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예민해진 감각, 마치 신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이 상태로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대연정심결로 무장한 내 정신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후우우.”
천천히 심호흡을 내뱉으며 환각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세상이 원래의 속도로 돌아왔다.
“커어어억!”
내 검에 목이 꿰뚫려 컥컥거리는 막우전의 뒷목에서 검을 긋듯이 뽑아냈다.
샤아악!
그러자 칠 할 정도 떨어져 나간 놈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푸화악!
그 피가 사방에 튀었을 땐 이미 몸을 날려 당 소저의 옆으로 돌아간 후였다.
너무도 간단한 싸움이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 줬다.
“멋져요, 진! 꼭 초절정 고수 같았어요!”
그녀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무래도 이자가 그간 아무것도 못 먹어서 신체 능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나 봐요. 이 정도면 굳이 월하환검무를 쓰지 않아도 이길 수 있었겠는데요?”
그건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아무리 월하환검무가 대단한 무공이어도 이자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막우전은 영양 섭취도 못 한 채 광증에 빠져 헤매다닌 탓인지,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무위가 두세 단계는 낮아진 상태로 보였다.
그러자 당 소저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어려운 상대를 쉽게 잡은 건 사실이잖아요. 축하해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고마워요, 여은. 저쪽에 있을 가유악은 여은이 잡도록 해요. 옆에서 지켜봐 줄 테니까.”
이인관 안에서 한 달을 같이 보내며 우리는 서로 많이 편해진 상태였다.
아직 말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호칭만큼은 이전처럼 공자나 소저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문득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심각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놀랍군요. 아직 일식 ‘비월’만으로도 이 정도니 이식 ‘현월’을 익히게 되면 감당이 될지 모르겠어요. 환각상태에서의 감각도 감각이지만 거기서 다시 빠져나오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데요?”
우리는 현재 모두 오식으로 구성된 월하환검무의 일식 ‘비월’만을 익히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우리 대연정심공의 성취로는 그 이상을 감당하기에 위험할 거라는 스승님의 충고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오식까지의 내용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익혀 보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판단은 역시 현명한 것인 듯했다.
현실로 나와 처음 펼쳐 본 일식 비월의 느낌이 그리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꽤 힘들었다.
그러자 당 소저가 긴장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며 전방을 바라봤다.
“진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저는 더 긴장해야겠군요.”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선 가유악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우리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가유악을 힐끗 바라보고는 당 소저를 향해 싱긋 웃으며 말해 주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잘 해낼 테니까. 나는 여은을 믿어요.”
그러자 그녀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었다.
희미한 녹광만이 가득했던 동굴 속을 환하게 밝히는, 마치 햇살 같은 그런 웃음이었다.
***
당 소저 역시 가유악을 훌륭하게 처리한 후 우리는 드디어 동굴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우리는 여태껏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도문승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환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달려왔다.
“두 분! 무사하셨군요!”
우리는 그 예상 못 한 만남에 무척 당황하고 말았다.
그가 아직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기 때문이었다.
동굴로 진입할 때,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일부러 다른 수천회의 무사들을 다 죽이고 그에게만 가짜 살수를 날려 죽은 척하게 했었다.
우리가 동굴에 들어간 사이 그가 몰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라는 사람을 너무 무시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이곳을 빠져나가기는커녕 죽은 무사들을 모두 매장해 주고는 우리가 나올 때까지 동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러다 혹시 우리가 아예 안 나오거나 우리 대신 막우전이 나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겁니까?”
너무 기가 막혀 그렇게 묻자 그가 소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은인분들이 아니셨다면 어차피 죽었을 텐데 그 정도 위험이야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계속 기다리려고 했던 것도 아닙니다. 오늘까지도 안 나오시면 그냥 가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가려고 했다는 그 말도 별로 믿기지는 않았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감탄했다.
그야말로 책 속에서나 나오는 정인군자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했다.
“흐음.”
