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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26화 (113/359)

126화 당기주

잠시 후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당정후가 입을 열었다.

“놀라운 한 수이긴 했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곤 자네가 진짜 선우세가의 후계자라고 믿어 줄 수는 없을 것 같군. 또한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만약 자네가 진짜 당가의 데릴사위가 되고 싶다면, 정식으로 선우세가에서 혼담이 들어오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겠나?”

그의 말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씩씩하게 대답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가주님께서 제게 약간의 시간만 주신다면 지금 당장 선우세가로 돌아가 정식으로 혼담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잠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당정후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쁠 것 없겠지. 자네가 진정 그렇게 한다면야 잠시 홍사검문과의 혼사를 중지하고 기다려 주겠네.”

그 말에 사색이 된 온제웅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가, 가주님!”

그러자 온제웅을 힐끗 바라본 당정후가 첨언했다.

“단! 내가 기다려 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걸세. 그러니 서두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선우세가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고개를 돌려 당 소저를 바라봤다.

그녀는 내내 감동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그녀를 잠시 따뜻하게 바라보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녀오겠소, 여은.”

그러자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애틋한 연인들이 눈으로 대화하는 듯한 모습일 것이었다.

그런 우리를 지켜보는 당정후와 온제웅의 표정은 무척 좋지 않은 상태였다.

당정후의 눈빛은 복잡해 보였고 온제웅의 표정은 완전히 썩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눈으로 대화한 것이 아니었다.

전음으로 했었다.

그사이 나는 그녀에게 전음으로 더 많은 말을 전한 상태였던 것이다.

- 잘 들어요, 여은. 내가 선우세가의 후계자라는 건 거짓말이에요. 그러니 정식으로 혼담을 제시하는 건 불가능할 확률이 높아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딱 이 정도, 약간의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는 것뿐일 거예요. 그러니 나머지는 여은이 해야 해요. 잊지 말아요,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난 여은을 믿어요.

내 전음을 들은 당 소저는 잠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가는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애틋한 연인처럼 웃고 있는 그녀의 눈은 굳은 결심을 한 듯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도문승을 구하러 가자고 말할 때처럼 말이다.

그런 후 나는 바로 사천당문을 나섰다.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이동하는 게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정후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선우세가로 보냈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

선우진이 다시 당가를 나서자, 대전에서 해산한 당가인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가주인 독암지존 당정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잠시 후, 당정후는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온 누군가를 만나야만 했다.

“가주님, 소자 기주입니다.”

그는 당가의 유명한 후기지수인 당가사수의 맏이이자 독룡이라 불리우는 당정후의 장자 당기주였다.

그의 방문에 당정후가 대답했다.

“들어오너라.”

그러자 조심스럽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당기주는 공손하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가주님, 소자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에 당정후는 의미심장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물었다.

“무엇을 말이냐?”

“그 선우진이란 자에게 기회를 주신 것을 말입니다. 그의 무위는 분명 꽤 놀라운 것이었지만 지금 저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반면에 홍사검문은 지금 저희에게 반드시 필요한 세력이지요. 그러니 그 둘은 비교할 가치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당정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정확한 말이다. 제법 생각이 깊어졌구나.”

그러자 아버지의 칭찬에 당기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하지만 바로 이어진 당정후의 말에 당기주는 그대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가주의 자격을 갖추기엔 모자라구나.”

냉랭한 표정과 신랄한 말투였다.

아버지의 차가운 눈빛을 받은 당기주는 금세 기가 푹 죽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가주님.”

당가사수는 모두 가주 당정후의 아들이자 당문의 미래라고 불리우는 젊은 기재들이었다.

그러니 그들 중 한 명이 분명 미래의 당가주가 될 것이라고 세인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정후는 그 네 명을 모두 마땅치 않아 하고 있었다.

큰아들인 당기주도 그렇지만 네 아들 모두가 너무도 당정후 자신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당정후 자신이 그렇게 되도록 아들들을 대해 왔기 때문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당가의 가주가 될 인재라면 아무리 핍박을 받아도 자신의 독기만은 잃지 않아야 할 것이 아닌가.

마치 자신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치던 아까 그 선우진이란 놈처럼 말이다.

기가 푹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당기주를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당정후는 입을 열어 그에게 물었다.

“뭐가 죄송한지는 알겠느냐?”