나는 당 소저와 잠깐 의논한 후 그에게 광검 스승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기로 했다.
오히려 우리보다도 그가 더 월하환검무를 익힐 만한 인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월하환검무는 일식, 이식, 삼식, 단계가 올라갈수록 그 환각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는 무공이었다.
그러니 설사 우리가 아무리 대연정심결을 열심히 익힌다고 하더라도 월하환검무의 오식까지 펼칠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인군자인 도문승이 만약 월하환검무를 익히게 된다면?
지금이야 그의 무공이 너무 약하니 좀 힘들겠지만 만약 그가 일정 실력 이상의 무공을 갖추게 된다면 그야말로 월하환검무의 오식까지 완벽하게 펼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일단 저희는 동굴의 기관을 움직여 입구를 막아 놓겠습니다. 그러니 도형께선 수천회가 좀 조용해질 때까지 몸을 감추고 실력을 키우신 후 안으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내 충고에 그는 감격한 얼굴로 우리에게 감사했다.
“무인이 기연을 공유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은인분들께선 진정한 대인들이시군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대인이라….
그와 같은 정인군자에게 대인 소리를 듣는 건 굉장히 민망한 일이었다.
들어가는 법이야 우리가 알려 줄 수 있겠지만 월하환검무를 배울 수 있는가는 어차피 스승님의 판단이실 테니 말이다.
또 이인관을 통과하려면 그에 못지않은 정인 군자를 또 한 명 만나야 할 텐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기도 했다.
우리는 그에게 몇 가지 조언을 남긴 후 다시 청홍쌍검으로 변장한 상태로 수천회로 갔다.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수천회주인 막우전이 기연에 눈이 멀어 악행을 저질렀다곤 하지만 수천회 자체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있어 꼭 필요한 방파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니 완전히 와해되지는 않도록 손을 좀 봐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수천회의 장로 중 가장 인격자라고 평가받는 나철경과 몰래 접촉했다.
그는 대쪽 같은 성정의 협객이었고 최근 회주인 막우전에게 외면받았었다는 것이 하오문의 정보였었다.
아마 이번 일을 진행하며 방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막우전을 죽였소.”
정확히 광협검괴의 유진이란 것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충 기연을 차지하려다 일어났던 일들을 들은 그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괴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회주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있소?”
“그간 수천회의 무사들, 그리고 주변 문파에서 징용한 제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건 아마 당신도 눈치채고 있었을 거라 믿소. 회주인 막우전이 당신을 따돌린 채 뭔가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도.”
그러자 그가 헛웃음을 지으며 탄식하듯 말을 뱉었다.
“그래, 그랬지. 그저 나와 성향이 맞지 않아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찌….”
우리는 그에게 막우전과 가유악, 그리고 다른 수천회 무사들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광혼관이 있는 곳이긴 하지만 그곳의 입구를 기관으로 막아 놓았기에 아마 원래 알고 있던 자라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나철경 장로께서 막우전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면 이후 수천회를 장악할 수 있는 명분을 얻으실 수 있을 거요. 그리고 우리는 장로께서 장악한 수천회가 이전과는 달리 진정한 정파로 거듭나기를 기대하고 있소이다.”
괴인 청홍쌍검으로 화한 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 내 말에, 나철경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와의 대화를 끝낸 후에야 우리는 다시 길을 출발할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사천당문으로 가 볼 시간이었다.
***
사천당문이 있는 곳은 사천성의 중심지인 성도였다.
우리는 최소한의 휴식만 가져가면서 빠르게 달려 사흘 만에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성도는 무척이나 번화한 도시였다.
관문을 통과해 들어가자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줄지어 서 있는 상점들부터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감탄하며 말했다.
“저도 귀주성의 성도인 귀양에서 살았지만 여기가 훨씬 더 번화해 보이는군요. 역시 당문, 청성, 아미라는 거대 문파가 있는 사천성의 중심지답네요.”
“네, 무척 번화한 곳이죠.”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당 소저의 표정은 영 밝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성도에 다가오며 점점 더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던 중이었다.
아마 당문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마음의 부담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별일 없을 거예요. 그리고 설사 별일이 있더라도 내가 항상 옆에 있을 거고요.”
그러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물기 어린 그녀의 눈이 마치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성도의 중심지에 위치한 사천당문의 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황궁이라고 말해도 믿길법한 거대한 규모의 장원이었다.
그 거대한 장원의 정문 앞에는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며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 명, 한 명의 뛰어난 무위도 무위지만, 마치 군을 연상케 하는 각 잡힌 태도와 절도 있는 경계 태세를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수문 무사들의 조장은 절정의 경지에 달한 무인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절정의 무사가 고작 문을 지키고 있다니, 과연 사천당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우리가 다가가자 조장 무사가 정중하게 앞으로 나와 물었다.
“이곳은 사천당문입니다. 두 분께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마 같은 당문 소속임에도 당 소저의 얼굴을 모르는 무사인 모양이었다.
그러자 당 소저는 그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전선에서 근무 중이던 당가의 여식 당여은이 가주님의 부름을 받고 휴가를 받아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무사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그리고 한결 더 정중해진 자세로 말했다.
“당여은 막내 아가씨셨군요. 당가에 들어온 지 아직 삼 년밖에 안 돼 미처 몰라뵈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시길.”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문에서 잠시 기다리던 우리는 안에서 나온 다른 절정 무인에게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정중한 태도로, 하지만 결코 가족을 대하는 것 같지는 않은 사무적인 태도로 당 소저에게 말했다.
“무사히 돌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가씨. 바로 대전으로 모시고 오라는 가주님의 명이셨습니다.”
그러자 당 소저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대전으로요? 지금 바로?”
“예, 그렇습니다.”
오자마자 대전으로 오라는 말이 의외였는지 그녀는 무척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네, 알겠어요. 가죠.”
나는 그녀의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우리를 안내해 주는 절정의 무인도 나를 힐끗 보긴 했지만 딱히 제지하지는 않을 눈치였다.
한참을 걸어 정문 뒤에 나타난 드넓은 연무장과 거대한 몇 개의 전각들을 지나자, 우리는 드디어 당문의 거대한 대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가 먼저 대전 안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우리의 도착을 알렸다.
“당여은 아가씨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지막한, 하지만 엄청난 내공이 담겨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우리는 대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안에 도열해 있는 수많은 무인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한번 주욱 훑어보고는 그들의 복장 중 상당수가 당가의 녹색 무복이 아닌 다른 문파의 무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마 타 문파의 무인들도 함께 참석할 수 있는 회의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무인들이 도열한 중심, 대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상석에 지난번 정협방에서 봤던 그가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잘생긴 얼굴로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미중년인. 사천당문의 가주인 독암지존 당정후였다.
당 소저와 나는 그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앞에 도달한 당 소저는 깊게 포권하며 말했다.
“당가의 여식 당여은이 가주님께 무사히 복귀했음을 보고드립니다.”
사 년 만에 돌아온 딸이 자기 친아버지에게 하는 인사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딱딱한 인사였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독암지존 당정후가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전선에 들어간 지 사 년째더냐?”
역시 안부 인사 따위는 전혀 없이 바로 질문으로 들어가는 당정후의 모습이었다.
당 소저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이제 사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당정후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일 년 후엔 전역할 수 있겠구나?”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오 년을 근무하면 전선에서 전역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짜고짜 일 년 후엔 전역할 수 있냐니.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당 소저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일 년 후엔 오 년째가 됩니다. 하지만 소녀는 그 후 다시 재입영을 신청할 생각….”
그때 그녀의 말을 끊으며 당정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 소저가 경악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말이었다.
“일 년 후 혼례를 치르도록 해라. 너의 혼처를 잡아 놨으니.”
“…네?!”
경악한 당 소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