그러자 당기주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히 부족한 식견으로 가주님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이….”

당정후는 혀를 찼다.

기껏 한다는 말이 고작 자신의 심기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라니 너무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놈이 차기 당가주에 가장 가까운 놈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당정후는 애써 분노를 삼키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잘 생각해 보거라. 아까 그 자리에서 내가 선우진이란 놈 대신 온제웅을 사위로 하겠다고 발표했다면 가솔들의 반응이 어땠을 것 같으냐?”

그러자 당기주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가솔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가주님께서 결정하셨는데 가솔들의 반응 따위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의 반문에 당정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놈은 아직 가주가 되기엔 한참 모자랐다.

“잘 들어라. 가주는 중요한 순간 모든 가솔들이 반대하더라도 자신만의 의지를 관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위해서라도 다른 중요하지 않은 결정에선 가솔들의 의견을 잘 수용해 주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중요한 순간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 해도 가솔들이 믿고 따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당정후의 말을 당기주는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공손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당정후는 아들이 그래도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가솔들이 신뢰하지 않는 가주가 오래 존속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가솔들이 신뢰할 수 없다는 건 가주 또한 가솔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신뢰하지 못하는 가솔들에게 무슨 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 네놈이 가주가 된다면 너 혼자 힘으로 당가의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셈이냐?”

그러자 당기주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감탄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깊숙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과연 그런 것이었군요. 부족한 제 식견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주님.”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다 다시 물었다.

“그럼 가주님께선 이번에 홍사검문을 얻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신 것입니까?”

그의 질문에 당정후는 당연하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분명 중요한 일이지.”

그러자 당기주가 의문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당정후는 그런 아들을 향해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만 주면 저절로 이루어질 일을 왜 무리하게 진행하려 한단 말이냐? 기주, 너는 내가 아까 왜 선우진이란 아이에게 선우세가를 갔다 오라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느냐?”

당기주는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로선 당정후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우진이 선우세가에 다녀오는 것과 온제웅을 사위로 삼아 홍사검문을 복속시키는 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한참을 생각하던 당기주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저의 부족한 식견으론 도저히 가주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당정후가 다시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모자란 놈. 잘 생각해 보아라. 나는 선우진이란 아이에게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온제웅에게도 시간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지. 선우진이 선우세가에 다녀오는 동안 온제웅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으냐? 그 뱀 같은 놈이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당기주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그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감탄성을 토해 냈다.

“아아! 그럼?!”

“그래, 온제웅 그놈이라면 절대로 선우진이 살아서 다시 당가를 밟도록 할 리가 없다. 아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사이 선우진을 죽이려 하겠지.”

“과연! 그럼 우리가 괜히 나설 필요도 없는 일이었군요! 기다리면 저절로 해결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흥분해서 그렇게 소리치던 당기주는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는 다시 당정후에게 물었다.

“하지만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우진이란 녀석이 멀쩡히 살아서 당가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당정후가 빙긋이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온제웅이란 놈이 정말 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겠느냐? 아니면 선우진이란 놈이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놈이거나 말이다.”

그러고는 아까 선우진의 모습을 떠올리듯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당가의 일원으로 맞이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얘기겠지. 당장 홍사검문이 아쉽긴 해도 미래에 그 이상으로 당가에 이익이 될 것임에 분명한 녀석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놈이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상관이 없지 않겠느냐?”

그 말을 들은 당기주는 감탄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과연 그렇군요! 소자는 가주님의 현명하신 심계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선우진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음 짓고 있던 당정후는 미처 알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 당기주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있다는 사실을….

***

같은 시각 홍사검룡 온제웅은 일그러진 얼굴로 홍사검문의 문도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곤 동료들과 노닥거리고 있던 직속 부하 노지왕을 다짜고짜 후려쳤다.

“이 멍청한 자식!”

퍼어억!

“끄어어억!”

갑작스럽게 날벼락을 맞고 땅을 뒹군 노지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온제웅에게 황급히 물었다.

“고, 고, 공자님, 대체 왜?!”

하지만 온제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마구 두들겨 팰 뿐이었다.

“이 병신 같은 놈!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퍽! 팍! 푹! 퍽!

“꺼어어억! 어억! 으억! 끄어억!”

온제웅과 대전에 함께 있었기에 상황을 알고 있었던 부하들은 노지왕이 그저 온제웅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아무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간 자신까지 함께 당하고 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온제웅이 구타를 멈춘 것은 노지왕이 완전히 정신을 잃고 꿈틀거릴 때였다.

“으으으으.”

온제웅은 완전히 넝마가 된 채 신음을 흘리고 있는 노지왕을 발로 뻥 차 버리며 소리쳤다.

“이 쓸모없는 놈을 갖다 버려라!”

그러자 숨도 크게 못 쉬고 그의 구타를 지켜보고 있던 부하들이 서둘러 노지왕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 모습을 벌레 보듯 지켜보고 있던 온제웅은 이제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남아 있던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뭘 하고 있느냐?! 어서 방도를 짜내야 할 것이 아니냐?!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도를!”

하지만 그가 부하들을 갑자기 쥐어짠다고 방법이 튀어나올 리 없었다.

그의 부하들은 그저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설마 했더니 역시나 이러고 있었군. 아주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그렇게 말한 자는 방금 전까지 당정후의 집무실에 있었던 당가사수의 맏이 당기주였다.

그의 등장에 방금 전까진 황제처럼 오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온제웅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기, 기주 형님! 오셨습니까?!”

그러자 당기주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에게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 대체 언제까지 나를 실망시킬 참이냐?! 당가의 일원이 되기 전까지만이라도 품행에 주의하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고작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자의 검을 탐내?! 그것도 화영빈의 의제라는 자도 알아보지 못하고?! 이 병신 같은 놈! 네놈에게 뇌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이냐?!”

홍사검문의 후계자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온제웅으로선 다른 어디에서도 들어 보지 못했을 폭언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부하들이 다 듣고 있는 앞에서 말이다.

온제웅은 끔찍한 수치심과 분노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도 비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다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온제웅은 절대 당기주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

그의 홍사검문이 이제껏 당가의 비호 아래 성장을 거듭해 온 것도, 그래서 마침내 그가 당가의 데릴사위로까지 거론된 것도 모두 다 당기주가 홍사검문을 자신의 세력으로 점찍고 키워 왔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당기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온제웅을 노려보다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그의 질문에 온제웅은 더욱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건 지금 생각을….”

그러자 당기주가 버럭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느냐?! 그 선우진이란 놈이 다시는 살아서 당가를 밟을 수 없도록 손을 써야 할 것이 아니냐?!”

그 말에 온제웅이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그렇게 좋은 생각이 있었냐는 듯 환해진 얼굴이었다.

“아! 그렇군요! 역시 형님!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그런 그를 한심한 표정으로 노려보며 당기주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쓸 만한 살수 문파와 연을 맺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당장 그곳과 접선해서 의뢰를 넣어라.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한다고.”

물론 돈을 얼마든지 주는 건 당기주가 아닌 홍사검문일 것이지만 온제웅은 엄청난 은혜를 입었다는 듯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 감사합니다! 꼭 형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쯧!”

당기주는 혀를 차며 온제웅의 방 밖으로 걸어 나오려 했다. 그러다 문득 다시 몸을 돌려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암혈향과 접선할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해라.”

그러자 온제웅을 비롯한 장내의 모두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 암혈향 말씀이십니까?”

암혈향은 혈교의 구유음마 지기음과 더불어 살수로서 유이하게 천하삼십육성에 올라 있는 강자였다.

무림에서 절대자들의 바로 밑에 위치한 사신.

당기주는 지금 온제웅에게 그런 암혈향과 접선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기주가 다시 말했다.

“그 살수 문파가 실패할 것도 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암혈향과 접선할 방법을 찾아보란 뜻이다. 왜, 못 하겠느냐?”

그 말에 온제웅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당기주는 온제웅을 벌레 보듯 한심하게 쳐다보며 고개를 한 번 젓고는 몸을 돌렸다.

너무 탐욕스럽고 멍청하며 한심한 놈이었지만, 그럼에도 당기주는 온제웅을 당여은과 결혼시켜 데릴사위로 만드는 일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실질적으로 자신의 손발인 홍사검문이 온전한 당가의 세력이 된다면 그만큼 당가 내에서 자신의 세력이 커지게 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것은 차기 가주를 노리는 당기주로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그러니 당기주는 그 선우진이란 놈 또한 절대 살려 둘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놈은 반드시 죽어 줘야만 했다.

당기주의 눈빛이 뱀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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